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새로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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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앞의 여자를 살짝 등지며 작은 목소리로 받았다.
“왜 이제 전화해요? 생각해보니 전 당신 번호 모르잖아요?”
나의 약간 짜증 섞인 말투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전화했으니 된 거죠. 공원에 도착하면 갈색머리의 하늘색 원피스 입은 여성분을 찾으세요.”
“안 그래도 그분이 먼저 저한테 왔어요. 검은색 긴 생머리에..”
“갈색이 아니라?”
“네, 그러니까 검은색?!”
순간 아차 싶었다.
내 앞의 여자는 검은 생머리에 올블랙 수트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벤치에 앉아 있는게 보였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어벙벙해져 있을 때 쯤 앞의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저.. 무슨 일 있나요?”
“아.. 아뇨.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애써 아닌 척 웃어 넘겼다.
“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휴대폰에 대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을 따돌리고 갈색머리한 분을 만나요. 그리고 그분이 말하는 일을 잘 녹음하는 게 오늘 일이에요.”
“아니.. 지금 어떻게 하냐구요.”
“그러니까 저분을 따돌리고 하늘색..”
“아니!”
답답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가 나왔다.
검은색 머리 여성분의 눈치를 살피고 다시 물었다.
“어떻게 따돌리냐구요.”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야죠. 그게 당신 일이잖아요.”
“네?!”
전화는 바로 끊어졌고 끊어진 전화를 빤히 쳐다봤지만 그는 나에게 어떠한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하.. 그래 그냥 아무 말이나 해보자.
“저기... 오래 기다리셨죠? 하하”
“아니에요.”
“음... 그러니깐, 제가 ‘당신의 억울함을 들어드립니다’ 관련한 사람은 맞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상황을 모면할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생각했더니
“저도 이거 받았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을 뱉었다.
“네?”
“저도 억울한 일 당해서 의뢰할 곳 찾고 있었는데, 제 사물함에 이런 게 들어 있더라구요. 저도 여기서 누굴 만나기로 했는데.. 하하 그쪽도 저랑 동지일 줄이야.”
“그럼 같이 기다릴까요?”
“아뇨 전 방금 통화로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아서 먼저 가볼게요. 하하”
그리고 잽싸게 도망치듯이 뛰어갔다.
그 여자도 나를 바로 뒤쫓는가 싶더니 다시 다른 길로 들어갔다.
‘휴.. 진짜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긴 그만한 돈을 바로 주지는 않을 거 아냐. 애초에 한다고 말한 내 잘못이지’
일단 검은색 머리 여자가 갔는지 확인한 후 갈색머리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최대한 속삭이는 듯이 말했다.
“네?”
나의 깜짝 등장에 화들짝 놀란 모습이 역력했다.
“혹시 의뢰하신 분인가요? 억울한 일?”
여자는 주위의 눈치를 조금살피더니,
“네...”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여긴 좀 위험하니 이 근처 사거리 카페에서 이야기해요.”
“거기도 사람 많아서 눈에 띠지 않을까요? 제가 아는 곳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요.”
그 여자를 따라서 10여분 걸었을 때쯤 주인이 할머니쯤으로 보이는 빈티지한 카페에 도착했다.
삐이익 거리는 낡은 문과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그래도 몇 안되는 테이블에 손님 2명이 나란히 있었다.
“저기 혹시 뭐 드실래요?”
갈색머리의 여자가 나에게 물어왔다.
“저는 그냥 아아로.”
잠시 후 주문을 마치고 창가 반대편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요. 학교가 이 근처라 이곳에서 공부하러 많이 왔었거든요.”
나는 카페 주변을 한번 훑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아.. 네. 분위기 좋네요. 하하. 아!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못했네요. 저는 이지민이라고 해요.”
“저는 박혜은이에요.”
“아까는 어떤 사람이 혜은씨인척 저에게 접근 했더라구요. 그래서 경황없이 이동하자고 한거에요. 덕분에 이런 분위기 있는 카페도 와봤네요.”
“누가 저인 척 접근했다는 거죠?”
“검은색 긴 생머리한 여자분 이었어요. 저에게 ‘당신의 억울함을 들어드립니다’ 명함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이 명함을 준거라고 묻더라구요.”
“어?! 명함, 그거 제 가방 속에 들어가 있던 거에요. 제가 혹시 몰라서 지갑 안에 넣었었는데”
그러면서 혜은은 가방안의 지갑 속을 뒤적거렸지만 명함을 찾진 못했다.
“그 사람이 가져간 걸까요?”
“아뇨. 명함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깐요, 혜은씨 지갑에 손대면서 가져갔다는 건 확실치 않아요. 저도 예전에 받았기도 했고.”
“흠..”
혜은은 갑자기 골똘히 생각하더니 자신의 휴대폰 속 사진을 나에게 보여줬다.
“아까 저를 사칭했다고 하는 분 혹시 이렇게 생겼나요?”
“아 네 맞아요. 이런 모습 이였어요. 어? 어떻게 아세요?”
“저희 교수님이에요.”
“네? 교수님이 왜 혜은씨를 사칭해서 저에게 접근한 거죠?”
“아마도 제가 여기 의뢰해서 자기가 잘못한 게 밝혀지는 게 싫어서 그런 거겠죠.”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됨을 감지하고 재빨리 녹음기를 켰다.
“작년 9월이었어요. 저는 2학년이고 전 남자친구는 복학한 1년 선배였어요.
만나는 도중 큰 문제는 없었는데 강지영이라고 아까 사진 속 그 교수랑 관련하면 항상 싸우기 시작했어요.”
“그 교수님이 아까 사진 속 그 분인가요?”
“네. 저희 학과 실질적인 실세에요. 학과장은 아니지만 그분이 모든 일을 주도하시거든요. 그리고 그 교수님 수업은 시험이 굉장히 어렵고 까다롭기로 소문 나있고 학생들한테는 에이 또는 씨 밖에 주지 않는 교수님이세요.”
혜인은 잠깐 생각하더니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 교수님이 학생 차별이 심한데 유독 남자 학생들을 아낀다는 소문이 있었거든요. 저는 그전에 한 번도 듣지 못하다가 이번에 전 남자친구랑 같이 그 교수님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전남자친구는 자기는 전에 이분한테 들어서 에이 받았다고 저도 도와주겠다기에 흔쾌히 같이 수업을 들은 거였거든요.”
“네.”
“사실 전 장학금을 꼭 받아야하기 때문에 어려운 과목은 최대 피하고 싶었거든요.”
“장학금이요?”
“네, 장학금 아니면 학교를 더 다니기도 어려워서.. 그렇다고 제가 피할 수 없는 과목이기도 했어요. 필수 전공이긴 했거든요.”
“하긴 그러면 어쩔 수 없긴 했겠네요.”
“근데 수업은 문제가 없었는데 수업 끝나고 제 전 남자친구랑 상담을 이유로 점심을 꽤 자주 먹었어요. 그리고 주말에 종종 그 교수님한테 개인적 연락이 오기도 했구요. 전 남자친구는 당연히 지도 교수고 내년에 취업 준비나 방향 잡아야한다고 연락하는 거라고 했지만 제가 통화내용을 살짝 들었을 땐 그것보단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였거든요.”
“그래서 전 남친이랑 다툼이 잦았나요?”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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