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바위man 님의 서재입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바위man
작품등록일 :
2019.05.09 17:45
최근연재일 :
2020.03.12 08:4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943
추천수 :
3
글자수 :
150,144

작성
19.05.15 13:08
조회
26
추천
0
글자
12쪽

목요일(2)

DUMMY

좋아. 수진이가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어디 한번 수진이를 좋아하는 남학생을 찾아볼까~.

······하고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재우가 말을 붙였다.


“우정아. 어디 가냐?”


아, 붙잡혔다. 그냥 반에서 겉도는 애 본 것처럼 놔주면 안 되냐?


“어······ 수진이한테 볼일이 있어서.”


일단은 사실대로 말했다. 어차피 재우가 물고 늘어지면 일만 더 귀찮아진다. 찰거머리 같은 녀석······.


“같이 가자. 심심했는데 잘됐네.”


재우는 곁에 있던 친구들에게 “놀다올게” 라고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역시나······ 눈을 꾹 감으면서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래야 너답지. 그렇게 생각한 뒤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재우와 함께 운동장을 통해 중학생 부지로 넘어갔다. 옛날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울타리로 나눠졌다고 했는데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통합되었다. 애초에 이 중학교 졸업생의 대부분이 우리 고등학교로 온다. 나도 그렇고······. 절대로 선배 따라서 온 게 아니다.


“그런데 수진이한테는 왜 가는 거야?”


“말했잖아~. 볼 일이 있다고. 일일이 다 말해줘야 해?”


그런 나의 말에 재우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예의상 물어본 거야.”


예상과 다른 재우의 반응에 싱거움을 느꼈다. 웬일이지?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고?


“······사실 수진이 염탐하러 가는 거야.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지.”


“······.”


재우는 아무 말 없이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이래 이 녀석 부담스럽게.


“와~ 네가 그렇게 수진이를 생각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역시 동거를 하니까 그렇고 그런 유대감이 생기는 거야?”


“조용이해!” 하고 재우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악!” 하는 고통의 소리가 재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너무 세게 때렸나?


“미······”


“왜 이렇게 세게 때려!”


재우는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친놈아! 애초에 네가 이상한 소리했잖아. 나랑 수진이는 그런 사이 아니라는 거 네가 더 잘 알잖아!”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막상 불만을 토로하는 걸 보니 얄미워졌다.

나의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재우는 의미심정하게 웃기 시작했다.


“확실히 너는 그렇지. 수진이한테는 안 물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뭐라는 거야. 이 녀석. 완전 오해하고 있잖아.


나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면서 말을 이었다.


“걔도 똑같아. 어제, 같이 사귀자고······.”


아······ 망했다. 떡밥을 던져버렸어~. 물지 마. 물지 마. 제발! 하는 심정으로 재우의 표정을 살펴봤다.


망했다.


눈동자에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호기심 넘치는 눈은 어린이가 탄산을 처음 접했을 때밖에 본적이 없다.


재우는 팔꿈치로 내 허리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중학교 뒷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쳐~.”


일말의 반전 없이 나는 재우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이럴 때야 말로······.


“누구세요?”


정신을 놓은 것처럼 눈동자를 위로 올려 하늘을 쳐다보며 헛소리를 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그런 나를 보더니 재우는 씨익하고 웃기 시작했다.


“뭐, 다 알지. 네 맘······. 암, 암. 오랫동안 알고지내서 가벼운 감정을 가졌는데 동거를 시작하게 되면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거지. 역시 오래 알고지내면 연애는 반은 먹고 시작한다니까~.”


오래 알고 지냈다는 말에 너랑 선우는? 라고 묻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불문율이니까. 화는 나지만 속사정을 모르니까.


허탈하게 웃으면서 더 귀찮아지기 전에 어제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약간의 필터를 거쳐서.



“흠······.”


재우는 고민에 잠긴 듯이 턱을 당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진짜 매너 없다.”


고민 끝에 나온 것은 그 한마디였다.


“뭐······ 할 말이 없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실제로 수진이에게 정말로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애한테 고백 받았으니 그것도 오빠 같은 애한테 고백 받아서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티는 내지 않았어도 불쾌했을 수도 있다.


“수건을 걸치고 여자 방에 들어가다니 얼마나 노출중인 거야. 변태~.”


“잠깐만 왜 거기서 태클 거는 거야. 다른 부분을 태클 걸어야하는 거 아니야?”


“태클 걸 부분이 거기밖에 없는데?”


재우는 뭘 더 말해야해? 라는 듯이 손을 양옆으로 벌렸다.


“아니······. 사귀자고 한 거 있잖아······. 그런 거 태클 걸 줄 알았지.”


“뭐······ 너네들 사이에서 가볍게 농담조로 할 수 있잖아. 고백 같은 거. 우리들 사이도 마찬가지고. 그렇다고 네 고백은 안 받을 거야. 우, 정, 우~.”


소름 돋았다. 진심으로.


“나는여자가좋아.”


한 호흡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해 요상한 기운이 감도는 주변 공기를 환기시켰다.


“나도야. 인마.”


재치 있는 농담이라도 한 듯 재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농담으로 고백한 게 아니었다면 무슨 이유라도 있었어?”


“음······ 어제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있는 거 같아.”


“뭔데, 뭔데?”


재우는 다시 한 번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쳐다보지 좀 마라······.


“그게······ 수진이 부모님이 해외로 장기 출장 가시게 돼서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된 거잖아.”


“음, 음. 그래서?”


재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답을 요구했다.


“생각해봐 평범한 여학생이 부모님이 남학생이랑 동거해라. 라고하면 말을 듣겠어? 아니잖아. 근데 넙죽 동거제안을 받아들인 걸로 봐서 나한테 호감이라도 있나 싶었지~.”


“그래? 내가 수진이였으면 호감이 없었어도 너랑 동거하고 싶었을 걸?”


“왜? 너 미쳤어? 미안하지만 남자는 사절이야.”


“목적은 네가 아니라는 말이지······ 즉, 너한테 호감은 없다. 단지, 네가 해주는 밥에는 있다. 이 말 아니겠어?”


······.


“뭐라는 거야. 됐고 수진이 반이나 가자.”


“쩝······. 뭐,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길었던 잡담을 그만두고 계단을 올라 수진이의 반을 찾아갔다.


어디 있지? 하고 창문을 통해 두리번거리고 있었을 때 재우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저기 있네.” 하고 창문 건너편을 가리켰다.


재우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서 수진이가 친구들과 여느 여중생과 다름없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 속에서 우리 같은 초능력자들이 정부에 들키지 않고 얼마 동안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같은 깊은 고민을 잠시 했지만, 내 주변에 있는 허점투성이의 다른 초능력자가 한 번도 안 들키고 지금까지 생활하는 걸 잠시 떠올리니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제 그만 가자. 네 걱정 없이도 잘 지내는 거 같네.”


그런 고민도 잠시 재우의 말에 망각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오늘 초능력자 진수진이 학교생활을 잘하는지 보러 온 게 아니다. 수진이한테 찝쩍거리는 남학생을 찾으러 온 거다.


“잠깐. 좀만 더 지켜보고. 흠······.”


아무리 지켜봐도 별 다른 게 없었다. 몇몇 남자애들과도 대화했지만 특별한 점을 딱히 없었다. 결국 그만하고 갈까? 하고 창문에서 시선을 뗐을 때 재우가 왼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우정아 쟤 봐라. 제 수진이한테 마음 있나봐~.”


“뭐?” 하고 화들짝 놀라며 수진이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아까와 같은 평범한 대화 장면이었다.


“누구 말하는 거야?”


“쟤 말이야. 쟤. 왼손에 시계 찬 애.”


넌 다른 사람 몰래 지켜볼 때 손목까지 봐? 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시계를 찬 애를 쳐다봤다.


잘생긴 애기는 한데······ 다른 점을 못 느끼겠는걸.


“모르겠는데. 평범하게 대화하고 있는 거 아니야? 심지어 1대1로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일상 얘기하면서 웃는 거 같은데?”


“쯧. 쯧. 쯧.”


재우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우정아~ 네가 이래서 연애가 안 되는 거야. 여성과 남성이 대화를 할 때는 옷매무새, 손의 움직임, 표정, 저렇게 머리카락을 살짝 다듬는 미세한 행동까지 기타 등등 다 봐야 한다고. 물론, 말투나 언동이 가장 중요하기는 한데 여기서는 알 수 없으니······ 하지만 그래도 알 수 있어! 저 시계남은 수진이를 좋아한다고!”


“아, 예~.”


대체 이 멍멍이 같은 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하는지······.


“됐고 가자.”


나는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계단방향으로 뒤돌아 재우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야······.”


“아, 왜? 빨리 오라고. 더하면 걸릴 거 같아.”


“······걸렸어.”


재우는 짧게 한마디 하고 나를 뒤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거울 건너편에서 보였다. 수라의 얼굴이.


나도 재우의 뒤를 따라 도망쳤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려진 느낌이 들었을 때 재우가 힘들었는지 걸음을 늦췄다.


“너는 지금 잡히지 그래?”


“뭐? 미쳤냐?”


즉답했다. 나는 지금 걸리면 혼나는 거뿐만 아니라 초능력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 재우 앞이어서 어차피 못하나?


“아니, 어차피 집에 가면 만날 거 아니야.”


아······.

“······조삼모사라고 해도 매는 나중에 맞는 게 더 좋다고 하잖아.”


“먼저 맞는 거겠지. 그건 그렇고 네가 수진이랑 잘 지내서 다행이다. 수진이가 걱정했거든 자신이 부담되지 않을까? 하고.”


“뭐? 수진이가 그랬다고? 우리 집에서 제집인 거처럼 잘만 지내는데?”


2월 달부터 같이 살면서 단언할 수 있는 건데 수진이는 부담감을 가진 적이 없다. 오히려 부담감을 좀 가졌으면 한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네가 중1때 이후로 좀 변한 거 같다고 해서.”


“변하긴 뭘 변해. 그대로구만······ 그런데 걔는 그런 걸 왜 너한테 말하냐?”


“······누구나 고민이 있으며 그런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야. 내가 너네 둘한테 그런 존재고.”


재우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운 것 마냥 가슴을 폈다.


······찝찝하기는 했지만 반박은 안 하기로 했다. 어차피 미꾸라지 같은 언변으로 자기 말이 다 맞는 말이라고 우길 테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등 뒤에서 살기가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잡담을 그만두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상대는 계주다 극한의 상황까지 달리지 않으면 잡히고 말 것이다.


뛰면서 생각했다. 계속해서 이런 일상들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내가 지금처럼 평범하게 친구들과 웃고. 수진이도 친구들과 웃을 수 있으면······.

그러니 우리가 초능력자라는 건 절대로 들켜선 안 된다. 수진이를 돕더라도 능력의 사용은 최대한 배제하자.


작가의말

오타 및 기타 등등 지적 환영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아무 생각이 없다 20.03.12 7 0 11쪽
30 방과 후 20.03.06 7 0 21쪽
29 그의 이름은 김하윤 19.10.30 21 0 14쪽
28 전학생이 오다 19.10.28 13 0 9쪽
27 기억 상실 19.10.26 19 0 9쪽
26 죽은 토끼의 향연(2부 프롤로그) 19.08.28 22 0 5쪽
25 1부 에필로그 19.07.13 26 0 11쪽
24 좋아한다고 19.07.04 31 0 5쪽
23 이제는 말할 수 있다(2) 19.06.29 34 0 15쪽
22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06.23 32 0 16쪽
21 기억의 바다(3) 19.06.20 26 0 5쪽
20 기억의 바다(2) 19.06.18 17 0 12쪽
19 기억의 바다 +2 19.06.16 27 0 15쪽
18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19.06.13 26 0 14쪽
17 금요일의 대결전 19.06.10 16 0 12쪽
16 계약 종료 +1 19.06.06 26 0 6쪽
15 이렇게 될 줄 몰랐어 +1 19.06.05 27 0 11쪽
14 옷가게로 가요 19.06.03 21 0 11쪽
13 곡별연자 +1 19.05.31 34 0 10쪽
12 영화보러 가요 19.05.30 21 0 11쪽
11 시공의 폭풍 19.05.27 20 0 19쪽
10 말했다 19.05.24 20 0 10쪽
9 식사를 마치고 19.05.23 18 0 12쪽
8 금요일은 동아리 시간 19.05.21 22 0 8쪽
7 고백 확정 19.05.17 21 0 9쪽
» 목요일(2) 19.05.15 27 0 12쪽
5 목요일 +1 19.05.13 71 1 10쪽
4 부탁 19.05.12 71 0 8쪽
3 계약 19.05.11 52 0 9쪽
2 고백 19.05.09 38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