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했다
“뭐?”
방으로 돌아가려는 걸음을 멈추고 수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배······.”
수진이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재우 선배한테 능력을 쓸 의향은 없으신가요?”
“없어.”
나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즉답했다.
“그런 걸 왜 묻는 거야? 내가 그런 짓 할 리가 없잖아.”
“실은······ 제가 선배라면 할 거 같아서요.”
“의왼데? 굳이 왜?”
나는 그렇게 물으며 수진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단 좋아하는 사람이랑 데이트도 할 수 있고. 재우 선배의 마음까지 전부 알 수 있잖아요.”
“확실히 그런 방법도 있지.”
나는 손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능력은 그런 속편한 능력이 아니야. 다른 사람의 몸의 빙의해 기억과 마음을 읽는다는 건 내 경험상 80퍼센트 정도 대상자의 몸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다는 거니까.”
“그럼 평생 빙의한 상태로 살 수도 있겠네요. 선배가 나쁜 마음만 먹으면.”
“뭐 그렇기는 한데······.”
나는 멋쩍게 볼을 긁었다.
“중1때 말이야······ 나는 내 능력을 내 친구한테 사용했었어. 난생 처음으로.”
“그건 알아요. 중1때 능력을 각성하셨잖아요. 그때 분명 무슨 일이 있으셨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리 물어봐도 얘기도 안 해주시고······.”
수진이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의 말을 기다렸다.
“무슨 일이 있어냐라······ 내가 능력을 처음 쓴 여파인지 적응을 잘못해서 완전히 폭주해버렸어. 그 친구의 몸으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해버렸어······. 결국, 그 친구는 전학을 가게 됐어. 온전히 나 때문에.”
“······.”
수진이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에 경청했다.
“그 친구의 인생이 단 1초도 안 걸려서 내 머릿속에 들어왔어 필터도 안 걸린 채.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 친구가 까먹었던 일도 나는 다 알 수 있다는 거야. 그때는 정말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기억과 함께 한꺼번에 많은 희로애락아 느껴져서. 주로 화를 더 많이 느꼈지만. 하지만 제일 힘들었던 건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였어.
나와 함께 지내면서 나의 좋은 점과 싫은 점을 느꼈을 거 아니야. 근데 나한테 좋은 감정이 있다고 해도 나를 싫어할 때의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어. 그 친구를 다시는 못 볼 정도로······. 아, 내가 이렇게 해서 그 친구가 싫은 감정을 느끼게 했구나······. 그러면서 그 친구가 나한테 느낀 배신감을 내가 이해하게 됐을 때는 정말······.”
나는 말을 잠시 멈추고 그때를 회상했다. 나에게 있어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고. 정말 끔찍한 날이었다. 나는 사과해야만 한다고 느꼈지만 그런 용기를 낼 겨를도 없이 그 친구는 떠나버렸다. 나 같은 놈을 그렇게나 좋아해줬던 친구였는데······.
“물론, 내가 아빠한테도 능력을 쓰고 선배한테 능력을 써보면서 능력 컨트롤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나는 내 능력을 사용하면서 결심했어. 내 주변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능력을 쓰지 않기로.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견뎌 내는 게 너무 버거워. 그래서 누나가 아빠와 나를 떨어트려 놓은 거잖아.”
나는 긴말을 멈추고 그 동안 잠자코 있던 수진이를 쳐다봤다. 수진이는 잠시 눈을 꾹 감더니 결심이라도 다진 거 마냥 눈을 부릅뜨며······.
“저, 저는 선배를 싫어해 본적 없으니까! 저한테는 마음껏 쓰셔도 돼요!”
······라고 말했다.
“푸······ 흐흐흡”
“아니, 왜 그렇게 웃으세요! 진지하게 말한 건데!”
“아니······ 그냥 웃겨서.”
나는 손을 저으며 발끈하는 수진이를 진정시켰다.
“말했잖아. 지인들한테는 안 쓸 거라고. 애초에 너한테 쓸 필요도 없어. 내 능력은 4, 5살 이후의 기억부터 읽을 수 있으니까. 애초에 너희 부모님이랑 우리 부모님이 친해서 내 능력의 범위 보다 더 옛날부터 붙어 지냈잖아. 너랑 있었던 일 다 기억한다고.”
“4, 5살이요? 그건 왜 그런 거예요?”
수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글쎄다. 초능력이라는 게 애초에 상식 밖이니까.”
심지어 내가 몸에 들어갔어도 기억과 마음이 안 읽힌 사람이 있었다. 아랑 선배가 그 케이스다. 왠지 모르겠지만 안 읽혔다. 그때 내 몸으로 돌아오고 나서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선배, 정말로 저랑 어렸을 때 있었던 일 다 기억하세요? 능력을 안 쓰시고도?”
천장을 바라보며 옛날 일을 회상하고 있을 때 수진이가 그렇게 물었다.
“뭐······ 대충은?”
“진짜로요?”
수진이는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의 기억이라는 게 각색되거나 잊기는 마련인데······.”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을 이었다.
“부끄럽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 내가 탄천에 빠졌을 때 네가 구해준 건 아직도 기억해. 그때 아마 내가 초1이었나 초2였나?”
“초2셨어요.”
수진이는 갑자기 고개를 숙인 채 그렇게 말했다.
“아, 그랬냐?”
음······ 확실히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럼······ 그때 제가 선배를 구해드리고 했던 말 기억하세요?”
“흠······ 그때 네가 무슨 말 했었나?”
“······.”
“그때 펑펑 울었던 기억밖에 없는데······. 아무튼 이 얘기는 그만하자, 계속하니까 좀 부끄럽다.”
내 말이 마침과 동시에 수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수진이는 도망치듯이 방으로 돌아갔다.
“그, 그래.”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우면서 수진이가 한 말을 되새겼다.
“아랑 선배만 보지 말고 다른 것을 보라······. 그럼 많은 게 보일 것이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수진이한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면 내가 주변에 별 신경을 안 쓴 것 같다. 그러니 재우가 선배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선우가 재우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눈치 못 챘지.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하면 선배한테서 눈을 뗄 수 있지?
그런 고민을 하는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래! 이렇게 한 번 해보자.
나는 내가 생각해 낸 재치 있는 작전에 흡족해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수진이의 말을 의식해 나만의 작전으로 선배와 일부러 거리를 둔지 1주일이 지났다.
달라진 점은 없다. 새로 보이게 된 것도 없다. 대체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수진이의 말대로 선배한테서 눈을 뗐는데······.
소파에 앉아 자아성찰을 하고 있을 때 수진이가 말을 걸어왔다,
“선배, 이번 주에 대체 뭐하신 거예요? 아랑 선배랑 만나자 마자 도망치질 않나. 아랑 선배한테 전화가 와도 안 받지 않나.”
“아니······ 네 말대로 선배한테서 눈을 떼보려고 한 건데······ 별 효과 없는 거 같아.”
“당연하죠! 그건 오히려 선배를 의식하는 행동이라구요. 아랑 선배가 저한테 ‘내가 우정이한테 무슨 잘못했니?’라는 연락까지 받았다구요!”
“정말로?”
“네! 전화하면 씹고 만나면 도망치고 그런 게 무슨 눈을 떼는 행동이에요! 그냥 미친짓이지!”
“그러냐?”
아, 선배를 걱정 시키다니······. 뭐하는 거야, 나······.
머리를 싸매며 선배에게 괜한 걱정 시킨 것에 대해 끙끙거렸다.
“아무튼 선배, 다음에 아랑 선배 만나시면 꼭 사과하세요.”
“그래야겠다. 그런데 수진아.”
“네?”
“다음에 선배를 만나서 사과할 때 재우에 대한 걸 물어봐야할까?”
그 말에 수진이는 표정을 구기더니 이내 표정을 풀고 한 숨을 내쉬었다.
“······그건 선배가 알아서 하셔야죠. 도와드리고는 싶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그렇긴 하지······ 미안하다. 괜한 헛소리해서.”
“선배의 그런 헛소리 한, 두 번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선배가 정말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시면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막 사귀기 시작한 커플에 축복을 못 해줄망정 찬물 끼얹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재우 선배랑 아랑 선배가 선배한테 얘기를 안 하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너한테는 말했냐?”
“네?!”
무심코 던진 질문에 수진이는 시선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뭐야? 왜 시선을 피해?”
“그, 글쎄요?”
수진이는 집게손가락을 턱에 갖다 대며 그렇게 말했다.
수진이의 그 반응에 나는 넋이라도 나간 거처럼 고개를 떨어트렸다. 새하얗게 불타버린 느낌이 바로 이런 거구나······. 나한테는 말 안하고 수진이한테는 말했구나······.
“아, 아무튼 내일부터 준비해주세요.”
“······.”
“이, 이제 진우가 이민 갈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슬슬 사전준비를 할까 해서요.”
“······.”
“내, 내일은 바쁠 테니까. 일찍 일어나주세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힘들다. 방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소파에서 일어나 수진이를 뒤로하고 좀비 같은 걸음걸이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서, 선배!”
그런 나를 향해 수진이가 다급한 어조로 소리쳤지만 반응할 여력이 없어 무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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