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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 님의 서재입니다.

용과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ung1354
작품등록일 :
2017.11.23 17:33
최근연재일 :
2019.02.13 12:30
연재수 :
93 회
조회수 :
11,422
추천수 :
165
글자수 :
641,611

작성
19.01.09 22:59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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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8쪽

패배 예고

DUMMY

"꺄...!"


"씁. 안 돼. 조용히 해."


나는 스아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여기까지 조용히 데려온 건데 소리를 지르면 안 되지.


"조용히만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5초 후 이 대사가 굉장하게 다른 뜻으로 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아의 시선에 공포가 섞이는 걸 본 나는 황급히 말했다.


"아니, 여기서 '무사히'라는 걸 날 말하는 거야. 물론 순순히 당해주진 않을 거지만 내가 티아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들키면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누나한테는 절대로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이야기 다 듣고나서는 아무 말도 안 할 테니까 일단 소리를 지르더라도 다 듣고 질러."


거의 랩을 하듯 빠르게 말했다. 나는 스아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바라보았다.


스아가 침착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상황에 벗어나기 위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내 말을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스아와 이 정도의 신뢰 관계가 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손을 뗐다. 오해를 할 수도 있을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믿어준 거니까.


스아는 입을 막고 있던 손이 떼지자 호흡을 회복하기 위해 잠깐 동안 심호흡을 했다. 나는 곧바로 설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스아는 한 손을 들어 막고는 말했다.


"티아리스 님의 치료 후에 듣겠습니다. 상처들이 모두 심각해요."


스아는 생각보다 직업 의식이 투철했다. 나로서도 나쁠 것이 없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아는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언제나 들고 다니는 건지 불을 끄기 위해 물양동이를 지고 가던 걸 납치하듯이 데려왔음에도 촉매는 꽤나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값비싼 치료수와 성석, 그 외에도 여러 신성력 보조 물품들이 아낌없이 쓰여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성력도 한계까지 쓰고 있는지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렀다.


역시 상비용품만으로는 부족한 건지 전에 나를 치료할 때보다 더 힘든 것 같았다. 치료가 다 끝날 때쯤엔 완전히 녹초가 되서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스아는 헉헉대며 말했다.


"...이걸로... 당장에... 할 수 있는..."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겠으니까 일단 쉬어."


티아보다 더 환자 같아 보이는 모습에 말하는 걸 말렸다. 티아는 평온한 모습으로 조용히 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 뼈를 맞추거나 소독약을 바를 때도 저 얼굴이었다. 아까 나와 싸우면서 왠만한 상처를 입을 때도 저랬고. 일종의 재능인 것 같았다.


내가 미래의 싸움을 위해 전력을 분석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티아는 자신의 잘려나갔던 오른손가락을 움직여보았다. 그러더니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생각보다 잘 움직이네. 잘려나갔을 때만 해도 제대로 고치는데 보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능력이 뛰어난 치료원인가 봐?"


"...절단면이 깨끗해서... 그나마 쉽게 고쳤..."


"힘든데 굳이 대답할 필요 없어. 너는 왜 안 그래도 힘든 사람을 괴롭히고 그래. 임마."


스아의 등을 두드려주며 티아에게 핀잔을 주었다.


몇 번 정도 숨을 토해내자 어느 정도 호흡이 진정된 것 같았다. 스아는 두 번 정도 더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물었다.


"일단 하나만 묻겠습니다."


"응."


"저 화재... 할리 님이 그런 건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스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단순히 페이스를 회복하려는 생물적 행동이 아닌, 다행이라는 뜻이 담긴 제스처 같았다.


나는 검지를 들어 티아를 가리켰다.


"쟤가 그랬어."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나는 모든 일을 얘기해주려고 마음먹었다. 미아드나 브릿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스아와도 어느 정도의 신뢰 관계는 만들었다고 생각하니까.


본격적으로 설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때 티아가 왼손을 들었다. 뭔가 하고 바라보자 티아가 말했다.


"내가 설명할게."


"니가?"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티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나는 일단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 반 년 전, 당시 수험생이던 할리가 면접관이었던 티아리스 윌리엄을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됐지."


마치 영웅담의 시작을 흉내내는 것 같은 말투와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는 것에서 엄청나게 신뢰감이 떨어졌지만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어디를 어떻게 왜곡하나 보려고.


"티아리스는 할리를 구타하고 미아드를 농락했어. 단지 스스로의 목표만을 위해서."


그렇지만 의외로 티아는 대부분의 대목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말했다. 정 감정적 개입이 필요할 때는 최대한 자신에게 나쁜 쪽으로 말했다.


스아의 티아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다만 나쁜 쪽은 아니었다. 대략 '자신의 죄를 반성하려는 사람'을 보는 정도의 시선이었다.


내가 티아의 목적이 이거였을지 생각해보는 중에 이야기는 결말, 현재에 거의 다다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할리는 자신과 친구를 괴롭혔던 귀족들을 모두 굴복시키는데 성공했어. 그리고 티아리스는 비참하게 쓰러졌지."


거기까지 얘기한 뒤 티아는 스아의 시선을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그런 내 모습에서 자신의 일그러진 욕망을 각성한 할리는 티아리스를 마구 겁간했어."


순간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는 깨닫지 못했지만 스아의 나를 보는 시선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말릴 틈도 없이 티아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비명을 외치는 엉망진창인 소녀를 때리며 할리는 자신의 욕망을 한도 없이 풀었어. 그녀의 몸과 마음은 더렵혀졌고 할리는 완전한 복수를 하는데 성공했지."


참고로 현재 티아는 여전히 알몸이었다. 스아가 붕대 같은 걸로 성기 주변을 감싸주긴 했지만 여전히 아슬아슬한 모습이었다.


스윽.


스아의 몸이 나한테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일단 해명해봤다.


"모함이야."


스아의 눈에서 의심은 없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신뢰 관계는 어떻게 된 거야. 스아야.


설마 이 년이 여기까지 와서 이딴 식으로 사람을 엿먹일 줄은 몰랐던 터라 어떻게 패야 진실을 토해낼지 상상하던 중이었다. 티아가 쿡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예? 정말로..."


"정말이야. 폭력이야 많이 당했지만 내 순결은 멀쩡해. 후훗. 할리 너 놀란 표정이 정말 재밌..."


빡!


나는 티아의 얼굴을 정통으로 쳤다. 평소였다면 피하거나 반격했을 티아도 역시 지금은 무리인지 정확하게 맞았다. 스아가 비명을 질렀다.


"꺅! 20분 넘게 걸려서 치료한 코뼈가!"


직업정신은 환자보다 치료 부위가 먼저인 거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코뼈가 부러진 얼굴이 가장 재밌는 것 같다."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코뼈를 망가뜨리지 말아줘."


평소였다면 비아냥으로 답했을 텐데 역시 지금은 여유가 없는 건지 그냥 태클이 날아왔다. 물론 난 무시했다.


다시 치료가 시작됐다. 상비품을 거의 다 쓴 건지 치료는 거의 스아의 순수 신성력만으로 진행됐다. 그 때문에 스아의 얼굴은 힘든 정도를 넘어 괴로울 정도가 되어 갔다.


조금 스아에게 미안해졌다.


"왜 맞은 나보다 이 애한테 너 미안해하는 것처럼 보일까?"


"실제로 그러니까."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래.


잠시 후 치료가 끝나자 스아는 아까처럼 쓰러졌다. 티아는 자신의 콧대를 잠시 매만지더니 말했다.


"그리고 할리는 나를 여기까지 머리채를 잡고 끌고 온 뒤 너를 찾으러 갔어."


"..."


스아는 계속해서 헉헉거렸다. 사람이 잘 오지 않은 체육관 뒤편에는 작은 숨소리만이 감돌았다. 스아는 어느 정도 진정되자 물었다.


"그것도 농담인가요?"


"아니.'"


"...예?"


스아는 내 쪽을 살펴 보았다. 나는 아무런 문제도 느낄 수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아가 나를 보는 눈이 급속도로 식어 갔다.


티아가 계속해서 진실을 말했다.


"난 여기 두고 갈 때 자기 윗옷 정도는 벗어줄 줄 알았는데 그냥 두고 가더라."


"뭔 개소리야? 그딴 짓을 했다간 내 옷이 더렵혀지잖아."


어머니가 직접 짜주신 소중한 옷을 저딴 거에게 닿게 할 수는 없다.


스윽.


스아가 아까처럼 나에게서 멀어졌다. 정말로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내 얼굴을 보고 그런 심정을 이해한 스아는 화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한테 그러시는 건 아니죠! 할리 님!"


"아니, 진검승부까지 벌였는데 이제와서 뭘."


"승부는 승부라도! 차라리 죽이시면 몰라도 여자의 머릿결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요! 거기다 알몸으로 두고 가시다니! 너무 큰 무례잖아요!"


도와줘. 에라야. 얘 가치관을 이해 못하겠어.


나는 몇 번 설득을 해보려다 스승의 가르침까지 들먹이는 걸 보고 포기했다. '여자를 배려하지 않는 남자는 쓰레기다'라 뭐라나.


마초적이기 그지없는 스승의 가르침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후. 잘 들어. 누나. 난 남녀평등주의자라고."


"남녀평등주의자?"


"그래."


난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해야 한다는 멍청한 사상을 가지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니까. 그러니까...


"여자든 뭐든 맞을 짓을 하면 맞아야지."


"...말은 맞지만 뭔가 부정하고 싶어지는 가치관이군요."


미숙한 사고방식의 한계다. 이 아이도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믿고 찝찝한 표정을 한 스아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참신하게 미친놈이었구나."


"닥쳐."


티아가 옆에서 뭐라 지껄이길래 바로 욕설을 던졌다. 티아는 뭐라 더 대꾸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티아가 말했다.


"이제 그만 진지한 이야기를 해볼까?"


"그러지."


나도 표정을 진지하게 고쳤다. 스아가 우리 둘에게서 멀어졌다. 아까까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다면 지금 우리 둘이 나눠야 할 대화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티아가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물었다.


"내가 저 애보다 나이가 많은데 왜 난 누나라고 안 불러주니?"


"아, 진짜 제발 좀 닥쳐."


"그래. 그럼 애초에 왜 이 승부를 신청한 거니?"


주제를 바꾸는 솜씨가 제법이다.


"난 원래부터 널 계속해서 후원할 생각이었어. 굳이 이런 승부를 걸 이유 자체가 없었다는 거지. 거기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 망정이지 아까 전의 승부에서 내가 죽었다면 넌 후원자를 잃을 뿐만 아니라 귀족 살인범으로 쫒기는 입장이 됐을 거야."


"이유는 이미 말했잖아."


티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물었다.


"나와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것? 근데 그것으로 보기도 이상한 게 난 니가 4단계로 각성한 시점에서 널 충분히 존중할 수 있었어. 그리고 내가 너에게 보여준 모습을 감안하면 니가 완전히 위가 되는 관계를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할 것 같았는데..."


"뭔 소리야. 그건 명분이고."


무표정으로 의아함을 드러내는 재주를 부리는 티아를 보며 난 방금 전 승부의 마지막 때 지었던 것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맑은 비웃음.


"진짜 목적은 널 패는 거니까. 승부 자체가 목적인데 이유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두 번째."


그때 티아가 주변으로 기세를 퍼뜨렸다. 공기가 갑자기 질량을 가진 듯 어깨를 눌렀다. 떨어져 있는 스아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퍽! 쾅!


난 앞에 있는 돌멩이를 걷어찼다. 돌멩이가 티아의 얼굴 옆을 지나가 체육관 뒤편에 꽂혔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헛지랄하지 말고 그냥 말해."


나라면 별 상관없지만 스아까지 말려들게 해선 안 된다. 순수하게 티아년이 잘난 척하는 꼴이 보기 싫기도 했고.


"...이미 넌 날 이겼지. 이미 목적을 이룬 내가 너를 후원해 줄 거라 생각해?"


분명 그렇다. 티아가 원하는 게 단순히 누군가 자신을 이기는 거라면, 나는 그걸 이루어줬으니까. 티아 입장에서는 나를 좋게 보면 은인이고, 나쁘게 보면 토사구팽의 대상일 것이다.


그리고 좋게 보는 건 힘들 것이다. 아까 전부터 작정하고 도발 중인데.


그렇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니가 원하는 게 단순히 누군가가 널 이겨주는 거라면 그렇겠지."


"...무슨 소리야?"


"넌 처음 만난 그날 분명히 나에게 말했지."


나는 티아의 말투와 표정을 따라하며 그날 티아의 혼잣말을 다시 꺼냈다.


"몇 번을 다시 도전해도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넘을 수 없을 벽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지고 싶어."


내가 티아를 이기긴 했지만, 압도적인 승리라고 할 순 없었다. 양상만을 보자면 압승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세부 내용은 그렇지 않다.


단 한 번도 제대로 힘 싸움을 해서 이긴 적이 없고, 기습이나 티아가 잘 알지 못했던 4단계의 힘을 이용하는 등의 전법만을 사용했으니까.


운도 꽤 좋았다. 특히 중간에서 검을 떨어뜨렸던 건 티아의 실력을 감안하면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것 때문에 더 힘들어지긴 했어도.


결론적으로 다시 싸운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티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지만 난 오랜 관찰을 통해 목소리가 아주 아주 조금 떨리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즐겁게 계속 말했다.


"너에게 중요한 건 단순히 지는 게 아니라 '처참하게' 지는 거잖냐?"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티아가 시치미를 뗐다.


여기야말로 미소를 지어줄 때일 것이다.


"넌 내가 니 손 안에 있다고 생각했냐?"


"..."


"니가 나를 관찰하는 동안 나 또한 너를 관찰해왔어. 그리고 확신했지. 니가 원하는 게 압도적인 패배라고."


그리고 한 마디를 더 했다.


"대충 니가 왜 이딴 짓을 했을지도 예상하고 있고."


"...아."


개인적으로 사람의 얼굴이 썩어가는 과정을 보는 건 참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도 예쁜 건 더러운 외모지상주의라고 욕하고 싶지만.


티아의 무표정이 깨졌다. 그리고 당혹한 얼굴이 되더니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창백한 얼굴이 된 티아가 거의 두려워하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아니, 물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말이 꼬이고 망설여서 상당히 오랫동안 들을 수 없었지만.


1분이 넘게 흐를 때쯤에야 티아가 대답을 듣기 무서운 듯한 얼굴로 물었다.


"아, 알고 있어? 내가 왜 이런 건지."


"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별 것도 아닌 사정 가지고 왜 이러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티아의 창백한 표정에서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으니까.


"티아 님."


오히려 스아가 걱정하는 듯한 말을 했다. 얘는 방금 위압까지 당해 놓고는... 브릿이나 미아드랑 동류인가?


"...자세한 사정도?"


"하아."


스아까지 동요하니 확실하게 말해야 할 것 겉다.


"야, 티아."


"..."


"자세한 사정 따위는 몰라. 애초에 조사해본 것도 아니고 널 보면서 관찰한 걸로 얻은 답이니까. 그리고."


"..."


"니 사정 따위는 상관없어."


난 진심으로 티아가 역겨웠다.


"그딴 짓까지 해놓고선 비극의 히로인인 척하지 마. 조금의 반성도, 속죄도 없이 그딴 얼굴로 쳐다봤자 경멸밖에 안 드니까."


"...그래."


티아의 표정이 진정됐다. 다시 무표정이 되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너한테 이러기에는 너무 늦었지."


"아니까 다행이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티아의 말투, 표정 전체에서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의도가 느껴졌다. 나도 바라는 것이었음으로 뭐라 하지는 않았다.


"내가 '처참한 패배'를 하게 될 때는 언제야?"


"졸업식날."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이미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다.


앞으로 다시 반 년 후. 티아리스가 이 학교를 떠나게 되는 날이야말로 정말로 결판이 나는 날이니까.


티아가 씁쓸하게 말했다.


"역시 알잖아."


"알고 싶어서 알게 된 거 아니야."


미아드 녀석이랑 브릿이 말해주는데 어떡하라고.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티아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볼게. "


"그래."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경멸이나 비웃음, 그 외의 모든 부정적 감정들을 서로 이미 토해냈기에 더 전할 것도 없었다.


"자, 잠시만요. 옷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이런 대화를 하는 중에도 티아는 나체나 다름없는 차림이었다.


티아는 지은 미소 그대로 스아에게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단다."


스아가 무슨 뜻이냐고 반문할 틈도 없이 티아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어둠 속으로 뛰어들자 곧 나조차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스아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재밌게 바라보았다. 몇 초 후 내 그런 기색을 알아챈 스아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그 표정도 잠시 바라보다가 아까 전에 티아랑 싸웠던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불은 다른 학생들과 교사, 상주 마법사들로 꺼진지 오래였다.


"그럼 우리들도 가자. 누나."


"아, 그러고 보면 선배 치료원 분들께 말도 없이 나왔었습니다!"


"큰일이네. 빨리 변명 생각해 둬."


나도 조금 곤란하다. 아무리 미아드랑 브릿이라도 이 소동 중에 자고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뭐, 나야 사실 그대로 전하면 되니까 스아보다야 걱정이 덜하지만.


둘이 산불의 원인이랑 나랑 관련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처음에야 당황하겠지만 곧 이해해줄 것이다. 너무 둘의 상냥함에 기대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서로 돕는 게 친구 아니겠는가.


나는 옆에서 자신을 납치해 온 건 나라고 외치는 스아의 말을 무시하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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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1 n4******..
    작성일
    19.02.14 01:08
    No. 1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내가 '정실 부인'을 하게 될 때가 언제야?''

    ''졸업식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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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3권 후기 +3 19.01.13 47 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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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배 예고 +1 19.01.09 41 2 18쪽
78 티아리스 2차전 결말 +1 19.01.06 40 2 18쪽
77 티아리스 2차전 +1 19.01.03 53 2 15쪽
76 티아와 전투 준비 +1 18.12.31 54 2 16쪽
75 금발놈에게의 복수 +2 18.12.28 57 2 15쪽
74 금발놈과 시합 전에 +1 18.12.26 53 2 22쪽
73 내일을 위한 휴식 +1 18.12.23 4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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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브릿 대 금발놈 +1 18.12.10 51 2 16쪽
69 티아의 계획 +1 18.12.07 55 2 17쪽
68 재능 +1 18.12.04 51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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