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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포춘코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뽀이뽀로밀
작품등록일 :
2013.02.16 11:46
최근연재일 :
2013.04.09 01:15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71,143
추천수 :
727
글자수 :
296,364

작성
13.04.06 00:00
조회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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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19쪽

의뢰[Request](2)

포르투나 연대기 1부




DUMMY

롤랑의 아지트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중에 나는 의외의 인물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


떨떠름한 얼굴로 내 인사를 대충 받은 로페즈 씨는 그 길로 나를 스쳐지나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나섰다. 저분은 여전히 내가 별로인가 보군.

로페즈 씨는 20여 년 전 영주님을 따라 남부전쟁에 참전했다고 하는데, 당시 야만족에게 붙잡혀 상당히 안 좋은 꼴을 당했다고 한다. 대놓고 야만족이라느니, 미개한 핏줄이 어쩌느니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릴 적엔 그의 경멸 어린 시선 때문에 적잖게 상처받기도 했다.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 그리된 것 같다. 근데 이렇게 옛 추억이나 되새김질할 때가 아니지. 나는 다시 아지트에서 또 늘어져 있을 녀석을 생각하고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쾅!


“야, 롤랑! 너 자꾸 이런 식으로 오라 가라 할 거야?!”


눈앞의 문을 부술 듯한 기세로 열고 들어가자마자 소리부터 빽 질렀다. 이런 건 기세가 중요한 법이지, 암!


“여, 기다리고 있었어.”


오늘은 웬일인지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에서 녀석은 소파에 앉아 손을 살짝 흔들고 있었다. 하나 뿐인 친구인 데다가 한 달 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건만. 이렇게 안 반가울 수가 있다니 놀랄 일이다.


“너 그륜벨트 뜬다며! 그럼 빨랑빨랑 짐 챙겨서 꺼지지 않고 왜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선량한 시민을 귀찮게 하는 건데?!”

“목소리 좀 낮춰, 이웃에 민폐다.”

“윽……!”


말이야 백번 옳은 말이지. 근데 저 자식 입에서 나오니까 열 받을 뿐이다.


“어차피 오늘 중에는 영지에 들리리라고 생각했고, 나온 김에 들리라고 권유한 것뿐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군.”


무슨 혓바닥까지는 소릴 하는 거지? 권유? 협박을 잘못 말한 거겠지!


“후우…….”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소리를 삼키고 대신 심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진정하자, 이러다 또 저 자식의 페이스에 말려들겠어.

내가 그렇게 심사를 다스리려 노력하는 와중에 롤랑은 따라 들어온 페로를 보고 반겼다.


“페로도 오랜만이야.”

“음, 한 달하고도 나흘 만일세. 그나저나 여긴 여전히 책밖에 없는 살풍경한 곳이군. 뭔가 먹을 건 없나?”

“거위 고기가 조금 남았을 텐데. 오늘 아침에 샘이 애들 몇 명 데리고 청소를 해놓은 바람에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어.”

“이런, 대접이 영 심심하군. 그나저나 주인. 언제까지 거기 멀뚱히 서 있을 셈인가? 빨리 용건을 끝내고 돌아가세. 열 받을 땐 받더라도 저녁은 챙겨 먹어야 하지 않겠나.”

“그건 페로 말이 맞아. 기분 나쁜 숨소리는 그만 내고 이쪽으로 와서 앉지그래. 차분히 얘기할 수가 없군.”

“심호흡하는 거거든?! 페로, 너도 저녁밥 처먹고 싶으면 그 입 좀 다 물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아, 두통이 온다. 그리고 동시에 지난 한 달간이 새삼 무척이나 평온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후우, 그래서. 이런 너답지 않은 빙도는 수법으로 날 부른 이유가 뭐야? 용건이 있었음 애들을 보내든지, 아님 처음에도 말했듯 직접 찾아오면 되잖아.”

“아아, 가끔은 네가 글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고 싶어서 말야.”


역시 그거였냐?! 아니지, 이 합리와 효율을 입에 달고 사는 녀석이 평소와 다른 행동할 딴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의 이유가 있어서다.


“내가 너랑 알고 지낸 게 하루 이틀이야? 빨리 진짜 이유를 토설하지 못해?”

“진짜 이유랄 것까진 없고. 어쩐지 그냥 부른다고 올 것 같지가 않아서 적절하게 발등에 불을 떨군 것뿐이야.”

“뭐?”

“랩터를 물리친 그날 이후, 넌 어쩐지 날 피하는 것 같더군. 영지성에 피해 복구 요청서를 내지 않은 것도 되도록 영지에 안 들어오려고 그랬던 거고.”

“…….”


날카로운 자식. 솔직히, 그날 크리스야드와 함께한 술자리 이후 롤랑이 거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얘길 듣고도 태연하게 구는 것은 내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 최소한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날 피해온 이유야 굳이 캐묻지 않겠지만, 이번엔 개인적으로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부른 거야. 그러니까 그 뚱한 얼굴 좀 풀어.”

“누, 누가 뚱한 얼굴을 했다는 거냐!”

“아니면 됐어.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너, 후작에게 받은 통신용 태블릿 가지고 있어?”

“그야 가지고는 있지만……”


이 귀한 물건을 사람 하나 없는 오두막에 놓을 수는 없는 일. 나갈 때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그리 부피도 안 크고 무겁지도 않으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태블릿을 꺼내 보였다.


“마력은? 충전되어 있겠지?”

“보통은 마석 위에 올려놓고 있으니까 아마도. 근데 이거 쓰자고 날 부른 거냐?”


그야말로 직접 오는 쪽이 빠른 용건이었잖아!


“가고 싶어도 오늘 오전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 여기서 만날 사람도 있었고. 너도 어차피 방어구 처분하러 영지에 올 거였으니까 됐잖아.”


그날이 하필 오늘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선 굳이 묻지 않았다. 얘기가 길어질 게 뻔하고 오히려 다른 쪽에 신경이 더 쓰인 탓도 있었다.


“만날 사람이란 건 로페즈 씨?”

“맞아, 그 반응을 보니 오다가 마주쳤나 보군.”

“응, 좀 전에 계단에서. 근데 그 분이 이런 마피아 아지트엔 왜 굳이 오셨데?”

“내게 의뢰를 맡겼어.”


의뢰? 지주 조합에 필두인 그 로페즈 씨가 마피아 보스인 롤랑에게? 마치 비둘기가 까마귀한테 친구 하자는 소리나 다름없는 얘긴데?


“농노들 등골 빼먹고 사는 지주 조합에서 이번엔 서민 착취 방법이라도 배우러 온 거냐?”


랩터들에 침입으로 휘하 농도들이 전부 죽거나 불구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막심한 손해를 보았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것 같다만. 하지만 롤랑은 눈살을 찌푸리며 부정했다.


“무슨 흉흉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냐? 그륜벨트 조직은 부당한 착취 같은 건 안 해.”


나한테 하잖아, 나한테! 그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이번에도 쑥하고 내려갔다.


“아무튼, 로페즈 씨의 의뢰는 겸사겸사 승낙한 거고 진짜 할 일은 따로 있어.”

“그게 뭔데?”

“그건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태블릿 좀 쓰자.”


손을 뻗는 롤랑 대해 나는 슬쩍 태블릿을 거두어들이며 다른 손을 내밀었다.


“요금.”

“… 자꾸 이러기야?”

“싫음 영주성의 통신 마법을 쓸 수 있게끔 영주님께 부탁해보든가.”


이 그륜벨트에선 영주성을 제외하면 마법 통신을 쓸 수 있는 데가 나밖에 없다. 어? 이거 꽤 괜찮은 장사도구가 될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애초에 이걸 달라고 한 이유가 장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바보같이 왜 지금껏 이 생각을 못했지? 이것 때문에 목숨 걸고 영지 바닥에 프랙탈을 그린 거였잖아?


“흐흐흐, 영광스럽게도 롤랑 니가 아로 통신소의 첫 번째 고객이 되었어. 너니까 특별히 5분당 1루갈에 쳐줄게.”

“그거 고맙군. 그럼 3실링을 선불로 냈으니 그대로 계산하면 1,500분.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스물다섯 시간가량 되니 오늘 온종일 이용해도 남겠어.”

“에?”


뭔 소리래? 선불이라니?


“흠, 주인이 처치 곤란해하던 방어구는 롤랑 덕분에 제값 받고 팔거나 다름없는 일. 3실링은 그 덕분에 번 셈이 되겠군.”

“아니, 그 무슨 억지야?!”


소파에 앉아 앞발을 핥던 페로가 불쑥 꺼낸 얘기에 나는 격분했다.


“그 잭이라는 아저씨 얘기 들어보니까 잘만 얘기했음 그냥 사줄 것 같은 분이셨거든? 그냥 나보다 먼저 바람 좀 넣었다고 지나치게 생색낸다고 생각하지 않냐? 게다가, 애초에 네가 군역 면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그 방어구가 애물단지가 되는 일은 없었을 거 아냐!”

“호오, 아로 너치고는 꽤 조리 있는 반론이군. 뭐, 좋아. 하지만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니 10분의 1루갈로 합의 보는 것은 어때? 너의 그 애물단지 방어구 사줄 만한 사람을 찾아서 사흘 정도는 제법 발품을 팔았으니. 그 수고는 참작해 줬으면 하는데.”


오늘은 또 평소답지 않게 한발 물러나는 태도를 보이는 롤랑이었다. 게다가 녀석이 마지막에 웃으며 한 말이 맘 한구석에서 툭 하고 걸렸다.


“발품을 팔아?”

“주인은 이럴 때는 참 답답하군. 그럼 방어구가 필요한 사람이 때맞춰 짠하고 그냥 나타났겠는가? 나는 부하들을 시켰을 줄 알았는데, 얘기하는 모양새가 어째 직접 찾아다닌 모양이군.”


페로가 고양이답지 않게 혀를 차며 툭 하고 내뱉은 말에 망치로 얻어맞은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반면 롤랑은 그 말에 조용히 미소 지을 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지 않았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1실링을 꺼내 건네주었다.

엉겁결에 받은 은화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 언저리에 맴도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놔, 난 진짜 롤랑이 이 자식이 이런 면모를 보일 때 가장 화가 난다. 내가 진짜 못나 보이잖아.


“야, 페로. 오늘 저녁은 여기서 먹는다.”

“음? 갑자기 무슨 말인가?”

“장 봐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그리고 롤랑 너! 태블릿 두고 갈 테니까 쓰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 망할 자식.”

“나도 기다리도록 하지. 너도 가능하면 통화 내용을 들었으면 하거든.”


참 욕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활짝 웃은 롤랑이었다. 그 환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도 뭐해서 나는 서둘러 아지트를 나섰다. 장은 딱 1실링에 맞춰서 봐올 생각이다.




먹을거리를 한 아름 안고 돌아온 나는 그 즉시 아지트에 부엌에서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신선한 야채샐러드를 드레싱을 뿌려 담고. 버섯과 당근, 감자, 우유, 버터를 넣고 구수한 수프를 끓인다. 동시에 고기에 쓸 비장에 소스를 만든다.

오를란드 사람은 전통적으로 고기를 구울 때 후추나 소금으로 밑간만 하는 다소 밋밋한 조리를 하는 편인데, 누린내가 심한 고기의 경우 그 맛이 형편이 없다. 거기서 이 비장의 소스가 등장한다. 발사믹 소스와 붉은 포도주, 그리고 벌꿀을 넣고 약한 불에 시간을 들여 졸이는 이 특제 소스를 밑간한 고기 위에 곁들여 먹는 것이다.

본래 소스를 뿌려 먹는 방법은 고트락 사람들의 식문화라고 하는데 지금 오를란드의 소스 조리법의 대부분은 고트락 사람들의 조리법에서 나왔다고 한다.

뭐, 대체로 오를란드의 가정에선 이런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조리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무척 특별한 날이나, 혹은 집에 따로 요리사를 두고 살 정도로 부유한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딱히 오늘이 특별해서 내가 이렇게 손을 걷어붙이고 이러고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아버지가 왈, 신세를 졌을 땐 마음이 무겁지 않게만 행동하라고 했으니. 그 말씀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을 뿐이다.


“오오, 주인. 오늘은 상당히 기합이 들어간 요리를 하고 있군.”

“시끄럽고, 저리 가 있어.”


벌써부터 기대감에 부푼 눈으로 부엌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페로였지만 아직 준비는 끝나지 않았다.


“음…….”


펄펄 끓는 수프의 간을 확인하고, 페로 녀석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생선은 살코기만을 잘 발라낸 뒤 잘 다져서 볼로 만들어 뜨거운 오븐으로 살짝 익혀낸다. 음, 소스가 아직 덜 됐으니 고기를 굽는 건 나중이 되겠군.

그렇게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롤랑은 프랙탈을 사용해 통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몇 번인가 반복해서 시도 하는 것으로 봐선, 좀처럼 상대방에게서 응답이 없는 것 같다.


“야, 롤랑. 저녁 준비 거의 다 되어 가는데 그전에 끝낼 수나 있겠냐?”

“음. 일단은 공사다망한 사람이니 바로는 연결 안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혹시 또 소리의 정령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던가…….”


롤랑은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체 누구에게 걸었길래 저러는 건지.


“저녁이잖아. 저쪽도 밥 먹느라 안 받는 거 아냐? 우선 먹고 하자고, 더 질질 끌다간 페로 녀석이 눈 뒤집혀서 음식 물고 튀게 생겼어.”

“날 요 앞에 흔히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같이 취급하는 건 그만 두었으면 좋겠군. 나만큼 교양 있는 고양이가 어디 있다고 그런 모욕을 주는 겐가?”


내 말에 발끈했는지 페로가 쏘아붙였다. 그런 반론이 하고 싶다면, 적어도 요리를 코앞에 둔 체론 하지 말지그래. 그 행동 어디에도 교양의 ‘교’자조차 보이지 않거든?


“그거 아직 뜨거워 인마. 하여간 고양이 주제에 찬 거 뜨거운 걸 안 가려요. 야, 롤랑. 쟤 이젠 한계인 것 같아. 고기 구울 테니까 빨리 자리에 앉아.”


나는 프라이팬이 적당히 달궈지는 것을 확인하며 그렇게 외쳤다.


“흠… 할 수 없지.”


살짝 한숨을 쉰 롤랑은 연결이 끊긴 태블릿을 집어 들고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호오, 역시… 1실링으로 잘도 이만한 만찬을 만들었는걸?”

“정확히 말하면 71루갈. 한 달 전 일로 식료품 가격이 하나같이 폭등해서 좀 비싸게 먹혔어.”


감탄하는 롤랑의 모습에 절로 기분이 으쓱해졌지만, 일부러 담담하게 대답했다.


“미리 말해 두는데, 잔돈은 제대로 오른쪽 찬장에다 넣어 놨으니까 나중에 꼭 챙겨놔. 또 잊어버렸다가 청소해주는 애들만 좋은 일 만들지 말고.”

“명심해 두지. 그나저나 네가 진짜로 실력 발휘한 요리는 오랜만에 먹어보는군. 작년 여름 이후 처음인가?”


테이블에 앉으며 냅킨을 정돈하는 롤랑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러고 보면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렇게 기를 쓰고 음식을 만들어 본 것은 손에 꼽는다.


“페로, 이젠 적당히 식었을 테니까 먹어도 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녀석은 대답도 않고 접시에다 고개를 처박았다. 어이쿠, 내가 저런 놈을 애완동물이라고 기르고 있다니… 말만 할 줄 알았지 애교라곤 지 발톱에 때만큼도 없는 자식이다.

적당하게 구운 고기 위에 특제 소스를 뿌리고, 먹음직하게 구운 감자와 적당한 크기로 썬 토마토를 놓아 마무리.


“자, 홀아비 사냥꾼 레시피. 특제 스테이크 코스다.”

“풋, 언제 들어도 안 어울리는 이름이야 그거.”


접시를 눈앞에 둔 롤랑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자식이 기껏 해줬더니 감상이 그거야? 게다가 이름 지은 건 우리 아버지라고.


“이름이야 아무렴 어떠냐? 맛만 있으면 됐지.”

“그 말 그대로군. 그럼 잘 먹을게.”


포크와 나이프로 우아한 동작으로 고기를 썰어 입에 넣은 롤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실력이 녹슬지 않았는데?”

“훗, 7살 때부터 쌓아온 가정 요리의 길. 그리 쉽게 무너질 것 같아?”


그렇게 잘난 척 좀 해준 다음 나도 한 입 먹어본다. 음… 자화자찬할 수밖에 없는 맛이야. 소스도 잘된 것 같고. 킨즈 허브가 있었다면 풍미를 더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장엔 안 나와 있고, 직접 캐러 가자니 너무 늦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역시 넌 사냥꾼보다는 이쪽 방면으로 나가는 게 어울려. 영주성에 집사로 취업하는 게 어때? 집사장까지 올라가면 가신 대우나 마찬가지잖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지주는 지세[land tax], 주민세, 소득세, 재산세는 물론이고. 가지고 있는 토지가 농지나 축산지면 공납까지 내야 하지만, 그거 다 내고도 가신 봉급보다 많이 벌어 먹고살아. 어딜 봐도 지주가 되는 게 답이잖아.”


지주는 말 그대로 땅을 소유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오를란드에선 평민 이상의 신분일 경우 땅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그 권리에 해당하는 자는 당연한 말이지만 본래 주인에게서 일정한 대가를 치르고 매입하거나 국가의 공훈을 세우면 그 보상으로 자신의 땅을 가질 수 있다.

영주 역시 일종에 지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일반적인 지주와 차이가 있다. 가령 지세는 내도 주민세는 내지 않는다거나-주민세는 영지민이 영주에게 내는 세금-, 소득세는 재산세의 포함하여 내고 공납은 내지 않는다거나…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설명하자면 기니 생략한다.


“땅이라고 땅! 이런 시골 영지에서 그나마 잘 먹고 잘 사려면 내 땅 마련이 최고지.”

“너는 다른 공부는 거의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런 쪽으로는 빈틈이 없군.”

“살면서 딱 필요한 지식만 확실히 알면 됐지, 뭘 그래.”


내 쪽에 볼 땐 별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지식까지 알고 있는 네가 더 신기하다. 마법사도 아닌 녀석이 마법사가 놀랄 정도의 마법학 지식을 가지고 있질 않나, 세븐 마스터스인 크리스야드 후작을 놀라게 할 정도의 군략을 익히고 있질 않나. 출세하려면 그걸 다 배워야 한다고 누가 정하기라도 한 거냐? 귀족 후계자들도 너 정도로 공부하진 않을 거다.


“아무튼,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대체 500골드나 되는 거금은 어떻게 모은 거냐?”

“그 얘기 왜 안 하나 했다. 너, 제 작년 원상 행렬 기억해?”

“응, 내가 기억엔 여태까지 방문한 규모 중 단연 최대 규모였으니까. 그게 뭐?”

“그때 왔던 상단은 의례적인 방문이 아니라 남부 원상 조합에서 북부 교역로 개척을 위한 사전 답사 차원에 방문이었어.”


롤랑의 설명의 따르면, 현재 이 나라의 남북 교역의 중심은 에스라 강, 호훌룬 강을 비롯한 오를란드 동부 지역의 물길이라고 한다. 배를 통한 운송이 육로보다 저렴하고 빠르다는 거야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자연스럽게 강을 끼고 있는 지역에 물자의 수송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2년 전쯤. 물자를 실어 나르는 포구가 속한 카브스, 데일라온, 멜로이, 제페트의 네 영지가 서로 반목하기 시작했다. 그 분쟁은 결국, 자기 땅을 통과하는 물자의 관세를 경쟁적으로 올리기까지에 이르고. 그에 따라 에스라, 호훌룬 강의 운송료는 순식간에 눈두덩이 처럼 불어났다.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것을 우려한 왕실에선 동부의 대영지인 스트론과 하일라그에 네 영지의 분쟁을 중재하도록 명했고. 강력한 입지를 지닌 두 영지가 중재를 나서자 계속해서 오르던 관세는 동결되었다.

그렇게 분쟁은 해결되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불과 5개월 만에 동부 수로의 운송비용이 4배 가까이 상승하는 터무니없는 결과가 생겨버렸다. 남부전쟁 이후, 겨우 개간 토지의 생산력이 궤도에 오른 남부로서 이것은 치명적이었다.


작가의말

 전 로즈마리로 풍미를 더하는 편입니다.

 

 돌아오자 마자 열렬한 환영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제 막 시작했음에도 마치 클라이막스와도 같은 성원이라 감동이..(어?ㅇㅁㅇ?) 

 

 아무튼 이번주는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 편은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편히 쉬시는 주말 되세요.

 

 그럼 다음회에도 최고의 행운과 함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4.06 01:53
    No. 1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고월조천하
    작성일
    13.04.06 03:20
    No. 2

    저는 집에서 스테이크 할 때는 두꺼운 팬 달궈서 올리브 오일 두르고 고기에 굽기 시작 할때 허브쏠트 뿌려서 한번 만 뒤집어 굽습니다. 불세기에 따라 틀리지만 미디움 은 한 쪽에 약 6~7분 정도..
    고기는 굽기 전에 상온에 꺼내 놨다 하시고 불 끄기전에 버터 약간 넣어 주시면 더 맛 있읍니다.
    또 팬에서 꺼내서 약 2~3분 상온에서 쿨링 하시고 드시는게 제일 좋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coreaca
    작성일
    13.04.06 04:12
    No. 3

    그리고 스테이크 쏘스는 A1 셀러드 쏘스는 살사미가 최고조 ㅎ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95 고월조천하
    작성일
    13.04.06 08:22
    No. 4

    쏘스는 스테잌 군 팬에 (딱지않고) 발사믹 식초와 레몬 쥬스, 레드 와인 으로 간단하게 만들어 드시면 스테잌과 잘 어울리는 풍미가 있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恨天
    작성일
    13.04.06 10:08
    No. 5

    와우!!
    기다렸습니다!! ㅎㅎ
    전 요리 잘하는 사람이 멋있어보이고 부럽더라구요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네닉
    작성일
    13.04.06 10:55
    No. 6

    건필하세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3.04.06 12:51
    No. 7

    한번에 정주행 했네요~ 롤랑과 아로운의 비밀이 젤 궁금합니다~~
    건필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pr*****
    작성일
    13.04.07 13:09
    No. 8

    건필하십시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3.04.08 13:18
    No. 9

    아 맛있겠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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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의뢰[Request](3)-End +20 13.04.08 1,150 20 21쪽
» 의뢰[Request](2) +9 13.04.06 1,241 22 19쪽
40 의뢰[Request](1) +12 13.04.05 1,317 24 20쪽
39 분열[Division] - Ep. 2 prologue- +22 13.03.29 1,250 23 13쪽
38 일단락[be concluded]-Ep 1. epilogue- +13 13.03.19 1,497 26 15쪽
37 크리스야드[Chrisyard](6)-End- +5 13.03.19 1,274 19 22쪽
36 크리스야드[Chrisyard](5) +4 13.03.19 1,286 14 20쪽
35 크리스야드[Chrisyard](4) +8 13.03.18 2,003 15 24쪽
34 크리스야드[Chrisyard](3) +5 13.03.17 1,319 20 20쪽
33 크리스야드[Chrisyard](2) +9 13.03.16 1,478 21 19쪽
32 크리스야드[Chrisyard](1) +8 13.03.15 1,653 19 13쪽
31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3)-End- +4 13.03.13 1,498 16 20쪽
30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2) +5 13.03.12 1,475 13 14쪽
29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1) +4 13.03.12 1,567 14 11쪽
28 아스트리드[Astrid](4)-End- +5 13.03.08 1,424 14 19쪽
27 아스트리드[Astrid](3) +9 13.03.07 1,380 15 19쪽
26 아스트리드[Astrid](2) +4 13.03.06 1,245 13 15쪽
25 아스트리드[Astrid](1) +4 13.03.05 1,311 14 16쪽
24 파견[Dispatch](4)-End- +6 13.03.04 1,437 15 14쪽
23 파견[Dispatch](3) +4 13.03.03 1,304 16 14쪽
22 파견[Dispatch](2) +5 13.03.02 1,490 16 10쪽
21 파견[Dispatch](1) +3 13.02.28 1,392 16 13쪽
20 수정벽[Crystal wall](2)-End- +3 13.02.26 1,412 15 19쪽
19 수정벽[Crystal wall](1) +3 13.02.25 1,441 15 18쪽
18 랩터[Raptor](3)-end +4 13.02.23 1,519 15 18쪽
17 랩터[Raptor](2) +4 13.02.23 1,503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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