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다가오는 먹구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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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지?”
“네. 좀 힘들었지만 이렇게 입출국이 어려워졌으니, 이번에 못 가봤으면 일본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모를 뻔했어요.”
“그래 나도 자네의 말에 긴가민가해서 직접 가서 확인해 보잔 맘으로 가자고 했던 건데 예전의 그 일본이 아닌듯해.”
“이제 어떡할까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다만 정부 쪽 사람들도 이런 변화는 이미 인지하고 있을 테니 우리가 목격하고 느낀 분위기를 대통령님 드릴 보고서에 잘 전달해야겠지.”
“전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듯해요. 이렇게 일본과 군사력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데, 팬데믹 사태로 군의 전력 증강 예산을 추경예산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지금의 경제난도 무섭지만 앞으로 10년 뒤 차이가 더 벌어질 한 일간의 군사력 격차가 어떤 일을 일으킬지 더 두렵네요.”
“그래 나도 말은 안 했지만 그게 걱정이야.”
공항을 빠져나온 석필은 담배를 사서 입에 물었다.
“담배 끊으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끊은 지 꽤 되었는데, 오늘은 한 대 피워야 답답한 맘이 사라질 거 같아.”
무심한 듯 내뿜는 석필의 담배 연기를 바라보면서 형민도 자판기에서 뽑은 캔 음료로 속을 달랬다.
“오늘은 해어지고 내일부터 또 머리를 맞대 보세. 뭔가 방법이 있겠지.
오후에 자네 사무실로 가겠네.”
“네. 푹 쉬시고 내일 볼게요.”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을 한 석필과 형민은 무거운 맘으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2020.3.21.
악몽에 쫓기듯 시달리던 형민은 새벽에 눈을 떴다.
아직 밤에는 추운 날씨였지만 꿈에서 무언가와 싸우던 형민의 등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무엇이었을까? 나를 쫓아오던 사람들은...’
군 전역 후 7년이 지나 예비군훈련도 이제 얼마 안 남은 형민이었지만 오랜만에 전투 훈련처럼 누군가와 싸우는 꿈에 스스로 생각해 봐도 우스울 따름이었다.
제대하고 이틀 뒤 군부대 정문을 다시 통과하던 꿈을 꾸고 다시는 갈 일 없는 그곳에 무슨 미련이 남았나 하며 씩씩대며 일어났던 뒤로 처음 꾸는 이상한 악몽이었다.
잠이 싹 달아난 형민은 컴퓨터를 켜고 직장생활 때 방산업체들 분석하던 자료 파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증권사를 퇴직 한 이후, 독립하면서 형민이 되고 싶었던 애널리스트가 있었다.
‘퀀츠 애널리스트’
퀀츠 ‘수량으로 잴 수 있는’ 의미를 뜻하는 퀀터테이티브(Quantitative) 의 약자였다.
‘계량할 수 없는 무엇을 계량화시킨다.’
과거와 현재의 숫자를 분석해서 미래를 예상하는 애널리스트의 세계에서 계량할 수 없는 무엇을 계량화시킨다는 말처럼 형민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는 없었다.
그동안 증권사에서는 못했던 기업들 최고경영자의 정확한 분석과 회계자료의 객관적 분석으로 나름 적중률 높은 애널리스트로 소문이 나고 있었던 형민이었다.
‘그래 내 분석 방법을 주변국에도 적용해 보자. 어차피 위험 요소와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대응 요소를 통해 기업을 분석하던 방법과 국가 간의 분석을 하는 방법은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
도전이 있으면 그 도전을 상쇄할 수 있는 응전이 있기 마련이다.
’일본의 능력을 막을 수 있는 정확한 응전의 총량을 계산해 낼 수 있다면...’
형민의 눈이 반짝였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었지만, 안될 일은 없었다.
형민이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미국의 전설적인 분석가 앤드루 마셜을 보면 20세기 소련과 미국 간의 냉전에서 그가 소련의 군사력을 이기기 위한 미국의 군사력을 어떤 분야에 어떻게 배분하여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을 세운 이야기를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났다.
한국이 일본의 막강한 군사력을 쫓아갈 수는 없지만, 어떤 분야에 어떻게 배분하여 투입하는지에 따라 최소 비용으로 방어를 가능하게 하는 최적의 군사력 조합이 있을 것이다.
한국이 외부로부터 직면한 국가의 위험을 계량화시킬 수 있다면, 물적 인적 자원을 어떻게 어느 분야에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투자하느냐에 따라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대응책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강력한 일본의 군사력을 상대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형민의 머리를 순간 스치는 것은 뉴턴의 제3운동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었다.
F ab = - F ab
F ab 는 b 요소가 a 요소에 작용하는 힘 = - F ab 는 a 요소가 b 요소에 작용하는 힘
마주 서서 손바닥으로 밀어내기 게임을 할 때, 한 사람이 먼저 밀어도 밀린 사람과 마찬가지로 민 사람도 뒤로 밀리는 것 같은 이치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운동의 법칙 중 하나였다.
야구 경기를 봐도 공을 야구 배트로 때릴 때 역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슬로우 영상으로 보면 날아오던 공도 야구 배트를 밀어내어 배트 역시 미세하게 뒤로 밀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물질과 운동의 역학 관계에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 불가능해 보이지만, 모든 물질과 힘의 역학은 운동 법칙을 벗어나는 것은 없다.’
뭔가 희미한 해법이 생각나는 듯했다.
‘F ab을 일본으로 놓고 - F ab을 한국이라 놓으면, 일본의 작용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작용 힘을 한국이 알 수 있다면 한국의 능력 내에서 가능한 준비 수준을 계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작용에 대처할 수 있는 최적의 반작용 값을 한국이 알 수 있다면..!
'이걸 계산으로 도출할 수 있을까?‘
만약 주변의 위협에 방어할 수 있는 최소의 자원으로 최적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투자법을 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답이 될 것이다.
형민의 머릿속에는 산처럼 쌓여있는 미지의 숫자들이 움직이며 덤불 속에서 잃어버린 목걸이를 찾는 것처럼 어떤 숫자를 찾아낼 수 있다고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 오자 형민은 PC에서 뽑은 여러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아침도 거른 채 서둘러 차로 5분 거리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의 컴퓨터로 데이터를 옮기고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복잡한 셈법을 구체화하기 위해 몰두했다.
입력할 요소들을 추리고 이렇게 적용할 요소들을 대입할 하나의 공식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객관적인 데이터의 선별이 필요했다.
컴퓨터에서 일본의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 육상자위대의 부대 편제, 무기 종류, 숫자 등을 조사해서 데이터를 뽑기 시작했다.
보기 편하게 인쇄하기 위해서 프린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생각이 드는 순간,
전에 사무실을 사용하시던 사람이 놓고 간 구석에 방치되었던 오래된 프린터가 눈에 띄었다.
케이블을 연결하고 출력 버튼을 누르자 숫자로 표시된 데이터들이 1m를 넘어 계속 2m가 더 되게 프린트되며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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