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구약(求藥) (9)
팔호의 해독약을 만드는 과정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광충을 제외한 나머지 재료들은 주변에서 돈만 있다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당규호는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재료들을 쉽사리 구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사천 성도의 어느 한 약초 가게는 그날 온 손님 때문에 소란스러웠다.
"뭐요? 어성초(魚腥草)가 없소? 그 흔한 게 없다니 말이 되오?"
"아유 그러니까 한 톨도 남지 않았다니까? 다시 들어오려면 칠주야는 있어야 해요"
"칠주야나 걸리오? 아니 어떻게 어성초가 없을 수가 있소? 아이고······. 다른 데로 가야겠소."
약초 가게를 시끄럽게 한 주범은 당규호였다. 팔호의 약재를 순조롭게 구해오던 당규호는 마지막 재료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어성초는 물고기 비린내가 나 어성초라는 이름을 얻은 풀로 해독효능이 있는 풀이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고, 따로 특수하게 나오는 지역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의 유입도 많은 풀이었다.
"다른 가게 가보셔도 소용 없으실 텐데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얼마 전에 당가에서 어성초를 싹 다 사갔어요. 우리 가게에서만 아니라 성도에 있는 약초가게에 어성초란 어성초는 싹다 긁어모아 간 거 같던데요?"
"당가···? 망할···."
당규호는 별 소득 없이 가게를 나섰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온 당규호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어휴 팔 호 형님 일 끝나고 돌아가려 그랬는데······. 이거 싸움 있었다는 거 당가 사람들 다 알고 있을 텐데 어떡하지?"
당가에서 독무의 흔적을 어떻게 결론 내렸는지 아직 꿈에도 모르는 당규호는 터덜터덜 당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익숙했다. 그리고 익숙한 길은 가까웠다.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대문 앞에 도착했다.
끼이익-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 바로 앞에 있던 무인과 눈이 마주쳤다. 당규호와 항렬이 같은 동생 당규철이었다.
"하······. 하하······. 규철아 별일 없었지?"
"형님 죄송해요."
"응?"
"여기! 당규호가 돌아왔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지금?!"
"여기 당규 읍읍"
당규호는 황급히 당규철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쒜엑!
"으악! 가주님 진짜 던지시면 어떡해요!"
"그럼 맞으라고 진짜로 던진 거지 가짜로 던지겠느냐!"
어디선가 나타난 당철중이 당규호에게 비수를 던졌고 당규호는 그 비수를 가까스로 피해냈다.
"왜 그러시는 거예요!"
"맞아서 쓰러지면 사고는 못 치겠지!"
"잠깐만 잠깐만! 제가 무슨 사고를 쳐요?"
"너 내가 너한테만 준 독무를 터트려버려서 아무 일도 아닌 척 하고 가출을 해? 내가 그렇게 장난치지 말라고 했거늘!"
"독무요?"
"그래. 난 담이라도 넘어올 줄 알았건만 뻔뻔하게 정문으로 들어오더구나"
"아······. 그렇게 알고 계시는구나. 잘못했습니다!"
"네놈이 네 잘못을 모르고···. 응?"
"잘못했다고요!"
"그···. 그래"
"가주님! 어성초좀 주십시오. 지금 필요합니다."
"어성초?"
"네 가문에서 사천에 있는 어성초란 어성초를 모두 다 사 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급히 쓸 곳이 있습니다. 많이도 필요 없어요 한 근만 주십시오."
"어느 곳에 쓸 것이냐"
"은인을 구하는데 쓸 것입니다."
"흐음···. 그래 가져가라 창고로 가서 창고지기 문 노인한테 말해라"
"감사합니다!"
당규호는 말이 끝난 즉시 창고로 달려갔다. 생각보다 많이 안 혼나서 기분 좋게 어성초를 찾으러 갔다.
당철중의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당가의 총관 당지만이
"가주님 어성초는 지금 만들고 있는 중요한 약물에 들어가는 재료이지 않습니까? 지금 산 것도 모자란 판에······."
"되었다. 은인을 구한다잖아. 그거면 됐지 더 뭐가 필요한가?"
"그렇···. 군요."
그때 창고로 달려가던 당규호가 당철중에게 멀리서 소리쳤다.
"아 맞다! 가주님 저 당직 좀 빼주세요!! 하하하!"
"끄으응······. 총관······. 저놈 당직 말고 그냥 후계자 후보 명단에서 빼버리게"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당장 빼!"
◆ ◆ ◆ ◆
모든 재료를 구해 온 팔호와 당규호는 해독약 제조에 들어갔다.
제조하는 것은 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다만 한가지 까다로운 점이라면 약이 숙성하는데 약 일주일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아! 이제 다 완성됐소. 방을 하나 더 빌려서 그 방에 이걸 잘 널어두고 말리면 끝이오. 이미 노독을 복용한 지 수십년이 흘렀기 때문에 한 번만 복용한다고 해서 다 낫는건 아니고 수차례에 걸쳐서 잘 복용하면 되오. 아시겠소?"
당규호는 넓은 널빤지에 해독약을 만들어 올렸다. 팔호는 객잔의 방을 하나 더 빌려 해독약들을 고이 모셔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팔호와 하현이 사용하는 방 바로 옆방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곳엔 들어와 있는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반대편 끝쪽에 있는 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고맙다"
"어이고? 고맙단 말도 할 줄 아시네?"
"당규호 아저씨 지금 팔호 아저씨 얼굴 잘 봐봐요. 미묘하게 빨개져 있을걸요? 부끄럼이 많아서요"
"오 정말인 거 같은데? 그런데 하현아 넌 언제까지 날 아저씨로 부를 거냐 나 아직 스물일곱밖에 안 됐어. 형이라고 불리어도 충분한 나이라고"
"정말요? 얼굴이······."
"당가에선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시켜서 그래······."
"......."
"일단 약은 다 준비됐으니 난 집에 좀 가봐야 할 것 같다"
"아 돌아가시게요?"
"그래야지 너무 오래 집을 비웠어. 아마 돌아가면 가주님께 좀 혼날 거야 하하!"
"약 완성되는 것만 보고 가시지 그래요?"
"칠주야 동안이나 더 집을 비웠다간 내 방이 사라져있을 거야 아마. 팔호형님 형님 계산으로는 노독 발작이 며칠이나 남은 것 같소?"
당규호는 떠날 채비를 하며 팔호에게 물었다. 떠날 채비라고 해봤자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것 말고는 크게 할 것도 없었다.
"열흘"
"그럼 숙성되고 나서 사흘이나 남는군.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오. 특별히 건드리시지 말고 저 방에 그대로 놔두는 게 제일 좋을 것이오. 좀 주의해야 할 점은 먼저 너무 습한 곳을 피해야 하는데 아까 저 방 정도면 아주 괜찮았소. 또 두 번째로는 불을 피해야 하오. 재료 중에 바싹 말라 있어야 효과를 받는 것들이 많으므로 최대한 바싹 말렸다오. 그래서 불 가까이만 가도 화르륵 타오르고 말 것이오.
"그래 알겠다. 조심하지."
"그럼 진짜 가오. 하현아 너 그동안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팔호 형님 잘 도와드리고 있어.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당가로 찾아와서 날 찾고. 알겠냐?"
"예 고마워요. 형."
"하하! 훨씬 듣기 좋네! 자 꼭 해약을 막고 노독을 몰아내기를 바라오. 이 정도면 내 몫숨값은 톡톡히 한 것 같소. 안 그러오?"
"충분하다."
"내가 죽을뻔한 것도 형님 덕이고 살아난 것도 형님 덕이니 애매하구만! 모레나 글피쯤에 우리 당문에 한번 들러주시오. 일단은 급하게 해약부터 준비했고. 저 약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간단하게 시술을 하나 해야 하오. 얼마 안 걸리긴 하는데 기구들이 당문에 있소. 준비해 놓을 테니 그때쯤 오면 되오."
"그래. 이틀이나 사흘 후 당문으로 찾아가지."
"그때는 담 넘어오지 말고 정문에서 나를 찾으면 되오. 아셨소? 하하하하."
"그러도록 하지. 고맙다."
당규호는 팔호의 감사의 말에 크게 한번 고개를 끄덕인 후 객잔을 나섰다.
이제 단 칠일. 이레 후에는 지겹도록 팔호를 쫓아다니던 죽음의 그림자를 따돌리는 데 성공할 것이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마지막 부분이 약간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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