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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칸더브이 님의 서재입니다.

남홍여중 소녀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서칸더브이
그림/삽화
Bomemade
작품등록일 :
2019.04.04 01:56
최근연재일 :
2019.07.31 23:37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11,809
추천수 :
406
글자수 :
287,562

작성
19.05.08 06:00
조회
120
추천
5
글자
8쪽

Chapter Eleven-흑주작 (6)

DUMMY

아이들이 잠든 사이, 태하는 물의 교회로 향했다. 묘한 끌림이 있는 장소였다. 첫날, 그 앞에서 집합했을 때부터 다시 홀로 찾고 싶었는데, 빡빡한 훈련 스케줄 때문에 마지막 날 밤 비로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늦은 시간 교회당 주위에 불은 켜져 있었지만, 건물의 입구는 닫혀 있었다.


태하는 호수 맞은편으로 돌아가 교회당과 호수 중앙에 서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거룩함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수면에 어렴풋이 반사된 그녀의 형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검은 형체는 자기가 알고 있던 모습보다 훨씬 크고 당당해 보였지만, 동시에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소하가 보였다.


한동안 십자가를 보고 있던 태하는 기도를 드렸다. 믿는 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용한 숲 속에 홀로 앉아 종교적 형상을 마주 보고 있으니 가슴 뭉클해지는 무엇이 느껴졌다. 부모님이 생각났다. 소하가 그리웠다. 방금 전까지 같이 떠들던 친구들마저 생각이 났다.


외로움이 고마움으로, 고마움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간절함으로 변했다. 억지스럽지만, 간절함은 그리운 사람들이 지금 당장 자신 곁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으로 변했고, 결국 그들이 반사했던 자신의 추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질투, 이기, 반항···.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처음 느끼는 변화였다. 갑자기 이 세상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점점 커지던 감정은 얼굴까지 차오르더니 기어코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태하는 왜 눈물이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행복했다. 하지만 만족과 기쁨만으로는 되어있는 감정은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후회가 섞여 있었다. 분노와 질투. 원래부터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 안에 숨어있었는지 처음 알았다.


태하는 무서워졌다. 갑자기 이곳까지 걸어온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끈적끈적한 수많은 감정이 그녀의 작은 심장에서 삐져나와 사지로 퍼져 나갔다. 불안했다. 그 원인을 알 수 없어, 태하는 혼란스러웠다. 악취가 느껴졌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냄새를 풍기고, 태하는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더이상 참을 수 없던 그녀가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


십자가 뒤로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자작나무를 비추는 조명이 꺼지자, 달빛만 올곧이 남았다. 인공조명이 꺼지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교회당은 쓸쓸했다. 인공호수 중앙에 박혀 있는 철제 십자가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처형대처럼 보였다. 좀전까지 함부로 다가가서는 안 될 것 같은 거룩함이 느껴졌던 물의 교회는 이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폐허의 잔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달빛이 강해지자 인공조명에 가려졌던 것들이 참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자작나무의 초크빛(chalky) 뽀얀 살갗이 나타났다.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호수 위에 숲의 민낯이 반사됐다. 이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거대한 존재가 보였다. 그리고 신을 모시기 위해 가장 경건한 재단을 만들려고 한 인간의 애탄 마음이 드러났다. 진실을 드러내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헤매던 태하의 불안했던 눈동자는 호수 위에서 멈췄다. 하늘의 만월(滿月)만큼 빛나는 달이 호수 안에도 떠 있었다.


폭발하던 태하의 감정은 그 달빛에 누그러졌다. 마음이 안정되자 이곳에 온 목적이 기억났다. 그녀는 천천히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호숫물이 무릎 정도 오는 깊이에 다다르자, 태하는 호주머니에서 핀을 꺼내 그녀의 약지에 찔러 넣었다. 물이 차가워서였을까,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핏방울이 호수 안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봄아? 왜 날 보고 담비가 생각이 났어?”


-나도 몰라. 그냥 이미지들이 떠올라.


“그래? 어떤 것들은 되게 흉측하던데.”


-왜? 갑자기 ‘얘 멀리해야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이미지들이 떠오르면 좀 무섭지 않을까 해서.”


-어렸을 때는 상관없었고, 오히려 재미있었는데. 요새는 사실 조금 무서워, 나도. 요즘 이미지들이 너무 선명해져서···.”


“그래도 난 귀여운 담비인거지?”


-응. 그런데 그냥 귀여운 담비만은 아니야. 특별한 능력이 있는 아이야. 네가 위험에 빠지면 몸의 새하얀 털들이 모두 불꽃으로 변해 너를 보호해주는 아이야.


“뭐야?! 그럼 불사조 같은 거?”


-음···불사조는 아마도 ‘죽지 않는 새’라고 해서 불사(不死)라는 이름이 붙은 것일걸.


“그래? 뭐 어때~. ‘해리포터’ 영화에서도 불사조는 불에 타오르잖아? 내 불꽃 담비도 그럼 죽지 않는 거로 해주면 안 돼?”


-뭐? 야. 그게 뭐야~.


“아, 빨리 보고 싶다. 이름도 지어줘야지. 언제 다 그려, 봄?”


-재촉하지 마세요, 고객님. 근데 그림값은 언제 주실 거죠?


“뭐? 돈? 아, 그래, 좋아. 준다. 그럼 계약인 거야, 너!


-됐어. 농담이야. 학교에 돌아가면 바로 색칠해서 줄게.


“아냐. 많이 줄 순 없어도, 줄게. 떡볶이 어때? 내가 진짜 맛있는 집 알아냈는데, 거기서 내가 그림값으로 쏜다. 떡볶이, 김밥, 튀김에 오뎅, 풀코스로~. 헤헤.”


-콜~!


“우리 ‘주작의 자궁’ 속에서 약속한 거다, 윤봄. 물리기 없기. 이제 그 담비는 내 꺼야.”


-하하. 그래, 약속.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우리 너 별명을 안 지었네.”


-멋진 거 하나 지어줘 봐, 새우대가리.


“흠..봄..봄이라...봄봄··· 봉봉! 봉봉 어때?”


-봉봉?


“봉봉 좋다! 귀엽지않아?”


-봉봉이?


“이따가 애들 오면 물어보자. 이건 백퍼 동의야. 완전 깜찍. 봉봉.


-흠...


“진짜 깜찍하다니까~. 레알. 앉아, 봉봉! 가져와, 봉봉! 어서, 봉봉!”


-야~!


-그런데, 태하야. 아까 애들 있을 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사실 나 가끔은 우리가 지금 있는 이세상이 가상이고 환상계 속이 진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 들리지 않는 세상은 나한테 소리가 나지 않는 텔레비전 속이지만, 환상계 안에서는 왠지 나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우리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던 날 말이야, 그 네 봉우리의 산 위에서 들은 것 같아. 네 목소리. 신이 나서 산속 여우처럼 깡총깡총 뛰면서 소리 지르던 네 목소리.]


태하는 친구들에게 ‘물의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은혜와의 약속도 약속이었지만, 그냥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불안감 같은 것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고 싶지 않은 심정도 있었다. 혼자만 알고, 혼자만 올라서고 싶었다. 뛰어난 친구들과 나란히 하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숨기고 싶었고, 그렇기에 떳떳하지 않았다.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던 태하의 표정이 편안해 졌다. 그녀는 결심했다. 학교로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물의 계약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기로.


태하가 오래된 계약문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 전태하, 용맹스러운 남쪽 붉은 주작의 딸. 이 고귀한 피로 증명하니, 그대와 어머니의 계약에 따라 천년의 문지기는 빗장을 열고 나를 맞이하라. 나 이제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니. 나를 그대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라.”


그녀의 약지에서 붉은 증표들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추운 밤, 하늘 위에서 이세계를 비추고 하나의 달도 그대로인데, 달빛을 반사하고 있는 호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위에 서 있던 태하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녀의 작은 속삭임만을 빼고, 그녀는 흔적 하나 없이, 마치 이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소하야,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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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Chapter Twenty Two-Graduation [1부 완결] +1 19.07.31 143 5 12쪽
57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5) +1 19.07.31 118 6 13쪽
56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4) +1 19.07.30 99 3 15쪽
55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3) +1 19.07.30 112 4 12쪽
54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2) +1 19.07.29 90 5 12쪽
53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1) +1 19.07.29 100 4 13쪽
52 Chapter Twenty-Black Moon +3 19.07.25 113 4 14쪽
51 Chapter Nineteen-기억 (2) +2 19.07.21 97 4 12쪽
50 Chapter Nineteen-기억 (1) +2 19.07.18 109 4 14쪽
49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3) +2 19.07.14 165 6 14쪽
48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2) +1 19.07.11 125 6 12쪽
47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1) +2 19.07.07 110 5 13쪽
46 Chapter Seventeen-여름방학 (2) +1 19.07.04 122 6 15쪽
45 Chapter Seventeen-여름방학 (1) +1 19.06.30 125 3 15쪽
44 Chapter Sixteen-Rock, Paper, Scissors +1 19.06.27 124 5 15쪽
43 Chapter Fifteen-7년전 (2) +1 19.06.23 138 3 16쪽
42 Chapter Fifteen-7년전 (1) 19.06.20 105 4 14쪽
41 Chapter Fourteen-The Dragon Lair +1 19.06.16 146 3 17쪽
40 Chapter Thirteen-홍백전 (2) +2 19.06.13 124 3 14쪽
39 Chapter Thirteen-홍백전 (1) +1 19.06.09 118 4 13쪽
38 Interlude +4 19.06.06 110 5 13쪽
37 Chapter Twelve-Real Game (6) +4 19.05.09 183 6 9쪽
36 Chapter Twelve-Real Game (5) 19.05.09 267 5 11쪽
35 Chapter Twelve-Real Game (4) 19.05.09 114 6 8쪽
34 Chapter Twelve-Real Game (3) 19.05.09 76 6 8쪽
33 Chapter Twelve-Real Game (2) 19.05.09 101 6 9쪽
32 Chapter Twelve-Real Game (1) 19.05.09 94 6 9쪽
» Chapter Eleven-흑주작 (6) +2 19.05.08 121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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