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토끼의 향연(2부 프롤로그)
토끼는 누가 죽였는가?
어렸을 때 우리 반은 토끼 사육 담담이었기에 학생들은 2인 1조로 돌아가며 학교 뒤편에 있는 토끼사육장에서 토끼를 보살폈다. 나랑 같은 조였던 애는 토끼를 보살피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항상 토끼를 보면 웃고 토끼가 재롱이라도 부리면 박수를 치며 깔깔거리는 그런 애였다. 그래서 내가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왜 그렇게 토끼를 좋아해?”
······라는 질문에 그 애는 이렇게 답했다.
“난 늑대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농담이었나? 아니면 설마 진짜로 늑대인간? 하긴 초능력자가 있는데 늑대인간이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초능력이 뭔지도 몰랐다. 그때는 내가 아직 초능력자가 아니었고, 애초에 초능력자에 대한 정보는 일반 사회와 격리되어있었기 때문에 늑대인간이라는 비일상의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애의 말을 평범한 농담이라고 받아들여 담담하게 그 애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나는 토끼 할래.”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지금도 후회된다. 내가 그때 나를 늑대라고 칭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지나가버린 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늑대는 토끼를 죽였고 그 죄로 그 누구보다 토끼를 좋아하던 늑대는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언제나 토끼었다.
※※※
“핫!! 하······!”
꿈에서 깨어나 헐레벌떡 몸을 일으켜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거친 숨소리를 내쉬었다.
“이 꿈을 또 꾸게 될 줄이야······.”
차가운 식은땀이 등 뒤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왜지? 능력을 쓰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꿈을 꾼 거지? 그리고 여기는 어디야?
꿈에 홀려 상황파악 능력이 떨어졌는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호흡을 잠시하며 꿈에 대한 생각은 이제 그만하기로 하고 내 몸을 둘러보았다. 오른팔에 꽂혀있는 링거와 편하디 편한 환자복······.
“병원이구나, 여기.”
나는 작게 읊조리며 주변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한 사람한테 말을 걸었다.
“재우야~ 이재우!”
보호자석에 앉아 졸고 있는 이재우, 못하는 게 없지만 게임은 나보다 살짝 못하는 나의 오랜 친구가 내 목소리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재우는 이내 “우, 우정아~!” 라고 말하며 환희에 찬 얼굴로 나를 껴안았다.
“왜이래 징그럽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재우의 손을 떼어냈다.
“하지만 난 또 네가 중2때처럼······.”
“그만!”
나는 손을 저으며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고 전했다. 과거의 실수를 다시 기억해내고 싶지 않았고 그건 무조건 내가 잘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난 왜 환자상태야?”
나는 양팔을 벌리며 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했다.
“기억 안나? 자전거에 치였잖아.”
“뭐? 자전거?”
차도 아니고 자전거? 겨우 그거에 치였다고 링거 맞고 입원해 있는 거야? 그것도 1인실에?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환자는 없다. 또 누나의 과보호 본능이 발동한 건가?
“자전거도 잘못 치이면 죽을 수도 있어.”
내 표정에 황당함이 묻어났는지 재우는 심기불편하게 나를 쳐다봤다. 확실히 멍 때리고 있거나 무언가에 열중하는 중에 얻게 된 상처는 큰 고통을 유발한다.
“알았어. 알았어~. 운이 좋았네. 그런데 지금 몇 시야?”
재우는 내 말에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6시 30분”
“오후? 오전?”
병실 창문에 걸려있는 짙은 커튼 때문에 해의 유무를 알 수 없었다.
“오전.”
“오전이라고? 그럼 빨리 준비해야겠네! 학교도 가야되고, 수진이 밥도 해줘야 되고.”
중학생 때는 3년 개근상을 못 받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고등학교에서는 꼭 받고 말거야!
“무슨 소리야? 오늘 토요일이잖아.”
“응? 무슨 소리야 오늘 평일이잖아 학교 가야지??”
나는 재우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벽면에 걸려있는 달력을 봤다. 4월 달력이었다. 커다랗게 써있는 숫자4를 본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우정아 너 왜 그래?”
재우는 살짝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런 재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우야 망했다······.”
망했다. 정말 망했다. 드라마에서만 흔히 보이던 상황이 현실이 될 줄이야. 역시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다큐, 멀리서 보면 드라마라더니······.
“나······ 기억이 안나.”
나는 그런 말을 썩은 미소를 지으며 재우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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