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용호채(龍虎砦)(4)
"진유강?"
용호마괴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공격해 오는 대력거웅 때문에 이내 생각을 멈추었다.
말로는 자신 있다 큰소리쳤지만 그에게 있어 대력거웅은 딴생각을 하며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약자가 아니었다.
'으윽······.'
사실 대력거웅의 속 사정도 그리 좋지 못했다. 이놈의 도(刀)는 벌써 십수년을 써왔지만,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특히 구상검법은 세밀함을 요구하는 검법이건만 투박한 도(刀)로는 그런 세밀함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대웅! 꽤 하는군!"
"형님도 대단하십니다!"
둘의 싸움은 거의 호각지세였다. 대력거웅이 한번 공격하면 용호마괴가 막아내고, 또 용호마괴가 공격하면 이번엔 대력거웅이 피하거나 막아내는 것만 수없이 반복되었다.
"하아···. 하아···. 형님, 하나만 물읍시다."
"후우···. 말해라"
"정말 제가 이기면 채주자리에서 내려올 것이오?"
"크큭....채주자리가 그리도 탐나더냐! 그래 가져가라! 물론 내 멱을 딸 수 있다면 말이지!"
용호마괴는 다시 한 번 대력거웅에게 공격을 하려 온 몸의 진기를 모았다. 대력거웅도 그것을 느꼈는지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왠지 이제 단 한 번, 한 번의 부딪힘으로 승부가 결정 날 것만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둘 뿐만 아니라 지켜보고 있는 수하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 정적이 극에 달하고 무언가 터지러 할 때!
쾅쾅쾅쾅쾅!
"여기 아무도 없으세요?"
쾅쾅쾅쾅!
누군가가 용호채의 문이 부서질 듯 두드렸다.
"누...구?"
문 바로 안쪽에서 보초를 서던 산적이 상대가 너무 당당하게 문을 두드리자 자신도 모르게 문 쪽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길을 가다 너무 배가 고파 들렀습니다. 밥 좀 주세요!"
"에? 밥?"
이런 일을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오히려 산적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산적들이 모두 순번을 짜서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기때문에 산채 주변에 다가오는 것부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대력거웅이 일으킨 소동에 온 산적들의 신경이 온통 그곳에 쏠려 주변 경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누군가 다가오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쾅쾅쾅!
"네! 밥! 배가 고파 죽겠네요. 계속 안 열어 주신다면······."
와작-와작- 우지끈!
누군가가 검으로 문에 구멍을 내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빙긋 웃으며 들어오는 것은···. 하현이었다.
"제가 부수고 들어가는 수밖에요"
"누···. 누구냐!"
"몇 번을 말해요. 밥 얻어먹으러 온 사람이라구요. 배가 등가죽에 들러붙겠어요."
용호마괴는 이 황당한 사태에 대력거웅과 생사 결단을 내던 것도 잊고 하현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도 처음 겪어보는 일에 몹시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저씨가 용호마괴 아저씨군요! 생각보다 덩치가 작으시네요. 산적 두목이라고 하면 막 덩치도 크고 뚱뚱하고 그럴 거 같은데 말이죠. 대머리에"
"뭣···. 뭐해 이놈들아! 당장 저 정신 나간 자식 내 앞으로 끌고 와!"
용호마괴의 일갈에 하현을 바라보고만 있던 산적들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챙-!챙-!챙-!
오늘 하루종일 이상한 일 투성이라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지만, 이래 봬도 이들은 용호산의 패자 용호채의 산적들이었다. 그들은 침입자에게 강한 적의를 표출하며 검을 빼 들고는 하현을 포위해 나갔다.
"오오! 훈련이 상당히 잘 돼 있는 거 같아요. 그래도······. 무공도 모르는 사람한테 당할 수는 없죠!"
하현은 말과 함께 산적들이 가장 몰려있는 곳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빠악-! 빠악-! 뻐억-!
산적들 사이에 뛰어든 하현의 모습은 양중호(羊中虎) 그 자체였다. 검을 든 오른손으로는 수없이 날아오는 공격들을 막고 튕겨내며 왼손으로는 한방에 한 명씩 주먹을 날려 기절시켜 나갔다.
"얻어맞기 싫으시면 저한테서 피해 도망가세요!"
하현의 주위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용호마괴는 그런 하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하현과 부하들이 엉켜있는 곳에 개의치 않고 검을 휘둘렀다.
슈악-
"으악"
"채···. 채주님! 으억!"
하지만 하현은 재빨리 검을 피해내었고, 용호마괴가 휘두른 검은 애꿎은 부하들만 벨 뿐이었다.
용호마괴는 그 상황에 더 열이 받아 하현을 쫓으려 했지만 이미 부하들 사이로 숨어버린 후였다.
"이익! 네 이놈!"
화가 날 대로 난 용호마괴는 계속해서 하현을 쫓아다니며 검을 휘둘렀고, 하현과 가까이 있던 산적들은 용호마괴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하나씩, 혹은 둘씩 칼을 맞고 쓰러졌다.
"으어억! 채주님!"
"채···. 채주님을 피해라!"
쫓는 용호마괴와 도망하는 하현, 또 그 둘을 도망 다니는 산적들도 용호채는 난장판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고 어느새 하현이 기절시킨 산적보다 용호마괴에게 당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자들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눈에 핏발을 세우고 하현을 쫓던 용호마괴의 앞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산적 하나가 가로막았다.
"방규? 비켜라! 저놈을 요절내야 한다!"
"채···. 채주 주변을 한 번만 둘러봐 주십시오."
방규는 20여년간 용호채의 일원으로 살고있는 자였다. 비록 무공을 사용할 줄 아는 자는 아니었으나 오랜 경력으로 주변으로부터 꽤나 인정을 받고 있는 자였다.
"주변? 무엇을 보라는 말이냐!"
"지금 저자에게 쓰러진 자보다 채주에게 검을 맞은 자가 더 많습니···."
"그래서 지금 저놈이 내 채에서 날뛰는 걸 두고 보라는 거냐! 네놈도 칼 밥을 먹어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용호마괴는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고, 방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괜히 나섰다가 죽는구나!'
까앙!
죽을 줄 알았던 방규는 찢어지는 듯한 쇳소리가 들리자 방규는 털썩 주저앉으며 눈을 떴다. 눈앞에는 지금껏 동료들 사이를 헤집어 다니던 자가 도리어 자신에게 날아오는 채주의 검을 막아서 주고 있었다.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어요. 더는 다른 아저씨들을 해치지 마세요!"
"뭐라고?!"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분명 산채에 침입한 것도 하현이고 따지고 보면 용호마괴가 수하들에게 검을 날리게 된 이유도 하현인데 지금은 하현이 용호채 산적들을 용호마괴로부터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 빨리 자리를 피하세요! 이 사람이 다시 검을 휘두를지도 몰라요"
"네···. 넵!"
방규는 급히 일어나 채주와 멀찍이 떨어졌다. 방규의 눈에 하현은 더이상 그냥 침입자가 아니었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이···. 이게 무슨 꿍꿍이냐!"
"두고 볼 수만은 없네요! 가장 강한 자가 채주가 되어야 한다고 했죠? 제가 채주가 되어 더 이상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겠어요! 이곳! 제가 접수합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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