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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포춘코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뽀이뽀로밀
작품등록일 :
2013.02.16 11:46
최근연재일 :
2013.04.09 01:15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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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24
추천수 :
727
글자수 :
296,364

작성
13.03.1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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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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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20쪽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3)-End-

포르투나 연대기 1부




DUMMY

좌중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라는 건 허세고 그냥 다들 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보르미웨 부장도 태블릿을 끄려다 어정쩡한 자세로 나를 보고 있었고, 롤랑 역시 한숨을-넌 또 왜?- 쉬었다.


「아로운이라고 했나? 참으로 말을 흥미롭게 하는군.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설픈 논리를 내세울 생각이라면 버리게.」

“그건 아닙니다. 어설픈 논리라도 늘어놓을 수나 있었다면 지금보다 수만 배는 능변가가 되었을 테죠. 아쉽지만 난 저 친구처럼 입이 잘 돌아가는 편은 아닙니다.”


대신 머리는 조금 굴릴 줄 알아서 하는 말일 뿐이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뭐, 지금까지 쭉 지켜보니. 저희 영지의 원군으로 가주실 수 없는 이유가 좀 애매해서 말이죠.”

「호오?」


기분 탓이 아니라면 지금 저 사람은 웃고 있다.


“국왕 폐하의 명 없이 손해 볼 싸움 할 수 없다. 그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각하의 말씀은 이대로 싸우면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장담처럼 들립니다.”


그때까지 멍하니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주변 모든 사람의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그들의 얼굴은 불시에 어딘가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해 있었다.


“어째서 각하가 없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가?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즉,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멋대로 마무리를 하시면 곤란하죠.”

“무례하다! 그것이 한 영지를 대표해서 온 특사의 언동인가!”


바이스 슈트름의 한 사관이 앞으로 나서며 호통을 쳤다. 이크, 실수했다.


“죄송합니다. 저 친구와는 달리 배움이 짧아서요. 하지만 각하께서 그 부분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면 영지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난감합니다. 돌아가서 그들의 무덤 앞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원군은 못 데려왔다고 알려는 줘야 하는데, 각하께서 자리에 안 계시는 바람에 랩터들에게 탈탈 털릴까 봐 지원군이 안 왔다고는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생각 같아선 롤랑 저 자식이 얼빵한 짓 해서 실패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친구의 정리로 그럴 순 없는 일이다-결코 30실링 때문이 아니다.-


“…….”


모든 시선이 ‘뭐 이런 게 다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게 보지들 말라구요, 아주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우리 입장이 돼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다들 잘 먹고 잘 살다가 삽시간에 난데없는 죽음을 당하는 건데 적어도 억울하지 않게 조문은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우리가 실패한 건 실패한 거라도 변명거리는 있어야 하잖아. 안 그래?


“크큭… 아하하하하하!”


그때 고개를 돌리고 있던 롤랑이 폭소를 터뜨렸다. 넌 또 왜 그래? 미쳤어? 나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롤랑은 미친놈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하하하… 후우, 실례했습니다.”


숨을 고르며 웃음을 멈춘 롤랑은 좌중을 향해 사과한 뒤에 고개를 들어 태블릿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이 마치 태블릿 너머의 크리스야드 후작을 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확실히 제 보좌의 말 대롭니다. 후작 각하. 저희는 아직 원군을 올 수 없는 명확한 이유를 듣지 못했습니다. 특사로서 이를 듣지 않고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로랜드 특사, 그걸 지금 말이라도 하는가?”


옆에 있던 소공작이 녀석을 말리려는 듯 나섰다. 하지만 롤랑은 오히려 소공작에게 강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소공작께서는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륜벨트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같은 일이 흐비부지 처리된다면 어찌 한 영지의 위기를 짊어진 특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소공작께서 저와 같은 입장에 서 계신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야…….”


소공작은 더는 나서지 못하고 뒤로 물렀다. 그리고 롤랑은 아직도 빛을 내고 있는 태블릿에 한 발짝 다가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바이스 슈트름 부대의 사령관인 크리스야드 후작께 감히 묻겠습니다. 각하의 부재중인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반드시 손해 보는 전쟁이 될 거라는 장담은 어떤 근거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후후, 참으로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좋다, 어울려 주지.」


후작은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렇게 말했다.


「특사에게 들은 적의 규모는 대략 3만에서 5만에 가까운 괴물의 무리다. 비록 특사가 적들의 특성을 알려주었지만 오를란드의 그 어떤 군대도 그와 같은 괴물과 대전해본 경험이 없다. 게다가 특사의 정보도 출처 미상의 신뢰도가 극히 떨어지는 정보이지. 즉, 실제로 싸워보지 않고는 적의 행동양식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

“확실히 정보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전쟁에서 적의 모든 것을 알고 대응할 수 있단 말입니까? 20여 년 전 남부정벌 때도, 야만족 군대의 규모는 당시 수뇌부의 예상을 뒤덮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상과는 다르게 고도의 전술을 구사하는 야만족 덕분에 당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전쟁이 길어졌음에도 오를란드는 결국 승리했습니다. 그 위업을 직접 선두에서 지휘하신 각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호, 생각보다 자세히 알고 있군. 그럼 이건 어떤가? 현재 거기 있는 군대는 아스트리드까지의 긴 여정 탓에 지쳐있다. 통상 5일이나 걸리는 거리를 이틀 안으로 주파하려면 전력을 다해 달려야 할 터인즉,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군대로 최소 세 배 가까이 차이 나는 적을 상대해서 과연 손해 없이 이길 수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이 ‘눈보라의 날개’ 없이?」


음, 하긴 그륜벨트에 도착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싸워야 할 텐데, 그래서야 확실히 피해를 보지 않을 순 없겠지. 근데 이상해. 저 하루에도 같은 주제로 수백까지 생각을 해대는 녀석이 크리스야드 후작만 믿고 여기에 왔다는 것이 영 걸리네.

슬쩍 롤랑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역시, 저 표정은 뭔가 있는 얼굴이다. 하지만 어째 불안해. 저건 어제 날 포격 속에서 달리게 했을 때하고 비슷한 눈빛인데. 또 어떤 사악한 지혜를 꺼내려는 거냐. 뭔진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날 말려들게 했다간 30실링이고 뭐고 절교다.


“후작 각하가 계시지 않더라도, 후작 각하가 계신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쯤은 간단합니다. 그렇군요. 사실 제 전략에는 후작 각하가 그다지 필요가 없습니다.”


크리스야드 후작의 질문을 받고 조금 뜸을 들인 롤랑은 입가의 미소를 드리우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뭐라고?”

“세븐 마스터스인 후작 각하를 앞에 두고 저런 말을 하다니!”

「전장에서 보낸 반평생 동안,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전략가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군.」


좌중이 다시 술렁이는 가운데 크리스야드 후작의 반응은 덤덤했다. 아니, 무척이나 흥겨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착각인가?

「하지만 궁금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실. 애초에 자네는 나의 힘이 필요하기에 메르타 산을 넘는 무모한 파견을 온 것이 아닌가?」

“조금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정작 후작 각하가 안 계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저희 그륜벨트의 피해를 다소 감수하고라도 승리할 수 있는 책략을 꺼내는 수밖에. 미리 말씀드리지만 어디까지나 저희 ‘그륜벨트’의 피해입니다.”


아, 그만 감질나게 하고 시원하게 털어나 봐!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시선에서도 그와 같은 생각이 느껴진다. 그에 비해 롤랑은 마치 물 한잔 부탁하는 듯한 말투로 소공작을 향해 물었다.


“소공작, 혹시 아스트리드에 마법사는 계십니까?”

“음? 그야 당연히 있네만?”


롤랑의 질문에 소공작은 가신단을 돌아보았고, 남보라 빛 로브를 걸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내가 람페루주 가의 상임 마법사요.”


마법사라면 지긋한 나이의 노인을 상상했던 나는 뜻밖에 젊어 보이는 마법사에게 놀랐다. 반면에 롤랑은 빙그레 웃으며 마법사를 향해 질문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질문하시오.”

“마법사께선 혹시 ‘증기 폭발’을 알고 계십니까?”

“나는 원소와 정령을 다루는 알브 에나릴의 사용자요. 당연히 알고 있소만?”

“그렇습니까? 그럼 여기 계신 분들에게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웬 학문 강의야? 내가 그런 생각이 드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잠자코 있는 것을 보면 롤랑에게 뭔가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듯하다.


“증기 폭발은 물이 매우 온도가 높은 물질과 접촉하여 기화[氣化]되면서 폭발하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하면 물이 갑작스럽게 수증기로 변하면서 일어나는 폭발현상으로, 자연계에선 주로 땅의 열 때문에 가열된 지하수가 팽창하여 일어나기도 합니다.”

“간혹 지하수가 터져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요?”


마법사의 말을 듣고 있던 소공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지하수가 터져 나오는 경우는 좀 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튼, 증기 폭발에 관한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호오, 참으로 신비로운 현상이군. 그럼 우리 영지의 지하수가 터져 나온 것도 수증기 폭발 때문인가? 어, 지하수?

문득 여기서 메르타 산의 지하수가 떠오른 것은 어째서인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롤랑은 마법사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럼 또 한 가지 묻겠습니다. 마법으로 그런 증기 폭발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습니까?”

“음, 규모나 매장 깊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가능은 하오. 매장된 지하수를 단숨에 끓게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열을 가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겠지마는.”


증기 폭발을 인위적으로? 잠깐만… 롤랑, 너 설마?


“말씀 감사합니다. 우연히도 저희 그륜벨트 영지 뒤에 있는 메르타 산에 지하수가 매장돼있지 뭡니까?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곳에 있는 지하수를 인위적으로 폭발시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야 그 일대 지반이 붕괴할 테니, 엄청난 규모의 산사태가… 다, 당신 설마!”

「그륜벨트를 통째로 매장하겠다는 것인가!」


마법사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말을 크리스야드 후작이 해주었다. 세상에… 산사태를 일으켜 영지를 통째로 뒤엎겠다는 말인가? 넌 대체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까지 미친 거냐?

놀란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산사태를 일으킨다고?”

“그렇게 되면 영지는 괴멸이 아닌가?!”

“자, 잠깐만!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아닌가? 분명 그륜벨트 영주성은 지금…….”


그래, 지금 우리 영주성은 헬가의 수정벽으로 보호받고 있다. 수정벽의 방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피신한 영지민의 안전은 확보되어있다는 얘기다.


“기록을 살펴보면, 헬가 르네 오귀스트는 100여 년 전 엄청난 홍수가 일어났을 때도 마법으로 범람하는 물을 막아낸 마법사입니다. 거의 전설적이지요. 그 헬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수정벽입니다. 산사태쯤은 가뿐하게 막아주겠지요.”


뭐가 가뿐하게야 이 미친 새퀴야! 그럼 영주성 빼고는 전부 흙더미 속에 매장된다는 소리 아냐!

롤랑의 말에 여기 있는 모두가 할 말은 잃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이 녀석의 정신 나간 생각을 ‘전략’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있긴 있었다.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내가 없더라도 적을 확실하게 분단시킬 수 있다. 오히려 적이 그륜벨트에 몰려있다면 단숨에 일망타진할 수도 있는 전략이야.」

“그렇습니다. 아스트리드에서 마법사들만 지원해 주신다면, 여기 있는 병력만으로 손쉽게 적을 괴멸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말씀드렸듯이 저희 그륜벨트 영지가 다소 손해는 입게 되겠지요.”


다소? 영주성 빼고 괴멸이 다소라고? 야, 이 자식아! 말이면 단 줄 알아?! 산사태가 나면 제일 먼저 우리 집부터 파묻히잖아! 안 되겠어.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되기 전에 뭔가 수를 쓰지 않으면!


“저기요 각하, 이 자식의 말을 진심으로 들으시면 곤란합니다. 이 미친놈이 원군이 못 올 것 같으니까 살짝 맛이 가서 하는 소리에요. 그러니 제발 귓등으로 들으시고 그냥 당장 여기로 달려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부대원들하고 여기서 만나기로 하셨다면서요! 아니, 날개라는 이명도 있으신 분이 그 정도도 못합니까?!”


이러다 우리 영주님 빼고 전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구요! 나는 롤랑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그야말로 필사적이 되어 말했다.


「…….」

“…….”


다들 황당한 시선으로 날 쳐다본다. 당신들, 지금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볼진 모르겠는데 이건 당사자에겐 무지막지하게 중요한 문제라고. 적을 물리치더라도 집도 절도 없이 어떻게 이 겨울을 나느냔 말야. 아직 봄이 오려면 석 달 가까이 남았는데!


“그만둬 아로, 사령관 각하께 무례를 범하지 마.”

“무례고 자시고! 저 사람이 안 오면 너 진짜 저지를 거잖아! 원군이 안가도 저지를 생각인 거지? 누가 모를 줄 알고? 내가 너 따라다니다 좋은 꼴 못 볼 줄 알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나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해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이게 최선이냐? 아니지, 처음부터 이상했어. 너, 사실은 이 방법을 맨 처음 떠올렸으면서 나중에 책임질게 겁나서 이런 빙 도는 방법을 선택한 거지? 그게 틀어지니까 ‘까짓 거 나중에 배상금 달라면 내면 되지’ 하는 속 편한 생각으로 밀고 나가는 거 아냐?”

「풋, 아하하하하하하하!」


태블릿에서 아주 높고 낭랑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 이렇게 들으니 저 양반 목소리가 꽤 젊은 사람처럼 들리네. 아니지, 지금 태평하게 웃을 때야? 빨리 이곳으로 튀어 오라고! 안 그럼 지금 맛이 훅 가다 못해, 정신이 하늘 높이 둥둥 떠 있는 롤랑을 누가 말리냐고! 산사태고 뭐고 지금의 저 자식이라면 진짜 저지른단 말이다!


「킥킥, 내가 없으니 산사태로 영지를 쓸어버리겠다는 특사에, 그 특사가 미쳤으니 나보고 당장 오라는 보좌라니… 대체 당신들은 영지를 구하고 싶긴 한 겁니까? 큭큭.」


웃음기 어린 말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당신은 지금이게 농담처럼 들리지? 나도 다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점점 저 사람의 목소리가 낯이 익게 들리는 건 왜일까?


「로랜드 특사,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지요. 만약 당신의 전략대로 적을 섬멸했을 경우 그 뒷감당은 어찌할 생각이었습니까? 그륜벨트 영지에선 당신에게 영지 괴멸에 관한 책임을 지우고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군요.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일부는 제가 내겠지만, 나머지는 각하께 청구할 생각입니다.”

「나에게?」

“각하께서 계셨다면 이런 피해 없이도 이길 수 있는 싸움입니다. 게다가 각하께서는 본래라면 여기 있는 병력을 인솔하여 아스트리드에 와 계셔야 하는 몸. 그 직무를 유기한 책임이 있으시니 이 전투에 대한 배상금 일부를 내어 주실 의무가 있으십니다.”

“그런 억지가……!”

“참으로 무도한 자가 아닌가?”


주변에 원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요, 이놈이 이렇게 흉악무도한 놈입니다. 꼴에 직업이 마피아 보스라고 이젠 별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돈을 뜯어내려고 하네요. 아니, 가만있어 봐. 심지어 배상금도 전부다 낼 생각이 없었단 말이야? 야, 이 날건달 새퀴야! 여기까지 와서 배 째란 심보냐?

하도 기가 막혀 컥컥 거리는 사이에 롤랑은 내 손에 잡힌 멱살을 풀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래, 이젠 나도 모르겠다.

덜컹!


“그건 곤란합니다. 국왕 직속의 사령관이라도 갑부는 아니니까요.”


나중에 배상금이나 톡톡히 받아내자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하려 할 때, 뒤에서 홀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잘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흔들리는 백발, 눈송이처럼 하얀 얼굴. 나긋한 목소리. 쉽게 잊을 리 없는 인물임에도 나는 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괴리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로키씨?”

“반갑습니다. 아로운. 생각보다 재회가 빨랐군요.”


너무나 뜻밖에 등장에 어안이 벙벙한 나와는 달리 주변에선 그를 보고 아는 체하기 바빴다.


“각하!”

“크리스야드 후작님!”

“여든 살이 넘은 초인의 모습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곱상한 외모군.”

“대체 지금까지 어디 계셨던 것입니까?”


음… 다들 로키씨를 보고 각하라고 하는데, 이걸 보고도 그의 정체를 모른다면 진정한 바보일 거다. 하지만…….


“아니, 가명을 써도 왜 하필 로키인 겁니까?”


그 쟁쟁한 위명에 전혀 매치가 안 되는 가명이잖아!


“라크펠드라는 이름은 오를란드 식으로 읽은 것이고, 드렉노트 식으로 읽으면 록펠드[Rockefelld]입니다. 그럼 로키라는 애칭이 자연히 나오지 않나요? 이 이름으로 부르는 친구는 그렇게 설명해 주더군요.”


아, 그런 거였어? 그 친구 이름 짓는 감각이 아주 탁월… 잠깐만! 본인이 여기 있었으면서 우린 지금까지 뭔 삽질을 계속하고 있었던 거야?!


“아로, 너… 크리스야드 후작과 구면이었나?”


눈을 가늘게 뜨며 날 노려보는 롤랑. 아니, 잠깐만 기다려. 내가 왜 그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 건데? 난 진짜 몰랐었다고! 생각해 봐, 일국의 사령관이 그런 허름한 여관에서 안주도 없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로랜드 특사는 너무 그렇게 아로운 군을 탓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군요. 어디까지나 신분을 감추고 만난 것이니까요. 하지만 덕분에 그륜벨트의 소식은 여기 있는 사람 중 가장 빠르게 알 게 되었습니다.”


나와 롤랑을 지나쳐 바이스 슈트름과 스콰이어 대표단 사이 선 라크펠드 크리스야드는 군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파견한 척후가 방금 그륜벨트의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하여 이 시간 이후, 국왕 폐하께서 내게 주신 권한으로 긴급 동원령을 내립니다. 대상은 아스트리드 영지에 있는 전 병력이 될 것입니다.”

“Yes, your General!”

“동원된 전 병력은 지금 즉시 이동을 계시. 공격 목표는 그륜벨트의 마물들, 위대하신 달리우스 2세의 이름을 걸고 오를란드의 백성을 유린한 무리들을 남김없이 섬멸할 것입니다.”


섬멸을 입에 담는 크리스야드 후작에게선 일국의 장군을 넘어선 초인의 기백이 느껴졌다. 마치 이 자리에서 랩터들의 운명이 결정된 듯한 기분마저 불러일으켰다.


“로랜드 특사, 아로운 특사보좌도 함께 따라오세요. 당신들에게 ‘눈보라의 군세’가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를 향해 그렇게 말한 크리스야드 후작은 다시 이쪽으로 걸어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두 분을 시험한 건 ‘퉁’ 치도록 하죠. 부대 인솔을 직접 안 한 건 모쪼록 비밀로…….”


한쪽 눈을 깜박이는 후작에게 나와 롤랑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작가의말

 이제 1편의 마무리 챕터만 남겨 놓고 있습니다. 여기까꺼지 무려 한달이 걸렸군요. 그닥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속도에 좌절 중입니다.OTL

 

 하지만 선작도 조금씩 늘고 있고 평균 연독률도 무려 10이나 올랐습니다.

 

 이거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면 후기겸 광고를 한번 해주어야 겠군요(웃음).

 

 쪽지로 어떤 분이 ‘올빼미님, 이블익시드는 어떻게 된거죠?’라는 말을 보내 주셨습니다. 으아니! 이 사람의 로봇물을 읽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시다니!

 

 생각 같아선 당장에라도 쓰고 싶지만. 이번주엔 포춘코드 마무리에 집중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블익시드는 좀더 기다려 주세요.(쏘, 쏘지마세요! 올빼미는 천연기념물이란 말입니다!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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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일단락[be concluded]-Ep 1. epilogue- +13 13.03.19 1,497 26 15쪽
37 크리스야드[Chrisyard](6)-End- +5 13.03.19 1,273 19 22쪽
36 크리스야드[Chrisyard](5) +4 13.03.19 1,286 14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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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크리스야드[Chrisyard](3) +5 13.03.17 1,318 20 20쪽
33 크리스야드[Chrisyard](2) +9 13.03.16 1,478 21 19쪽
32 크리스야드[Chrisyard](1) +8 13.03.15 1,653 19 13쪽
»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3)-End- +4 13.03.13 1,498 16 20쪽
30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2) +5 13.03.12 1,474 13 14쪽
29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1) +4 13.03.12 1,566 14 11쪽
28 아스트리드[Astrid](4)-End- +5 13.03.08 1,423 14 19쪽
27 아스트리드[Astrid](3) +9 13.03.07 1,379 1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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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파견[Dispatch](1) +3 13.02.28 1,389 16 13쪽
20 수정벽[Crystal wall](2)-End- +3 13.02.26 1,412 15 19쪽
19 수정벽[Crystal wall](1) +3 13.02.25 1,440 15 18쪽
18 랩터[Raptor](3)-end +4 13.02.23 1,519 15 18쪽
17 랩터[Raptor](2) +4 13.02.23 1,502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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