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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man 님의 서재입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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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man
작품등록일 :
2019.05.09 17:45
최근연재일 :
2020.03.12 08:4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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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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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150,144

작성
19.06.1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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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억의 바다(2)

DUMMY

매 수업시간 마다 어디서 어떻게 고백할까? 하고 머리를 싸매며 궁리를 했다. 그러다 1학기 마지막 날에 같이 하교하면서 고백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방학을 같이 보내고 싶어서······.

하지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애가 있었는지 내가 계획한 그 마지막 날에 다른 그룹에 속해있던 호의를 호의로만 받아들이지 못한 멍청한 애가 반에서 공개 고백을 했다.



“호의를 호의로만 받아들이지 못한 멍청이라······.”



공개 고백······. 그것은 처형식이다. 남들 다보는 데서 거절하기도 그렇고 수락하기도 그렇다. 그리고 반 애들이나 다른 반 애들도 다 알게 돼서 고백을 받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든다. 나도 그런 고백을 몇 번 받아봤기에 그런 고백은 제발 안 해줬으면 한다.


반 밖에서 친구들과 함께 구경하면서 그렇게 느꼈다.


수진이가 걱정된다. 저런 행동은 고백해서 혼내주자! 밖에 안 되는데······.


고백은 금방 끝났다.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던 수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미안.” 라고 말하며 멍청한 애가 건넨 꽃다발을 받지 않았다.

몇 명이 느꼈을 까? 수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라고 말하면서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볼을 붉히는 걸.

멍청한 애한테 잔인한 일이지만 수진이는 고백 받는 중에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거절한 것이다.


혹시, 난가?



진우의 그 마음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귀엽네······. 흔히 있는 사춘기의 특징이지. 착각도 유분수라고.”


나는 그렇게 냉소적인 어조로 허공을 향해 쏘아붙였다. 하지만 나도 수진이의 그 너무한 태도에 진우와 같은 감상을 느꼈다. 수진이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누굴까?



고백이 끝나고 친구들은 쏜살같이 달려들어 차인 애를 “괜찮아! 괜찮아!” 하고 위로했다. 심지어 다른 반에 사정을 잘 모르는 애들까지도.


그런 복잡함 속에서 수진이는 책가방을 챙겨 재빠르게 도망쳤다. 나는 그런 수진이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따라갔다.


수진이는 진짜 빨랐다. 그렇게 도망치는 뒷모습을 쫓아가며 떠올렸다.


작년 운동회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린 던 애가 수진이였구나······. 혹시, 나는 그때부터 수진이를······.



“뭔 개소리야!”


자신의 과거를 조작하며 자신의 사랑에 필연성을 부여한 진우의 기억에 어이가 없었다.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구만! 운동회 때 계주 한 번 뛰고 힘들어서 누워 있다가 달리는 수진이 보고 ‘와! 개 빠르네.’ 라는 생각밖에 안 했잖아! 뭔 그때부터야!”


수진이에 대한 사랑이 내 마음속으로 깊게 침투해 며칠 동안은 수진이를 보면 능력의 여파로 심장이 두근거릴까봐 걱정했다.


잊지 말자. 내 이름은 정우정. 이진우가 아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수진이에 대한 애정은 진우의 애정이지 나의 애정이 아니다. 이 점을 명시하자.


그리고 내가 좋아······ 아니, 이런 말로는 내 몸에 흘러들어오는 애정을 거부할 수 없다. 다른 단어를 쓰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랑 선배다.


내가 아랑 선배에게 느끼는 감정과 진우가 수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기본적으로 사랑이지만 그 감정을 해석하는 방향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나는 아랑 선배에 대한 사랑의 방향성을 지침으로 삼아 진우의 사랑을 흘러내리며 된다.



“진수진!”


속도로는 수진이를 붙잡을 수 없어. 이름을 불러 멈춰 세우기로 했다.


수진이는 나의 목소리에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뭐야? 진우였어? 누가 득달같이 따라오길래 다른 애들이 물어보려고 쫓아온 줄 알았는데.”


“아니, 나도 똑같아 물어보려고 쫓아왔거든.”


나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수진이에게 다가갔고. 수진이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학기 마지막 날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


수진이는 몸을 베베 꼬며 난처한 기색을 역력히 표했다.


그런 수진이에게 나는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너 남자애들 사이에서 꽤 인기 많은 편인데? 살갑게 대해준다고. 너랑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애들 많을 걸? 오늘, 걔처럼 표현을 못할 뿐이지?”


그게 바로 나다. 사실 오늘 학교 끝나고 고백하려고 했지만······.


“살갑게 대한 거라······. 앞으로는 조심하는 게 좋을까?”


수진이는 집게손가락을 턱에 갖다 대며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보는 것 같았다.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 남자애들한테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들잖아.”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품은 라이벌은 줄수록 좋다.


“그런가······? 오빠들한테 하는 거처럼 평범하게 대한 건데······. 이렇게 될 줄이야.”


“고백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리고 웬 오빠들?”


수진이는 눈을 깜빡거리며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오빠에 대한 건 묻는 게 아니었나?


“고백은 솔직히 말하면······ 처음은 아니야~. 꽤 받아 봤어. 그래도 공개 고백을 받아 본 건 처음이라 좀 난처하네······. 2학기 때 그 애 얼굴을 어떻게 보지?”


······볼 필요 없어. 그냥 무시해. 내 얼굴은 계속 볼 수 있잖아.


“그래도 너희 둘 꽤 친했으니까. 적당 적당하게 지내면 되는 거 아니야?”


나하고는 상관없는 애의 일이기는 했지만, 수진이가 시답잖은 고민에 빠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성실하게 답했다.


“그래야하나······.”


수진이는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말끝을 흐렸다.



“······.”


뭐냐? 이 감정은······ 기분 나빠.


흘러들어오는 정체불명의 애정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내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손을 여전히 엄습해오는 무언가에 지레 겁먹은 상태였다.


“제기랄······.”



“그런데 오빠들은?”


집요했다. 이상하게 나는 집요했다. 티가 났을까? 내가 누군지 모를 오빠를 견제한다는 걸? 하지만 상관없다. 부딪혀보자. 대체 누구인가? 수진이에게 오빠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오빠라고 하기는 그렇고······. 근데 이름말해도 모를 걸?”


이름을 몰라도 궁금해.


“아, 아니다! 재우 선배는 알지?”


“재우 선배?”


뜻밖의 인물이 수진이의 말에 거론됐다.


“당연히 알지. 유명한 선배잖아. 나랑 친해.”


“진짜? 와······ 재우 선배 진짜 발 넓네.”


뭐, 그 선배는 발은 넓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여겨지니까. 신경 안 써도 되고······.



재우가 애정이 없다고?


가슴속에 흘러들어오는 재우의 평가의 머릿속이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찼다.


“재우야 너에 대한 후배들의 평가가 이상하다. 애들이 네 매력을 모르나봐. 네가 얼마나 애정 넘치는지.”


그런 말을 재우의 친구로서 진우에게 직접 해주고 싶었다. 재우가 얼마나 좋은 애인지.


“아무튼······.”



“다른 오빠는······ 이 아니라 선배는······우정 선배라고 알아?”


누구야 그 사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봤다. 없다. 내 머릿속에 그 사람에 대한 데이터는 없다.


그 사람에 대해 고심하는 기색이 엿보였는지 수진이가 먼저 말을 건넸다.


“누군지 모를 걸? 귀신같은 사람 있어. 지금은 다른 사람 덕에 많이 나아진 편이기는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수진이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뭐지? 대체 얼마나 가까운 사이길래. 수진이한테서 저런 쓸쓸한 표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거지?


설마······ 수진이는 그 사람을······.



“아니다.”


난 단언했다.


“절대 아니다.”


난 다시 한 번 단언했다.


지금 진우는 사춘기에 빠져 자신의 애정의 대상에 대해 단순한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 진우가 느끼고 있는 질투심은······ 나를 향하면 안 된다.


여기서 나에 대한 이미지가 확정 돼버리고 나면 나에 대한 가시 돋친 악감정이 나의 온몸을, 나의 정신을 찔러올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날 만나거나 찾지 말아줘······.”



“아! 저기 온다. 저기 보이는 재우 선배 옆에 있는 사람이 우정 선배야. 일단, 나는 갈게. 오늘 있던 고백, 재우 선배는 알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놀릴게 분명해. 2학기 때 보자~.”


수진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손을 흔들며 점점 내게서 멀어져갔다.


멀어져 가는 수진이를 뒤로하고 수진이가 가리켰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우 선배가 걸어온다. 그리고 그 옆에 걸어오는 예의 그 사람은······.


평범했다. 남자치고 살짝 긴 머리카락만 빼면 정말로 평범하게 느껴졌다. 거리를 걷다보면 지나가는 행인1처럼. 재우 선배를 옆에 끼고 걸으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수진이는 저런 사람을 좋아하는 건가?


그렇게 나는 자문했다.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가치도 없는 생각이었고 반박할 힘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진우 아니야?”


내 쪽으로 점점 다가오던 재우 선배가 나를 알아보고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웬일이지? 저 선배가 나한테 먼저 말을 건네고?


“여름방학 잘 보내라~.”


“네. 선배도요.”


나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누구냐? 쟤?”


“아는 후배.”


“넌 우리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를 지나쳐 가는 두 사람의 대화가 내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정우정이라는 사람의 뒷모습을 내 머릿속에 완전히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둘을 몰래 따라가기로 했다.



“아니, 우릴 왜 따라와 미친놈아!”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이렇게 엇나가기 마련인가? 물론, 수진이를 집까지 스토킹 하는 것 보다 우리 같은 남정네들을 몰래 따라가는 게 훨씬 건전하기는 한데······.


“아닌가? 그건 또 아닌가?”


그런 의문을 가진 채 나에게 느껴지는 불온한 감정을 느끼며 진우가 우리를 어디까지 스토킹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 기억의 바닷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스토킹은 평범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잡담을 나누는 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진우의 기억 상으로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진우의 시력이 양쪽 눈 둘 다 1.5여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는 잘 보였다. 우리 두 명이 횡단보도에서 멈춰 서자 진우 또한 멈춰 섰고, 나와 재우가 헤어지는 모습을 보고 진우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혔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면, 왜 이 횡단보도에서 진우랑 벌써 헤어졌을까? 진우는 우리 옆 동인데?



좋아. 요주의 인물이 사라졌다. 이제 조그만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그렇게 결심한 나는 우정이라는 사람과의 거리를 좁혔다. 들킬 위험이 높아지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저 사람은 나를 재우 선배의 후배라고만 생각하거나 아니면 벌써 기억에서 지웠을 것이다. 나도 저런 사람은 수진이만 아니면 바로 기억에서 지웠을 것이다.



······정답이다. 이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 옆에 섰다. 옆에서 힐끔힐끔 보며 분석을 해보니. 내가 모자란 부분은 없어보였다. 이 사람의 매력은 뭘까? 라는 생각을 하며 태연하게 걸어가다 그 사람은 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당신 수진이랑 무슨 사이에요.” 라고 물어야 되나? 싶었지만 그러면 수진이에게 피해를 줄 거 같아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방학을 길다. 계속해서 몰래 지켜보자.



계속해서 흘러들어오는 나의 대한 의구심과 질투심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못났나······.”



그렇게 여름방학에 무엇을 할지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 옮겼을 때 손을 가볍게 흔들고 있는 재우 선배가 눈앞에 있었다.


작가의말

오타 및 기타 등등 지적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슬슬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조금만 더 즐겨주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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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방과 후 20.03.06 8 0 21쪽
29 그의 이름은 김하윤 19.10.30 22 0 14쪽
28 전학생이 오다 19.10.28 13 0 9쪽
27 기억 상실 19.10.26 19 0 9쪽
26 죽은 토끼의 향연(2부 프롤로그) 19.08.28 23 0 5쪽
25 1부 에필로그 19.07.13 27 0 11쪽
24 좋아한다고 19.07.04 31 0 5쪽
23 이제는 말할 수 있다(2) 19.06.29 34 0 15쪽
22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06.23 33 0 16쪽
21 기억의 바다(3) 19.06.20 27 0 5쪽
» 기억의 바다(2) 19.06.18 18 0 12쪽
19 기억의 바다 +2 19.06.16 28 0 15쪽
18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19.06.13 27 0 14쪽
17 금요일의 대결전 19.06.10 16 0 12쪽
16 계약 종료 +1 19.06.06 27 0 6쪽
15 이렇게 될 줄 몰랐어 +1 19.06.05 27 0 11쪽
14 옷가게로 가요 19.06.03 22 0 11쪽
13 곡별연자 +1 19.05.31 34 0 10쪽
12 영화보러 가요 19.05.30 22 0 11쪽
11 시공의 폭풍 19.05.27 21 0 19쪽
10 말했다 19.05.24 21 0 10쪽
9 식사를 마치고 19.05.23 19 0 12쪽
8 금요일은 동아리 시간 19.05.21 22 0 8쪽
7 고백 확정 19.05.17 22 0 9쪽
6 목요일(2) 19.05.15 27 0 12쪽
5 목요일 +1 19.05.13 72 1 10쪽
4 부탁 19.05.12 71 0 8쪽
3 계약 19.05.11 52 0 9쪽
2 고백 19.05.09 38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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