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옥상에 서서
.
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저는 그때 인사를 하지 말았어야했나 후회했어요.”
“그치만 그건..”
“제가 여기서 뛰어내리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까요? 지금 이 힘든 시간도 다 끝이 날까요?”
“아니. 아니...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갑자기 반말해서 미안. 근데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 네가 돌이키려 할 필요도 없어.”
“그들은 항상 제 잘못이래요. 제가 없으면 다 해결 된대요.”
“그렇지 않아. 너는 잘못한 게 없어. 나쁜 것도 다 그들이야. 너는 괴롭힘 자체가 나쁜 거니까.”
“아줌마는 왜 절 도와줘요? 학교도 아무도 절 도와주지 않는데..”
“난 청소부니까. 쓰레기를 치우고 싶은 것뿐이야. 물론 네가 아닌 그 무리들 말야.”
그는 점점 표정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그동안의 괴로움, 힘들었던 순간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나보다
그는 점점 몸에 힘이 풀렸고 그는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학교도 친구들도 아무도 절 도와주지 않았어요. 제가 당연히 벌을 받는 게 당연한...”그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전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그냥 수업 시간에 가만히 수업 받고 밥 먹을 때 그냥 밥 다 먹고... 그게... 저에겐 ...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있잖아. 나도 그렇게 괴로웠던 적이 있었어. 물론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서 알아. 넌 아무 잘못이 없어. 괴롭힌 사람들이 나쁜 거야.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 끙끙 앓고 오늘 하루 무사히 그냥 조용히만 넘어갔으면 한다는 마음 누구 보다 잘 알아. 그러니까 널 포기하거나 네가 없어져야 끝난다고 생각하지마. 너는 지금 이대로 충분해.”
그는 울며 아무 말이 없었다.
학교 옥상에선 하교 종소리가 울렸고 나는 그의 마음이 진정이 될 때까지 바라봤다.
옥상 아래 학생들의 신나게 떠들며 집 가는 소리.
찬혁이가 있는 곳과는 대조되도록 아이들은 너무 해맑게 집에 가고 있었다.
나는 찬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찬혁이 여기서 흐느껴 울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걸 이들은 알까?
아마 지금 이 순간 다들 집 가기 바빠서 신경도 안 쓰겠지?
나는 그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위로의 말뿐.
사실 이 말도 시간이 지나고 괴롭힘이 가중되면 또다시 잊혀 진다.
그의 어둠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찬혁은 약간은 진정이 되었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집에 같이 갈래? 내가 데려다 줄게. 물론 같이 들어간다는 건 아니고... 그니까 이상한게 아니라 알지? 그냥 집근처까지만 간다는 거야. 걔네가 또 와서 괴롭힐 수 있으니깐.”
“네.”
그는 엷은 미소를 비치며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나는 그의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내가 같이 집에 가늘게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되지만 그나마 마음의 위로라도 됐으면 했다.
“저기 혹시 찬혁아. 부모님은 아시니?”
“아뇨?”
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괜히 물어봤나 싶은 마음이었다.
“관심 없어요. 부모님은. 제가 다쳐도 신경 안 쓸걸요.”
그의 눈은 매우 공허했다.
아마 말해도 관심 없을 걸 아니까 그냥 일부러 말을 안 한 건가 싶었지만 이렇게 맨날 다치고 그러면 부모님이 눈치 못 챘을 리 없을 것이다.
“부모님도 네가 불편해 할 까봐 말을 못 꺼낸 건 아닐까?”
“그냥 두 분은 매일 늦게 들어와요. 제가 어찌되든 관심 없을 거에요. 그리고 맨날 바빠서 늦게 들어오는 부모님에게 말해봤자 걱정만 늘 뿐이잖아요.”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했고 그 모습이 먼가 안타까웠다.
아마 학교서도 부모님에게서도 말을 해도 보호 받지 못할 걸 알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 그가 그동안 고민하고 속으로 거절당할 걸 생각하고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했을 그를 보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멈춰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당신이 놓고 간 건가요?”
‘당신의 억울함을 들어드립니다.’라고 적힌 명함이었다.
“아니.”
“아.. 어느 날 신발장을 보니 이게 들어 있었어요. 들키지 않게 집으로 들고 왔었거든요. 혹시 들키면 걔네들이 찢어버릴 것 같아서...”
“그랬구나.”
“여기 뒤에 있는 큐알코드 들어가 봤는데 아무것도 안나오더라구요. 그냥 이것도 누군가의 장난 이겠거니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며칠 뒤 아줌마가 학교로 왔고 절 도와주길래 혹시 이곳에서 온 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장난으로 내 신발장에 넣은 게 아니라 진짜 도와주고 싶어서 누가 놓고 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뭐.. 사실대로 말하면 전부 틀린 이야기는 아니야.”
“네?”
“너를 도우러 온건 맞아. 사실 실질적인 도움은 되진 못했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너를 도우려고 했거든. 근데 그걸 넣은 건 내가 아니야. 나도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에 그 명함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이 명함 받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 나도 이걸 준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널 응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너는 무얼 원하니? 이 일이 어떻게 해결 됐으면 좋겠어?”
“그냥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그냥 일상. 그 전까진 친구들이랑 같이 밥도 먹고 평범하게 잘 지냈거든요. 그냥 그런 평범한 하루가 다시 돌아오면 좋겠어요.”
“널 괴롭힌 친구들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니?”
그는 말을 약간 망설이는 느낌이었다.
“그냥.. 보고 싶지 않아요. 볼 때마다 고통스러워요.”
“그렇구나.. 뭐.. 내가 그 친구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사실 나도 시키는 대로 하는 입장이니까... 그치만 널 돕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야. 그럼 조심히 들어가렴.”
찬혁이 집 안에 들어가는 걸 확인 한 후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돌아오는 길 뭔가 적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위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보고 하려고 전화 드렸어요.”
“뭐 어떻게 됐나요?”
“점심시간에 빵을 먹고 있었는데 그 무리들이 못 먹게 방해하고, 쉬는 시간엔 옷을 찢고 그리고 찬혁이는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도 했어요. 물론 다행히 뛰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집에 돌아가는 길인가요?”
“네.. 흠... 근데요, 제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어떤?“
“제가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막상 도와줄 타이밍에 제대로 못 나서는 것 같아서..”
“지금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위로가 될 겁니다.”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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