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름대신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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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이 이 사실을 당장 공개 안하는 이유를 듣게 되었다.
자신의 학점을 올리기 전에 파면할 우려가 있다는 것.
이 일이 알려지게 된다면 당연히 교수가 파면을 면치 못할 것임에 틀림없지만 자신의 학점을 고쳐주기 전에 터지면 매우 곤란하기 때문에 이같이 행동한 것이었다.
뭐 어차피 칼날은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녀가 원하는 것에 더 쉽게 다가가리라 생각되었다.
“저 이 사건이 스케일이 커서 지금 당장은 조용히 넘어가도 나중엔 문제 되지 않을 까요? 다른 사람들도 이 일을 같이 지켜봤잖아요. vip회원들이니까 안전이나 이런 것들 때문이라도...”
“그건 문제 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거기 있는 사람 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제가 고용한 연기자들 이었으니깐요.”
“다 연기자였다고요??”
“네. 그들이 입을 열게 끔 만들 것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었어요. 물론 비밀 발설 금지에 대한 계약과 비용을 지불한 상태이고 계약을 어긴다면 그건 어쩔 도리 없이 사회의 순리에 따라야 겠죠.”
“정말 당황스럽네요. 거기 있는 직원들 다 연기자였다니..”
“정확히는 홀 안에 있는 사람들만 연기자였죠. 처음 그들이 들어오고 혼잡해 질 때 일반인들을 밖으로 다 내보냈고 몇몇 직원들에게는 대표님이 무슨 일 있어도 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전했어요. 그 뒤는 아시다시피 계획된 대로 진행이 된 거구요.”
점점 그의 말을 들을수록 믿을 수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이 일을 벌이게 된 계기부터 연기자들까지 고용해 그들의 입을 열게 만드는 것 까지 전부다 황당하고 말이 안 되는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이 내 앞에 벌어졌고 나 또한 그런 경험을 했기에 모든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겐 이 모든 일들이 과하고 억지스러워 보였지만 결국 원하는 대로 해결해 준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럼 혹시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
“비용?”
“의뢰하고 지불한 비용이 있을 것 아니에요. 저는 사실 우연치 않게 된 거라... 제가 딱히 의뢰한 것도 아니었고 대가를 지불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근데 이 분은 의뢰한 거잖아요.”
“그건 제가 대답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밑에서 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아... 네.”
“저 그럼 다음 사건에도 우리 또 만날 수 있는 건가요?”
“그건 모르죠. 저도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니까.”
“그럼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한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갑자기 이 질문에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눈치를 보았고 어차피 언제 볼지 모르는 사람 이름을 물은 게 큰 죄인마냥 바닥에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뭐 알려주기 싫으면 안 알려 주셔도 되요. 어차피 다시 만날 거란 보장도 없는데.. 그쵸. 죄송해요. 제가 좀 과했네요. 하하..”
멋쩍은 웃음, 그 뒤엔 다시 정적이었다.
“이름 말고 그냥 호칭으로 불러주세요.”
“그럼 어떤....”
“.... 지민씨가 정해주세요. 부르고 싶은 대로..”
“... 네?”
갑자기 졸지에 작명소가 된 것은 기분 탓인가?
그만큼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싶은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에 남의 호칭까지 지어줄 만큼 머리가 돌아가진 않았다.
“... 에이스?”
그냥 아무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에이스요?”
“그냥 이것저것 다 잘하니깐 에이스 아닌가 싶어서요. 별론가요?”
“아니요.”
그는 내 말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하늘을 향해 획하고 돌렸다.
“네.. 그러면 그렇게 부를게요. 에이스..”
“네.”
그는 그 말에 다시 옅은 미소를 입에 띠었다.
그 모습이 마치 칭찬을 처음 받는 쑥쓰럼 많은 어린애 같았다.
“저..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가벼운 인사치레의 말을 건네고 자리에 일어났다.
까만 하늘에 우리가 앉은 벤치만 비추는 가로등.
이 모든 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정신없는 사건들.
살아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꽤 멀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난 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보통 일이 끝나면 보고 형식이라던가, 상황이라던가, 피드백이라던가, 어떤 언질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작정 나 잘했나 물어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와 관련한 정보 연락처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했으니깐.
유일한 흔적이라곤 내 캐비닛에서 발견한 명함,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을 시작한지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 쯤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오랜만이에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저 그동안 연락이...”
“연락이 없어서 서운했나요? 뭐 일 적게 하고 돈 받으면 좋은 거 아닌가?”
“아... 뭐 생각해 보면 그렇긴 하네요.. 하하...”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요?”
“며칠 뒤 월급날이잖아요.”
“아?! 진짜 주는거에요?”
“가짜로 주기 위해 계약한건 아니니깐요. 구두 계약도 계약인걸요. 뭐 받기 싫으면 안 받으셔도 되긴 하는..”
“아뇨! 그럴 리가요. 기다렸습니다!!”
“그럼 계좌 알려주세요.”
“00은행 101-451155-7784xx.”
“수고하셨어요.”
“근데 그 혜인이 사건 이후로 연락 왜 안하신건가요?”
“뭐, 제가 그 사건을 다 지켜봤기 때문에 따로 부탁할 일은 없어서 안한 건대요.”
“그렇긴 한데, 제가 처음 일을 한 거라 이게 맞나? 잘 몰라서요.”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당신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연락할 이유를 못느꼈네요. 뭐 그것 때문에 불안하게 만든 거라면 죄송해요.”
“아뇨.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한건 아니구요...”
“그러고 보니 그 친구 별명 지어줬다면서요. 에이스라고.”
“네. 그렇죠.”
“그럼 저는 뭐에요?”
“네?”
“저도 뭐 하나 지어주세요.”
“제가 왜.. 그냥 이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에이, 서운하게 저는 고용주인데 저도 뭐 지어줘요.”
“그럼 불리고 싶은 게 있나요?”
“뭐... 전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흠... 그렇다면 할아버지?”
“아뇨 제가 왜 할아버집니까”
“그럼 아저씨?”
“싫습니다.”
“아무거나 해도 된다면서요. 다 싫으면 뭐로 해요.”
“아무거나 상관없긴 해도 그건 좀 심하지 않아요. 저 당신이랑 나이 차이 많이 안 나거든요.”
“제 나이를 어떻게 아세요?”
“직원의 나이도 모르면서 고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당연히 다 알고 있죠.”
“뭔가 개인정보 털린 기분이네요.. 흠.. 그럼 위키 어때요?”
“위키? 키위?”
“아뇨, 위키 백과의 위키요. 뭔가 잡다한 것들을 다 알고 있으니깐요.”
“뭐 나쁘지 않네요. 그런 의미로 할 일을 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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