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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칸더브이 님의 서재입니다.

남홍여중 소녀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서칸더브이
그림/삽화
Bomemade
작품등록일 :
2019.04.04 01:56
최근연재일 :
2019.07.31 23:37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11,705
추천수 :
405
글자수 :
287,562

작성
19.07.31 23:37
조회
316
추천
4
글자
12쪽

Epilogue

DUMMY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산에 5월 봄바람이 불자, 눈 먼 노인이 험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노인의 표정에서 기대감 같은 것이 엿보였다. 하지만, 절대 서두를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혹여라도 헛디디지 않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침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뜨기 전에 시작한 산행은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랜만이구나.”


청송마을 입구의 나무 호법은 아무런 저항없이 눈 먼 노인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노인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온 사람처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마을 입구로 느긋하게 걸어 들어갔다.


사봉산은 반(半)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두 계절이 지났는데도 나무타는 냄새가 여전했다. 간혹 바람이라도 새게 불면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청송마을 사람들은 진묵의 지휘 아래 청송사와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서 하루도 쉬지않았다. 진묵은 아직 젊었지만 진득했다. 손에 흙을 묻히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귀를 열고 여러 의견을 경청했으며,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고승들의 부재가 오히려 그의 숨겨져 있던 재능을 발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동자승들을 돌 볼 겨를이 없었다. 나이가 많이 어리지는 않았지만, 동자승들은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었고 무엇보다도 아바따라를 소환하는데 아직 가르침이 필요한 아이들이었다. 아바따라는 소환하는 자의 생명력을 바탕으로 태어나기에 함부로 상상력을 펼쳐서는 아니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데로 했다가는 자칫 죽음의 기운을 타고 태어날 수도 있었다. 수련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화신(化身)을 찾아야하지 그렇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저쪽 세계 존재의 껍데기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거 참 멋진 놈이구나.”


눈 먼 노인이 마을 어귀에서 혼자 놀고 있던 노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노아는 재빨리 가지고 놀던 생명체를 뒤로 숨겼다.


“내게 숨길 필요 없다. 자세히 보고 싶은데 이 할아버지 손 위에 한번 올려봐 주지 않으련?”


노아는 노인의 눈을 뚫어지게 봤다. 눈동자의 가운데는 탁했으나 주변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묘한 눈이었다. 아이는 그가 악인인지 선인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노아가 뒤로 감추었던 작은 애벌레를 그의 손 위에 올려 놓았다.


성인 한 뼘 정도 크기의 애벌레는 창백에 가까운 하얀색을 띄고 있었다. 애벌레는 한동안 노인의 손 위아래를 열심히 타고 움직이더니 굵은 핏줄이 꿈틀거리는 손 등위에서 멈췄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애벌레 같지만, 노인이 자신의 손톱으로 핏줄을 툭 터트려 상처를 내자 숨겨져 있던 애벌레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창백한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애벌레의 구강 안은 선홍 빛을 띄었다. 놀란 노아가 재빨리 애벌레를 그의 손에서 낚아채 뒤로 숨겼다.


“괜찮다. 그 녀석 배가 무척 고픈 거 같은데···.”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노아는 그 미소가 온화한 건지 음흉한 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노인의 눈을 한참 살피던 노아가 애벌레를 다시 그의 손 등위에 올려놓자, 창백한 애벌레는 거머리처럼 피를 빨아대기 시작했다.


“자, 이제 등 뒤에 숨긴 이 녀석의 형제들을 다 만나볼 수 있을까?”


노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처음보는 할아버지한테 한순간에 모든 것을 들켰다. 노아가 왼손을 뻗자 비슷한 크기의 여덟 마리 애벌레가 그의 소매에서 기어나와 노인의 손에 들러붙었다.


“아~, 아름다운 녀석들이구나. 참으로 멋진 놈이 되겠어.”


하얀 애벌레에게 먹이를 주던 노인이 이제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노아야, 이름이 노아라고 했지. 나와 함께 가지 않으련? 이곳에 갇혀만 있기에는 네 재능이 너무나 아깝구나.”


잠시 망설였지만, 모든 것을 꽤 뚫어보는 듯한 노인의 두 눈동자는 이미 자신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유롭게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은, 하고 싶은 데로 다 해보고 싶은 아픈 소년의 마음을. 노아가 노인의 손을 잡는 순간, 앙상하고 뒤틀린 노아의 다리가 펴지고 자라기 시작했고 장애가 있던 오른 손 또한 정상으로 돌아왔다.


“존함이 어떻게 되세요?”


소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존함? 내 이름? 허허허. 바르게 자란 아이구먼. 아주 잘 자랐어. 허허허허허. 다들 날 청사골 노인네라고 부르는데. 넌 그냥 할아버지라고 부르렴. 어때? 할아버지~. 허허허.”


그길로 청사골 노인은 홀로 왔던 길을 소년과 함께 돌아갔다.



---*---



“저건 개미야, 거미야? ”


언덕 위에 엎드려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던 김수희가 말하자, 그의 옆에 웅크려있는 네 발 달린 녀석이 조용히 크르렁 소리를 냈다.


“너도 모르겠지? 다리 모양으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거미인데, 왜 다리가 여섯 개 밖에 없지? 이상하네. 개미냐 거미냐에 따라 공략법이 완전히 다른데. 이걸 어쩌지? 그냥 질러? 돌격해?”


수희의 말에 녀석이 냉큼 네 발로 일어섰다. 침까지 흘리며 헥헥 거리는 것이 단번에 뛰어내려가 사냥감을 물어 뜯을 기세였다. 체형은 영락없는 늑대를 닮았는데 얼굴 주변에 사자의 갈퀴가 나 있고 이마와 어깨에 호랑이 무늬가 선명했다.


“역시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군. 근데 그거 알지, 너? 저게 만약에 개미면 한 마리가 아닐 거라는 거.”


크르렁~ 쿠왕~.


“좋아~! 그럼 니가 반, 내가 반. 오케이? 오케이.”


수희가 망원경을 가방에 집어넣고 옆에 놓아두었던 도끼를 집어 들었다. 깊은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언덕을 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자, 방추!”


네 발 달린 짐승도 수희 뒤로 힘차게 달렸다. 속도가 붙자, 수희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집어넣어 자신의 등 위로 던지듯 들어올렸다.


“유후~~~!”



---*---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종묘(宗廟)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이다. 중앙의 19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정전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영년전이 위치하고 오른편에는 제사에 받칠 재물을 요리하던 진사청 등이 있다. 정전에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존재한 총 27명의 왕 중 공덕이 높은 19명의 왕과 30명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내외를 포함한 나머지 34명의 왕과 비들은 정전 옆에 세워진 영년전에 그 위패가 있다. 또한, 종묘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과 비,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이 모셔진 신당이 존재한다. 이 공민왕 신당에는 영정이외에도 공민왕이 그렸다고 하는 준마도 세 장이 걸려져 있다.


“장군이야, 이 노인네야~.”


“멍군이다, 이 영감탱이.”


“옛다, 또 장군이다.”


“뭐여! 이건 뭐시기여.”


“뭐시기긴 뭐시기여. 외통이지. 자 내놔, 내 돈.”


“기다려 봐~.”


“기다리긴 뭘 기다려, 이 양반아 양수겸장 외통인데.”


“어허~, 기다려 보라니까. 거 참!”


장기 두는 장씨와 서씨의 목소리가 탑골공원을 시끄럽게 했다. 멀리 떨어져 책을 읽고 있는 윤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낮잠을 자고 있는 최씨와 신체단련을 하고 있는 김씨는 두 사람의 고성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듯 했다.


“여기 장기 두던 노인네 어디 갔나? 똥간에 가서 빠져 죽기라도 했나, 어디 간거여? 응?! 여보쇼, 혹시 여기 장기 두던 짱딸막한 늙다리 하나 못봤오?”


“어허, 거참. 시끄럽게 깐쪽거리네.”


“푸허허허. 아 그러니까, 좀 잘 두던가, 자넨 실력이 늘질 않아.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장기를 못 두는 사람 첨 봤네, 그려.”


“시끄러! 이 염감탱이야.”


“어허~. 졌으면, 형님한테 절 올리고, 한 수 가르쳐줍쇼 할 것이지. 소리는 왜 질러. 돈이 내놔, 이 양반아.”


“없어. 지금 없어. 담에 줄게.”


“세 살 버릇 개 못 준다고. 이 놈이 또 이러네~. 돈 내놔, 이 염강태기야!”


“뭐? 이 놈이?! 이게 어따 대고···.”


히이이이잉~~.


갑자기 들려온 말울음 소리에 일순간 노인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소소한 내기 장기 한 판 가지고 목청 높여 다툼을 하던 장 노인과 서 노인도 이제 승부는 뒷전 있었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 귀를 쫑긋 세웠다.


히이잉~.


다시 한번 들려왔다. 탑골공원의 다섯 노인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종묘 쪽을 향해 달렸다. 흰 수염과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들이었지만 달음짐은 젊은이만큼 빨랐다. 일 분도 채 되기 전에 종묘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 앞에 다다른 그들은 이미 창칼과 갑주를 소환해 착용하고 있었다.


“뉘신지 모르겠으나 이곳은 이 땅의 왕과 비를 기리는 성스러운 곳 일세, 그러하니 말에서 내려와 주시겠는가?”


최씨 노인이 말을 타고 있는 소녀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소녀는 능숙한 솜씨로 말에서 내려와 노장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잿빛 철제 갑옷의 철커덩 거리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제 7대 이화문 문주, 흑조 전 태하, 백호무리의 천년지기 선배님들에게 인사드리옵니다.”


“이화문이 아직도 남아있었던가?”


윤씨 노인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안타깝게도 6대 소령 문주를 마지막으로 이화 검술의 맥이 끊겼지만, 우연한 기회에 이화문의 비기를 배울 수 있기 되어 정교한 그들의 검술의 맥을 다시 이어보려, 소녀가 문을 다시 세우고 부끄럽지만 스스로를 7대 문주로 추대하였습니다.”


노인들 앞에서 자신을 흑조라 칭한 소녀는 아직 앳된 얼굴에 목소리도 가늘었다. 하지만 표정이나 말투에서는 가벼움을 느낄 수 없었다.


“흑조라 하였는가?”


“예.”


“자넨 우리가 누구인줄 아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곳이 무엇이 있는 곳인지 알면서도 자신이 흑조임을 밝힌 것인가?”


근엄한 목소리에서 최씨 노인도 자신 앞에 있는 십대 소녀를 가벼이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숨길 듯 뭐하겠습니까? 어차피 금새 아실텐데.”


“그렇다면 원하는 게 무어지?”


“푸른 범의 난도(鑾刀)와 붉은 거북의 갑주(甲胄)를 찾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찾아 온 김에 왕의 깃발도 빌리러 왔습니다.”


“흥, 빌려? 이전에 찾아왔던 여자도 비슷한 소리를 했다가 가까스로 목숨만 건져 도망쳤다. 감히 갓 흑주작 된 너 같은 땅꼬마 따위가 건방지게 뭐가 어째? 왕의 깃발을 빌려? 니가 정녕 목숨이 아깝지 않구나!”


듣다 못한 서씨 노인이 언월도(偃月刀)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앞에 나섰다.


“왕의 깃발은 그렇다 쳐도 청호의 환도와 적현무의 갑주는 원래 저희 것이 아니었나요?”


“그것들은 세상을 혼란케 하는 마물로 오래전에 이곳에 봉인된 것들 일세. 자네도 그것을 잘 알텐데, 그리 차려 입고 온 걸 보니 우리와 싸워 가져가려는 심산인가?.”


최씨 노인의 음성이 살짝 올라갔다.


“죄송하지만, 그래야 한다면···.”


“말 방귀 같은 소리! 네가 진정 우리가 누구인줄 아느냐? 이 땅의 주인 백범(白虎)의 명을 받아 이곳을 천년동안 지키기로 맹세한 오호장(五虎將)이다. 너 같은 애송이가 감히 뉘 앞이라고 말을 함부로 놀리느냐!”


이번엔 장씨 노인이 들고 있던 대도로 검풍(劍風)을 일으켰다.


“정녕 어르신들의 뜻이 그러하오시면···.”


태하가 갑옷 옆에 차고 있던 라피에르를 뽑아 들었다. 담비 장식이 포멜에 달린 검이 칼집에서 그 유려한 날을 들어내며 산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자신 앞에 있는 상대의 목을 사정없이 물어 뜰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소녀의 목에 감겨 있던 하얀 모피 목도리가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네 발로 그녀 곁에 섰다. 순백의 담비. 그것이 담비 검과 같은 소리를 내며 목의 털들을 모두 세우고 공격자세를 취했다.


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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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logue +5 19.07.31 317 4 12쪽
58 Chapter Twenty Two-Graduation [1부 완결] +1 19.07.31 139 5 12쪽
57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5) +1 19.07.31 117 6 13쪽
56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4) +1 19.07.30 98 3 15쪽
55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3) +1 19.07.30 111 4 12쪽
54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2) +1 19.07.29 90 5 12쪽
53 Chapter Twenty One-현무의 심장 (1) +1 19.07.29 99 4 13쪽
52 Chapter Twenty-Black Moon +3 19.07.25 112 4 14쪽
51 Chapter Nineteen-기억 (2) +2 19.07.21 96 4 12쪽
50 Chapter Nineteen-기억 (1) +2 19.07.18 108 4 14쪽
49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3) +2 19.07.14 164 6 14쪽
48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2) +1 19.07.11 123 6 12쪽
47 Chapter Eighteen-Biker Girls vs Mad Boys (1) +2 19.07.07 108 5 13쪽
46 Chapter Seventeen-여름방학 (2) +1 19.07.04 121 6 15쪽
45 Chapter Seventeen-여름방학 (1) +1 19.06.30 124 3 15쪽
44 Chapter Sixteen-Rock, Paper, Scissors +1 19.06.27 122 5 15쪽
43 Chapter Fifteen-7년전 (2) +1 19.06.23 136 3 16쪽
42 Chapter Fifteen-7년전 (1) 19.06.20 102 4 14쪽
41 Chapter Fourteen-The Dragon Lair +1 19.06.16 145 3 17쪽
40 Chapter Thirteen-홍백전 (2) +2 19.06.13 121 3 14쪽
39 Chapter Thirteen-홍백전 (1) +1 19.06.09 117 4 13쪽
38 Interlude +4 19.06.06 109 5 13쪽
37 Chapter Twelve-Real Game (6) +4 19.05.09 180 6 9쪽
36 Chapter Twelve-Real Game (5) 19.05.09 266 5 11쪽
35 Chapter Twelve-Real Game (4) 19.05.09 113 6 8쪽
34 Chapter Twelve-Real Game (3) 19.05.09 75 6 8쪽
33 Chapter Twelve-Real Game (2) 19.05.09 101 6 9쪽
32 Chapter Twelve-Real Game (1) 19.05.09 92 6 9쪽
31 Chapter Eleven-흑주작 (6) +2 19.05.08 120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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