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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칸더브이 님의 서재입니다.

남홍여중 소녀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서칸더브이
그림/삽화
Bomemade
작품등록일 :
2019.04.04 01:56
최근연재일 :
2019.07.31 23:37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11,784
추천수 :
406
글자수 :
287,562

작성
19.06.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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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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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Interlude

DUMMY

십 일쯤 누워있었나? 심하게 아팠다고 했다. 고열이 심했고 중간에 심장이 멈추기도 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엄마, 아빠가 그렇게 우는 것을 본 적도 처음이었다.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친인척들이 매일같이 병원으로 찾아왔고, 온갖 선물과 맛난 것들을 병원으로 가지고 왔다. 최신 아이폰도 사줬고, 귀 뚫는 것과 머리 염색까지, 비록 방학 때만하고 다닐 수 있었지만, 허락해줬다. 난 막상 기억이 없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 정말 죽을 뻔하긴 했나보다 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까지 그리운 눈빛으로 처다 본 적이 내 열 네 살 인생에 없다.


사실 깨어났을 때, 머리가 좀 이상해서 엄마, 아빠를 빼고는 누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해리성 장애라고 했다. 사실 난 영국 어디쯤 사는 해리라는 이름의 애가 처음 이런 병을 앓아서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풀려 떨어져 나간’이라는 뜻의 한자였다.


아무튼 내 뇌에는 물리적인 이상이 없는데, 심하게 아파서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었고 그래서 친척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라고.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돌아왔다. 그런데, 또 다른 증상이 있다고 했다. 일종에 다중인격장애로 내가 있지도 않은 쌍둥이 언니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해리성 정체감장애. 한 사람이 둘 이상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정신 질환. 내 경우는 특이하게, 아프기 이전에 내가 다중이었는데, “증상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가” 이번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상상의 자매를 만들어내고 그 상상의 자매에게 나의 다른 자아를 전이 시켰다고 의사 선생님이 우리 부모님에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느 순간 상상 속의 친구나 형제, 자매를 만드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닌데, 내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고. 현실과 상상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나이도 나이지만, 자신의 기억이나 경험의 일부를 떼어내 상상 속의 쌍둥이 자매에게 부여하는 행위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점차 나아지길 기대하지만, 계속 있지도 않은 쌍둥이 언니에 관한 헛소리를 하면 정신과 병동으로 옮겨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고 하는 것을 복도에서 엿들었다.


‘헛소리.’ 분명 그렇게 얘기했다, 멍청하게 생긴 의사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식 보듯이 나를 보고 계시는 엄마, 아빠를 포함에 이 세상에 나를 아는 모두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외동이었고, 쌍둥이 언니 따위는 없다고. 더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 것은 언니 사진이며 물건, 그 어떠한 기록도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고, ‘신비한TV 서프라이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확실히 기억한다. 나는 분명 쌍둥이 언니가 있었고, 언니의 별명은 새우대가리였다. 그래서 “헛소리”를 멈췄다. 언니를 찾으려면 정신병동 안에 갇혀서 약이나 먹고 있어서는 안되니깐.


쌍둥이 언니 “따위는”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어떻게 13년을 같이 산 자매를 하루 아침에 없는 사람처럼 취급할 수 있느냐 말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도 어린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 시키고 싶지는 않았는지, 여전히 내 상태가 의심스러운 눈치였지만 퇴원하는데 동의해주었다. 퇴원 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는 남홍여중 기숙사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나는 남홍여중에 3월에 입학해 재학중이었으며, 기숙사 생활을 하는 45명의 학생회 멤버 중 하나였다. 의식을 잃기 전에 나는 분명 신주중학교에 입학했었고 태하가 남홍여중에 들어갔었는데, 태하가 사라진 지금 내가 남홍여중에 다니는 걸로 리얼리티가 바뀌어 있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태하의 기억을 일부분 공유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대한 기억. 마치 죽다 살아나서 다른 평행 세계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것 때문에 어느 때는 내가 정말 다중이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해리성 기억상실증까지 겪은 와중에도 생생한 기억 중 하나는 언니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비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언니는 남홍여중에 오라는 소리만 계속했다. “그냥 와, 여기 좋아~!” 좋긴 개뿔. 그렇게 사라지니까 좋냐, 새우대가리?!


내 계산이 맞다면, 언니는 일본으로 간 수련회에서 사라졌다. 내가 의식을 잃은 시점. 언니는 북해도, 토마무산에 있었다. 공유하는 기억도 그 시점에서 흐려진다. 황당하게도, 사람들은 전태하가 아닌 내가 수련회에 다녀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 말에 의하면, 나는 수련회에 다녀와서 쓰러진 것이었다. 수련회 떠나기 일주일전 즈음에 내가 신종플루에 걸려 고열이 났었는데, 내가 무리를 해서 수련회에 따라간다고 떼를 썼고 결국 병이 심해져서 의식을 잃을 거라고. 헛소리.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꾸 나오는 헛웃음 나와, 결국 줄리엣이라는 고풍스러운 별명과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날라리뽕 선배한테 한 대 맞을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수련회에서 뭘 했고, 뭘 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당장 북해도의 토마무 리조트로 찾아가고 싶은 맘이 간절했지만, 실제로 부모님에게 당장 가자고 조르기도 했고 온갖 이유를 대며 아양을 떨었지만, 부모님을 설득시키지는 못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엄마, 아빠가 이해가 갔다. 북해도에서 막 돌아온 딸이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다 겨우 일어났는데, 눈 뜨자 마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허락을 하겠냐 말이다. 할 수 있는 것은 공유된 기억을 바탕으로 언니처럼 행동하며, 남홍여중에서 단서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예측대로 남홍여중은 사이비 종교단체였다. 학생회는 주작이라는 신화 속의 새를 신처럼 떠받들고, 자신들을 그 새의 딸이라고 부르며, 세상을 악에서 구하는 정의의 사도 쯤으로 착각하는 듯했다. 서호국제학교에 백호를 숭배하는 자매 종교단체도 있고, 청룡을 믿는 사이비 절 하고도 뭔가 매년 교류를 하는 것 같은데, 빵빵한 재단도 있는 것 보니 생각보다 거대한 조직 같았고. 주작의 알이라고 부르는 돌덩이에 불을 피워 집단체면을 걸고 환영을 보게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건지 그 비밀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입학한지 불과 두어 달 만에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광적으로 변한데는 분명 정신적인 세뇌 이외에 의약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급식에 뭘 넣은 것은 아닐까 의심 속에 며칠간 서브웨이 샌드위치만 먹었는데도 환영을 볼 수 있길래 그건 제외시켰다.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여기 급식 말도 안되게 맛있다.


처음 환상계를 보여줬을 때, 순간 이상한 희열을 느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허벅지를 꼬집었다. 내가 공유하는 태하의 기억 속의 환상계를 실제 경험하는 것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정말 짜릿했고, 왜 태하가 그렇게 이 종교에 빠졌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태하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나도 정말 환상계가 진짜라고 믿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태하가 실종된 지금, 이곳을 경험하면 할수록 거대한 평행 우주적인 음모에 우리 자매가 재수없게 얽혀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물론, 그딴 소리를 입 밖으로 내었다가는 정신병원 직행이었기에 나는 연기를 계속했고, 꽤 잘했다. 공유된 기억 속의 태하가 그렇게 어려워하던 기어업도 한번에 성공해서 멋진 나만의 라피에르를 구현했다.


윤봄, 이사라, 김지현. 수련회 때 언니랑 같은 방을 썼기에 처음에는 이것들이 범인이 아닌가 의심했는데, 지내다 보니 아니란 것을 알았다. 착한 애들인 것 같고, 태하 언니를 진심 좋아했던 것이 느껴졌다.


지현이 처음 나를 보자 마자 ‘소머리 국밥’이라 별명을 불러서 짜증이 났지만, 붙어서 이길 수 있는 피지컬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의 기억 속에선 우리가 발가벗고 목욕하며 서로에게 별명을 지어준 사이였기에. 내 기억이 아닌 언니의 기억이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너무 먼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일은 대화나 행위자체보다는 언니가 느꼈던 감정만이 남아있어 어색할 때가 있는데, 서로 별명을 지어줬을 때가 그러했다.


거품이 나오는 욕조에서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먹으며 같이 목욕을 하는 기억은 있는데, 정확하게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 그들과 함께한 언니의 기억에서는 따뜻한 감정만이 느껴졌다. 따뜻하다고만 하기에는 부족하고, 정말이지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는 엄마의 품 같은 그런 포근함. 그리고 봄이, 사라, 지현에게서도 그런 동질감이 느껴졌다.


학생회장 신유정 언니한테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몇 번 마주치지는 않았는데, 시크한 선배였다. 말 수도 없고, 인사도 잘 안 받아주고. 전혀 이런 종교에 빠질 것 같이 안보이는데, 이 샤머니즘 종교의 우두머리 같은 존재. 그래서 가장 의심이 가는 사람이지만, 막상 보고 있으면 그녀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는. 어찌됐건, 태하의 기억 속의 학생회장과 ‘레드’는 한여름 태양의 따사로움 같은 것이었다.


솔직히 환상이고 무엇이고 다 떠나서, 태하의 기억 속에 있는 ‘레드’라는 동물은 한번 보고 싶었다. 남홍여중에 들어오고 여태까지 학생회장님과 딱 한번 말을 나눌 기회가 있어서, 불쑥 언니를 기억하지 못하냐고 물어봤는데, 무시하고 도서관으로 가버렸다. 재수없었지만 멋있었다. 나도 중3이 되면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다른 신입생이나 선배들은 아직 파악 중이다. 특히, 몇몇 선배들은 심하게 이 종교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틈만 나면, 주작이 어쩧고, 백호가 어쩧고 신입생들을 세워놓고 세뇌를 하려고 했으며, 홍백전이네, 수성전이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들을 해댔다.


가장 황당한 이야기는 남홍여중의 일백 년 전통 오징어잡이였다. 가을에 열리는 서울 불꽃놀이 축제기간에 한강에서 집채만한 오징어를 잡는다는데 너무 진지하게 설명을 해서 소름이 돋았다. 지금 그 따위 것을 나더라 믿으라는 것인가, 선배. 중학생 소녀들이 한강에서 스텔스 잠수복을 입고 작살총을 들고 크라켄을 잡는다고? 크라켄에 똥침을 놔서 루비를 얻는다? 특히 고풍스러운 별명의 언니는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 같았다. 자꾸 수련회 가기전에 하던 특훈을 계속하자고 하는데, 도망 다니느라 힘들었다.


왜 아무도 언니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이 질문만 떠올랐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관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어쩌면 다들 진짜 언니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언니를 찾으려면, 이 종교 뒤에 있는 나쁜 어른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왜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선배 말로는 남홍여중의 학생회는 졸업과 동시에 이곳의 기억을 모두 잃는다고 했다. 3학년생은 졸업식날 자신의 기억 중에서 학생회와 연관된 것들을 졸업과 함께 봉인한다고. 일종의 선택처럼 얘기하던데, 왜 모두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일까? 나쁜 기억이 아니라면, 다들 기억을 봉인하는 이유가 뭘 까? 왜 나만 궁금해하는 거지? 그 기억의 봉인이라는 것이 어쩌면 태하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 있을 것이다.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던 때, 꿈을 꿨다. 네 봉우리의 설산 위에 서 있었다. 내 옆으로 모르는 소녀들이 세명 같이 있었는데, 이제 그들의 이름을 안다. 사라, 봄, 지현. 나는 남홍여중의 제복을 입고 북극여우같이 생긴 장식이 끝에 달린 근사한 검을 차고 있었다. 언니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소하야, 보고 싶어.” 내가 약속했다. “언니, 기다려.” 선배가 얘기해줬다, 청룡을 숭배하는 청송마을이 네 봉우리가 있는 산 위에 있다고. 올 졸업식이 있기 전, 백호와 청룡, 주작이 그곳에서 모여 수성전을 벌인다고.


이세상의 기억에서 풀려서 떨어져 나간 울 언니. 나는 반드시 찾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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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Epilogue +5 19.07.31 321 4 12쪽
58 Chapter Twenty Two-Graduation [1부 완결] +1 19.07.31 142 5 12쪽
57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5) +1 19.07.31 118 6 13쪽
56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4) +1 19.07.30 98 3 15쪽
55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3) +1 19.07.30 111 4 12쪽
54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2) +1 19.07.29 90 5 12쪽
53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1) +1 19.07.29 99 4 13쪽
52 Chapter Twenty-Black Moon +3 19.07.25 112 4 14쪽
51 Chapter Nineteen-기억 (2) +2 19.07.21 96 4 12쪽
50 Chapter Nineteen-기억 (1) +2 19.07.18 108 4 14쪽
49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3) +2 19.07.14 165 6 14쪽
48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2) +1 19.07.11 125 6 12쪽
47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1) +2 19.07.07 109 5 13쪽
46 Chapter Seventeen-여름방학 (2) +1 19.07.04 121 6 15쪽
45 Chapter Seventeen-여름방학 (1) +1 19.06.30 124 3 15쪽
44 Chapter Sixteen-Rock, Paper, Scissors +1 19.06.27 123 5 15쪽
43 Chapter Fifteen-7년전 (2) +1 19.06.23 136 3 16쪽
42 Chapter Fifteen-7년전 (1) 19.06.20 104 4 14쪽
41 Chapter Fourteen-The Dragon Lair +1 19.06.16 146 3 17쪽
40 Chapter Thirteen-홍백전 (2) +2 19.06.13 123 3 14쪽
39 Chapter Thirteen-홍백전 (1) +1 19.06.09 117 4 13쪽
» Interlude +4 19.06.06 110 5 13쪽
37 Chapter Twelve-Real Game (6) +4 19.05.09 183 6 9쪽
36 Chapter Twelve-Real Game (5) 19.05.09 266 5 11쪽
35 Chapter Twelve-Real Game (4) 19.05.09 114 6 8쪽
34 Chapter Twelve-Real Game (3) 19.05.09 75 6 8쪽
33 Chapter Twelve-Real Game (2) 19.05.09 101 6 9쪽
32 Chapter Twelve-Real Game (1) 19.05.09 92 6 9쪽
31 Chapter Eleven-흑주작 (6) +2 19.05.08 120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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