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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칸더브이 님의 서재입니다.

남홍여중 소녀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서칸더브이
그림/삽화
Bomemade
작품등록일 :
2019.04.04 01:56
최근연재일 :
2019.07.31 23:37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11,795
추천수 :
406
글자수 :
287,562

작성
19.07.21 21:00
조회
96
추천
4
글자
12쪽

Chapter Nineteen-기억 (2)

DUMMY

“올해는 도사님 찾아오시는 손님이 조오까 많으요~잉. 봄에 이쁜 아줌씨 하나 왔다 가고는 통 뵐 수가 없어서, 거시기 같이 서울로 올라가신 줄 알았는디. 아직 섬에 사시는 갑네.”


휘문은 선장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잠시 후 스승님을 뵙고 직접 여쭙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기에 선장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만남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희 말고 스승님을 찾아오시는 분도 계신가요?”


기다림에 지친 수희가 침묵을 깨고 휘문에게 물었다.


“모르겠네. 숨겨두신 여자친구인가?”


긴장을 풀기 위한 쓸데없는 농담이었다. 휘문은 바로 장난이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조금 있으면 알 수 있겠지.”


“백년지기가 되면 세상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었나요?”


“그게 맞는데···. 솔직히 나도 당황스럽네, 우리말고 스승님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혹시 단장님이 갑자기 홍도로 가자고 하신 이유가 이것 때문은 아닐까요?”


휘문은 수희의 추측이 틀리기를 바랬다. 다음 주로 예정되어 있던 홍도 방문을 갑자기 앞당긴 이유는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다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스승님이 범성(虎聲)까지 써가면서 그를 부를 리 없었다. 게다가 스승님을 만나로 백호의 비밀스러운 공간인 이곳까지 찾아온 여인이라니 혼란스러웠다.


“미안하네. 떠나기 전에 부모님이랑 친구들이랑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텐데.”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휘문이 주제를 돌렸다.


“아니에요. 진작부터 준비하고 있었어요. 오히려 이렇게 가는데 편한 거 같아요. 갑작스럽게. 그런데요, 단장님?”


수희가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왜?”


“가족과 친구들, 날 아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셨어요?”


“왜 여기까지 와서 겁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좀···신기해서···. 그렇게 쉽게 한 사람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인가 해서요. 하긴 남홍애들은 졸업하면서 기억을 지운다고 하긴 하던데···.”


“지금도 늦지 않았어.”


“아, 단장님~. 진짜 아니에요.”


휘문이 수희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알아, 내가 널 몇 년을 봤는데. 그냥 지금이라도 돌려보내고 싶은 건 내 심정이지. 난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어. 사실 너무 재미있었거든, 중간계 탐험이. 서호국제에서 있을 때처럼 정해진 구역만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없는 그 세상을 돌아다니느라, 오히려 내 기억속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지워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셀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머리가 굵어지자, 주인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 점점 힘들어졌어.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이 귀찮아지고, 두려워지고, 피하고 싶어졌지. 익숙한 것이 그리워진 거야. 그리고는 매일 아침이 곤욕스러웠다. 결국 내 한계를 깨닫고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사실 그 때가 더 힘들었어. 7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가족과 친구들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했고. 내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많나 싶었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뭘 어떻게 해 임마. 그냥 사는 거지. 적어도 내 기억은 남아있으니까, 우리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 친구들. 그 추억을 간직하고 새 인생을 사는 거야. 어차피 백호무리가 되는 순간부터 평범한 인생을 살수 없는 거, 잘 알잖아. 백호 사내의 숙명인 거.”


“······.”


휘문의 암울한 이야기에 수희의 말문이 닫혔다. 솔직하게 답하려 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는데, 뜻하지 않게 겁을 준 꼴이 되어버렸다.


“야, 너무 걱정하지 마. 넌 잘 할 거야? 수희야, 중간계가 얼마나 큰지 생각해본 적 있니?”


휘문이 뒤늦게 격려해보았지만, 이미 의기소침해진 수희의 기분을 바로 돌릴 수는 없었다.


“제가 잘 못하면 어쩌죠, 단장님?”


“수희야, 이건 잘하고 못 하는 것이 아냐. 백두대간의 주인이라고 하시는 그 분조차 모르는 일이지 않냐. 알고 계신다면 뭐 하러 12년마다 한 명씩 콕 찍어서 생고생을 시키겠냐. 그냥 한 명만 딱 골라서 게임 끝 하시면 됐지. 잘 모르시는 거야, 이 땅의 마지막 호랑이도.”


휘문의 빈정거림에 수희가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어찌됐건 너 돌아오면 스승님 잘 맞이해 주실 거야. 그리고 심심하면 찾아와서 나한테 다 얘기해줘라. 내가 다 들어줄게.”


“그래도 돼요?”


“그럼! 왜 안돼? 내가 너를 몰라볼 뿐이지. 와서 얘기 못할 것은 또 뭐 있겠냐. 다시 소개해. 그리고 들려 줘, 너의 모험 이야기. 알아 볼 수 없다고 믿지 않지는 않을 테니까.”


수희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내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그렇지 나빴던 곳은 아냐. 중간계라는 곳이 정말 신기한 곳이거든. 특히나 청룡 고승들은 죽음의 세계라고 하는데, 내가 느낀 건 꼭 그런 것 만은 아닌 것 같아. 그냥 다른 세계 같았어. 아무튼 돌아와서 꼭 찾아와. 다시 서로 알아가면 되잖아. 그때는 맥주도 같이 한잔 하고 말이야. 야, 그렇다고 부모님 찾아가서 ‘제가 당신 아들 입니다’ 라고 말해 봤자 ‘무슨 미친 놈이냐’ 그러실 거니까, 그건 안되고.”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그럼 돌아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나요? 서호국제 아이스하키부 코치 말고요. 그건 단장님이 계속 하고 계실 테니까. ”


“하하. 나 은퇴할 거다. 농담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의 선택에 달려있지. 서호국제 졸업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기로 선택하는 애들도 많으니까. 특히나 여자를 만나면 다들 그래. 그러니 너도 원하면 그럴 수 있고. 그것 말고는···.”


휘문은 무슨 말을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아직 수희한테는 버거운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제 막 분위를 전환했는데 다시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알려···아니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야, 주인의 선택을 받게 되면 어떤 운명이 널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혹시 아냐, 네가 다음 백호무리의 가신 될 지.”


수희의 얼굴에서 풀이 죽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모험을 떠나기 전 설레는 아이의 표정만이 남았다.


“아! 그런데 중간계는 얼마나 큰데요?”


“몰라.”


“네? 방금 저에게 물으셨잖아요?”


“맞아. 그런데 나도 몰라. 아마 스승님도 모르실 걸.”


“그럼 단장님이 다녀 보신 정도는 어느 정도인데요?”


“후~~. 모르겠네. 한반도는 다 돌아다닌 거 같은데.”


“중간계 속 한반도는 어때요?”


“지형은 지금과 비슷해.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중간계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사는 세상하고 달라서. 다른 시대의 존재들이 같은 공간에 공존하고 있는 세계라고 할까? 미래와 과거가 같은 공간에 있는 느낌. 내가 경험했던 것들과 네가 경험할 들은 분명 다를 거야. 그 안의 존재들은···.”


휘문은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어 잠시 고민했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게 우숩기는 한데. 가장 적당한 것 같아. 살아있는 것 같아.”


“네?”


“살아있는 것 같다고, 그 안에 남아있는 존재들도. 이 세계에서 죽어서 갈 곳을 잃어버린 망령 같기보단 원래부터 그 세계에서 살아있는 것들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니?”


수희는 휘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배운 대로 반문했다.


“음, 중간계는 처음 죽음이 이 땅으로 넘어왔을 때 생긴 틈으로 죽은 자가 환생하기 전에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닌가요? 마음이 깨끗한 자는 악에 현혹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아니한 자는 죽음의 추종자가 될 수 있기에 백호의 계승자는 그 안에서 주인의 부름 만을 듣고 따라가야 혼돈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휘문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 나도 그렇게 배웠어. 그래서 중간계는 현세와 저 세계의 영향을 받고,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 창조와 파괴의 원천적인 갈등이 충돌하는 세계. 선과 악을 정의할 수 없는 세계. 그런데 그렇다면 왜 이 땅의 주인은 이 세계에 있지 않고 중간계에 존재하느냐 말이지?”


“그건 죽음의 존재가 처음 사잇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것이 이 세상으로 타락시키지 못하게 막고 시간의 빗장을 지켰던 환인이 애초에 정의의 탑을 세운 곳이 중간계 안이었기 때문이고, 탑의 동, 서, 남, 북의 경계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보내 지키게 하셨기 때문에 지금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 거이라고···. 단장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셨잖아요?”


휘문은 말문이 막혔다. 분명 백호의 가르침에 따라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교육을 마치고 실전으로 들어가는 제자를 위해 교과서에 나오는 배움과는 다른, 선임자로서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중간계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생각을 말해주고 싶은데, 지난 가르침과 상충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견해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는데, 적당한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맞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에휴~, 내 생각에는, 결국 우리 백호무리의 주인, 이 땅의 마지막 범이 현세에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더 이상 주인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없어서 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결국 경계를 벗어난 것이 바로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부름을 받았던 내가 그리고 이제 네가 중간계로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그리고 중간계야 말로 백호의 오랜 기억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하는···. 그렇다면 선과 악이 공존하는 그 곳에도, 창조와 파괴가 충돌하는 그 곳에도 또 다른 삶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단순히 이 세상에서 죽어 나간 생명이 머물다 가는 의미 없는 공간만이 아니라···.”


수희는 코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열 아홉 살 사내아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질문해 본적 없었다. 그냥 특별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미안하다, 이 순간에 갑자기 이런 정리되지 않는 개인적은 생각을 말해서. 원래는 더 멋지게 조언을 해주는 상상을 했는데 말이야. 오늘 이상하네. 아무래도 내가 더 긴장한 것 같다. 미안.”


“아니에요.”


무안한 휘문은 수희의 머리를 다시 한번 헝클어뜨렸다.


“문 열린다. 들어가자.”


신안 홍도 바위섬의 밀실이 열렸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호의 구전은 스물 하루 밤, 스물 두 날을 꼬박 지내서 들어야 했다. 태초에 관한 이야기, 백호무리의 천년지기와 백년지기 등 전설과 역사를 듣고 나면, 백호무리에 계승되는 백팔비기(百八秘器)에 대한 전승이 시작되었다. 장검에서부터, 언월도, 도끼, 창, 사슬낫, 단검 그리고 활까지 총 일곱가지 병기를 다루는 법과 중간계에서 오랜 시간을 지낼 수 있는 내공을 키울 수 있는 심법과 수행법들이 전수했다. 서호국제에서 가르치는 것은 실용적인 서른 몇 개의 기술일 뿐, 백팔비기를 모두 펼칠 수 있는 자는 백호무리에서 몇 되지 않았다. 12년마다 선택되는, 주인의 부름을 받은 자만이 그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날 휘문과 수희가 바위섬 밀실에 들어갔을 때, 동굴 안은 백호의 구전을 외고 있는 손제헌의 목소리만이 동굴 안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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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Epilogue +5 19.07.31 321 4 12쪽
58 Chapter Twenty Two-Graduation [1부 완결] +1 19.07.31 143 5 12쪽
57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5) +1 19.07.31 118 6 13쪽
56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4) +1 19.07.30 98 3 15쪽
55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3) +1 19.07.30 112 4 12쪽
54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2) +1 19.07.29 90 5 12쪽
53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1) +1 19.07.29 99 4 13쪽
52 Chapter Twenty-Black Moon +3 19.07.25 113 4 14쪽
» Chapter Nineteen-기억 (2) +2 19.07.21 97 4 12쪽
50 Chapter Nineteen-기억 (1) +2 19.07.18 108 4 14쪽
49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3) +2 19.07.14 165 6 14쪽
48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2) +1 19.07.11 125 6 12쪽
47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1) +2 19.07.07 110 5 13쪽
46 Chapter Seventeen-여름방학 (2) +1 19.07.04 122 6 15쪽
45 Chapter Seventeen-여름방학 (1) +1 19.06.30 125 3 15쪽
44 Chapter Sixteen-Rock, Paper, Scissors +1 19.06.27 123 5 15쪽
43 Chapter Fifteen-7년전 (2) +1 19.06.23 137 3 16쪽
42 Chapter Fifteen-7년전 (1) 19.06.20 104 4 14쪽
41 Chapter Fourteen-The Dragon Lair +1 19.06.16 146 3 17쪽
40 Chapter Thirteen-홍백전 (2) +2 19.06.13 124 3 14쪽
39 Chapter Thirteen-홍백전 (1) +1 19.06.09 117 4 13쪽
38 Interlude +4 19.06.06 110 5 13쪽
37 Chapter Twelve-Real Game (6) +4 19.05.09 183 6 9쪽
36 Chapter Twelve-Real Game (5) 19.05.09 267 5 11쪽
35 Chapter Twelve-Real Game (4) 19.05.09 114 6 8쪽
34 Chapter Twelve-Real Game (3) 19.05.09 76 6 8쪽
33 Chapter Twelve-Real Game (2) 19.05.09 101 6 9쪽
32 Chapter Twelve-Real Game (1) 19.05.09 92 6 9쪽
31 Chapter Eleven-흑주작 (6) +2 19.05.08 120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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