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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포춘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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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이뽀로밀
작품등록일 :
2013.02.16 11:46
최근연재일 :
2013.04.09 01:15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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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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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0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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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 연대기 1부




DUMMY

소릴의 달-2월-은 사실상 오를란드 겨울에 막바지에 서 있는 달이다. 길었던 밤이 짧아지기 시작하고, 해의 길이가 늘어나며 이젠 정오가 되면 햇볕을 따뜻하다고 느끼는 계절이지만. 12달 중 가장 일수가 짧다.

어릴 때 신전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12엘더 중 가장 성질이 급한 소릴이 자신에게 주어진 창조의 기간을 28일밖에 쓰지 않아서 2월의 일수가 가장 짧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롤랑이 달력은 지난 백금시대에 황금둘레 엘프들과 나뭇가지 엘프들이 만든 것을 흑철시대의 사람들이 오차를 수정해서 보급한 것이지 엘더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알려주었다.-그런 식으로 나의 동심은 여러 번 파괴되었다-

아무튼, 무사히 성인으로서 첫해의 두 번째 달을 맞이한 나는 사실 그다지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1개월 전, 랩터라는 이름의 마물이 영지를 습격했고. 그 위기를 타파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롤랑과 나는 영주님께서 약속했던 대로 공식적으로 군역면제의 명령서를 받았다. 그 뒤로부터 열흘 정도는 영지의 구한 영웅 취급을 받았고 여기저기서 무용담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문전성시라고는 하지만 거의 롤랑의 집-아지트- 앞이 그렇다는 얘기였고, 나는 사실 엉망이 된 집을 정리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이노무 도마뱀 새퀴들은 이런 허름한 집에 뭘 처먹을 것이 있다고 헤집어 놓았는지, 집안의 가구나 식기 등 보수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집이 엉망이 된 것이 나만은 아니지만, 가뜩이나 혼자 사는 처지에 가뜩이나 없는 살림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그들보다 쪼끔은 더 억울한 편이라 해도 이기적인 건 아닐 터였다.

설마 이 그 도마뱀 놈들이 자기들 포위를 빠져나간 보복으로 이렇게 만든 건 아니겠지? 롤랑에 집도 엉망이었다고 하니까 혹시 모를 일이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거긴 원래 엉망진창이었잖아?

어찌 되었든, 멀쩡한 가구를 빼놓고는 전부 다시 만들어야 해야 했기에 한동안은 바빠서 영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가끔, 롤랑의 부하가 식료품과 생필품을 전달해 주러 들렸을 뿐. 롤랑 녀석도 한동안은 이러 저래 바빴는지 오지 못했다.

그렇게 바쁜 한 달을 보내는 동안, 영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희생자들의 유해를 가능한 수습해서 합동 장례를 치렀다. 그 절차를 주도한 것은 페르기우스 신전 사람들이었고 그 가운데는 나와 롤랑도 있었다. 승리의 기쁨은 그 뒤에 찾아온 더 큰 슬픔으로 묻혔지만, 그래도 산 사람들은 살아야 했다. 각자 지인을 잃은 슬픔은 그 자리에서 애써 가슴에 묻고 서로를 마지막으로 다독였다.

그리고 그 직후 크리스야드 후작과 바이스 슈트름, 운터스트펜 연합군은 그륜벨트를 떠났다. 듣자하니 이번 전투와는 별개로 그들은 예정대로 아스트리드로 돌아가 훈련을 감행했고, 결과는 바이스 슈트름의 승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정작 훈련을 감행한다고 주창한 크리스야드 후작 본인은 그 훈련에 불참하고 그 길로 왕도로 돌아갔다.-나중에 통신 태블릿으로 직접 알려줬다.-

또한, 랩터들의 잔해라 할 수 있는 젖은 석탄은 차후 공들인 관리를 통해 어느 정도 쓸 수 있게끔 변모되었다. 덕분에 나는 땔감 장사를 예상보다 빨리 접어야 했고, 일부에서는 그 석탄을 판매해 영지 복구 자금을 마련한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롤랑은 공약한 대로 복구 자금을 선뜻 내놓았다. 그 금액이 무려 500골드! 실링도 아니고, 오를란드 금화로만 오백 골드다. 그륜벨트 같은 시골에선 큰 집과 넓은 땅을 장만하고 사용인을 고용해 죽을 때까지 손에 물 한번 안 묻히고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그렇게 모인 자금으로 오레곤과 아스트리드에서 적극 물자들 사들이고 외부 인력을 고용한 덕분에 많은 사람이 유입되어 영지가 한동안 북적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활기를 띠는 듯했던 분위기도 복구 작업이 거의 끝난 지금은 서서히 시들해진 느낌이다.

그건 그렇고, 롤랑 녀석은 그런 돈을 가지고도 왜 그 거지소굴 같은 아지트에 사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보다 대체 그만한 돈은 또 어떻게 모은 거지? 진짜 영주님보다 부자 인 거 아냐?

나중에 반드시 돈에 출처에 대해서 묻겠다고 다짐했지만, 말했다시피 좀처럼 녀석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지금에 와선 어떻게 그런 거금을 선뜻 내놓은 이유가 더 궁금했다. 솔직히 복구 자금이야 그 반의반만 내도 평민치고는 많이 낸 것일 텐데… 10년을 사귀어도 여전히 종잡을 수가 없는 놈이다.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 한 마리 내 옆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주인, 슬슬 배도 고파지는데 저 앞에서 생선이나 한 마리 사서 돌아가세나.”

“…….”


1번가의 무기점을 나오자마자 페로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며 칭얼거렸다. 넌,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튀어나와? 당장 밥줄 끊긴 니 주인은 1루갈이 아까워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오늘 3실링이나 손해 봤어. 당분간 식사는 알아서 조달해.”


내 말에 높이 솟아있던 녀석의 귀와 꼬리가 푹하고 꺼진다. 왜? 뒷산에 가면 먹을게 지천이잖아. 참새라던가, 쥐라던가. 영지 내에서 식당 쓰레기통을 뒤지는 애들보다는 훨씬 나은 거 아니냐?


“기껏해야 은화 석 장 아닌가? 저금한 돈도 있으니 그리 기를 쓰고 아낄 필요까지 없다고 생각되네만.”

“그 은화 석 장이면 생선을 50마리 살 수 있어. 즉, 지금 생선 50마리가 하등 필요도 없는 물건 때문에 허공으로 날아갔다고 할 수 있지.”

“다시 가서 협상해보는 것이 어떤가?! 이번엔 진짜 구슬픈 울음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네!”


생선 50마리면 거의 보름 동안 새끼 밥상 위에 생선만 올려도 남는 숫자다. 게다가 지금까지 지내면서 가장 의욕이 하늘을 찌를 듯 충만해 보이는 페로의 모습은 기꺼운 일이지만… 미안, 그건 어려울 것 같아.


“망할, 하필 그 집 아들이 돌아와 있었을 줄이야!”


군역이 면제되었으니 미리 사들였던 방어구가 쓸모 없어졌다. 하여 반품을 요청하고 돈을 돌려받기 위해 무기점을 찾은 나는 그때 뵈었던 영감님이 아니라 그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미 자네 치수에 맞춰서 손을 보았기 때문에 반품은 안 되네.’


보급형이라고 치수 안 맞는 갑옷을 입었다간 훈련 내내 개고생 한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당시에 치수 조정을 요청했는데.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페로를 이용한 동정표를 쓰고 싶어도, 그날 뵈었던 영감님은 보건청의 입원 중-한 달 전 마물사건 때, 피난하시다가 허리를 삐끗하셨단다-이시다. 그분 아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아들에게 전과 같은 연기가 통할 리 만무.

그와 같은 얘기를 페로에게 소근 거리며 가는 도중 나는 바닐라 누님과 마주쳤다.


“어라? 이게 누구야! 우리 영지의 또 다른 영웅 아냐?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겨우 한 달 가까이 못 본 것 가지고 유난을 떠는 바닐라 누님은 오늘도 명랑한 기색이 만연한 모습이었다.


“집수리하느라고 바빴어요.”

“설마, 그걸 혼자서 다한 거야? 영주성에 피해 신고를 내면 인원을 좀 돌려줬을 텐데?”


파괴된 집이나 건물, 그리고 도로를 재정비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영지 내의 인력이 거의 모두 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아스트리드와 오레곤에서 복구 물자와 작업을 도와줄 인원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사람이 없어 죽는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그 혼란을 잠재우고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영주성에서 피해 규모에 따라 우선으로 인원을 돌려주기로 하고 정확한 피해 규모의 조사에 들어갔다.


“뭐, 그렇게 인원이 필요한 수리도 아니었어요. 집이 통째로 싹둑 썰린 사람들에 비하면 야… 그냥 도마뱀 놈들이 푸닥거린 거 정리하고 부서진 문하고 창문만 손보니 그럭저럭 찬바람은 피할 수 있을 만했어요.”


그 뒤부터 부서진 가구를 죽어라 다시 만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롤랑을 대려다가 대패질이라도 시켰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썰렸다고 하니까 묻는 건데… 그거 진짜야? 세븐 마스터스인 후작이 검으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거.”


바닐라 누님은 주변을 살피며 조용하게 속삭여 물어왔다.


“아, 그거요? 사실입니다.”


정확히는 염동이라는 신비한 능력으로 한 거지만. 아무튼, 그 일에 대해서 크리스야드 후작은 공식적으론 발뺌 했기에 이런 식으로 쉬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너무나 쉽게 대답해줘서인지 바닐라 누님은 조금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머나…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였구나? 혹시 실제로 봤어?”


그럼,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았지. 순식간에 건물과 집들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단면을 그리며 잘려나가는 광경을 말이야. 처음에야 놀라 뒤집어졌지만, 어디 한두 채를 그런 식으로 무너뜨렸어야지. 막판에 성벽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을 땐 이미 놀라기를 포기해버렸다. 그러고 보니 남동쪽의 성벽은 1, 2년 정도는 시간을 들여야 할 텐데. 그걸 본 영주님은 10년에서 20년은 더 늙어 버렸으니 참 여러 의미로 손해가 막심하다.

다시 생각해도 비현실적인 내 설명을 들은 바닐라 누님은 난감하게 웃어 버리고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나저나, 며칠 뒤면 징병대 입대시기네? 그래, 군역을 공식적으로 면제받은 우리 또 다른 영웅님의 소감은?”

“망했어요. 덕분에 미리 사놓은 장비가 무용지물이 돼서 3실링이나 손해 봤습니다.”


조금 전 무기점에서 있었던 일을 토로하는 나에게 바닐라 누님은 이번엔 깔깔거리는 웃음으로 반응했다.


“그건 또 웃지 않을 수 없는 재난이었네? 지금 영지 내 젊은 애들 사이에선 너하고 롤랑 얘기가 한창이던데, 지금 그 얘길 전해주면 조금은 잦아들겠네.”

“뭐, 기분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죠.”


부러움 반 질투 반 어린 심경으로 열심히 뒷담화를 까고 있겠지. 나 같아도 그랬겠다.


“어머나? 생각 보다 담백한 반응이네? 과연 제일 많이 욕먹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제가요?”


이건 또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야?


“젊은 애들 얘기 중에 너에 관한 얘기를 한마디로 종합하면, ‘롤랑 옆에 있다가 재수 좋게 묻어간 놈’ 정도가 되겠네.”


생글생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말하는 바닐라 누님이었다. 아니, 그보다 누가 뭘 묻어가? 이것들이 내가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지 알고서나 그런 소릴 하는 건가?

꼬우면 자기들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포탄 세례 속을 주파한다든가, 사악한 마피아 보스-롤랑-의 손에 영지가 침몰당할 위기를 구한다든가, 밧줄에 묶긴 체 랩터들을 꿰는 미끼가 돼보는 정도의 활약을 해보시던가! 아, 추가로 겉보기엔 막 겨울을 넘긴 청년처럼 보이는 80살 먹은 변태 초인 노친네의 공략 대상이 되어 보는 정도의 활약(?)을 해준다면 진지하게 군역 면제권을 양도해 주지.

나는 그렇게 내 지난날의 활약상을 쭉 늘어놓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애써 화제를 돌려보기로 했다.


“군역이 면제돼서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이긴 했지만, 사실 앞이 깜깜합니다. 땔감 장사도 접었고, 랩터들 덕분에 작년에 추수한 양식도 못쓰게 되었어요. 당장 1루갈 때문에 당장 오늘내일할 지경이에요.”

“그런 거야? 지금까지 장사해서 모은 돈은 어쩌고?”


바닐라 누님의 질문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기껏 목돈 마련을 위한 종잣돈으로 저금한 돈이에요. 그걸 깨서 생활비로 충당한다는 것이 아까워서 그렇죠.”

“저런… 그럼 영지를 구한 영웅님을 위해, 이 바닐라 누님이 한 가지 좋은 정보를 알려 주도록 할까?”


윙크하며 은근히 속삭이는 바닐라 누님의 말에 나는 바닥까지 처졌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거 진짜에요?”

“방금 들은 따끈따끈한 정보야.”

“하지만 그래도 손해인데…….”

“그럼 이대로 한 푼도 못 건지고 그 쓸모없는 장비를 창고에 처박아 두려고? 그나마 새것일 때 파는 게 좋지 않겠어? 혹시 알아? 잘 구워삶아서 제 가격에 받고 팔 수 있을지.”


그건 맞는 말이었다. 좋았어. 내 깊은 곳에 숨겨진 상인의 혼이 불타오르는구나!

나는 바닐라 누님과 헤어져 바로 6번가로 향했다. 그녀의 말로는 복구 작업을 돕기 위해 오레곤 영지에서 온 인원 중에서 올해 징병 입대를 하는 아들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밑져야 본전이고, 내 치수에 맞춰 수선된 장비를 사줄지도 미지수지만, 적어도 그륜벨트에서 살 사람을 찾는 것보단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실례합니다.”

“오, 아로 아니냐? 이른 시간부터 어쩐 일이냐?”


마더랜드는 본래 주점이지만 2층을 개조해 민박으로서 영업 중이다. 처음엔 그륜벨트의 유일한 여관이었던 2번가의 꿀벌 집[Honeycomb]이 지난번에 반파되는 바람에 외부 사람들이 머물 곳이 없어 마지못해 시작했다고 들었지만, 지금 점주의 얼굴을 보면 오히려 민박 쪽이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다.


“여기 오레곤에서 토목 공사 인력으로 온 분들이 계시다고 해서 들렸는데요.”

“음? 네가 그 사람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아, 그게 실은…….”


나는 내 사정을 점주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 거라면 오히려 흔쾌히 도와줘야지. 영지를 구한 영웅에게 그 정도 사정도 못 봐줄까. 가만있어보자, 이럴 게 아니라 같이 올라가자, 내가 옆에서 다릴 놔 주마.”


영웅이란 것도 한 번쯤 돼볼 일이다. 평소에 롤랑하고 같이 가게 매상 올려주러 자주 오긴 했지만 그래도 한구석으론 어떻게 나오실지 걱정했는데.

점주 아저씨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다들 짐을 싸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이 와중에 차분한 상담이 가능하긴 할지… 아니지, 오히려 정신이 없어서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훅 사줄 수도 있겠어.


“어이, 잭! 잠깐 나 좀 보세!”


한 달 동안 적잖이 안면을 텄는지 점주는 분주하게 짐을 쌓고 있던 한 중년 남자를 향해 터울 없이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


짐을 동여맨 끈을 단단하게 묶은 남자가 이쪽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한 달간 그륜벨트에서 한 고생이 끝나는 시점이라 그런지 후련한 듯 보였다. 어쩐지 느낌이 좋다. 잘하면 진짜 제값에 받을 수 있을 지도.

그렇게 잔뜩 기대의 부푼 생각을 하는 동안 옆에 있던 점주 아저씨가 나를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이쪽에 손님이 자네에게 볼일이 있다는데 잠깐 시간 좀 내어 줄 수 있겠나?”

“내게?”


의아한 얼굴로 내 쪽을 돌아본 잭이라는 분은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갑자기 화색이 도는 얼굴로 한 달음에 눈앞까지 달려왔다.


“오, 이제야 오는군! 혹시 안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네.”

“예?”


그 반기는 태도가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누가 미리 내 얘기를 했나? 혹시 바닐라 누님?


“이틀 전에 웬 이쁘장하게 생긴 청년이 찾아와선 그러더군. 얼굴이 까무잡잡한 친구가 방어구 장비를 팔러 올 거라고, 헌데 진짜로 왔군. 정말 다행히 아닐 수 없네.”


나를 처음 본 외부사람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반긴다 싶었는데. 이쁘장한 청년이라… 거기까지만 들어도 누가 밑밥을 깔아 놨는지 알 것 같다. 롤랑 이 자식, 쓸데없는 짓을.


“오, 생각해 보니 이틀 전에 롤랑이 들렀다 갔었지. 그때 언질을 주고 간 건가? 역시, 둘도 없는 친구로군. 내가 굳이 다릴 놔줄 필요도 없겠어, 하하핫!”


점주 아저씨가 내 등을 툭 하고 치고 호탕하게 웃고는 가게를 보기 위해 내려갔다. 하지만 나로선 이 상황을 유쾌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일. 롤랑 그 녀석이 해주는 건 당최 순수하게만 받아들이기가 영 찜찜하단 말야.

또 한 번 제대로 흥정 열전을 펼칠 각오를 한 것이 무색하게도, 잭이란 분은 정확히 3실링에 장비 일체를 구입해주었다. 조정한 치수 때문에 10루갈 이상은 깎을 만도 하건만, 이만한 장비의 경우. 오레곤에선 50루갈 정도 더 주어야 살 수 있다고 하며 오히려 좋아했다. 무기점 할아버지의 이 근방 최저가 소리가 아주 상술은 아니었나 보다-상술은 오히려 내가 부린 것 같다-.


“흔쾌히 사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지만, 역시 치수가 좀… 몸에 안 맞는 방어구는 훈련할 때 상당히 쓸려서 괴롭다고 들었는데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남았있던 나는 그렇게 걱정했다. 아무래도 뼛속까지 장사치 되긴 그른 것 같다. 그 점을 잭 아저씨도 느꼈는지 피식하고 웃어버린다.


“물건 팔러 온 친구가 괜한 걱정을 다 하는군. 이거 에슬러 사의 제품이지? 오레곤에 지점이 있으니까 거기로 가져가면 10루갈 선에서 다시 원하는 대로 재조정해 준다네. 그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이 가격이면 내가 득 보는 거지.”


그 말을 듣고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대영지는 다르군. 여기선 치수 조금 바꿨다 반품도 안 시켜 주는데 말야. 그나저나 공방 회사의 지점이라? 우리 영지에는 그런 거 안 들어오나?


“내 자식 일이기에 큰돈을 쓰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디 한두 푼 하는 물건이던가. 덕분에 돌아가는 길에 큰 선물을 장만하게 되었어.”


잭 아저씨는 이번 거래에 상당히 만족한 듯 방어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는 바람에 살짝 가슴이 촉촉해 졌다. 우리 아버지도 내가 징병대 입대를 했다면 없는 돈을 쪼개서 이렇게 방어구를 장만해 주셨을까?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시는 길 무사 평안하세요.”

“잠깐만 기다려보게.”


더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기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를 그가 붙잡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내밀었다. 그 쪽지를 받은 나는 이게 뭔가 싶어 그 자리에서 펴보고는 촉촉해지는 가슴이 싸하고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방어구 팔았음 아지트로 올 것.』


익숙한 글씨체, 그리고 글자에 취약한 나를 배려한 간결하기 짝이 없는 문장. 누군지는 아까처럼 뻔했지만, 일단은 물어본다.


“이거 혹시…….”

“자네가 올 거라고 알려준 이쁘장한 청년이 주고 갔네. 거래가 끝나면 꼭 자네에게 건네주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


그는 신신당부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아 네, 그 자리에 없었어도 훤히 보입니다. 아주 신신당부를 했겠지요. 근데 하지만 왜 하필 전문이야? 그냥 말로 전해 달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 이 자식이 아주 주기적으로 글자 시험을 치게 만들어요. 게다가 내가 꼭 올 거라고 장담하는 듯한 이 문장이 아주 거슬린다. 내가 지 부하인 줄 아는 감? 안가!


“허허, 그것참 신통하군.”


그때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던 잭 아저씨는 무릎을 탁하고 치며 감탄했다.


“뭐가 신통하다는 겁니까?”

“그 쪽지를 보면 자네가 십중팔구 그런 똥 씹은 얼굴을 할 거라고 그 이쁘장한 친구가 그랬다네. 그리고 이런 걸 주더군.”


그렇게 말한 잭 아저씨는 이번엔 또 다른 쪽지를 꺼냈다. 어쩐지 불길했지만 나는 마지못해서 쪽지를 받았고 내용을 살폈다.


『안 오면, 그 거래, 파투 낸다.』


“…….”


야, 페로 아무래도 오늘 귀가는 더 늦어질 것 같다. 빌어먹을!


작가의말

 정확하게 4월 5일 오전 12시 4분. 약속대로 돌아왔습니다!

 

 상당히 오랬동안 휴재가 지속되었음에도 기다려주시고, 또 새롭게 지켜봐 주신 독자님들께 그야말로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에피소드에는 읽을 거리 말고도 들을 거리도 준비했습니다. 이를 위해 브금(BGM) 캐스팅을 맹연습 했습지요.(그야말로 맹연습... ㅠㅅㅠ) 하지만 사운드를 남발해서 안하느니 못한 일을 피하기 위해 정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쳅터에서만 사용할 것입니다.(필살기는 정말 필살의 순간에 ㅇㅁㅇ!) 도움을 주신 사슬새님께는 다시 한 번 감사를(꾸벅)

 

 일단 토요일까지 한 편 더 올리고, 월요일부터 평일연재 주말휴식의 연재 스케줄로 진행됩니다. 중간에 하루 빠지면 주말에 연재해서 보충하는 식으로... 저번에도 그랬지만, 막판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그렇게 정하는 걸로!

 

 그럼 [포춘코드 에피소드 2 -폭풍 속의 오를란드 전편-]을 시작합니다!(부제는 지금막 정한 거임...ㅇ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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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1) +4 13.03.12 1,569 14 11쪽
28 아스트리드[Astrid](4)-End- +5 13.03.08 1,424 14 19쪽
27 아스트리드[Astrid](3) +9 13.03.07 1,380 15 19쪽
26 아스트리드[Astrid](2) +4 13.03.06 1,245 13 15쪽
25 아스트리드[Astrid](1) +4 13.03.05 1,311 14 16쪽
24 파견[Dispatch](4)-End- +6 13.03.04 1,437 15 14쪽
23 파견[Dispatch](3) +4 13.03.03 1,304 16 14쪽
22 파견[Dispatch](2) +5 13.03.02 1,491 16 10쪽
21 파견[Dispatch](1) +3 13.02.28 1,392 16 13쪽
20 수정벽[Crystal wall](2)-End- +3 13.02.26 1,413 15 19쪽
19 수정벽[Crystal wall](1) +3 13.02.25 1,441 15 18쪽
18 랩터[Raptor](3)-end +4 13.02.23 1,520 15 18쪽
17 랩터[Raptor](2) +4 13.02.23 1,503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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