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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man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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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man
작품등록일 :
2019.05.09 17:45
최근연재일 :
2020.03.12 08:4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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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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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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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방과 후

DUMMY

음악실. 체육관, 급식실, 가정실, 실험실 등 어느 정도 교내를 소개 시켜준 뒤 나는 학교 뒤편을 소개시켜줬다.


“여기가 토끼 사육장이에요.”


“오~!” 라고 감탄사를 내뱉은 김하윤은 조심스럽게 쭈그려 앉아 토끼를 구경했다.


“정말 귀엽네요.”


“그렇죠?”


담담하게 김하윤의 반응을 받아쳤다.


“옛날에는 신곡중학교 부지에 있어서 중학교 애들이 봐줬는데 지금은 고등학교 부지로 옮기게 돼서 지금은 사육 담당반 애들이 돌아가면서 돌봐주게 됐어요.”


“그럼 저희 반도 토끼를 돌봐줄 수 있나요?”


“아니요······. 저희 반은 사육담담이 아니어서······ 대신에 선생님께 부탁드리면 따로 돌봐줄 수는 있어요.”


“아······ 그렇군요. 좋은 학교네요. 이렇게 귀여운 토끼도 볼 수 있고. 그런데 왜 중학교 부지에서 고등학교 부지로 옮기게 된 거죠? 중학생들도 길러보면 좋았을 텐데 책임감도 기르고······.”


책임감······. 정말 무거운 단어.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우리(학생)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하는 가? 그런 생각을 잠시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중1이었을 때 학교에서 기르던 토끼가 차례대로 죽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네?”


김하윤은 내 말에 경악의 눈빛을 띄었다.


“무슨 일이었죠?”


“늑대가 그랬어요······.”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늑대라니······ 그게 말이 되는 가? 아파트가 이렇게나 즐비해 있는데? 하지만 황당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김하윤은 입가에 손을 갖다 댄 채 사뭇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빠져있는 거처럼 보였다.


“저기······ 그렇게 진진하게 생각 안하셔도 돼요. 마, 말도 안 돼는 소리잖아요. 늑대라니······.”


나는 손을 저으며 내가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다고 김하윤은 내게 질문을 건넸다.


“그렇다면 우정씨는 왜 제게 늑대가 했다고 말하셨나요? 아니라고 생각하셨지만 저한테 그렇게 얘기하신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 그건······.”


차분한 눈빛으로 빤하게 내 눈동자를 파고드는 김하윤에게 나는 쭈뼛거렸다. 그런 내 태도를 눈치 챘을까? 김하윤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우정씨 너무 어려워 마세요. 저도 우정씨와 같은 또래의 남학생이니까요. 경어 같은 건 안 쓰셔도 돼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김하윤은 그렇게 말했다.


“아, 아니. 제가 처음 만난 사람하고 대화하는 게 서툴러서······.”


부끄럽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 아니면 그냥 토끼 사육장 안으로 들어가 버릴까?


“처음 만났는데 낯을 안 가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김하윤은 그런 내 태도가 퍽 웃겼는지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그럼 하, 하윤씨는 왜 저한테 경어를 쓰세요? 그거 때문에 저도 경어 쓴 거예요!”


살면서 동급생한테 경어를 쓰는 사람은 난생 처음 본다.


“아~. 확실히.”


김하윤은 그제야 왜 내가 거리를 두었는지 알았다는 거처럼 작게 입을 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제가 죄송하네요. 옛날부터 경어 쓰는 게 버릇이 되가지고······ 평범하게 여겨주세요. 다가가기 힘들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저도 워낙 버릇이 들어서 고치기 힘들거든요.


“네······. 저도 노력해 볼게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노력해보자. 물론, 내가 저 사람을 어렵게 대하는 건 경어뿐만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서 우정씨는 왜 늑대가 죽였다고 말하셨나요? 꽤 신경 쓰이네요.”


김하윤은 호기심의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다.


“아······. 대단한 이유는 없어요. 학교에서 그렇게 발표했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요?”


김하윤은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 반응은 당연한 거다. 이렇게 아파트가 즐비한 곳에 늑대가 웬 말이냐. 탄천에 서식하는 너구리가 그랬다고 하는 게 더 현실성이 있을 노릇이다.


“솔직히 말해서······ 범인은 따로 있어요. 토끼를 죽인 범인은······.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 측에서 이런 잔인한 사건의 범인을 학생이라고 발표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늑대가 그랬다고 둘러댄 거예요.”


이게 중1때 있던 토끼 사건의 전말이다. 나는 어쩌다보니, 어떻게 생각하면 운 없이 그 장면을 목격했고 숨죽이고 말았다. 그 시절에 나는 소시민이었다.


“흠······ 그럼 진짜 범인은 어떻게 됐죠?”


호기심이 그치지 않는지 김하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전학 갔어요. 속편한 일이죠. 학교를 그렇게 공포에 몰아넣었는데 자기는 마치 아무 일도 안 한 것처럼 전학을 가버렸으니······.”


개 같은 자식······. 엿 같은 자식······. 벼락이라도 맞았으면 좋겠다.


“그 범인이라는 사람은 벌을 받았을까요?”


“그거야 모르죠. 범인의 아빠가 다른 학교의 이사장이어서 적당히 훈방조치 받고 끝났을지도 몰라요. 교내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쉬쉬해서 저처럼 범인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런가요······.”


그 당시의 토끼의 죽음을 애도하는 거처럼 김하윤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꽤 수심에 잠긴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마치 사건의 당사자인 것 마냥······.


“그런데 우정씨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 있나요?”


“······네. 몇몇 친한 친구들이랑 희정 누나한테 말한 적 있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음에 답했다. 왜 묻는 말에 줄줄이 다 답하는 걸까? 나는?


“희정 누나······.”


“아! 오늘 일 때문에 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희정 선생님은 제 사촌 누나예요.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병원이랑 학교에서 만나 봬서 그 정도는 대충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아달라니······ 이유가 있나요?”


“그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자 했다.


“제가 희정 누나를 좋아해요.”


짧고 간결하게 한마디를 마친 순간 강한 바람이 불며 김하윤의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이 올라갔다. 머리카락의 의해 숨겨져 있던 오른쪽 눈은 아주 평범했다. 나는 무슨 화상자국 때문에 가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만 왼쪽 눈과 오른쪽 눈 둘다 죽어버린 생선의 눈을 하고 있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거처럼······.


“아니, 제가 말을 이상하게 했네요. 확실히 사촌 누나를 좋아한다는 말이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제 친구들 사이에서 제가 희정 누나를 좋아한다는 설정이어서 그래요.


“······.”


김하윤은 별 말을 하지 않다가 차분한 손놀림으로 올라간 머리카락을 다시 내리며 입을 열었다.

“······설정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그······ 있잖아요. 애들끼리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엄마라고 말하면 멍석말이 당할 테니까 대신 말한 거예요.”


“흐음······. 그렇군요······.”


그제야 김하윤은 내 말을 이해한 거처럼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좋아요. 그 비밀은 지켜드릴 테니까. 대신 약속해주세요.”


김하윤은 집게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약속이요?”


뭔 약속을 하라는 거야? 수진이랑 계약한 거 때문에 약속 같은 건 신물 나는데······.


“경어, 쓰지 말아주세요.”


“네? 노력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렇게 당황하는 나를 보며 김하윤은 싱긋 웃어보였다.


“아뇨. 그 이후로 지금까지의 대화를 곱씹어 본 결과, 우정씨는 단 한 번도 경어를 안 쓰신 적이 없어요.”


단호함이 묻어나는 어조로 김하윤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기는 한데······.”


아니, 처음만난 동급생한테 경어로 먼저 말 걸어온 사람한테 어떻게 편하게 말을 거냐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만약, 희정 누나와 나의 관계가 밝혀진다면 난 무조건 멍석말이 행이다. 어쩔 수 없지. 재우처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일 겸 나도 노력하자······.


“자, 잘 부탁해.”

······라고 말하며 나는 쭈그려 앉아있는 김하윤에게 손을 건넸다.


“······.”


김하윤은 아무 말 없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손을 바라봤다.


이런······ 너무 나섰나?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김하윤은 피식 웃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나 싶었는데 담담한 목소리의 주인의 손은 예상한 것보다 너무 부드러웠기에 나는 그만 부끄러움을 못 이겨 손을 놔버렸다.


“응?”


그런 나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김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당연한 반응이다. 먼저 손을 건넨 사람이 손을 잡자마자 놔버리다니.


“그······ 남자 맞으세요?”


무례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 속의 그 애와 계속 겹쳐 보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쭈뼛거리며 김하윤의 동태를 살폈다. 화를 내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자.


“푸후흡.”


하지만 화를 낼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김하윤은 입가에 손을 갖다 대더니 부드럽게 웃음을 내뱉었다.


“미, 미안해. 처음 만난 사람한테 너무······.”


“아뇨. 아뇨. 괜찮아요. 흔히들 하는 오해니까요. 오늘도 학교에서 그런 질문 많이 받았어요.”


김하윤은 마치 익숙한 일이라는 것 마냥 말했다.


“머리카락 때문이죠? 오해를 하시는 건?”


그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머리카락 뿐만은 아니지만······.


“흠······.”


김하윤은 잠시 오른쪽 눈을 가리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확실히 처음 만난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이 머리 꽤 취향이에요.”


“취향?”


김하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나를 보고 김하윤은 얇게 미소 짓더니······.


“흔히 말하는 패티쉬죠.”


······라고 말했다. 왠지 모를 당당한 목소리로.


나는 순간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멍 때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머리는 오로지 자신의 그렇고 그런 취향인 거······ 야?”


“네.”


김하윤은 명쾌하게 그리고 밝게 답했다.


변태다. 저 사람 분명 변태다. 어떻게 장발의 패티쉬가 있다고 자기 스스로 장발을 기르다니······.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여러 취향의 사람이 있으니 받아들여야······ 하나?


“저기······ 우정씨 너무 충격 받으신 거 아니에요? 저는 꽤 용기를 내서 말씀 드린 건데······.”


김하윤은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 그럴 수도 있죠? 한창때의 남자애인데······ 저, 저도 장발이 좋아요!”


횡설수설하는 나를 제발 누가 말려주기를 바랐지만 입 따로 머리 따로 노니 어쩔 수가 없었다.


“푸흡! 그래서 우정씨도 머리를 기르는 거예요?”


아뇨, 당신같이 자신의 머리를 즐기는 변태 같은 취향은 아니어서요. 그냥 기르는 거예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순화해서 말하기로 했다.


“아, 아뇨, 이건 그냥 기르는 거예요!”


장발이 좋지만 저는 제 머리카락에서 그런 걸 느끼지 않아요. 나르시시즘을 느끼지 않는다구요! 라는 마음을 담아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후훗.”


김하윤은 그런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얇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리고?”


“손도 남자치고 고운데다가······ 목소리도 좀······.”


악수를 요청했을 때 느꼈던 손의 부드러움······. 뭐랄까? 동성의 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 그거 때문이시군요? 피아노를 치다보니까 손 관리를 안 할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예요.”


“아~.”


별 감흥이 오는 말은 아니었지만 대충 납득하기로 했다. 어렸을 때 봤던 피아노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친구가 악기를 다루는 사람은 손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충고한 장면이 있었으니······.


“흠······ 한 번 보여드릴까요?”


얼렁뚱땅 납득하는 나의 태도가 티가 났는지 김하윤은 손깍지를 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럴 필요까지야······.”


이런 황량한 학교 뒤편에서 무엇을 보여준단 말인가? 애초에 피아노도 없는데······.


“등 좀 보여주세요.”


“뭐?”


순간 등을 보여 달라는 그 말에 표정이 붕괴하고 말았다..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 것이다.


“어서.”


“어······, 어”


뭔가 말투가 변한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호하게 압박을 가하는 느낌이어서 거부하자! 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나는 등을 돌려 마이를 살짝 들어올렸다. 생각한 것보다 꽤 추웠다. 아직 4월초여서 그런가?


그런 말을 한 김하윤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 와이셔츠에 올리더니 그대로 건반을 두드리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무슨 곡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등에 전해지는 손가락의 울림에 집중했지만 알 겨를이 없었다. 예술의 대해서는 문외한이고······.


“여기까지.”


대략 1분정도의 손놀림이 끝나자 김하윤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나서 정갈하게 손을 맞잡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떠셨어요?” 라고 김하윤은 질문을 던졌다.


“피아노 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정도?” 라고 나는 가볍게 답했다.


“좋은 칭찬이네요. 음악실에서 보여줄 걸 그랬네요. 아! 참고로 목소리는······.”


김하윤은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아~~~~~.” 라는 소리를 길게 반복해서 냈다. 그 소리는 저음에서 시작해 고음까지 그리고 여리 여리한 목소리에서 살짝 굵은 목소리까지 변화를 보여줬다. 신기한 발성이었다. 왠지 모르게 향수를 자극하는 목소리도 껴있는 것 같았지만······. 겉모습뿐만 아니라 다재다능한 사람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어때요? 이제 궁금증은 해결되셨나요? 머리카락도 그렇고 손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응.”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나의 그런 대답에 김하윤은 싱긋 웃어보였다.


“아니면 화장실가서 확인시켜줄 수도 있어요.”


“네?”


이건 또 뭔 소리야? 나는 당혹감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잖아요. 농담이에요. 농담.”


김하윤은 경악하는 나를 보고 손을 저으며 피식 웃었다.


뭔가 농담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역시 저 사람 머리카락 얘기할 때도 그렇고 변태기질이 있군······.


“그런데 우정씨는 처음만나 저한테 왜 그렇게 잘해주시는 거예요?”


“네?”


갑작스러운 그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내가 지금 잘해주고 있는 건가?


“아뇨. 그렇잖아요. 사고를 내놓고도 병원에서 한 번도 모습을 안 비췄는데 화를 내기는커녕 전학생이라고 이렇게 학교도 소개시켜주시고. 친한 친구들한테만 말했다는 토끼 사건 얘기도 해주시고······. 물론, 아버지가 헤어지기 전에 우정씨가 좋은 분이라고 귀띔해주시기는 했지만······.”


확실히······ 합당한 생각이다. 병원에서 화가 나기는 했다. 만나기 전까지는······. 하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까 화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더 잘해줘야지. 라는 생각만 든다. 왜 그런 걸까? 내가 왜 나와 상관도 없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잘해주는 걸까? 그건······.


“······그건 네가 아는 사람을 닮아서 그래.”


“아는 사람이요?”


김하윤은 내 말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솔직하게 말할게······ 너 여자 형제 있어?”


확인하고 싶었다. 남자라는 걸 안 이상. 내 기억속의 인물과 닮으려면 쌍둥이거나 형제밖에 가능성이 없다.


“없는데요.”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짧고 굵었다.


“그, 그래?”


“네. 외동이에요.”


그 말은 정말 사실인가? 진실인가? 거짓이 없는가? 아니면 닮은 사촌이라도 있어? 라고 묻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파고들기 시작하면 나의 집요함에 의문을 느끼고 질려버릴 테니까······.


“흠······ 우정씨는 저랑 그렇게 닮은 사람을 보신 적이 있나요?”


“응. 그런데 그 사람은 여자였어······.”


김하윤의 질문에 나는 힘없이 답했다.


“흠······ 계속 머리카락이나 손 그리고 목소리에 대해서 물어보신 게 그 사람 때문이었군요. 그런데 어쩌죠? 저는 달려있는데?”


김하윤은 그런 말을 하며 양손을 작게 벌렸다.


“알아······. 확인도 다했고. 네가 남자라는 걸 알아. 하지만 정말 닮아서 그랬어. 미안해 좀 무례했지?”


중성적으로 보이는 김하윤의 외관을 보고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건넸다. 이 사람 진짜 남자 맞아? 라는 확인을 하기 위해. 분명 많은 사람들이 김하윤의 외모를 보고 나와 같은 질문을 반복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꽤 무례한 질문이었다.


“괜찮아요. 사고 내놓고 코빼기도 안보인 사람도 있는데요.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하죠. 그래도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으셨던 거죠? 저와 그 사람 사이를? 어떤 사람이었나요?”


넉살 좋은 웃음으로 그리고 따듯한 웃음으로 넘어가주는 김하윤은 그렇게 물었다.


“······나 때문에 전학 가버린 애야.”


“전학이요?”


“응.”


나는 암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김하윤은 조심스럽게 그렇게 물었다.


“아니.”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그 일에 대해 질문 받는다면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아니.” 뿐이었다.


“미안해. 내가 먼저 시작한 건데······.”


“아뇨, 저도 듣다보니까 신경 쓰여서 그랬어요. 신기하잖아요. 저와 똑닮은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여성으로······. 사귀기 쉽지 않을까요?”


손을 저으며 나를 배려하는 듯한 어조로 신경 쓰지 말라고 한 그의 말에 그의 인간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 말 빼고. 물론, 이 나이 때에 이성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 있겠냐마는······.


그런 내 생각이 얼굴에 나타났던 걸까? 김하윤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정씨는 관심 없으세요?”


“그렇지······ 이성에 딱히 관심 없어.”


단호한 어투로 딱 잘라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처음만난 사람한테 그런 것 까지 들어낼 이유도 필요도 없고. 실제로 아랑 선배를 제외하고는 딱히 다른 이성에게 관심은 없다.


“아뇨. 저는 똑닮은 사람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도플갱어요.”


“네? 아······.”


얼굴이 화끈 닳아 올랐다. 아니 이야기 수순에 따르면 이성과 변태성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타이밍 아니었어?


“후훗. 역시 재밌으시네요, 우정씨는.”


피식하고 웃어 보이는 그 모습은 나의 부끄러움을 최대치로 이끌었다.


“아, 아무튼 저희 학교는 이게 끝이야. 나, 나는 이만 바쁘니까 가볼게!”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고 나는 김하윤을 뒤로하고 교문을 향해 도망쳤다.


쪽팔려! 쪽팔려! 쪽팔려! 이성의 관심이 없어요. 라니 내가 뭐라고 처음 만나 사람한테 그것도 그 애를 닮은 사람한테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을 하며 속도를 줄였을 때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우정씨!”


제기랄······. 그냥 무시하고 다시 부르지 않기를 바랐지만 김하윤은 나를 불러 세우고 말았다. 부름을 받았으면 반응을 안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물론, 횡설수설하고 도망친 것도 예의가 아니기는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네?”


“갑자기 왜 도망치세요~.”


제가 왜 도망쳤겠습니까? 쪽팔려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다가오는 김하윤을 바라봤다.


김하윤은 내게 다가오더니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성에 딱히 관심 없어요.”


순간 눈이 잠겼다. 이 사람 분명 놀리고 있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격한 반응은 장난 끼를 더 발휘할 뿐 침착하자. Calm Down Man.

하지만 침착해지자라고 생각한다고 침착해지면 생활하기 얼마나 편할까? 깊숙한 곳에서 넘쳐 오르는 부끄러움이 내 얼굴을 완전히 새빨갛게 만들었다.


누가 좀 도와줘!!!

······라는 내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순간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 잠시만요.”

나는 먼저 시선을 돌리고자 침착하게 그런 말을 하며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누구의 전화인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선배의 전화였다. 당연 나에게 선배라는 사람은 아랑 선배밖에 없으니 이 전화는 내가 연모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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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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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무 생각이 없다 20.03.12 7 0 11쪽
» 방과 후 20.03.06 7 0 21쪽
29 그의 이름은 김하윤 19.10.30 21 0 14쪽
28 전학생이 오다 19.10.28 13 0 9쪽
27 기억 상실 19.10.26 19 0 9쪽
26 죽은 토끼의 향연(2부 프롤로그) 19.08.28 22 0 5쪽
25 1부 에필로그 19.07.13 26 0 11쪽
24 좋아한다고 19.07.04 31 0 5쪽
23 이제는 말할 수 있다(2) 19.06.29 34 0 15쪽
22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06.23 32 0 16쪽
21 기억의 바다(3) 19.06.20 26 0 5쪽
20 기억의 바다(2) 19.06.18 17 0 12쪽
19 기억의 바다 +2 19.06.16 28 0 15쪽
18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19.06.13 27 0 14쪽
17 금요일의 대결전 19.06.10 16 0 12쪽
16 계약 종료 +1 19.06.06 26 0 6쪽
15 이렇게 될 줄 몰랐어 +1 19.06.05 27 0 11쪽
14 옷가게로 가요 19.06.03 21 0 11쪽
13 곡별연자 +1 19.05.31 34 0 10쪽
12 영화보러 가요 19.05.30 21 0 11쪽
11 시공의 폭풍 19.05.27 20 0 19쪽
10 말했다 19.05.24 20 0 10쪽
9 식사를 마치고 19.05.23 18 0 12쪽
8 금요일은 동아리 시간 19.05.21 22 0 8쪽
7 고백 확정 19.05.17 21 0 9쪽
6 목요일(2) 19.05.15 27 0 12쪽
5 목요일 +1 19.05.13 72 1 10쪽
4 부탁 19.05.12 71 0 8쪽
3 계약 19.05.11 52 0 9쪽
2 고백 19.05.09 38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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