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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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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뽀이뽀로밀
작품등록일 :
2013.02.16 11:46
최근연재일 :
2013.04.09 01:15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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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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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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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0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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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의뢰[Request](3)-End

포르투나 연대기 1부




DUMMY

“가뜩이나 오를란드는 기간산업 중 농업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국가야. 드렉노트나 제국에 수출하는 교역품 역시 농축산물이 절반가까이 차지하지. 남부는 밀과 옥수수를 주요 품목으로 내세워 오를란드의 또 다른 곡창 지대로 거듭나기 위해 10년 가까운 세월을 쏟았어. 그 노력이 겨우 결실을 보려는 때에 북부로 가는 운송비용 탓에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건 그들로선 충분히 심각한 일이지.”

“그래서 육로를 개척하기 위해 그륜벨트를 눈여겨봤다고? 그치만, 여기도 북부로 가는 길은 썩 좋지 못하잖아.”

메르타 산이라는 장애물 덕분에 실제 거리감으로는 남부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그륜벨트였다. 그런데도 북부로 가기 위한 길을 개척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니 이상한 노릇 아닌가.

“북쪽으로 직행한다면 그렇지만, 동쪽으로 빠져서 헤이밍 교차로까지 간다면 동서남북 어디로든 뻗어있는 평탄한 관도가 나오지. 문제는 도중에 아스트리드 령에 해당하는 땅을 거쳐 가야 한다는 거야.”


즉, 남부에서 그륜벨트를 거처 또다시 아스트리스를 지나야 한다는 소리고. 그건 결국 관세를 두 번이나 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륜벨트와 아스트리드에서 소비하는 비용만 줄 일 수 있다면, 남부는 가장 이상적인 육로를 얻게 되는 셈이야. 그들로서는 어떻게든 두 영지와 잘 협상해서 관세와 통행세를 최소한으로 줄인 필요가 있었고, 거기에 내가 살짝 스푼을 얹은 거지.”


롤랑은 그렇게 말하며 수프를 살짝 떠올렸다. 하지만 나로선 대체 어디에 끼어들 구석이 있었다는지 전혀 감을 못 잡겠다.


“그래서, 대체 뭘 어떻게 했다는 거냐?”

“간단해. 동부 영지들의 분쟁 소식을 듣자마자, 남부의 상인연맹 앞으로 편지를 보냈어. 육로가 필요해지면 그륜벨트로 오라고. 뭐, 당시 연맹의 누구도 에스라와 호훌룬의 운송 구간 사이의 관세가 그렇게까지 오를 줄 예상하지 못한 모양인지 답장도 오질 않더군.”


하지만 몇 개월 뒤, 동부 수로 운송 구간의 비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롤랑은 자신의 앞으로 상인연맹 원상 대표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한 통 받았다고 한다.


“그 뒤에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어. 매년 일정 규모 이상의 원상 행렬이 그륜벨트를 방문하는 조건으로 남부 원상의 물자의 관세를 일부 면제해 주기로 영주님과 합의되었지. 그리고 나는 그 수고비를 포함해 그들의 다음 문제인 아스트리드와의 교섭까지 떠맡는 대가로 소정의 수수료를 챙겼던 거고.”


500골드의 어디가 소정의 수수료냐?! 하여간, 그때 수수료를 좀 챙겼다는 말이 그거였군. 생각해 보면 이 자식의 돈지랄이 부쩍 커진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응? 근데 너 마지막에 뭔가 이상한 말 하지 않았냐? 뭘 떠맡아?”

“아스트리드 영지와 남부 원상 조합의 사이에 교섭.”

“그걸 왜 니가 떠맡아?”

“그 당시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 우선, 아스트리드 공작과 안면을 트고 싶었고. 한 편으로는 그쪽에서 꽤 괜찮아 보이는 조건을 제시 때문이지.”

“무슨 조건?”


나는 작은 접시에 샐러드를 덜어 롤랑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차후 왕실 관료로 들어갈 때 상인연맹의 이름으로 보증을 서주겠다는 것과 합의가 성사되면 추가로 600골드를 더 지급해 주겠다는 얘기였지.”


600골드를 추가? 왕실 관료에 이야기보다는 그쪽에 더 귀가 솔깃했다. 헌데…….


“야, 그럼 우리 영주님하고 중간에서 합의 봐주고 받은 건 얼마였는데?”

“600골드.”


챙그랑!


순간 손에 힘이 풀려 포크하고 나이프를 떨어뜨렸다.


“뭐, 뭐, 뭐라고? 유, 육백? 그것도 금화로?!”

“육로가 뚫렸을 경우, 남부에서 북부로 유통될 농산물과 기타 품목을 돈으로 환산하면 한해에만 5만 골드를 가뿐이 넘기는 물량이야. 만약 남부의 농산물이 오를란드 식량 생산의 중추가 된다면 차후엔 제국이나 드렉노트까지 수출될 거고, 그럼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교역되는 거지. 그 전초가 되는 교섭을 위해서인데 1,200골드 정도면 상당히 저렴하게 모신 편이야.”


이게 이런 허름한 곳에서 담담하게 고기를 썰며 말할 수준의 내용이냐?! 하여간,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전혀 긴장감이나 비장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이다. 아무튼, 이걸로 롤랑의 재정 상황에 대한 비밀(?)은 알게 되었군. 거의 대영지 수준의 거래에 끼어든 격이 아닌가 싶지만, 그 배포만은 롤랑답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아스트리드와의 합의는 어떻게 한 건데?”

“아직 못했어.”

“푸웃! 콜록, 콜록! 뭐, 뭐라고?!”


들이켜던 포도주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뿜고 말았다. 간신히 옆으로 뿜기는 했지만, 밥을 잘 먹고 있던 페로가 재난을 당했다.


“거 참… 식사 예절이 꽝인 주인이로세.”


정신없이 먹다가 포도주 세례를 맞은 페로는 기분 나쁘다는 식으로 나를 쏘아봤다. 미안한 일을 하긴 했는데, 네게서 만큼은 식사 예절을 모른단 말을 듣고 싶진 않구나. 하지만 일단 페로에게 손을 들어 사과의 손짓을 보낸 뒤, 역시 질색하는 얼굴을 한 롤랑을 향해 말했다.


“아직 이라니… 그게 대체 언제 적 얘기야?”

“1년하고도 7개월, 추가로 나흘이 지났지.”

“…혹시나 하고 묻는 건데 계약 기간은?”

“앞으로 한 달 정도.”


순간 식탁에 머리를 박고 싶어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 진정하자,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정색할 필요 없잖아.


“오늘따라 너답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는구만. 천하의 롤랑이 한 가지 과제를 1년 반이 넘도록 해결 못 하다니.”

“훗, 뭐라 반론을 못하겠군.”


궁지에 몰린 녀석치고는 여유만만이다. 아주 대책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인데?


“얼마 전 그 일로 아스트리드에 갔을 때. 뭔가 나 몰래 협상 비스름한 걸 또 한 거냐?”

“설마… 아무리 나라도 그 상황에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진짜로?”


오른손으로 악수를 청하고, 왼손으론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항상 하고 있는 롤랑 네가? 믿을 수가 없다.


“사람을 무슨 사기꾼 취급하는군. 1년 반 동안이나 공을 들였음에도 성사 못 시킨 합의야.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간 자리에서 세관 협약 얘기까지 하기엔 시간도 재료도 부족했어. 게다가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소공작 선에서 얘기될 문제도 아니었고.”

“어째서? 소공작이 자기 입으로 전권을 자기 아버지에게서 맡아 두었다고 했잖아.”

“음, 설사 소공작에게 권한이 있었다 한들, 웬만한 패를 갖지 않고선 세관 협약은 힘들었을 거야. 애초에 소공작이 그륜벨트에게 협조한 이유도 남부의 곡물이 중앙과 북부로 진출해 올라오는 것을 견제한 거나 다름없는 거니까.”


아스트리드 역시 오를란드의 주요 곡창지로서 실로 오랫동안 중앙지대 식량 공급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주요 곡물인 밀의 경우 아스트리드, 로스필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공급과 수출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 두 영지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주 수입원 위치를 흔들 만한 남부 농산물의 맹진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 그륜벨트가 멸망해서 이 땅이 오레곤에 복속되기라도 했다면. 단순히 농토를 늘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부가 북부로 진출하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세관이 하나 사라지게 됐겠지. 비록 내가 그 상황을 주지시키기는 했지만, 그 당시 아스트리드의 입장에서 협조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어.”

“과연, 남쪽의 농산물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기 위해 그륜벨트는 계속 방파제가 되어 줘야 한다는 건가? 하지만 그것도 벌써 해결된 거 아냐? 니가 영주님과 원상 조합 사이에서 합의 봐줬다며.”

“관세의 비율을 많이 낮춰주었을 뿐이지 아예 안 받겠다는 게 아니야. 관세를 면제해 줬다면 아스트리드 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지. 애초에 비율을 낮출 수 있었던 것도 그륜벨트와 오레곤의 인척 관계를 잘 파고들어서 이루어 낸 성과야.”


그 사이를 파고들 수 있다는 시점에서 이미 평민의 범위를 넘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녀석에게 평민적 상식과 범주를 들이밀어 봐야 헛수고다. 귀족을 귀족으로 보지도 않는 녀석한테 무슨… 어찌 되었든 간에 아스트리드와의 협상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똑똑히 알았다.


“헌데 계약기간 넘기거나 못 지키면 어찌 되는 거냐?”

“별거 없어. 그냥 계약금만 돌려주면 될 일이지.”

“그건 또 얼만데?”

“200골드.”


어이구야, 아주 대상인 나셨네. 그런 돈을 벌어서 그리 씀씀이가 헤펐구먼. 이참에 진짜로 투자받아봐? 복구자금으로 500골드나 냈으니까 남은 건 계약금을 합해서 300골드 정도 되겠군. 1골드만 투자받아 오프스트 젤을 만들어도 적잖이 남을 것 같아. 다소 가격을 높게 받아도 랩터의 약점이라는 점을 잘 내세우면 팔릴 것도 같고.

그렇게 나름대로 사업구상을 펼쳐보는 와중에 롤랑은 바로 내 주의를 환기 시키듯 말을 걸어왔다.


“뭔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미안하지만 네 제약 사업에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벼, 별로 꼭 투자 해달라는 건 아니거든!”


내 생각을 적나라하게 읽어 내는 말인 탓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져 버렸다. 이런.


“헌데 투자하기 어렵다니? 평소에 그렇게 씀씀이가 가벼운 녀석이 친구 사업에 투자하는 건 막상 아깝단 말이더냐? 이런 6번가의 캐리씨 만도 못한 자식!”


그러고 보니 그 이후 캐리씨는 어찌 되었나 모르겠군. 돌아왔더니 집이 엉망이 된 걸 보고 기겁했으리라 예상되는데,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우리 둘인 걸 알면 아마 죽이려 들 거다. 그리고 손해 배상을 악착같이 청구하겠지. 이젠 우리도 성인이니 고소당해 재판에 회부 될 수도 있겠다.

한편, 캐리씨에 빗대어 욕한 탓에 기분이 상했는지 롤랑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딱히 투자하기 싫은 건 아니야. 단지 투자할 돈이 당장은 없을 따름이지.”

“허, 이젠 발뺌을? 복구자금을 500골드나 내고도 아직 300골드나 남았잖아! 아니지, 아스트리드와 관세인지 뭔지 합의 못 보면 200골드는 뱉어야 하니까 100골드 남은 셈이군. 거기서 딱 1% 때주는 것도 아까운 거냐 넌?”

“원상 조합에서 받은 돈은 지금 50골드 정도 남았어. 정확히 말하자면 이대로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을 땐, 150골드의 빚을 지게 된다는 말.”

“…….”


냅킨으로 입을 닦고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야, 페로. 그만 처먹고 가자. 여기 있다 또 괜히 말려들게 생겼어.


“주인. 쩝쩝… 언제 롤랑이 대책 없이 저런 말을 하는 거 봤는가? 냠냠… 차분히 앉아서 얘기를 듣게. 우물우물… 젊은 사람이 엉덩이가 그리 가벼워서야 어디 쓰겠나? 꿀꺽!”


다람쥐처럼 음식물로 볼을 부풀리며 얘길 하는 페로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젠 진짜 고양이가 아닌 다른 요상한 생물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하다못해 다 삼키고 얘기해라. 하아… 그래, 페로 말도 일리는 있군. 생각해보면 롤랑 니가 생각 없이 250골드나 썼을 리가 없어.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집에 두고 온 레벤타도 돌려줄 생각마저 하고 있던 나는 그렇게 물었다.


“쟁점은 결국 두 가지야. 그 해결을 위해선 아스트리드에는 관세를 낮춰줘도 그만큼의 손해를 만회할 무언가를 제시하던가, 아니면 아스트리드를 거쳐 가지 않는 새로운 운송로를 찾아내 원상 조합에 알려 주던가. 방안 역시 이 두 가지로 좁혀진다고 볼 수 있지.”


마지막 한 점까지 깨끗이 비운 롤랑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로선 녀석이 얘기한 두 방침 중 어느 것 하나 쉽게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전자의 경우엔 감도 안 잡힌다.


“새로운 길을 찾는 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중앙이든 북으로든 빠지려면 결국 이보나트 관도잖아. 그 외엔 전부 좁거나 정비도 안 돼서 험하기 그지없고. 게다가 그쪽에 최근 노상강도가 빈번하게 출몰한다며? 덕분에 아스트리드에서 인력하고 물자 수송하는데 직접 군대까지 동원했다고 들었어. 나라의 주요 통행로에도 도적이 출몰하는 마당에 원상 조합에서 다른 길을 제시한다고 얼씨구나 좋아라할까?”

“음, 사실 그 노상강도 덕분에 조금이지만 활로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말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 말을 하면서도 난감한 얼굴을 하는 롤랑의 모습에 의아해진 내가 물었지만, 녀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식탁 한쪽에 올려놓은 태블릿에 시선을 주었다. 덩달아 시선을 그쪽에 두어 봤지만 프랙탈이 활성화되지 않는 태블릿은 그냥 철판 조각일 따름이었다.


“야, 롤랑.”

“흐음… 뭐, 아직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이 얘긴 이쯤하고, 아까 로페즈씨가 여기 들른 이야기 말인데…….”


롤랑이 말을 돌릴 때는 이야기를 결정지을 수 있는 패가 자신에게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 시점에선 아스트리드와의 협상이 답이 안 나오는 얘기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유를 부리는 것으로 봐선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아까 통신을 시도하던 상대가 열쇠인가?

그 이상은 파악이 불가능했기에 나는 일단 롤랑의 의도에 못 이기는 척 따라가 주기로 했다.


“안 그래도 아까 얘기를 안 해줘서 궁금하던 차였어. 대체 그 아저씨는 왜 오신 건데?”

“아까도 말했지만 로페즈씨가 의뢰를 하나 부탁했어.”

“그러니까 무슨 의뢰?”


지주가 마피아 보스에게 하는 의뢰라면 보통은 도망간 농노를 찾아 달라거나, 누가 빌려 간 돈을 대신 받아달라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겠지만. 롤랑이 그륜벨트의 뒷골목을 장악한 뒤로는 그런 지저분한 일은 일절 받지도, 진행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농노들의 어려운 점을 뒤에서 봐주는 턱에 지주들 사이에선 롤랑을 골칫거리고 알고 있을 텐데 말야.


“그 집 아들 닐슨이 올해 화이트펄[White-Pearl]에 입학하는 건 알지?”

“모르는 게 이상하지. 작년에 스쿨 특채 졸업으로 입학 자격 떨어졌을 때 온 영지가 난리도 아니었잖아.”


지방 영지에 스쿨에서는 18세의 학생을 대상으로 졸업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이란 것이 사실 왕실에서 주관하는 국가시험이다. 여기서 낙제를 한다고 딱히 큰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높은 점수를 얻으면 그야말로 출세가 보장된다 할 수 있다.

가장 큰 특전은 장학생의 자격으로 왕도의 있는 화이트펄 아카데미에서 수학할 수 있다는 것인데. 전에 롤랑에게 들은 바로는 화이트펄이야 말로 문관으로 출세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최종 목표라 한다.

여길 졸업하면 보통 중소영지에선 모셔가지 못해 안달이고, 대영지에서도 출중한 재원을 미리 빼 가기 위해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는데. 스쿨엔 발도 못 디뎌본 내게는 다른 세계나 다름없다.


“다음 달에 있을 입학식에 맞춰 슬슬 에스펠튜드로 상경해야 한다는데, 방금 말한 그 노상 강도 때문에 좀처럼 떠날 시기를 못 잡고 있다더군.”

“흐응, 그래서? 왕도 가는 길 평안하게 너보고 애들 몇 명 끌고 가서 노상강도들 손 좀 봐주라고 하던? 며칠 뒤 닐슨이라는 자식이 지나가면 곱게 모시라고 한마디 쏴주고 말야.”

“비슷하긴 한데… 왜 갑자기 그리 시큰둥한 거지?”

“시큰둥하긴 개뿔… 계속해.”


내가 느끼기에도 시큰둥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지만 롤랑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얘기를 계속 진행했다.


“정확히는 호위를 부탁했어. 칼을 쓸 줄 아는 애들 몇 명과 함께 닐슨을 왕도까지 데려다 주면 300실링을 주겠다고 하더군.”


300실링이면 무척 큰돈 이기는 한데. 좀 전까지 골드 운운하다가 갑자기 수준이 팍 떨어진 느낌이다.


“당장 250골드를 해결해야 하는 판에 300실링이 웬 말? 설마 그거라도 벌고 보자는 건 아닐 거고. 대체 왜 넙죽 그런 의뢰를 받아들인 거냐?”

“말했잖아 겸사 겸사라고. 이번 일에 해결을 위해선 왕도에 갈 필요가 있어.”

“에스펠튜드에?”

“응, 달리우스 2세가 승하했음에도 아스트리드 공작은 아직 에스펠튜드에 체류하고 있어. 아마 엘리엇 왕세자의 즉위가 늦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잠깐만, 누가 ‘승해’했다고?”


달리우스 2세? 그거 국왕폐하의 왕호[King’s Name] 아냐?


“승해가 아니고 ‘승하[demise of King]’. 뭐야, 모르고 있던 거야? 우리 애들이 이것저것 전달해주러 갔을 때 말 안 해줬어?”


글쎄… 지금 돌이켜보면 그 중 몇 명이 난리가 났다고 시끄럽게 떠들긴 한 것 같은데. 그나저나 왕이 죽었다고? 그런 큰일이 났는데도 어째 영지가 조용한데?


“그륜벨트는 이미 한차례 홍역을 치른 뒤잖아. 심적으로야 엎친 데 덮친 격이지만, 일단은 자신들이 사는 터전의 복구가 우선이니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랬군. 국왕폐하가 돌아가신 건 언제쯤?”

“들리는 말로는 승하한 날이 소릴의 3일째 되는 날이었으니까. 벌써 7일 정도 되었군.”

“생각보다 얼마 안 지난 일이네? 그럼 장례는 벌써 끝난 거고?”

“글쎄, 한 달 전에 일도 있고. 최근엔 왕도의 소식이 뜸해서 나도 거기까지는 알 수 없어. 해서 겸사겸사 자세한 얘기를 들어 보려고 네게 프랙탈을 빌린 건데. 아쉽게도 저쪽의 소식통이 받질 않는군.”


소식통이라는 표현을 쓸 때 롤랑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졌다. 무언가 정말 싫을 때만 나오는 표정인데. 대체 소식통이 누구길래? 일단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누군가의 이름은 애써 억누르기로 하자. 갑자기 소름이 돋는군. 으으.


“국왕이 돌아가신지 7일밖에 안됐으면 아스트리드 공작이 거기 계속 있어도 이상한 건 아니잖아? 차라리 아스트리드 쪽에 언제쯤 돌아오는지 알아보는 게 어때?”

“물론 그쪽에도 알아볼 만큼은 알아봤어. 하지만 정확한 귀환은 알 수 없다는 반응이야. 조금 전 도중에 끊긴 얘기지만, 선왕의 장자인 엘리엇 왕세자의 즉위가 미뤄지고 있다는 소문도 슬쩍 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결국, 롤랑의 직접 왕도로 가보겠는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전망인 듯했다.


“뭐, 어차피 여기를 뜨는 것도 시간문제였잖아? 잘 준비해서 진짜로 크게 출세하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그렇게 말을 꺼냈지만, 롤랑은 어딘가 불만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또 뭐?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이야기를 멋대로 마무리하지 말았음 좋겠군.”


살짝 눈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이 살짝 화가 난 것 같다. 이런, 결국 이런 식으로 흘러가나? 이래서 얘기를 끝내려 한 건데… 나는 선수를 치기로 했다.


“멋대로 얘기를 끝내려고 한 것 잘못했어. 하지만 미리 말해 두는데. 같이 가자, 도와 달라, 이번 한 번만 등등. 날 조금이라도 끌어들이려는 얘기를 꺼낼 거면 지금 당장 페로 뒷덜미를 잡고 여기서 나가주지.”

“음, 내 발로 직접 나가겠네. 밥도 다 먹었고.”


페로는 이미 용건을 끝마쳤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래, 거참 대행이구나. 정말 드물게 손발이 척척 맞는걸?

내 경고 아닌 경고에 롤랑은 말없이 내 눈을 쏘아 보았다. 쏘아보면 어쩔 건데? 진짜 이번에야말로 말려 순 없다. 내가 뭐가 좋다고 아무 의미 없는 왕도 여행길에 끼어야 하는데?

집 나가 봐야 돈만 쓰지, 잠자리도 불편하지, 게다가 껄끄러운 닐슨 자식도 끼고 가야 하잖아? 더구나 노상강도 같은 살벌한 인종들하고 마주칠 위험도 있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끼어들 이유가 전혀 없다 못해 끼어선 안 되는 얘기지.

그렇게 한참을 서로 노려보다가 결국 롤랑은 눈을 감고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얼마면 되는데?”


가슴 한구석이 움찔 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는 동안 경비는 내가 책임지지.”


이번엔 어깨가 들썩였지만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륜벨트로 돌아갈 땐 마차 타고 가게 해 줄게.”

“…왕도까지 찍으면 뜯어 말려도 집에 갈 거다?”


롤랑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도 강도 한둘쯤이야 어떻게든… 정 위험하면 닐슨이라도 던져주고 도망가면 되겠지.

수고비는 통 크게(?) 10골드쯤으로 책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작가의말

Ep. 1 내내 구르고도 정신 못차리는 아로였습니다.

 

이번주 연재의 시작은 쳅터 1의 끝과 함께 시작하는 군요. 하지만 본격적인 여행길에 접어들기 전에 준비과정이 남았습니다.

 

슬슬 이번 편에 새로운 떡밥을 뿌릴 준비를 해야겠군요. 흐흐.

 

선호작 600을 넘는 (제 입장에선)대기록을 갱신했습니다. ㅇㅁㅇ!

 

부담... 들지요. 하지만 함 여얼심히... 함 해보것스므니다!

 

이 이야기는 올빼미혁명단의 제공으로 올려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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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크리스야드[Chrisyard](3) +5 13.03.17 1,319 20 20쪽
33 크리스야드[Chrisyard](2) +9 13.03.16 1,479 21 19쪽
32 크리스야드[Chrisyard](1) +8 13.03.15 1,654 19 13쪽
31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3)-End- +4 13.03.13 1,498 16 20쪽
30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2) +5 13.03.12 1,475 13 14쪽
29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1) +4 13.03.12 1,568 14 11쪽
28 아스트리드[Astrid](4)-End- +5 13.03.08 1,424 14 19쪽
27 아스트리드[Astrid](3) +9 13.03.07 1,380 15 19쪽
26 아스트리드[Astrid](2) +4 13.03.06 1,245 13 15쪽
25 아스트리드[Astrid](1) +4 13.03.05 1,311 14 16쪽
24 파견[Dispatch](4)-End- +6 13.03.04 1,437 15 14쪽
23 파견[Dispatch](3) +4 13.03.03 1,304 16 14쪽
22 파견[Dispatch](2) +5 13.03.02 1,490 16 10쪽
21 파견[Dispatch](1) +3 13.02.28 1,392 16 13쪽
20 수정벽[Crystal wall](2)-End- +3 13.02.26 1,413 15 19쪽
19 수정벽[Crystal wall](1) +3 13.02.25 1,441 15 18쪽
18 랩터[Raptor](3)-end +4 13.02.23 1,520 15 18쪽
17 랩터[Raptor](2) +4 13.02.23 1,503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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