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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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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이뽀로밀
작품등록일 :
2013.02.16 11:46
최근연재일 :
2013.04.09 01:15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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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27
추천수 :
727
글자수 :
296,364

작성
13.03.0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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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아스트리드[Astrid](3)

포르투나 연대기 1부




DUMMY

“지난번 원상들이 왔을 때, 연합 훈련지가 아스트리드 영지란 걸 들었어. 이건 보통 훈련이 아니라 1만이나 되는 인구가 일시적으로 영지에 유입되는 거야. 당연히 장사의 기회이고 훈련 자체가 일종의 축제나 다름없이 치러지니까 막대한 돈이 오가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원상에게 있어 연초에 맞이하는 가장 큰 대목이니, 연합 훈련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정확하게 꿰고 있는 편이야.”


그랬군, 원상들에게 들었단 말이지… 응? 그럼 뭐야? 지금 그 얘기만 믿고 여기까지 그 고생을 해서 왔다는 거야?


“거의 확실한 정보였어. 나도 개인적으로 사람을 여기로 보내서 알아봤으니까. 분명 이 시기엔 그들이 주둔하고 있어야 하는데…….”


틀렸어, 이젠 아무 희망도 없어. 아니, 평소에 그렇게 빈틈없는 녀석이 중요한 순간에 이런 얼빠진 실수를 하면 어떡해? 이제 어쩔 거야? 영지의 있는 모두가 다 죽게 생겼잖아!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걸 애써 억눌러 참았다. 롤랑은 계속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고 우리는 계속해서 킴을 따라 영주성 내부에 들어섰다.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홀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긴 복도를 지나-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무리는 세련된 장식의 문 앞에 당도했다.


“들어가게. 어디까지나 예를 있지 말고.”


킴은 그렇게 당부하고는 손수 문을 열어주려다 문득 내 발밑에 있는 페로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공작님을 뵈는 자리에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갈 셈인가?”

“아, 아닙니다. 설마 그럴 리가요?”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 않아 페로에게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페로는 알았다는 듯 한쪽으로 가 배를 깔고 앉았고, 그마저도 킴에게는 탐탁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튼 문은 열어주었다.

방의 내부 역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고 화려했다.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이는 화려함이 아닌 엄격한 기풍이 돋보이는 실내 장식과 차분한 색감은, 압도적인 경관의 성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너희가 그 전령인가?”


무게 있는 목소리가 우리를 향했다. 롤랑과 함께 고개를 돌리니 고풍스러운 옷을 입은 중년 남자와 조금 더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앉아 있는 쪽이 아스트리드 공작 같은데 어쩐지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공작으로 보이는 남자는 손으로 기울인 머리를 받친 체 눈을 감고 있었다. 나이는 이제 서른 초반에서 중반으로 보였고, 날렵한 눈썹과 조금 선이 가는 인상이 우리 영주님과는 또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그 옆에 서서 우릴 부른 남자는 가신쯤 되는 모양으로 훨씬 나이는 많아 보였지만 큰 키와 메마른 인상이 결코 범상한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대답이 없지?”

“실례했습니다. 그륜벨트에서 시급한 전령을 가져왔습니다.”


재차 묻는 가신에게 대답한 것은 역시 롤랑이었다.


“구두인가 서한인가?”

“서한입니다.”

“이리 주게.”


큰 키의 남자가 손을 내밀자, 영주를 보며 조금 망설이던 롤랑은 가방에서 편지를 꺼내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물러나 있게.”


롤랑이 그 말대로 물러나 내 옆으로 오자 남자는 영주에게 공손한 태도로 편지를 내밀었고 눈을 감고 있던 그는 편지를 보지고 않고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편지의 밀봉을 뜯고 내용을 살폈다. 뭐야, 저건? 대영지의 공작쯤 되면 시골 영주의 서한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한동안 말없이 편지를 읽던 남자는 점점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더니 마지막엔 혼란스런 얼굴이 되었다. 보고 있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 하군그래.


“그륜벨트 영지에서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남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공작에게 말하자 공작은 감았던 눈을 스르륵하고 뜨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남자는 그 위에 들고 있던 편지를 공손하게 올렸다.


“…….”


남자와는 다르게 덤덤한 태도로 편지를 읽는 공작을 보는 내 마음은 타들어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롤랑을 흘끗 보니 녀석도 그다지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태연한 척 굴고 있긴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랩터란 이름의 마물이 영지를 습격하여 고립되어 있으니 도와 달라? 이게 정말 하워드 가문에서 보낸 레드 이글[Red eagle]급의 긴급 전문이란 말인가?”

“보셔서 아시겠지만 찍혀있는 인장은 분명 그륜벨트 영지 하워드 가의 것. 위조나 도용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하! 이런 정신 나간 전문을 보기 위해 이 이른 아침부터 일어났단 말인가?”


예상했던 반응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옆에 있던 남자의 의견은 좀 다른 듯했다.


“그렇다 하기엔 내용이 기묘합니다. 일단 사람은 보내서 확인하심이…….”

“헤밀튼 자네가 알아서 하게. 그보다 오늘쯤이면 도착할 듯한데, 환영인사와 연회준비는 차질 없이 준비되었나?”

“예, 전부 합쳐 150명이 머물 방과 수발들 준비를 마쳤습니다.”

“수고했군, 이번 그들의 방문은 본 영지 최대의 이익 창출을 가져다줄 중요한 행사일세. 아무쪼록 무례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쓰게.”


편지를 휙 던져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공작은 우리를-특히 나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륜벨트는 야만족에게 전령을 맡길 정도로 사람이 없는 건가?”


아, 네네. 그 반응 이제 슬슬 질려 옵니다. 난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작은 계속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저들에게도 간단히 요기 거릴 주고, 타고 온 말을 살펴주게. 기다리게 했다 나중에 확인하러 보낼 인원과 함께 보내도 좋겠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헤밀튼이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숙이자 공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에 있던 다른 문으로 향했다. 난 그가 바닥에 떨군 편지를 보면서 나는 이젠 어찌해야 하나 싶은 심정으로 롤랑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고개 숙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롤랑이 불쑥 입을 열었다.


“경은 아스트리드 영지를 위기에 빠뜨리실 작정이십니까?”


그 말에 문고리에 손을 가져가던 공작이 손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본다.


“야, 롤랑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고 속삭이려던 내 말은 녀석의 다음 말에 묻혀버렸다.

“경의 부친이신 아스트리드 공작께선 섣부른 판단으로 영지에 불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바라여 경에게 부재를 맡기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호오?”


돌아본 공작은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그보다 저 사람이 공작 아니야?


“무례한! 감히 어디서 공작님을 들먹이는 것인가!”


헤밀튼이 화가 난 얼굴로 앞으로 나섰으나, 오히려 롤랑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빳빳이 들고 이쪽을 돌아보고 있는 공작의 아들을 향해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저희를 돌려보내신다면 경께선 분명 큰 낭패를 당하실 겁니다.”

“이자가 그래도…! 밖에 아무도 없는가!”

“잠깐.”


헤밀튼이 분노한 기색으로 병사들을 찾자, 소공작이 그것을 말렸다.


“네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라. 만약,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거라면 결코 용서치 않겠다.”


그의 눈이 착하고 가라앉으며 차가운 살기를 띄었다. 이전이었다면 절로 벌렁거릴 눈빛이었지만 랩터들의 굶주린 눈빛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 게다가 저 롤랑이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자리에서 막말을 꺼낼 리도 없고.


“물론, 이보다 명백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내 생각대로 롤랑은 자신만만했다.


“고작 전령치고는 배짱이 두둑하군. 좋아, 어디 들어볼까?”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은 공작의 아들에게 헤밀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공작, 아무리 그래도 저런 무도한 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것은…….”

“어차피 잠도 다 깼다. 시간도 남아도니 상관없지 않은가?”


그렇게 일축한 소공작가 롤랑을 보며 어디 한번 지껄여 보라는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그걸 지금 도발이라고 하는 것인가? 롤랑의 비하면 간에 기별도 안갈 만큼 시시한 도발이군.


“지원군을 보내는 것은 요청받은 영주의 판단에 맡긴다. 이것은 영지간 협조 조약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이것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왕의 명령뿐. 그리고 난 임시기는 하지만 아버님께 이 영지의 권한 일체를 양도받았다. 헌데 여기 어디에 본 영지를 위험에 빠뜨리고 나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 거리가 있다는 거지?”

“물론 거기까지만 본다면 아무런 문제가 있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소공작께서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계신다는 것을 저는 알려드리고 싶군요.”

“중요한 것?”


소공작의 반문에 롤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우선, 소공작 앞에 있는 저희가 단순한 전령이 아닌 레드 이글 인장을 가지고 찾아온 특사라는 것. 또 하나는 그륜벨트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그건 이상한 말이군. 전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후자는 본 영지가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아까도 말했지만, 지원군의 파견 여부는 요청받은 영주의 고유권한이다.”

“그 권한을 딱히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허나, 원군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그륜벨트가 멸망하기라도 한다면 그게 아스트리드 영지의 득이 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군요.”

“뭣이?”


소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롤랑은 거기서 쉬지 않고 빠르게 말을 쏟아 내었다.


“방금 읽으신 저희 영주님의 지원군 요청. 그 내용이 생각하신 대로 허무맹랑한 헛소리라면 문제 될 것이 없을 겁니다. 소공작께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신 불쾌감만을 감수하신 것으로 끝날 문제이니까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어찌하실 것입니까?”

“그럼, 네가 이 편지의 내용을 증명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냐?”

“아뇨, 당장은 증명할 수도 없고. 또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했을 때 아스트리드 영지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가’라는 점입니다.”

“그 마물들이 그륜벨트 영지를 삼키고 아스트리드 땅으로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비웃음이 가득한 소공작의 비아냥거림에 롤랑은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장담하건대 그보다 더 나쁠 겁니다. 만약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고 지원군이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그륜벨트 영지는 사흘 안에 멸망합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중소영지지만 그런대로 넓은 곡창지대 땅이 주인 없이 나돌게 되겠지요. 그럼 그 땅이 누구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십니까?”

“뭐?”


생각지도 못한 곳을 찔린 듯 소공작은 눈을 크게 떴다. 그 표정을 본 롤랑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희 영주님과 오레곤 영지의 레니에르 가문과는 막역한 사이입니다. 레니에르 공작님의 둘째 아들과 저희 영주님의 장녀가 몇 년 전 혼인을 한 것은 잘 아시리라 생각되며,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그, 그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소공작, 게다가 헤밀튼 역시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는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저나 참, 말도 웃기게 잘한다. 그 뭐다냐… 논점이라고 해야 하나? 잘도 이야기의 논점을 비틀어서 얘기하는구만. 하지만 이걸로 우리가 마물에 존재에 대해 애써 증명할 필요는 없어졌다.


“넌… 네놈은 지금 그륜벨트가 멸망하면 그 영지가 오레곤에 귀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하워드 백작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앞일을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시길. 만약 이대로 저희 영지가 멸망한다면 하워드 가문은 지지기반을 다 잃게 됩니다. 영지민도, 기사도, 군사도 없는데 땅만 가져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국왕폐하께서 그와 같은 처지의 가문에 변경백의 작위를 유지해 주시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군요.”


하긴 영지민 없이 세금을 걷을 수가 없으니 나라에 지급해야 하는 세금도 당연히 없어진다. 내가 국왕이라도 그런 가문에는 안 맡기겠지. 롤랑의 말은 계속되었다.


“게다가 저희 영지가 고립된 지도 벌써 이틀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미 저희와 같은 특사들이 오레곤 영지로 출발해 지금쯤 당도했을 것입니다. 설사 그들이 마물에게 당해 당도하지 못했더라도 오레곤 영지에서 저희 영지에 이상을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거짓말도 이쯤이면 수준급이다. 하지만 후자는 맞는 말.


“하지만 오레곤에서의 원군은 늦을 것이다! 편지엔 5일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적혀 있지 않았던가!”


마치 최후의 발악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인가. 롤랑은 마치 숨통을 끊는 것과 같은 태도로 단호하게 힘주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오레곤은 늦겠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스트리드보다는, 늦었지만 원군을 보낸 오레곤이 누가 보더라도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그륜벨트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습니까? 지지기반을 잃은 하워드 가문의 적자와 당장에라도 인구를 유입시켜 안정적인 납세를 유지해줄 대영지라는 선택지를 놓고 국왕 폐하께서는 과연 어떠한 영단을 내리실까요?”

“그, 그건……!”

“이대로 두면 오레곤은 중부와 남부를 잇는 가장 큰 육로와 나름대로 생산성이 높은 땅을 손에 넣고 명실상부한 남부의 패자가 되겠지요. 그 후엔 이윽고 아스트리드의 이익을 위협하는 골치 아픈 존재로 성장할 것입니다. 과연 이런 상황을 아스트리드 공작께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겠지요.’하는 얼굴로 말을 맺은 롤랑. 소공작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고 의자의 몸을 파묻었다. 이제 끝난 거야? 소공작, 당신은 상대를 잘못 만난 거야.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내가 지원군을 승인하다 하여도 결국 오레곤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가 여기서 지원군을 승인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냐?”


결국은 백기를 든 소공작의 입에서 원군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물론 아스트리드의 원군을 승인해 주시면 감사할 일이지만. 저희 역시 처음부터 때를 맞추지 못할 원군을 청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럼 대체… 설마!”


소공작도 영 바보는 아니었는지, 롤랑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놈이 미쳤구나! 지금 국왕 폐하의 직속 3군에게 원군 요청을 하겠다는 것이더냐?!”


생각보다 반응이 격렬하다. 그게 그렇게 펄쩍 뛸 일인가?

나는 의아한 시선으로 롤랑을 보았지만, 녀석의 얼굴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문제없단 얘기인데. 저 양반은 뭘 저렇게 과민반응이지? 신경성 질환이라도 앓고 있는 건가? 감정의 기복이 왔다 갔다 한다든가…….


“국왕 직속 3군에 대한 명령권은 오직 폐하께만 있다! 왕명을 받고 훈련을 위해 본 영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원군을 요청한다니, 네놈은 그들이 왕명을 어기고 일개 중소영지의 구원을 하러 갈거라 말하는 것인가?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반역이다!”


반역이라고?! 아니, 그냥 훈련 왔다가 살짝 목적을 바꿔 원군으로 가는 것뿐인데 어째서 그런 살 떨리는 죄목이 된다는 거야?

아무리 무지한 나라도 반역이 무언지는 안다. 반역죄가 적용되면 적어도 주동자는 재판 없이 사형. 그 일가족부터 주변 지인들 할 것 없이 타르타로스 행이 기본이다. 잘 봐줘야 노예형, 이거 학을 뗄 만하잖아?

이제 성인이 된 지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반역죄를 뒤집어쓰게 됐다. 지금이라도 당장 소공작을 향해 지금까지 한말이 다 농담이었다고 말한 뒤, 롤랑의 뒷덜미를 끌고 여기서 나가고 싶어졌어.


“어디까지나 원군 요청은 그륜벨트 영지에서 하는 것. 아스트리드 영지에는 피해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직속 3군의 각 사령관에게는 상황에 따라 개전을 발령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를 바이스 슈트름의 사령관인 라크펠드 크리스야드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만 주선해 주십시오.”


반역의 얘기까지 나왔음에도 롤랑의 기색은 잔잔한 호수와 같았다. 니 심장은 대체 뭘로 만든 거야? 그 비싼 정철이냐?


“끙… 헤밀튼은 어찌 생각하는가?”


앓는 소리를 낸 소공작이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헤밀튼에게 물었고, 그는 난처한 듯이 자기 생각을 피력했다.


“섣불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싶습니다. 분명 저자의 말대로 3군 사령관들에겐 각각 개전권과 종전권이 주어져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시에 준하는 상황에서의 일. 아직 그륜벨트의 일이 확실하지 않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적용될지는 저로서도 알수 없는 일입니다.”

“설득은 저희가 할 것입니다. 단지 소공작께선 크리스야드 후작이 원군을 승낙했을 때, 군수물자를 지원해주겠다고 한마디 거들어 주시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륜벨트는 아스트리드 영지가 영지 조약의 따른 도리를 다했다 여길 것입니다. 이것은 저희 영주님의 의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하겠습니다.”


롤랑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방에서 두루마리로 말린 서한 하나를 꺼내 소공작에게 직접 건네었고, 의아한 얼굴로 두무마리 문서를 열어 내용을 살핀 소공작은 매우 놀란 표정으로 롤랑을 보았다.


“이건……!”

“아스트리드에서 그륜벨트를 거쳐 가는 통행세를 지금의 5할로 낮추어 주겠다는 영주님의 친필 조서입니다. 기한 한정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아스트리드는 남하하는 육로 하나를 싼값에 얻게 될 겁니다. 이행되는 시점은 그 서한에 아스트리드 공작의 서명을 받고 저희가 원군을 이끌고 돌아가 저희 영주님께 전달하는 순간부터, 물론 현재 아스트리드의 대행권한자이신 소공작님의 서명 역시 인정됩니다만?”


뭐랄까, ‘교섭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눈앞에서 본 것 같은 심정이다. 롤랑은 처음부터 이런 모든 것을 예상했던 건가? 하긴 예상하지 않았으면 저런 조서는 준비할 수 없었겠지.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자네… 이름이 뭔가?”


서한을 헤밀턴에게 넘긴 소공작이 롤랑에게 물어왔다.


“그륜벨트 영지의 특사, 로랜드입니다. 평민이라 성은 없습니다.”

“로랜드라? 기억해두지. 헤밀튼.”

“예, 소공작.”

“아버님의 직인을 가져오고, 이들에겐 좋은 방을 내어 줘서 푹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게.”


아까와 비슷한 명령이었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 말이었다.


“바이스 슈트름의 지휘관들과 운터스트펜 스콰이어 대표단은 오늘 오후에나 도착할 것이다. 때를 봐서 부를 것이니 방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소공작의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최종관문까지는 앞으로 한 걸음 남겨두고 있었다.


작가의말

 이번 편은 정말 고심과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교섭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어떻게 라크펠드의 앞에 서게 할 것인가를 말이죠.

 처음엔 깽판과 정면돌파, 뭐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만. 그건 전혀 롤랑답지 않는 계획이에요. 하여 이런 식의 외교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봤습니다.

 깔끔하게 독자님들께 전달되었다면 좋겠군요. 제 생각엔 참으로 롤랑다운 방법으로 접근한다고 생각했습니다.(아니면 어쩌지? ㅇㅅㅇ;;;)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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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2) +5 13.03.12 1,474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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