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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퍼렁 책


[퍼렁 책] 1.2.5 동부 에사르크의 신화와 역사(3)

 1.2.5.2.4 이스트 에사르크에 꽃핀 왕정시대.
 우드맥 노르드인들이 규합하자 위기를 느낀 이스인들은 고트락 노르드인들에게 화평을 제안했다. 그리고 내심 그들의 선진문물과 기술을 얻고 싶었던 타우릭은 갈등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베일 윈드콜러 밑에서 파견되어 활약하던 타우릭의 수하가 베일 윈드콜러가 고트락 노르드인들도 자신의 밑으로 규합하고 싶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온 것이다.
 사실 이것은 베일이 사석에서 ‘노르드인들이 더 이상 소모적인 전쟁보다는 비옥한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꿈꾼다’라는 말을 곡해한 것이지만 우드맥 진영에서 취급이 좋지 않던 타우릭의 수하가 와전해서 전한 것이었다.
 이 오해로 인해 타우릭은 이스인들의 화평제의를 받아들이고 고트락 노르드인들을 이끌고 북부로 떠나버린다.
 수적으로 가장 많던 고트락이 전쟁에서 발을 빼자 우드맥 진영은 혼란에 휩싸였고 타우릭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베일은 시급히 이 혼란을 수습하고 진영을 정비했지만 전략적인 우위는 이미 이스인들에게 빼앗겼다.
 결국 미드셀 전투를 마지막으로 베일은 이스인들에게 화평을 제안한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이스인들 측에선 이를 선뜻 받아들였다. 사실 미드셀 전투가 우드맥 진영의 승리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전쟁은 훨씬 길어졌을 것이다.
 이 화평 이후에 겨우 하나로 뭉친 부족이 다시 갈라질 것을 두려워한 베일은 전부터 생각하던 국가를 세운는 일을 추친하고 이후 1160년 그의 나이 71세가 되는 해 오를란드 왕국이 세워지고 화이트 펠리스 건조가 추친된다.
 허나 그는 이 아름다운 왕성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1191년에 보이에 산 전투에 향년 76세의 고령임에도 전투를 진두지휘하다가 총탄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다. 이후에 왕위는 그의 어린 아들을 대신해 시르켄 지그문드가 즉위한다-오를란드의 이후 역사에 대해선 밑에서 또 자세히 다루겠다-.
 한편 북부로 올라간 고트락 노르드인들도 나라를 세우는데 타우릭 스콜티스가 왕조를 세운 드레드페일 왕국이다. 즉위한 타우릭은 이후 신하를 뽑을 때 공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별하여 대우했는데 이는 이후 북부 왕국의 독특하고 세밀한 신분제의 기원이 된다.
 타우릭 이후 즉위한 로드렉 스콜티스는 숲과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최대한 농지를 넓히는데 주력했고, 그 결과 아홉 개의 지역에서 특히나 많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아홉 지역은 이후에도 북부 왕국 식량 공급의 중심지가 되지만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해 왕조가 드레드페일 왕조 말엽에는 대부분을 오를란드와 펠컨 왕궁에서 들여오게 된다-드렉노트로 왕조가 바뀐 뒤에는 직접 청운해로 나아가 다른 대륙과 교류하고 다이아몬드와 석탄을 통해 주변국들과의 무역으로 식량을 확보했다-.
 당시 이를 주도한 것이 상단 길드였고 상단이 곡물의 공급을 대부분 독점함에 따라 백성들의 생활이 궁핍해진다. 이는 드레드페일 왕조의 폐망과 이어지는 중대한 사건이기에 후에 드렉노트 왕국 역사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이스인들은 이스트 에사르크의 민족에 대해 언급할 때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으니 이번엔 펠컨 왕국의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겠다.
 1160년대에 노르드인들의 왕조를 일으켜 국가의 틀을 세우자 이스인들 역시 국가를 세웠다. 펠컨 왕국은 1170년에 본격적으로 왕조를 일으켜 동부에서는 가장 늦게 왕조를 열었지만 1411년에 펠컨-오르테가 제국으로 병합되면서 시그루크 왕조는 약 200년이 넘는 치세의 막을 내린다.
 200년간 약 8명의 왕이 통치했으며 시그루크 왕가는 펠컨-오르테가 제국의 제후 가문이 되어 황위 계승권을 갖게 된다.
 
 1.2.5.3 오를란드 왕국의 역사.
 이번 장에서는 오를란드의 역사를 살펴보자.

 

 1.2.5.3.1 오를란드의 건국과 시조 테르시우스[1160~1171].
 오를란드는 우드맥 노르드만데라 지파의 우두머리였던 베일 윈드콜러가 다른 7개 부족을 통합해 세운 나라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의 시대는 고트락 노르드와 이스인들이 뒤얽힌 치열한 난세였다.
 이미 하나의 일견된 민족으로서 단단한 결속을 하고 있던 고트락 노르드와 선진 문물과 화승총을 앞세운 이스인들에 비해 세가 약한 던 우드맥 진영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족들은 서로간의 알력과 원한이 있어 좀처럼 뭉치지를 못했고 베일 윈드콜러는 성급히 부족들을 규합하기 보다는 이미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였던 고트락 진영으로가 동맹을 신청했다.
 당시 고트락 진영의 대표자였던 타우릭 스콜티스는 동맹의 조건으로 벵크락 요새 탈환을 내세우고 휘하의 있던 전사 500인을 빌려주었다.
 벵크락은 지금의 로이웨 지방 문스톤 산 일대를 일컫는 말로 천연의 요새였다. 당시엔 이스인들이 진을 치고 산일 대를 요새화한 일종의 내륙진출의 전진 기지들 중 하나였다.
 당시 고트락을 견제하는 역할로서 미드라스 강 하류의 비옥한 토지로 진출을 노리던 타우릭으로서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20년간 아무도 뚫지 못한 철벽의 요새 함락을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우드맥의 대표가 아닌 일개 부족이 고트락 전체와 동맹을 맺으려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돌려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일은 이를 승낙했고, 그길로 돌아가 부족의 전사들을 소집한 뒤 고트락의 정예전사 500을 데리고 벵크락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고 이곳을 단 5일 만에 함락하는데 마법구와 개개인의 전투력에 의지했던 노르드인들 특유의-무식한- 돌격과 집단 난전 전술을 버리고 마법을 이용해 벵크락 주변의 습도를 올려 화승총의 위력을 반감시킨 후에 적의 화약창고과 보급창고를 노리는 게릴라 전술을 시도했다.
 그리고 마법을 전사 개인이 아닌 군대 전체의 응용시키는 새로운 전술을 사용했는데-바람의 괘도를 바꾸어 화살을 더 멀리 날아가게 한다던지, 불의 정령이 깃든 돌을 던져 화약창고를 폭파 시킨다던지-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이때 가장 도움을 많이 준 것은 지금의 슈르크홀겐 학파의 마법사들이었다. 슈르크홀겐의 마법사들은 은둔자들이 많은 편이었지만 베일은 어느 슈르크홀겐 학파 집단을 설득해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 들였다-이 전투 이후, 어떤 마법이 전투에 적절한가라는 논쟁이 일어나 원소의 전당 마법사들 중 일부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오를란드 왕국이 들어서기까지 베일 윈드콜러에게 도움을 주는데 왕국이 건립되자마자 다시 은둔하여 사라졌다.
 벵크락 요새를 함락한 베일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미드라스 강 하류와 로이에 전역에 진출해 이스인들을 타그라스까지 몰아넣는 대성과를 이룬다.
 이 결과에 타우릭은 동맹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졌고, 결국 그 해 가을에 만데라 부족과 고트락 진영은 정식으로 동맹을 맺게된다. 이 동맹에 다른 부족들은 분개하고 베일 윈드콜러를 성토했다.
 그러나 그와 가깝게 지내던 하울 부족의 시르켄 지그문트는 이 결과에 무척이나 놀라 부족 내의 의견을 하나로 모은 뒤 곧장 이 동맹에 합류한다.
 이윽고 고트락 진영과 우드락 두 개 부족 진영의 동맹군이 동쪽으로 진군을 시작했고 이듬해 봄 중부에서 최고로 풍요로운 땅인 샤르보도를 수복한다. 이스인들에게 빼앗긴지 100년만의 쾌거였다.
 샤르보도를 이스인들에게 되찾자 다른 우드맥 부족들은 무조건 뒷짐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칫 가장 않 좋은 땅에서 안주한 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흩어진 우드맥 노르드의 여덟지파가 전부 모여지고 윈드콜러를 중심으로 통합된다. 그리고 얼마 뒤, 타우릭의 수하였던 레브 그로스먼이 베일과 타우릭의 사이를 이간질 함으로 둘은 결국 결별하게 되고, 베일은 우드맥의 힘만으로 미드셀 전투에서 승리한 뒤 이스인들과 화평한다.

 미드셀 전투에서 승리하고 우드맥의 영토를 확립한 베일 윈드콜러는 기껏 하나로 모인 우드맥 지파가 다시 서로간의 내분으로 분열될 것을 두려워해 시르켄 지그문트의 조언에 따라 국가를 일으킨다. 그리고 위에 말했듯 1160년에 오를란드 왕국이 세워진다.

 즉위한 베일 윈트콜러는 자신의 왕명을 테르시우스로 지정하고 각 지파의 영토를 고루 분배한 후 그들에게 왕국에 대한 충성 맹세와 조약을 받아내는 대 성공한다. 그리고 같은 해 오를란드의 중심이라 할 수 있었던 지역인 에스펠튜드를 왕도를 지정. 왕성인 화이트 펠리스 건조를 추진한다.
 그로부터 11년 뒤, 이스인들이 세운 펠컨 왕국에서 일방적으로 조약을 파기하고 선전포고를 해왔다.  펠컨 왕국이 남동쪽 보이에 산을 넘어 침략해오자 친정을 나선 베일 윈드콜러는 이곳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서거한다. 그리고 그의 유언의 따라 다음해 시르켄 지그문트 2대 오를란드 왕으로 서 즉위한다.


댓글 2

  • 001. Lv.28 진향進向

    13.03.24 16:29

    대단하십니다. 이 정도로 입체적이게 설정을 짜놓고 글을 쓰시다니, 게으른 아우는 감탄하고 갑니다.

  • 002. Lv.17 뽀이뽀로밀

    13.03.25 11:38

    만들면 모하누... 결국 쓰는 건 10정도야.OTL
    내 단점이 설정을 만들고 글을 쓴다는 것인데, 이건 사실 꽤 치명적인 약점이지. 비효율적이야. 그래서 이중에 10만 써보기로 했어....ㅇ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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