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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포춘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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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이뽀로밀
작품등록일 :
2013.02.16 11:46
최근연재일 :
2013.04.09 01:15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71,139
추천수 :
727
글자수 :
296,364

작성
13.03.19 17:03
조회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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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22쪽

크리스야드[Chrisyard](6)-End-

포르투나 연대기 1부




DUMMY

“롤랑, 너…….”


설마 크리스야드 후작에게 라이벌 의식이라도 느낀 건 아니겠지? 관둬, 저건 사람의 탈을 쓴 전쟁의 신이야. 지략이고 지혜고 뭐고, 상식을 벗어난 초인이라고.

그렇게 말해 주려 했지만, 아무리 감정에 빠져도 롤랑은 롤랑이었다. 할 일은 마친 크리스야드 후작이 이쪽을 돌아보자 이내 표정을 싹 바꾸며 담담한 기색으로 돌아왔다. 어찌 되었든 길은 열렸고, 방금 난 굉음은 아마 좋은 신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후작은 칼을 도로 꽂아 넣고, 양손으로 확성기 모양으로 만들어 입가에 가져다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준비, 땅!”


그건 굳이 왜 하는데?!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양반이다. 하지만 그 순간,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사라진 성벽 너머로부터 들여오기 시작했다.-어?-


두두두두!


멀리서 언덕을 내려오는 백색과 은색의 군대가 마치 눈사태처럼 느껴지고, 대형을 갖추며 길게 늘어선 기병들의 질주는 적들에게 거대한 하얀 파도가 엄습하는 것 같은 장관이었다. 진로 상에 있는 모든 것을 짓밟고, 어떤 군세라도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는 결코 후작이 보여준 위용에 뒤지지 않았다.


“우리는 슬슬 영주성으로 퇴각하도록 할까요?”


우리에게 다가온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의아했다. 퇴각? 돌파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니고? 나는 뒤에 있던 랩터의 대군을 생각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랩터들은 후작이 보여준 무시무시한 기술에 위축된 듯했지만, 멀리서 달려오는 기병들을 보고 서서히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꾸물거리다 본대와 랩터들의 충돌에 말려들면 뭣도 아니게 돼. 반격은 지금부터다.”


롤랑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몰려오는 양쪽 진로상에 멀뚱히 서 있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이크, 이제 와 말발굽에 치여 죽을 순 없지. 그럼 빨리 비켜서자고!

후작을 선두로 무리는 빠르게 그 장소를 이탈했다. 방해하는 랩터들을 문답무용으로 날려버리는 후작이 앞에 있으니 길을 뚫고 가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돌아왔다!”


기어코 우리는 영주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막상 영주성을 눈앞에 두고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수정벽에 영향으로 후작과 유스타치아 경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해서 롤랑은 유스타치아 경을, 내가 크리스야드 후작을 각자 끌어안고 통과하기로 하자는 식의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잠깐만.”

“시간 없어, 빨리 얘기해.”

“왜 내가 후작 각하고, 넌 유스타치아 경인데?”

“후작 각하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

“…….”


그 말을 듣고 각자 끌어안아야 하는 대상을 쳐다보았다. 남자에게 안긴다는 사실에 별 감흥이 없어 보이는 유스타치아 경과는 다르게, 크리스야드 후작은 살짝 흥분한 듯 홍조를 띄우며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잘 부탁해요. 부디 살살…….”


윙크까지 하는 후작의 곱상한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 아아악! 이 영감탱이, 절대로 일부러 저러는 거야!

머리털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싫었지만, 시간도 없었다. 결국 롤랑이 유스타치아 경을 끌어 않고 수정벽을 지나는 것을 지켜보며, 나 역시 후작을 끌어안고 수정벽을 통과했다.


“음, 아로운 군은 보기완 다르게 몸이 다부지네요? 게다가 가까이서 보니 꽤 귀여운 얼굴이에요.”

“하지 마세요. 진짜 토할 것 같습니다.”


몸을 은근슬쩍 더듬는 후작에게 정색하며 말한 나는 수정벽을 통과하자마자 후작에게서 후다닥 떨어졌다. 그리고 후작은 낭랑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남자끼린데 너무 부끄러워하는군요. 아로운 군은 혹시 ‘그쪽’ 계통?”

“장래가 창창한 총각에게 무슨 막말을 하시는 겁니까!”


난 오히려 당신이 의심스럽소! 손녀가 빤히 보고 있는데도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집에 계신 부인에게 미안하지도 않아요? 나는 한 마디 해주려나 싶어 유스타치아 경을 돌아보았으나 그녀의 반응은 담백했다.


“할아버지가 저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에요. 아로운 보좌는 그러려니 하세요.”


이미 포기 한 거냐?!


“즐거워 보이는 중에 끼어들어 죄송합니다만, 저기 저희 영주님께서 나오십니다.”


롤랑이 분위기를 전환하며 영주성을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거기로 향했다. 그의 말대로 영주를 비롯한 가신단 일동이 그야말로 허겁지겁 여기로 뛰어오고 있었다.


“크, 크리스야드 후작님!”

“오, 제임스 군 아닙니까? 22년 전 벨롯사 전투 이후로군요.”


우리 영주님과는 구면인지 크리스야드 후작은 반가운 얼굴로 아는 체를 했다. 반면에 영주님은 자신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했는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격하고 있었다.


“정말로 와주실 줄은… 이 제임스, 반평생 후작님과 함께한 전투를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눈보라의 날개가 왔으니 저 추악한 마물들은 이제 몰살이나 다름없습니다.”

“후후, 그 나이가 돼서도 여전히 호들갑이군요. 하지만 여기 당신이 파견한 특사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때맞추어 오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후작이 우리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영주님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보았다.


“정말 해내 주었군.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원군을 데려와 주었어.”

“영주님이 제게 주신 조서의 힘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이 친구가 아니었다면 후작 각하께서 이 자리에 오실 일은 없었겠지요.”


롤랑은 그렇게 또 공을 나에게로 돌렸다. 저기, 나 한 거 별로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본 사람은 내가 크리스야드 후작을 여기로 대리고 온 것처럼 들리잖아.


“오오, 자네가 아주 큰 역할을 해주었군! 역시 루의 아들이야.”


큼지막한 손으로 내 손을 부여잡는 영주님. 이거 쑥스럽군.


“루?”


어색한 기분에 그냥 웃고만 있는데 영주의 옆에 있던 크리스야드 후작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기억 안 나십니까? 22년 전 전투 때 제 휘하 부대에서 활약한…….”

“흠… 글쎄요? 나이가 나이인 지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그보다 제임스 백작이 해줘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웃음으로 기묘한 기색을 감추는 후작은 영주님의 말을 자르고 그렇게 말했다. 지금 얼버무린 거 맞지? 우리 아버지를 알고 있나? 설마하니 아버지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일 리가… 혹시, 아버지하고 무슨 일 일었던 건 아니겠지? 그래서 얼버무리는 거라면 수긍이 간다.

아무튼, 후작은 롤랑이 계획한 정령 소환을 위해서 수정벽의 방어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를 꺼냈고, 영주님은 고민하는 기색으로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수정벽을 풀면 영지민들의 안전이…….”

“그렇기 때문에 지금 풀어야 합니다. 예상컨대 수정벽을 유지하는 마석의 마력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으로 압니다. 영지민들을 최대한 성 안쪽으로 피신시키고, 성에 있는 전군을 동원해서 랩터들과 맞서야 합니다. 버티기만 하면 승기는 이쪽에 돌아옵니다.”


우물쭈물하는 영주를 보다 못한 롤랑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걸 본 가신단은 또 무례가 어떠니, 직분도 없는 평민 주제에 함부로 나선다느니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임시긴 하지만 염연히 특사라는 직분이 있잖아? 아님 특사라는 직분이 영지로 복귀하자마자 유효기간 끝나는 거였어?


“조용.”


그때 평소엔 나긋한 말투를 사용하는 후작이 딱 끊어지는 말과 함께 가신들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소리치던 가신단들이 쥐 죽은 마냥 조용해지는 모습은 통쾌했지만, 여기서도 세븐 마스터스의 위엄 끗발이 우선이란 사실은 씁쓸한 따름이다.


“지금도 밖에선 내 휘하의 군사들이 랩터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여기 있는 특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저 마물의 소굴에서 나와 함께 임무를 수행했다. 여긴 피 흘리지 않은 자들이 나설 자리가 아님을 모르겠는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가신들에게 그렇게 쏘아붙인 후작은 마지막으로 영주님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제임스 하워드 백작. 그대의 특사는 1만 대 6만이라는 터무니없는 전력 차이를 눈앞에 두고. 그대의 영지와 원군으로 온 병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완전승리할 수 있는 군략을 짜내었다. 그리고 직접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임무를 목숨을 걸고 수행했다. 영주로서, 가신의 이러한 노력을 보고 느끼는 바가 없는가?”


실제론 후작이 나타난 다음부터는 나만 한 번 죽을 뻔했지만. 여기선 일단 나도 특사에 들어가긴 하는 거겠지? 한편 영주님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는지 결연한 표정이 되었고, 그 얼굴을 본 후작은 이번엔 그 뒤에 있는 가신들과 영지의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저 밖에 있는 흉악한 마물들이 그대들의 이웃을 죽이고 가족을 죽였다. 지금까지 승산 없는 싸움으로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아 움츠렸던 거라면 지금은 어떤가? 나 세븐 마스터스의 한 사람 라크펠드 크리스야드가 여기 있다. 이 눈보라의 날개가 그대들과 함께 싸우겠다. 일어서라 그륜벨트의 병사들이여! 승리는 목전이다! 그대들도 내가 일으키는 눈보라가 되어 저 마물들에게 공포란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다!”


“오… 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라크펠드! 라크펠드! 라크펠드! 라크펠드!


함성과 함께 후작의 이름을 연호하는 그륜벨트의 병사들.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와 병사들에 눈에서 느껴지는 투지가 가슴을 뜨겁게 한다.


“하워드 백작,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그대의 병사를 빌리겠소.”

“물론입니다! 저 역시 일개 기사로 돌아가 후작 각하와 함께 싸울 것입니다!”


가슴을 탕하고 치는 영주님은 그렇게 호기롭게 말했다. 후작은 그 모습을 흡족하게 보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롤랑을 향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사기 문제는 해결되었어요. 다음은 방어 전략이에요. 당연히 계획은 세워져 있겠죠?”

“물론입니다.”


롤랑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부대장에게 작전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것은 방어전이자 수성전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랩터들의 도약력과 성벽을 기어오르는 악력뿐. 근접하지 않으면 놈들에게 공격 수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상황은 저희에게 유리합니다.”


영지의 전력을 빠르게 파악한 롤랑은 각 부대에 역할을 나누고 주의할 점 몇 가지를 일러주었다.


“데이노니쿠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작은 벨로키랍이 성벽을 오르면 귀찮아집니다. 여기저기 쏘다니며 일일이 잡으러 다니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최악의 경우엔 성 내부로 침투해 영지민들을 공격할 겁니다. 내부에 피신한 영지민들을 지킬 여력이 없는 만큼, 부디 벨로키랍은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 상대해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는 좌중에 롤랑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철저하게 당부했다.


“결코, 단 한 마리의 랩터도 단독으로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머스킷을 가진 부대에서 총기 불량이 나와도 당황하지 말고 착검한 뒤 투석부대와 합류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십시오.”

“한 가지… 아무리 그래도 여기 있는 병력만으로 성의 전 방위를 지킬 수는 없네.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신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해왔다.


“랩터들은 지금 밖에서 진격한 바이스 슈트름과 스콰이어 연합부대의 진격으로 온통 그곳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크리스야드 각하께서 여기 오기 전 영지 내를 오가며 녀석들 상당수 죽이고 분산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도 같이 다니면서 봤지만 말야.


“하여, 지금 랩터들의 전력 일부는 영주성을 중심으로 북동쪽에 치우쳐 있고 당연히 다른 곳에 랩터들도 대부분이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롤랑이 놈들을 북동쪽으로 몰아넣자고 한 것은 단순히 사바니아를 소환했을 때 효율적으로 소탕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영악한 녀석들이니 기병의 돌격에 대항하기 위해 건물이 밀집한 내성과 물길이 많은 북동지역으로 유인할 거라는 계산도 깔렸던 것이다.


“성안의 모든 대포는 놈들이 다른 지역을 공략하려는 것을 저지하는 대만 쓰일 것입니다. 포탄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도 그편이 효율적이겠지요.”

“그래도 새어나오는 적은 어찌할 텐가?”

“그건 크리스야드 후작께서 수고해 주실 겁니다.”


오후 내내 싸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크리스야드 후작의 체력을 고려한 안배였다. …전혀 지쳐 보이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원군과의 연계는 없는 것인가?”

“지금 현재 상황은 적들을 남서와 북동으로 분단하여 각자 싸우고 있는 형국입니다. 연계는 좀 더 전투가 무르익은 뒤에 생각해볼 일입니다. 하지만 아마 필요 없겠지요. 이건 본래라면 악수에 가까운 전법이지만, 계획대로 사바니아가 소환되면 전황은 일시에 뒤집어집니다.”


사바니아 소환 계획의 전말까지 설명을 마치자 수뇌진의 얼굴 더욱 밝아졌다. 이길 수 있는 요소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탓이다.


짝짝.


“그럼, 전투를 시작해 볼까요? 각자 위치로!”


가볍게 손뼉를 치며 주변을 환기 시킨 후작. 영주를 포함한 그륜벨트의 병대는 신속하게 각자 맡은바 위치로 이동했다. 나와 롤랑 역시 체인 메일를 얻어 입고 전투 준비에 나섰다.

이윽고, 후작의 지시에 따라 수정벽이 해제되고 바로 낌새를 알아챈 랩터들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총의 사정거리에 접근 때까지 사격하면 안 된다! 신호에 맞춰 일제 발사해야 효과도 크다!”


화승총 부대의 지휘관이 소리치며 병사들을 다독였다.


“그륜벨트 포병대의 진가를 보여줄 때가 왔다! 한 마리도 옆으로 새나가게 해선 안 된다!”


포병대 지휘관도 질세라 목청을 높였다.


“우리 역할은 성벽에 붙은 놈들을 때어내는 것이다. 잠시도 쉴 틈이 없을 테니 화장실 가고 싶은 놈은 그냥 놈들에게 갈겨!”


입이 걸걸하기 유명한 징병대 교관 호드씨가 농담을 하며 병사들의 과도한 긴장을 풀어준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비로소 전쟁을 실감한다. 20여 년 동안 평화로웠다는 그륜벨트에서 이런 전투를 치를 줄, 여기 있는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온다!”


키에에에엑!


우두머리 한 마리의 신호와 함께 랩터들이 일제히 영주성을 향해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쏴라!”


탕! 탕탕! 탕탕탕탕!


일제히 격발했는데도 조금씩 띄엄띄엄 들리는 총소리. 그러나 위력만큼은 대단했다. 거칠 것 없는 기세로 돌진하던 랩터들의 선두 대열 대부분이 검은 피를 쏟으며 우르르 쓰려졌다.


“재장전!”

“투석부대 앞으로!”


화승총 부대가 재장전에 돌입하고 그 시간을 벌기 위해 투석부대가 나섰다.


“발사!”


신호와 함께 하나같이 힘찬 기합으로 돌덩이를 있는 힘껏 던져 냈다. 맞은 놈이야 머리가 깨지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지만, 처음부터 명중을 기대하고 던진 게 아니기에 효과는 크지 않았다.


“놈들이 성벽에 붙었다!”

“투석부대는 돌을 떨어뜨려라! 창대로 작은놈들을 최우선적으로 노려!”

“화승총 부대 앞으로! 쏴라!”


다시 터치는 총소리와 화약 연기. 랩터들에 비명과 지휘관들의 고함이 뒤섞인 아수라장 속에서 나는 대열에서 이탈하는 랩터의 무리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롤랑 저기!”

“포병대! 2시 방향!”

“적 발견! 1번포, 2번포 쏴라!”


다급한 롤랑의 외침을 들은 포병대장이 소리치자, 대기하고 있던 포문이 불을 뿜었다.


쿵! 쿵!

키에에에엑!


오차가 거의 없는 정확한 사격에 이탈하던 무리가 남김없이 죽어나갔다. 이거 이거, 마음만 먹으면 영지를 그때 우리도 맞출 수 있었던거 아냐? 그륜벨트 포병대?!


“오, 생각보다 부대 훈련이 잘되어 있군요. 제임스 군.”

“과찬이십니다.”


후작의 칭찬에 우리 영주님이 으쓱하는 것이 보인다. 자기가 훈련시킨 것도 아니면서… 그나저나 슬슬 외부에서 진격한 본대의 마법사들이 나설 때가 된 거 아냐? 내 물음에 롤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슬슬 구축한 방어진이 서서히 전진하면서… 아로, 저길 봐!”


전장 전체를 보기 위해 애쓰고 있던 롤랑이 영지 한구석을 가리켰고, 그곳을 중심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영지 사이사이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저건……!”


내가 땀 뻘뻘 흘려가며 쭈그려 앉아 그린 선 그대로 빛나고 있잖아? 그렇다는 것은?


“의식주법이 시작됐어! 이제 프랙탈 전체에 마력이 흐르기만 하면……!”


평소답지 않게 흥분한 롤랑 덕에 내 가슴도 뛰기 시작한다.


“우리 연대의 선배들이 이를 악무는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우리 곁에 있던 유스타치아 경이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다.


“우하핫! 그렇게 유쾌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해 봐야 설득력이 하나도 없어요! 진짜로 선배들이 걱정돼는 하는 겁니까?”

“후배로서 예의상 해본 말이에요, 고생한 결과가 눈앞에 나타나니 절로 신이나 네요!”


그럼 그렇지! 에라, 모르겠다! 고생한 게 잘 되면 기쁘고,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가라!”


특수한 도료를 따라 흐르는 푸른 마력은 이윽고 모든 선으로 이어지며 점차 빠른 속도로 순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해 푸른빛은 입자를 더해 더욱더 찬란한 빛을 내 뿜는다


펑! 펑! 펑! 펑!


그 순간 영지 내에 있는 모든 우물에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거센 물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모여든 물줄기는 이윽고 영지의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물고기가 되어 영지 위를 유영하기 시작한다.


“성공이다! 사바니아가 현계했어!”


롤랑이 그 광경을 보고 흥분하여 외쳤다. 저것이 사바니아…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난 위용에 나를 비롯한 모든 이가 할 말을 잃었다. 개중에는 기도문을 조용히 읊조리는 사람도 있었다.


“제어에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프랜탈의 마력 흐름을 살피던 유스타치아 경이 그렇게 알려왔다. 그와 동시에 하늘을 헤엄치던 물고기가 자신의 영지를 향해 자신의 몸을 이루는 물을 비처럼 뿌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아직 한겨울인데도 뮤올린-7월-의 달에나 볼 수 있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거 속옷까지 홀딱 젖겠군. 그리고 그것은 랩터들도 마찬가지였다.


퍼석!

후두둑!

키에에에에에엑!


저기 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부서지기 시작하는 랩터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몸을 빠르게 갈라지고 죽음은 가까워진다.


“마물들이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이겼다! 그륜벨트의 승리야!”

“오오! 페르기우스시여!”

“라크펠드 만세! 눈보라의 날개 만세! 그륜벨트에 페르기우스의 영광을!”


검은 석탄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랩터들을 보며 병사들이 저마다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나서야 나는 입가가 씰룩이는 것을 느꼈다


“이겼다… 결국 이겼어! 보이냐 롤랑? 저 징그러운 마물들이 부서지고 있어! 우와아앗!”

“후후, 그래. 이제야 끝났어.”


고개를 들어 얼굴에 쏟아지는 물세례 한껏 만끽하는 롤랑에게도 일종에 해방감이 느껴졌다. 짜식, 부담을 느끼긴 한 모양이지?

멀리서 바이스 슈트름과 스콰이어의 연합군의 깃발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에 호응하듯 그륜벨트의 깃발도 함께 힘차게 나부꼈다. 때 이른 장대 빗속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이 승리를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는 싱겁게 끝이 났군.”

언젠가 아로와 롤랑이 올라왔던 그 암벽 위.

그 위에서 망원경을 통해 영지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는 아쉬운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망원경을 품속에 갈무리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그가 말은 건낸 상대는 온몸을 펑퍼짐한 로브로 가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얼굴조차 후드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 남자와는 달리 성별을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말은 건낸 남자는 상대방이 대답이 없자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다시 그륜벨트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나름의 성과는 있었어. 라크펠드 크리스야드… 세븐 마스터스의 수준도 대강 알겠군. 드래건도 엘프도 없는 시대라기에 썩 재미없었는데, 조금은 일할 맛이 나는군. 어이, 듣고 있어? 저기 네 상대가 있잖아. 와서 좀 보라고!”

“…….”

“아악! 입에다 접착제라도 처발랐냐?! 보지도 않고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야?”

“…….”

“에휴, 말을 말자. 기록은 했으니까. 나중에 돌려보라고.”

그러면서 그는 품에서 호두만 한 녹보석을 꺼내 상대에게 던졌다.

탁!

가볍게 보석을 받은 상대는 품 안에 넣고 다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무뚝뚝한 태도에 남자는 다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설마 여기 밑에 '그게' 있었을 줄이야. 덕분에 얻고자 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기도 전에 실험을 종료하게 생겼잖아?”

남자는 툴툴거리며 자신도 후드를 뒤집어썼다.

“볼 일도 다 봤으니 그만 돌아가자고. 이 겨울에 비 맞고 감기 걸리긴 싫다.”

“…인간처럼 말하는군.”

그제야 입을 땐 상대의 목소리는 변조되어 있었다. 그 말은 들은 남자는 피식하고 웃으며 보란 듯이 대꾸했다.

“지금은 ‘인간’이잖아?”

그 웃음이 마치 파충류의 그것처럼 보였다.


작가의말

다 쓰고 보니, 마지막 편만 2만자가 넘어요... 해서 나누었습니다.

 

조금 있다 에필로그 올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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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크리스야드[Chrisyard](4) +8 13.03.18 2,003 15 24쪽
34 크리스야드[Chrisyard](3) +5 13.03.17 1,319 20 20쪽
33 크리스야드[Chrisyard](2) +9 13.03.16 1,478 21 19쪽
32 크리스야드[Chrisyard](1) +8 13.03.15 1,653 19 13쪽
31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3)-End- +4 13.03.13 1,498 16 20쪽
30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2) +5 13.03.12 1,475 13 14쪽
29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1) +4 13.03.12 1,567 14 11쪽
28 아스트리드[Astrid](4)-End- +5 13.03.08 1,424 14 19쪽
27 아스트리드[Astrid](3) +9 13.03.07 1,380 15 19쪽
26 아스트리드[Astrid](2) +4 13.03.06 1,245 13 15쪽
25 아스트리드[Astrid](1) +4 13.03.05 1,310 14 16쪽
24 파견[Dispatch](4)-End- +6 13.03.04 1,436 15 14쪽
23 파견[Dispatch](3) +4 13.03.03 1,304 16 14쪽
22 파견[Dispatch](2) +5 13.03.02 1,490 16 10쪽
21 파견[Dispatch](1) +3 13.02.28 1,392 16 13쪽
20 수정벽[Crystal wall](2)-End- +3 13.02.26 1,412 15 19쪽
19 수정벽[Crystal wall](1) +3 13.02.25 1,440 15 18쪽
18 랩터[Raptor](3)-end +4 13.02.23 1,519 15 18쪽
17 랩터[Raptor](2) +4 13.02.23 1,503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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