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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가 본캐 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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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뽀이뽀로밀
작품등록일 :
2013.02.16 11:46
최근연재일 :
2013.04.09 01:15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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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47
추천수 :
727
글자수 :
296,364

작성
13.03.1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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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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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9쪽

크리스야드[Chrisyard](2)

포르투나 연대기 1부




DUMMY

롤랑이 부탁한 마법사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바이스 슈트름 제2사단 마법연대 소속. 밀리아나 유스타치아입니다.”


마구간으로 와 행장과 타고 온 말을 꺼내어 살피는 우리에게 하얀 갑주를 걸친 여성이 다가와 경례했을 땐 솔직히 당황했다. 하지만 롤랑은 태연하게 인사를 받으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로랜드입니다. 경께서 보르트 사용자로 오신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크리스야드 각하께 특사 일행을 도와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전형적인 우드맥 여인으로 눈웃음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바이스 슈트름에 있다니, 바이스 슈트름은 알고 보면 꿈의 부대? 여성 기사라는 것도 처음이지만 마법사이면서 기사를 하고 있다는 점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로브를 걸친 마법사께서 오실 줄 알았는데. 갑옷을 걸친 기사분이 오셔서 솔직히 놀랐습니다. 실례되는 질문이겠지만 정말 마법사십니까?”


롤랑도 그 점에는 동의했는지 확인하듯 물었다. 다소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질문이었음에도 그녀는 별 거리낌 없이 대답해 주었다.


“비록 알브 에나릴의 사용자라도 전장에 서면 체인 메일 정도는 입는답니다. 게다가 알브 에나릴과는 다르게 보르트는 자기 성찰과 내면의 사유에서 비롯되는, 이른바 깨달음의 마법이지요. 때문에 보르트 사용자 중에는 일반인이 보기엔 전혀 마법사같이 보이지 않는 분도 계신답니다. 저 역시 그 중 하나이구요.”


헤헤, 친절한 설명 고마워요. 전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보르트 마법사가 일반 마법사하고 다른 것일 뿐. 그녀가 유독 별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군요. 보르트를 사용하는 마법사는 처음 뵙는지라 정말 실례되는 질문을 드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롤랑이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처음부터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던 유스타치아 경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길. 헌데 각하께는 마법사가 필요하다니 가보라는 말씀만 들었을 뿐,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셔서 찾으셨는지요?”

“아, 다른 것이 아니라 저희가 타고 온 말로는 바이스 슈트름의 에스콰이어 종마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 같아서, 보르트 사용자의 힘을 빌려보고자 청한 것입니다.”

“그랬군요. 잠시 말의 상태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롤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켜주자 나도 얼떨결에 말에서 물러나 그 옆에 가서 섰다. 그렇게 한동안 말의 여기저기를 살피고 다리의 근육을 만져보던 유스티치아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의 상태는 괜찮은 편이군요. 마법을 걸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다만, 갑자기 빨라진 속도에 말이 놀랄 수도 있습니다. 어지간히 말을 능숙하게 다루시지 못하면 낙마해서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다소 무리라도 해내는 수밖에요. 그렇지 않으면 오를란드 최속의 군대를 무슨 수로 따라잡겠습니까?”


롤랑의 대답에 유스타치아 경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런 미인과 함께하는 군 생활 인가… 저런 사람이 있다면 군대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바이스 슈트름 입대 조건이 어떻게 되지?

내가 그런 망상에 빠져 있는 동안 유스타치아 경은 말의 등을 쓸어 내며 롤랑에게 말했다.


“아까 홀에서 뵀을 때도 그랬지만, 간의 근수가 다른 사람하고 차원을 달리하시는 것 같군요. 급속[rapidity]의 보르트를 받은 말에서 떨어지면 뼈 한두 군데로 끝나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이 미인 기사는 간땡이가 부었다는 말도 참 이쁘게 돌려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나저나 뼈 한두 군데로 안 끝난다니… 그럼 대체 떨어지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요?


“죽을 수도 있습니까?”

“네, 아주 확실하게 죽겠지요.”


산뜻한 미소와 함께 대답하는 유스타치아 경이었다. 살벌한 대답을 생글생글 웃으면서 하는 저 태도에 소름이 돋았다. 입대는 취소다! 사령관만큼이나 부하들도 기인[奇人]이었을 줄이야!


“쫄지 마 바보야. 딱히 마법에 걸린 말이 아니더라도 전력으로 달리는 말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건 똑같아. 평소처럼 고삐를 잘 잡으면 문제없어.”

“어머, 자신만만하시군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만일을 대비에 저도 함께 달리겠습니다. 본격적인 전투도 아니고 이동하다 특사를 죽게 만들 수야 없지요.”


이 여자, 선한 인상과는 다르게 성격이 무진장 나쁘다. 실은 우리 같은 애송이들을 도우러 여기 온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롤랑이 평소처럼 외모와 언변으로 잘 구워삶아 주길 기대해 보자.

모든 짐을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나는 아스트리드 사용인들에게 부탁해 얻은 크로스 백에 페로를 넣었다.


“너, 이제 슬슬 숨겨둔 힘 같은 걸 발휘해 알아서 따라올 순 없겠냐?”


미야~옹.

보는 눈이 있어 말 대신 나직한 울음으로 대답하는 페로. 마치 ‘바랄 걸 바라시게.’라고 말하는 듯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진짜 말할 줄 아는 것 빼고는 그냥 고양이인 거냐 너?

말을 몰고 성을 나선 순간, 빼곡하게 정렬한 1만에 가까운 기병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쪽은 하얀색으로 일관된 바이스 슈트름의 병사들, 또 한쪽은 은색 광채를 빛내는 운터스트펜 스콰이어들의 사병들. 양쪽에서 내뿜는 삼엄한 군기는 도저히 먼 길을 행군하고, 다시 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지친 군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로, 저길 봐라.”


옆에 있던 롤랑이 손짓하는 곳은 그 군열의 가장 선두였다.


“크리스야드 후작…….”


바이스 슈트름의 백색 경갑을 걸치고 말에 오른 크리스야드 후작이 거기 있었다. 마치 햐얀 눈의 화신이 강림한 듯, 온몸이 빛을 반사해서 그를 감싸고 있는 것 같다. 그를 눈보라의 날개라는 이명으로 부르게 된 것은 저런 모습으로 전장을 질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진군 목표는 그륜벨트.”


한쪽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입을 여는데,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울렸다.


“전군, 전진.”


우오오오오오오!


일직선으로 뻗은 손은 똑바로 그륜벨트 방향을 가리켰고, 내려진 진군 명령에 온몸이 저릿할 정도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어머니의 부족은 대체 저런 사람을 상대로 맞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작 1만 남짓한 군대를 이끌고 수십만의 적을 대적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기백. 아마 세븐 마스터스란 진정한 의미에서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유스타치아 경, 부탁합니다.”


달려나가는 군대를 보며 롤랑이 말하자 뒤에 있던 유스타치아경이 우리가 탄 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람처럼*급속*똑바른*균형”


그것이 주문인 듯, 갑자기 말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때문에 나도 덩달아 긴장되기 시작했다.


“기수가 긴장하면 말의 불안이 가중됩니다. 침착하세요. 제로(0)부터 서서히 100으로 속력을 높인다는 감각입니다. 그렇게 말이 지금의 감각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유스타치아 경이 자기 말을 몰고 옆으로 다가와 부드러운 말투로 조언해 주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처음 말 타는 법을 배웠을 때를 생각하며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양발로 말의 배를 아주 살짝 툭 하고 찼다.


“좋습니다. 그대로 조금씩 속도를 높이도록 하죠. 어차피 앞선 부대도 관도에 접어들기 전까지 전속력을 내지는 못할 겁니다.”


서서히 앞으로 나가는 말, 등 뒤에서 유스타치아 경의 말이 들려왔지만 나는 오히려 말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확실히 이 녀석을 처음 탔을 때와는 다르게 움직임이 가볍다. 하지만 아직 느껴지는 말의 망설임에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괜찮아, 겁낼 것 없어. 단지 이때까지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게 됐을 뿐이야.”


푸륵거리며 답하는 말의 목을 토닥였다.


“아마 이번이 지나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어. 함께 바람을 갈라보자.”


내 말에 응했는지 아니면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걷고 있던 말을 서서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너무 급작스럽게 속력을 내면……!”

“이럇!”


뒤에서 제지하는 유스타치아 경을 뿌리치고 힘껏 말의 배를 찼다. 긴 울음소리를 낸 내 말은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대지를 박차고 나아갔다.


“로랜드 특사! 당신 보좌가……!”

“우리도 갑시다! 이럇!”


뒤에서 롤랑도 말과 함께 내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그 소리도 귀를 스치는 거친 바람소리에 묻혀가고 오로지 그륜벨트로 이어진 길과 앞서 가는 군대의 꼬리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원군을 데리고 가는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랩터의 무리를 섬멸하는 일 뿐.




이틀을 꼬박 잠도 자지 않고 말을 타고 달린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점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으리라 본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고 싶다. 진짜 할 짓이 못 된다.


“힘내 아로, 저 언덕만 넘으면 그륜벨트다.”

“처음에 말을 달리던 기세는 어디로 갔나요?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말에서 떨어져 죽는답니다. 어머, 죄송해요. 그냥 둬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이네요.”


유스타치아 경은 오는 내내 방긋방긋 웃으면서 계속 나를 갈구고 있었다. 내가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건 무식한 속도의 강행군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당신의 신경을 긁다 못해 후벼 파는 말투 때문일 겁니다. 아무래도 출발할 때 제지한 걸 무시하고 달려간 일 때문인 것 같은데, 진짜 뒤끝이 너무 긴 거 아냐? 보통 그걸로 이틀이나 쭉 붙어서 말 위에 있는 사람을 갈구느냐고.

마법이 걸린 말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덕분에 거의 나는 듯한 속도로 관도를 주파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휴식조차 마법으로 대신했는데, 유스타치아 경은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말들에게 미안해했다.


‘제 마법은 체력을 회복한다기보다는 잠재된 남은 힘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마, 이 행군이 끝나면 이틀 정도는 꼼작도 못하게 되겠죠.’


그리고 전투가 끝난 뒤엔 잘 보살펴 주라는 말을 덧붙이는 유스타치아 경은 확실히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다. 적어도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없을 땐 말이다.


“아로의 죽을상이야 언제나 있는 일이니 유스타치아 경은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그렇고, 과연 바이스 슈트름이군요. 설마 진짜로 5일의 거리를 이틀 남짓으로 줄일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친구의 곤란을 걱정하긴커녕 엄살로 치부한 롤랑은 저만치 앞선 바이스 슈트름 부대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저희야 항상, 이 정도 속도를 내는 것이 당연할 정도의 훈련을 하고 있으니 그리 놀라운 일이라 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운터스트펜의 스콰이어들을 칭찬하고 싶군요.”


롤랑의 말을 받은 유스타치아 경은 하얀 군열의 뒤를 따르는 부대를 가리켰다.


“저희 부대의 제식 군마인 에스콰이어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마종을 개량한 것 같습니다. 훈련 준비를 위한 예산이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 용케도 저런 말을 5천 필 가까이 준비했더군요. 이번 운터스트펜 학생회장은 확실히 남다른 수완을 가진 인물인 듯합니다. 이래적으로 스콰이어 1학년이 선출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귀족 자제분들이니 집에서 받은 용돈을 쏟아 부은 게 아닐까요?”


돈 많은 애들이 패싸움에서 이겨보겠다고 장비를 구입하는 격이 아닐까 싶지만, 귀족이 하는 일이 다 그런 게 아니겠나 싶다. 하지만 내 의견에 고개를 저은 것은 다름 아닌 롤랑이었다.


“운터스트펜에 입학하면 집안의 원조는 거의 받을 수 없어. 아무리 대귀족의 자제라도 일단 입학하면 학생에 지나지 않아. 게다가 운터스트펜에서 원조해 주는 품위 유지비 이외엔 일체 사비를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교칙으로 유명하지. 물론 평민 입장에서 보면 상당한 금액이지만, 떵떵거리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액수는 아니야.”

“그게 얼마나 되는데?”

“저희 부대의 운터스트펜 출신에게 들은 얘기로는 한 달에 11골드 정도 나온다고 들었어요.”


유스타치아 경의 말을 들은 롤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11골드? 그것도 매달? 귀족들의 품위란 건 주기적으로 금도금이라도 해야 유지되는 거야? 그 돈으로 나 같은 소작농에게 땅 한 마지기를 사줘 봐. 성실 납세에 아프다고 쉬지도 않아. 나라 재산 불려 주기 위해 1년 12달 뼈 빠지게 수고해 줄 수도 있다고!


“품위 유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격한 훈련과 수업으로 매 해를 보내야 하는 그들이 장비를 관리하고, 말을 관리하고, 함께 훈련할 사병들을 고용하자면 11골드로는 빠듯하기 짝이 없어요. 집에선 온갖 사치를 부리며 살던 귀족 자제도 운터스트펜에 입학하면 금전감각을 배워서 나올 정도죠.”


부연 설명을 해주는 유스타치아 경은 자신의 갑옷을 툭툭 쳤다. 기사라는 직업이 돈을 통째로 흡입하는 직업인 것을 이렇게 확인하게 된다.


“국왕 폐하의 강군, 계몽 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진 아카데미야. 분명, 전쟁이 잠잠해진 지금에 와선 무의미하게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지만, 당시에는 운터스트펜의 존재가 필요하긴 했다는 건 분명해.”


좀처럼 왕실의 하는 일을 좋게 말하는 법이 없었던 롤랑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인정할 건 인정하는 녀석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음? 선두에서 정지 신호가 올라왔군요.”


유스타치아 경의 말을 듣고 선두를 보니 하얀 깃발이 높이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서서히 속도를 줄여가던 행렬은 이윽고 완전히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뭐지? 왜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멈춰 선 거야?

궁금함에 롤랑을 돌아보았으나-최근에 모르는 것이 있음, 롤랑을 찾는 횟수가 빈번해지는 것 같아.- 녀석 역시 영문을 알 수 없는 듯, 탐색하는 눈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군.”


롤랑의 말마따나 가장 선두에서 이쪽으로 말을 몰고 오는 기사가 보였다.


“로랜드 특사. 사령관께서 찾으십니다.”


자신을 베이란트라 소개란 젊은 기사는 우리를 크리스야드 후작 앞으로 데려갔다.


“난생처음 겪는 강행군이었을 텐데, 두 사람 다 생각보다 좋아 보이는 군요.”


바로 우리의 상태부터 살핀 크리스야드 후작은 어쩐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전투가 시작되려는 마당에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태도다.


“저희를 찾으신 이유가 있으신 걸로 압니다.”


그리고 롤랑도 여전히 크리스야드 후작 앞에서 까칠하기 그지없었다. 이젠 일일이 참견하기도 지친다. 니 맘대로 하고, 제발 날 좀 끌어들이지 마.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거지요? 위기에 처한 고향 땅을 앞에 두고 조바심을 내는 것입니까? 아스트리스 성도에서와는 다르게 여유가 없군요.”

“여기 멈춰 서신 것은 본격적인 공세에 들어가기 전에 태세를 정비하기 위함입니까?”


후작의 도발을 사뿐하게 무시한 롤랑은 푸른 눈동자를 차갑게 빛내며 물었다.


“물론, 그 이유도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앞서 보낸 선견대에서 심상치 않은 보고를 보내왔기 때문에 일단 멈춰 선 것입니다.”

“심상치 않은 보고?”


살얼음 같은 태도를 오히려 여유롭게 받아넘긴 후작은 보르미웨 경에게서 마법 통신 태블릿을 받아 우리 앞에 내밀었다. 이미 프랙탈 문양이 빛나고 있는 것으로 봐선 통신 연결이 된 상태인 듯했다.


“선견대는 좀 전에 한 보고를 재창하도록 하세요.”

「Yes, your General. 그륜벨트 외성 밖까지 반경 1.5km 내외로 새까만 마물들이 빼곡히 진을 치고 있는 것을 확인. 대략 6만에서 7만에 육박하는 숫자로 특사와 보고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6만!?

감히 소리는 내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나저나 외성 밖 1.5km라니. 우리가 떠나기 전엔 그런 곳까지 빽빽하게 들어서 있을 만큼 많지 않았는데!


“설마… 그 짧은 시간에 개체수가 늘어난 것인가?”


롤랑이 입을 가리고 중얼거렸다. 심각하게 굳은 얼굴이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주었지만, 후작은 거기에 확인사살을 하듯 입을 열었다.


“6만이라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적 열세군요. 로랜드 특사, 이젠 단순히 적을 분단한다고 해서 각개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죠?”

“…….”


웃으면서 물었지만 이보다 칼날 같은 질문이 또 있을까. 롤랑은 할 말을 잃었는지 계속 입가를 가린 채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었다. 젠장,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보는 눈이 있어서 페로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해 미치겠네!


“내게 얘기했던 산사태를 일으키는 전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네요. 산사태라면 적의 규모를 지금의 절반 이상 줄일 수도 있고, 그 이후에 내가 적을 분단하여 각개격파에 들어간다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떤가요?”


후작은 지금 좋은 전략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그륜벨트가 짊어져야 하는 희생에 대해, 롤랑의 결정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바이스 슈트름에는 하나같이 이런 배속 시커먼 사람들밖에 없는 거냐?

생각 같아선 반대를 외치고 싶지만, 그랬다가 이들이 돌아가기라도 하면 말짱 도루묵이고. 롤랑, 이게 다 니가 산사태 얘기를 꺼낸 탓이다. 책임져!


“산사태 전략도 좋습니다만. 그전에 한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생각을 정리한 듯한 롤랑은 후작에게 그렇게 말했다. 후작 역시 이 상황에 와서 다른 생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물었다.


“호오, 그게 무엇인가요?”

“아직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몇 가지를 확인한 뒤에야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으니까요. 허니 유스타치아 경을 저희에게 조금만 더 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밀리아나를?”


크리스야드 후작뿐만 아니라 우리의 뒤에 있던 유스타치아 경도 롤랑의 지명에 의아한 듯했다. 나 역시 이 녀석이 뭔 생각을 하는지… 아! 혹시 그거?

나의 눈과 롤랑의 눈이 마주쳤다. 역시 그걸 시험해볼 생각이다. 근데 그걸로 지금이 수적 열세가 극복되기는 하는 거야? 제발 산사태보다 터무니없는 작전이 아니길 빈다.


작가의말

...빌어도 소용없을 꺼야 하루 이틀 겪니?

 

그나저나 이건 뭔가요... 분명 어제 글을 올렸을 땐 선호작 62에 텽균 연독률 50을 조금 넘겼는데... 부부부부부부부, 부담 같은거 아아아아앙느낀다구요! 이, 이정도 관심쯤이야!

 

 ......((((((ㅇωㅇ)))))))

 

다들 갑자기 왜들 그러세요... 저 너무 불안하면 코피난단 말이에요 ㅠㅅㅠ

 

 아무튼, 약속드렸듯이 이번주는 주말도 연재합니다. 아마 일요일 밤이나 월요일 새벽에는 결판이 날듯 싶군요. 떡밥도 회수해야 하고 돌아와도 할일이 느므느므 많은 롤랑과 아로입니다(니가 그렇게 만들었잖아.ㅇㅂㅇ;).

 

 미인마녀님, 정주행하시면서 일일이 답글달아 주시느라 감사합니다. 연재한담에서 추천글을 배견했을 땐 그야말로 무한 감동... 절받으세요(넙쭉!)

 

 등좀긁어줘님, 옆에 계시면 아주 시원하게 등긁어드리고 싶을 만큼 감사드립니다.

 

 지엠님, 환상회랑님 추강 감사드려요.

 

 그리고 우리 올빼미혁명단원 마아카로니님, 잊지 않고 추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이 모험관전에 참가하신 많은 독자님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그 밖에 또 특별히 감사들이는 분들께는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면 제대로된 후기로 다시 한 번 찾아뵙고 감사인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그리고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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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일단락[be concluded]-Ep 1. epilogue- +13 13.03.19 1,497 26 15쪽
37 크리스야드[Chrisyard](6)-End- +5 13.03.19 1,274 19 22쪽
36 크리스야드[Chrisyard](5) +4 13.03.19 1,287 14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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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크리스야드[Chrisyard](3) +5 13.03.17 1,319 20 20쪽
» 크리스야드[Chrisyard](2) +9 13.03.16 1,479 21 19쪽
32 크리스야드[Chrisyard](1) +8 13.03.15 1,653 19 13쪽
31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3)-End- +4 13.03.13 1,498 16 20쪽
30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2) +5 13.03.12 1,475 13 14쪽
29 눈보라의 군세[Blizzard troop](1) +4 13.03.12 1,568 14 11쪽
28 아스트리드[Astrid](4)-End- +5 13.03.08 1,424 14 19쪽
27 아스트리드[Astrid](3) +9 13.03.07 1,380 1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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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수정벽[Crystal wall](2)-End- +3 13.02.26 1,413 15 19쪽
19 수정벽[Crystal wall](1) +3 13.02.25 1,441 15 18쪽
18 랩터[Raptor](3)-end +4 13.02.23 1,519 15 18쪽
17 랩터[Raptor](2) +4 13.02.23 1,503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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