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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 님의 서재입니다.

용과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ung1354
작품등록일 :
2017.11.23 17:33
최근연재일 :
2019.02.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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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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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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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3권 마지막 화

DUMMY

처키력 224년 7월 21일.


"방학이라 해도 그저 휴식만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을 배우고, 채우지 못했던 것을 채우는 기회로 삼아..."


교장이 단상에 서 학생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의외성이나 깊은 의미 따위는 담기지 않은, 그저 형식만이 존재하는 연설이었다.


"이상으로 연설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교장이 끝인사와 함께 단상에서 내려왔다. 학생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뭉쳐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그나저나 이 학교는 체육관 이외에는 건물을 안 쓰는 건가. 그렇다면 왜 저렇게 쓸데없이 많이 지어놓은 거야.


같은 잡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미아드랑 브릿이 다가왔다. 미아드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정말 여름방학이네! 학교 생활의 꽃이라던!"


"집단에서 빠져나가는 행사가 그 집단의 최고의 이벤트라는 건 좀 애매한 기분이지만."


"후후. 이제부터는 그동안 못해봤던 수도 관광 같은 것도 해 볼 거야!"


"너무 놀지만 마라. 안 그래도 약한 게 다음 학기 진도 못 따라갈라."


"꼭 그렇게 기쁜 사람 마음을..."


미아드가 투덜거렸지만 자신이 약하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미아드는 2단계가 되기 전에는 신입생들 중 최하위 수준이였고, 지금은 하위 수준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 학교의 신입생들은 전부 평생 동안 단련해 와 잠재력을 터뜨리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고작 반 년, 아니 5개월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따라잡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물론 굳이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인간은 커다란 열등감 앞에서 절망해 포기하거나, 더 노력하려는 마음을 가지거나 대개 둘 중 하나인데 내가 볼 때 미아드와 브릿은 전형적인 후자였으니까.


안 가르쳐주는 게 더 성취에 도움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돌렸다.


"뭐, 정 놀고 싶으면 꼭 브릿 데리고 다녀라. 넌 안 그래도 시비 걸릴 것 같은 외견인데 약하기까지 해서 걸렸다간 털릴지도 몰라."


"그만 좀 놀려! 그리고 갈 거라면 셋이서 같이 가야지!"


"아, 그건 안 돼. 난 이번 방학에는 여기 없을 거거든."


미아드의 얼굴에서 놀림을 받던 중에도 남아 있던 기쁜 기색이 갑자기 싹 사라졌다. 미아드가 당황하며 물었다.


"뭐? 방학 때는 기숙사에 있을 거라며!"


"내가 언제 그랬냐. 일단 있을 생각이긴 한데 바뀔 수도 있다고 했지."


새끼가 자기한테 유리한 식으로 기억을 바꾸고 있어. 그건 내 특기인데.


"그럴 수가..."


미아드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대신 브릿이 물었다.


"갑자기 어딜 가는 거야? 고향에 갔다오려고?"


"그럴까 생각도 해봤는데 너무 멀더라고."


작정하고 가면 방학 중에 왕복이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지만, 상당한 일수를 깎아먹게 될 것이다.


뭐, 쉬는 날짜가 두 달 가까이 되니까 그것도 감안하고 갈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가족들한테 1년 정도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말하고 왔으니까."


"그럼?"


"지금 당장 꼭 가야 할 곳은 아니지만, 꼭 가보기는 해봐야 할 곳이 있거든."


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다시 화제를 돌렸다. 더 들어가면 내 회귀에 관한 것도 말해야할 텐데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브릿. 너도 기숙사에 남는다고 했지?"


"어."


"넌 왜야? 집까지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용 마차 같은 걸 타면 좀 더 빨리 갈 수 있지 않나?"


"...음. 우리집은 좀 불편해서..."


브릿은 그렇게 말하며 표정을 굳혔다.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비밀을 만들다니. 녀석답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녀석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귀족 집안 내부에서 겉도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녀석이 평소에 가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단 걸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어쩌면 집에서의 일이나 추억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랑 형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생략하던 것이랑 관계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십중팔구는 관계 있겠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사람이 개인적인 일로 숨기고 싶어 하는 게 있다면 존중해줘야 하는 법이다. 애초에 나도 숨기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을 돌린 타이밍이고.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자 미아드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퍼뜩 들고 말했다.


"그, 그럼 오늘은 어때? 오늘 하루 정도는 같이 다닐 수 있잖아!"


"뭐, 어려울 건 없지."


하루 정도 늦는다고 도착 못할 정도로 먼 거리는 어닐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아싸!"


미아드가 기뻐하며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저 녀석도 그동안 고생한 게 있으니까. 하루 정도는 밖에서 놀아줘도 괜찮겠지.


그러나 브릿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미안. 나도 오늘은 조금 바빠."


"어!? 왜!"


미아드는 경악하며 거의 화내는 듯한 분위기로 물었다. 그 기세에 압도된 브릿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게. 예전에 타티 르스한테 졌을 때, 할리가 나한테 대련이 아닌 제대로 된 전투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부족하다고 한 적이 있잖아. 그래서 거기에 대해 조금 배워볼까 싶어서 아버지한테 부탁드렸더니 4단계 검사를 초청시켜 주셨거든."


"4단계 검사?"


미아드가 나를 보았다. 하긴, 지금 둘의 눈앞에 전투 경험이 풍부한 4단계 검사가 한 명 있기는 했다. 물론 내 자랑이다.


그러나 브릿은 고개를 저었다.


"할리도 물론 대단하긴 하지만, 우리와 같은 나이잖아. 좀 더 관록을 쌓은 분한테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


나도 관록이라 부를 만한 건 꽤 많이 쌓았다. 그럼에도 브릿이 부족함을 느낀다는 건 그냥 내 가르치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젠장.


"그래서 조금 있다가 나가서 그 분을 만나러 가야 해. 그 후로 보름 정도 그 분한테 훈련을 받을 예정이야."


"며칠 전만 해도 당분간은 예정이 없다며?"


미아드가 불만이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브릿이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성격이 워낙 자유로우신 분이라서 어제 갑자기 대답이 왔어. 방학식 날부터 보름 동안만 가르침을 주겠다고."


4단계 검사쯤 되면 대부분의 나라는 전술병기 취급을 한다. 그건 처키도 마찬가지인지 3대 귀족의 명령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무력과 더불어 가문도 좋은 인간일지도 모르고.


"대체 어떤 사람인데?"


미아드가 물음의 대답에는 나도 귀를 기울였다.내가 아는 강한 무인들은 지금으로부터 최소 20년쯤은 더 지나야 두각을 드러내는 나이가 대부분이지만 어쩌면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브릿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도 뵌 적이 없어서 구체적인 성격은 몰라. 전격의 검사라는 칭호로 불리는 분인데 실력은 왕국 내에서는 삼 위 안에 들 정도라고 하셨어."


"대단한 분이네..."


"으음..."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뭐, 브릿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실력은 확실할 테니 나쁜 걸 가르치진 않겠지.


미아드는 브릿은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걸 확신했는지 기운 없는 얼굴이 되었다. 나는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 너무 지나치게 우울해하지 마라."


"그렇지만 이제부터 2달 동안이나 너랑 떨어져 있는데 오늘 하루도 같이 못 노는 거잖아..."


"까짓거 우리 둘끼리 가면 되지."


"어? 우리 둘만?"


미아드는 마치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평범하게 말을 받더니.


"!"


금방 자신이 한 말에 놀란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며 어떤 한 단어를 중얼거리려 했다.


"그건 데, 데이..."


"우리 데이트라는 흔한 헛소리는 하지 말자. 우리는 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종자들이 아니잖아. 서로의 앞에 현실 사례가 하나씩 있는데."


"..."


미아드가 조금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을 했다. 그래서 물었다.


"가기 싫냐?"


"아냐! 좋아! 응. 맞아! 좋아! 어쨌든 너랑 같이 노는 거잖아! 그런 거라면 좋아!"


미아드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보는 사람도 같이 웃음을 짓게 되는 미소였다. 브릿도 마찬가지였는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어째 셋이서 간다고 할 때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네. 하하. 역시 난 너희들이게 친구의 친구에 불과한 거지? 그냥 3이라는 숫자가 균형감이 좋아서 데리고 다니는 것에 불과한 거지?"


"에이. 그런 거 아냐. 브릿. 에헤이. 얼굴 돌리지 말라고 이야기하자니까."


"맞아. 브릿. 니가 얼마나 소중한 친구인데."


브릿은 오랜만에 증상이 발병했다. 다행히 빠른 대처와 진심어린 칭찬을 통해 빠르게 진압할 수 있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


"그러고보니 말이야."


"왜?"


사락사락.


화장실 내부에서 옷을 갈아입는 소리가 났다. 미아드는 진짜 성별을 밝히고 난 후로 며칠 동안은 나에게 샤워 소리나 옷을 갈아입는 소리를 들려주는 걸 부끄러워 하기도 했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곧 적응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미아드가 나오길 기다리며 물었다.


"브릿이랑 같이 안 가봐도 괜찮냐?"


"응? 내가 왜?"


"4단계 검사 보고 싶지 않아? 너 기사 같은 거 좋아하잖아."


누워 있다 보니 예전 일이 기억났는데, 미아드는 이 방에서 대형 창문 쪽으로 보이는 기사들을 동경한 적이 있다.


기사를 좋아한다면 4단계 검사는 거의 추앙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런데도 미아드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감탄성에 가까웠는데 당황이 가득 차 있었다.


"잊고 있었다!"


화장실 문쪽으로 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곧 문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 지금 쫓아가면 잡을 수 있을까?"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니가 씻는 게 너무 오래 걸려서 이미 4단계 검사랑 만났을 수도 있고."


"아. 인생에서 한 번뿐일 지도 모르는 기회를..."


"내가 말하긴 했지만 넌 4단계 검사 매일 보고 살거든. 한 번 뿐은 무슨."


"그건 그렇지만. 으으."


미아드가 끙끙거리며 앓는 게 문의 흔들림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 정도로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끝은 있어서 1분 정도 지나자 포기했는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놀리듯이 말을 꺼냈다.


"마니아라면 화제가 나왔을 때 언제든지 대응할 준비는 되어 있어야지. 기사 마니아로서의 자세가 너무 부족한 거 아니냐?"


"나도 후회 중이니까 그만해. 그리고 4단계 검사라는 말에 집중 못한 건 너 때문이라고."


"내가 뭐?"


왜 갑자기 떠넘겨.


미아드는 평소와 별 차이가 없는 어조로 말했다.


"니가 내 옆에 두 달 동안 내 옆에 없을 거라는 말을 듣고 난 후로는 계속 머리가 잘 안 돌아갔단 말이야."


"..."


"엄청 슬프고, 화도 나고 그래서..."


저 녀석은 지금 자기가 얼마나 부끄러운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나는 미아드가 나를 향해 가지고 있는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쯤 되면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사라지질 않는다. 전부 내 착각일 수도 있지 않는가.


아직까지는 확신하기 어렵지. 그렇게 나는 또다시 당장의 평온을 위한 자기합리화를 하며 생각을 끝냈다.


"좋아! 다 됐다!"


그때 화장실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온지 2시간 가까이 지났는데 이제야 끝난 모양이다. 나는 관광을 시작하기도 전에 살짝 지친 기분을 느끼며 일어섰다.


끼익.


잘 기름칠한 문이 열리며 미아드가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복장은 그냥 간단한 흰색 원피스였다. 꽤나 잘 관리되어 있었고 노출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냥 여름에 너무 덥지 않게 입을 수 있을 정도로 팔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여러 부분에 치장의 흔적이 있었다. 머리는 뭘로 감았는지 평소와 달리 윤기가 흐르고 있었고, 몸에는 향수가 어디서 났는지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머리에는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빨간색 머리띠도 하나 매어져 있었다. 신발은 평소에 신던 실용성 좋고 투박한 것이 아니라 여자아이들이 신을 만한 앙증맞은 것이었다.


두 손은 꽉 잡고 가슴에 댄 채 눈빛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심사위원의 평가를 기다리는 배우 같은 느낌이었다.


그 기대에 따라 한 마디로 감상평을 정리하자면 예쁘고 귀여웠다.


물론 살면서 예쁜 여자를 한 두 번 본 건 아니다. 그럼에도 말을 잃은 이유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과 그 눈에 담긴 감정 때문이었다.


화장한 자신에 대한 조그마한 자신감과,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기대감, 혹시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애정.


그 감정이 그 어떤 화장보다도 그녀의 모습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


이쯤 되면 눈치 못 챌 수가 없다. 눈치 못 채면 병신이다.


이 작은 아이가 에라와 같은 감정을 나에게 품었다는 걸. 이 아이에게 내가 브릿이나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 어때?"


그때 미아드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마, 마음에 들어? 할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입어 봤는데. 머리띠도 차고, 할머니 향수도 뿌리고, 머리는 샴푸라는 걸 사서 감아봤고, 신발은 10살 때 생일 선물로 사주신 거야."


내가 포착한 달라진 점들을 미아드는 하나하나 나열했다. 내 무덤덤한 반응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쪽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는지라 나는 재빨리 말했다.


"예쁘네."


하려면 여러 미사여구와 여자들이 들어 좋아할 법한 칭찬들을 생각나는 대로 덧붙일 수 있지만, 지금은 머리가 복잡해서 그냥 이렇게만 말했다.


그렇지만 그 한 마디로도 미아드에겐 충분했던 것 같았다.


"예뻐...?"


미아드는 내가 한 말을 따라 중얼거리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고전적인 표현이지만 홍당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예쁘구나. 지금의 나는 할리한테. 바라고 있던 일이지만 정말로 들으니까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으으. 기쁜데 가슴이 아파."


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혼잣말도 중얼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장관리 따위는 하고 싶지 않지만,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에라에게 품은 감정이 확실히 같은 것인지, 애초에 내가 다시 그런 감정을 품을 수는 있는지.


지금 내가 미아드를 확실히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건 에라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미아드를 거부한다면 그건 확실하지 않은 감정으로 하나의 감정을 무시한다는 형태가 될 것 같았다.


어쩌면 '미아드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같은 영웅담 주인공 같은 감정도 있을지도 모르고.


여러 감정들 때문에 나는 말없이 미아드를 바라보았다.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지 미아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바보처럼 웃었다.


"헤헤."


그러다가 다시 부끄러워졌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드는 행동들을 바라보기를 한참.


미아드가 말했다.


"아, 그나저나 할 말이 있어."


"...뭔데?"


"내 진짜 이름은 미아드가 아니야."


...


나는 말없이 다시 미아드를 바라보았다. 미아드도 이번에는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걸 눈치 챈 것 같다.


나는 소리쳤다.


"이 타이밍에 그걸 말하냐!?"


이미 3권 마지막화에 7000자도 넘어간 상황... 아니 이게 아니라.


뭔가 중요한 비밀을 고백하는 분위기로 몰고 간 것도 아니고 브릿도 없는 상황에서 저런 소리를 하냐!


내 격한 반응에 미아드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치만 할리 넌 내가 여자인 거 알고 있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그것도 알고 있을 줄 알았지."


"말 안 해 준 걸 어떻게 아냐!"


"그리고 여자란 걸 밝히고 난 후에는 당연히 알 줄 알았지. 미아드는 보통 여자 이름이 아니잖아."


"세상에는 딸 이름을 당근이나 개똥으로 짓는 작자들도 있거든!"


결론적으로 얘 할머니는 이 애를 잘못 봤다. 얘한테는 비밀을 지키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했다. 이 녀석은 비밀로 하라고 한 건 절대 못 지키고 다른 건 끝까지 숨기는 타입이다.


나는 허탈해서 말했다.


"그동안에도 미아드라고 불렀잖아. 왜 우리가 몰랐다는 걸 눈치 못 챈 건데."


"그냥 입에 안 붙어서 그렇게 부르는 줄..."


"눈치 더럽게 없네. 그래서 진짜 이름이 뭔데?"


화내기에도 애매한 일이라 그냥 힘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미아드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미아."


"참 성의 없는 가명이군."


스아 같은 처키에서 흔한 종류의 여자 이름이었다. '아' 앞에 한 글자나 두 글자를 붙이는 이름 짓기법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아드, 아니 미아는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평소와 같아서 피식 웃었다. 드디어 녀석이 평소와 똑같이 보였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나가 보자. 나도 바쁜 사람이니까. 내일은 나가야 하니까 놀 시간은 오늘밖에 없다고."


"응! 알았어."


미아한테는 미안한 일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조금 더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적어도 내 감정이 확실해질 때까지는.


어리광을 부리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 녀석이 정말 좋으니까.


"헤헤."


문을 나서며 미아가 웃었다. 나 또한 웃었다. 오늘 관광은 즐거울 것 같았다.


"아, 그런데 브릿은 어떻게 하지. 모르는 거면 알려줘야 하는데."


"그냥 보름 뒤에 브릿이 오면 말해줘. 그때까지는 우리 둘만 알지 뭐."


"으, 응! 둘만의 비밀이구나!"


아. 제발 그렇게 웃지 마. 양심 찔려.


@


"그런데 할리."


"왜?"


거리를 걷던 중 미아가 입을 열었다. 손에는 각종 먹을거리가 가득 들려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 덕분에 마음이 풀려서 평소에는 말하지 않을 부분까지 말했다.


"그래서 결국 이번 방학에는 어딜 가는 거야?"


"아. '차자카'라는 곳으로."


"차자카?"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아도 학교에서 지리를 배웠으니 그 지명이 붙은 곳이 내 고향과 반대 방향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거긴 왜 가는데?"


"그곳에..."


그냥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명까지 말해버렸으니 더 말하지 않기도 애매했다. 너무 캐물으면 대충 먹거리 탐방 같은 대답을 해주기로 마음먹고 말했다.


"해야 할 일과..."


하르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스승님.


상반되는 감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들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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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금발놈과 시합 전에 +1 18.12.26 53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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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각성 +1 18.12.13 66 2 18쪽
70 브릿 대 금발놈 +1 18.12.10 51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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