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일상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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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 그와 통화 이후로 나는 그냥 놀고 먹고를 반복했다.
그 뒤로 월급 한 번 더 들어왔기 때문에 내 삶은 잠시나마 돈 많은 백수가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하고 평온한 하루.
모두들 꿈꾸는 일상이긴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나는 답답하고 진절머리가 났다.
맨날 먹고 자고 심심하네..
카페나 가볼까?
이때 나의 오만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미리 눈치를 챘어야 했다.
나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동네 카페에 갔다.
오후 3시쯤, 카페 안에는 사람들이 꽤 앉아 있었다.
나는 적당한 자리를 골라잡아 음료를 마시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저기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옆 테이블에서 전화하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실례되는 행동인줄 알면서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제가 정말 한 게 아니거든요.”
그의 목소리는 매우 떨렸다.
옆에서 들어본 바로는 그의 명의를 이용해 누군가가 불법 음란물을 유포했고 음란물 유포 죄로 신고가 접수 된 상황이었다.
그는 계속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경찰 조사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흠... 말을 걸어볼까? 괜한 참견이냐며 욕먹겠지.’
그의 상황은 매우 절박해보였고 나는 최근에 급상승한 자신감에 쓸 대 없는 정의감과 합쳐져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위키가 나에게 더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걸 보면 사건 자체가 없는 거 아냐?
내가 사건을 물어오면 그 사람도 이득이고 나도 이득이고 상부상조?
와 이렇게 쉬는 대도 열심히 일하는 직원은 나 밖에 없을 거야 그치?
아... 근데 원래 돈 받고 사건을 받았던가?
나도 프리였던 거 같고 찬혁이 사건도 딱히 돈 받은 거 같진 않았는데..
뭐 일단 해결하고 돈 받으면 되지 않겠어? 약간의 사례금?’
나는 나만의 행복 회로를 돌렸다.
‘일단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건 좀 그러니깐... ’
그리고 나는 명함을 생각해 냈다.
그들이 이곳에 의뢰를 한 것은 바로명함 때문, 직접적 의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키가 그들에게 명함을 줬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내가 갖고 있던 명함을 그의 가방에 넣었다.
이렇게 하면 그가 이걸 보고 의뢰를 하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뭔가 기분이 뿌듯한 채 위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 오늘은 한 번에 전화 받았네요.”
“아.. 네 뭐...”
“제가 말이죠. 오늘 사건 하나 물어왔어요.”
“네?”
그의 목소리는 당황으로 가득 찼다.
“오늘 카페를 갔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나봐요. 그래서 그 사람 도우려고 명함을 그 사람 가방에 넣고 왔어요.”
“뭐라구요? 명함? 어디서 났는데요?”
“원래 제가 갔고 있던 명함 그걸 준건데요. 왜요?”
전화상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당황한 표정이 보일만큼 동요하고 있었다.
“아니, 그걸 왜... 아.. 가방에 넣었다구요..”
“왜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닌가요?”
“애초에 그걸 떠나서 왜 그런 거에요?”
“그냥... 요새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일거리를 만들어 주려고...”
이때서야 나는 분위기를 눈치 챘다.
나는 그 상황에서 그에게 명함도 뭣도 하면 안된다는 걸...
“죄송해요. 어차피 그냥 제가 막 넣은 거니까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잖아요. 그 사람이 의뢰를 안 할 수도 있는 거고... 그 그냥 뭐 잘 넘기면...”
그는 계속 한숨만 내뱉었다.
“하... 뭐 이미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의뢰 뭐 그런 걸 떠나서 앞으로 먼저 명함주고 그러진 마세요.”
“네. 죄송합니다...”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맞긴 한데, 그가 진짜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확실해요?”
“네? 저는 듣기에 그의 명의로 누군가가 음란물을 유포했고 그가 잡혀갈 처지가 돼서 그걸 도와주려고...”
“그냥 옆에서만 사건을 들은 거잖아요. 그가 진짜 범인이 아니란 걸 확신해요?”
“.... 그것까진.. 그래도 눈빛이 굉장히 억울해 보였단 말이에요..”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앞뒤 정황 안 따지고 그를 돕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나는 그의 말투와 행동에 범인이 아닐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
물론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다는 걸 생각지도 못 한채...
“뭐 일단 일이 이렇게 됐으니 저도 알아보는데 까진 알아볼게요. 하지만 이 사람이 정말 범죄자라면 저는 도울 수 없습니다.”
“... 네.. 죄송해요....”
“흠.. 좀 더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러고 그는 전화를 끊었다.
뭔가 일을 내가 망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졌다.
나는 그저 좀 돕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내 행동이 너무 과했다.
아무리 반성한다고 이 일이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 행동에 나는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져야겠지.
우선 인터넷으로 음란물 유포죄와 명의 도용에 관한 법들을 찾아보았다.
물론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전혀 찾지 못했다.
나는 그에 대한 확실한 정보도 없고 그의 말을 무작정 믿고 해내기에 정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히 정의감에 불타올라 한 나의 행동에 큰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고서 위키에게 전화가 왔다.
“아까 당신이 명함 넣었던 그 사람 오늘 한번 만나보세요.”
“네. 그럴게요.”
“위치와 연락처는 제가 보내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만나서 뭘 물어보면 될까요?”
“그가 어디서 어떻게 당했는지 일단 이야기를 듣고 오세요.”
“네.”
“그리고 이상한 행동은 하지 마시구요.”
“네.. 그럴게요.”
“그렇다고 너무 풀죽어 있진 마세요. 조사는 잘 하고 오셔야죠.”
“네!”
그의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그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까 있던 카페에 그가 계속 있었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아까 그...”
그는 옆에 앉은 나를 기억했다.
“네..”
그는 내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초췌해져 있었고 눈빛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그는 대뜸 이 말부터 했다.
“이거 당신이 넣은 거죠?”
그는 명함을 꺼냈다.
“네, 그렇긴 한데...”
“제발 도와주세요. 저에겐 남은게 이 몸 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그는 곧 울 거 같은 표정과 목소리였다.
눈은 절박해보였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보니 더욱 이 일을 해결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나 혼자 해결하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때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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