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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폴 님의 서재입니다.

주시자(Watcher)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랭폴
작품등록일 :
2020.12.01 20:00
최근연재일 :
2021.01.18 18:42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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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5
추천수 :
60
글자수 :
308,281

작성
21.01.0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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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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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034 - 그녀의 속사정 [1]

DUMMY

옥상에서 5층 석실로 내려온 뒤, 나는 숀과 알렉사를 침낭을 깔고 그 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내가 겪은 모든 일을 가감 없이 전부 설명해주었다.


둘 다 꽤나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만큼 엄청난 리액션은 아니었다. 경악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반응을 예상했는데 둘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입을 다물지 못하던 숀이 활짝 웃으며 내 손을 부여잡았다.


“요즘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든 예언 속 주시자가 형님이었다니···! 여, 역시! 저는 형이 특별한 사람인 줄 진즉에 알고 있었어요! 초월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보통 사람일 리가 없죠!”


숀의 호들갑이 귀찮은 나는 그의 손을 치워내며 말했다.


“내가 주시자가 맞는지는 아직 확실히 모른다니까 그러네.”


“아니, 주신께서 이곳으로 불러오신 거라면서요? 거기서 게임 끝난 거죠! 형을 이곳으로 불러왔는데 하필 형이 모든 수호성의 불을 밝혔어요. 형은 정말 이걸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 나도 처음엔 그럴 리 없다고 치부했지만 지금은 반쯤 내가 주시자는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예언 속의 그 주시자와 나의 공통점은 모든 수호성의 불을 밝혔다는 거 밖에 없어. 나머지 예언 속 능력이 내게 발현되지 않는 이상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는 얘기야.”


내 단호한 말에 숀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니, 여기 오기 전 세계에서 이곳의 끝을 봤다면서요. 보나마나 맞는 거 같은데······.”


나는 그런 숀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 뒤 생각보다 담담하게 있는 알렉사를 보며 말을 꺼냈다.


“넌 안 놀랐어?”


“놀랐어. 그것도 엄청.”


“그런데 어쩐 일로 조용하다?”


“조사관 길드에서 오벤을 만났어.”


“아하, 오벤이 미리 말을 해줬구나?”


“아니, 아무 말도 안 해줬어. 다만, 너를 너무 높여서 부르기에 ‘네가 보통사람은 아니구나.’하고 생각은 했지. 그런데, 이계에서 넘어온 주시자라니······. 이건 상식을 터무니없이 뛰어넘어버려서 얼마나 놀라야하는 건지 가늠이 안 되네.”


말을 마친 알렉사가 한참을 땅만 보고 있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고마워.”


“갑자기?”


갑자기 뭐가 고맙다는 거지?


내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하자 알렉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말대로라면 넌 결투대회에 나가면 안 되잖아.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그런데도 흔쾌히 내 계획에 동의해줘서 고마워.”


아아, 난 또······.


굳이 고마워할 것까지는 없는데?


어차피 나도 필요하겠다싶어서 그렇게 결정한 거였으니까.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잠자리를 정돈했다.


“너답지 않게 별 시답지 않은 말을 하네. 됐어 얼른 잠이나 자자.”


아닌 게 아니라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느라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침낭 안에 몸을 우겨넣던 숀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다시 일어나 말을 꺼냈다.


“저희 근데 어떡해요?”


“뭘 어떡해?”


“아니, 저희 일주일동안 숨어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여기 하루 만에 클리어 해버렸는데?”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어떡하지?”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미 침낭에 들어가 자리 잡고 누워버린 알렉사에게 물었다.


“알렉사, 혹시 널 쫓는 사람들이 게이트 앞도 지키고 있을까?”


알렉사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거야. 어차피 그들도 이미 내 목적을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그들이었으면 굳이 찾아 나서지 않고 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쪽을 선택할 거야.”


그렇단 말이지?


“어떻게 하시게요, 형?”


어떻게 하긴.


결정을 내린 나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남은 6일 동안 2게이트에서 열렙을 한다.”


“······열렙?”


처음 듣는 단어에 숀이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5일 뒤 스텔란 제 2게이트.


우리는 방금 열 마리의 샤벨 타이거무리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샤벨 타이거.


들개 형태의 칼립보다 빠르고 들소 형태의 토블론보다 강한 힘을 가진, 검치호처럼 생긴 괴수다.


샤벨 타이거와 처음 조우했을 때는 진땀을 흘렸다.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탓에 가끔 총알이 빗나갔던 것이다.


내 눈이 샤벨 타이거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예측해서 궤적을 알려주었지만 녀석이 마음먹고 달리면 쉽게 맞출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중간에 총알이 다 떨어져 원거리공격도 못하게 됐다.


덕분에 나는 방금 전투에서 녀석에게 팔을 물리고 말았다.


나는 왼팔을 타고 오는 극심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크윽······.”


상처가 깊었는지 점퍼가 피를 잔뜩 머금었고 손끝을 따라 피가 뚝뚝 떨어졌다.


마지막 샤벨 타이거의 숨통을 끊은 숀이 허겁지겁 내게로 달려왔다.


“혀, 형! 괜찮아요!?”


“흐읍, 넌 이게 괜찮아 보이냐?”


농담이 아니라 아파죽을 것 같았다.


하긴, 호랑이한테 물렸는데 목숨을 건진 게 어디인가.


숀이 낙담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또······. 제가 놓치지만 않았어도···!”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 됐어, 됐어. 그건 네가 어떻게 못 하는 거였어. 너도 두 마리나 마크하고 있었잖아. 총알만 있었어도 어찌어찌 비벼봤을 텐데, 거기서 총알이 다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냐. 크윽!”


계속해서 살을 찢는 통증이 머리로 전해졌다.


심장이 팔에서 뛰는 것 같고 너무 아프다보니 두통까지 생기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통증을 줄여보려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알렉사가 내게로 나가왔다.


“심하게 물렸어?”


그러면서 내 점퍼를 벗겨냈다.


“으, 으악! 사, 사, 살살···!”


피에 젖은 항공점퍼가 철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고 거의 넝마가 되어버린 내 팔이 눈에 들어왔다.


“오, 오우, 쉣······.”


상처를 보자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알렉사가 자신의 상의를 벗더니 둘둘 말아 내 머리를 잡고는 그걸 내 입에 쑤셔 넣었다.


“읍! 으읍! 으으읍! 흐으~읍!!”


입이 막혀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 미친! 땀에 젖은 옷을 어디에 처넣는 거야!


입에서 짠맛이 확하고 느껴지자마자 내가 격하게 저항했지만 알렉사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꽉 물어. 너 이빨 부러진다.”


“으읍?”


이빨?


“숀, 꽉 잡어.”


“으흠? 으으흡?”


잡아? 뭘 잡아?


알렉사의 말에 숀이 내 몸을 꽉 부여잡았고 알렉사가 내 팔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나직이 읊조렸다.


“힐(Heal).”


욱신!


그 순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엄청난 고통이 내 머리를 찔러왔다.


“흐읍! 으으흐으읍!!”


마치 팔을 조각조각 난도질하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발버둥을 쳤지만 내 몸은 이미 숀에게 포박당한 상태였고 손은 알렉사의 손에 굳게 쥐어져있어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너무 아파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흐으으으읍!!!”


그렇게 1초가 100년 같은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알렉사가 내 손을 놓았다.


알렉사가 손을 놓는 것을 보고 내 몸을 옭아매던 숀의 포박이 풀리자 나는 그 자리에 허물어져버렸다.


덜썩.


“오, 오! 형! 괜찮아요!?”


숀이 쓰러지는 나를 급하게 부축했다.


나는 입에 물린 소금기 가득한 옷을 뱉어내고는 한숨을 쉬었다.


“와, 뒤진다 진짜······. 다, 다신 안 받아.”


한 번 경험했던 알렉사의 치료마법이었지만 이번엔 차원이 달랐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잖아.”


알렉사의 말대로 내 팔에 있던 상처는 언제 그랬다는 듯,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래도 이런 끔찍한 치료는 사양이다.


차라리 마취 없이 살을 꿰매고 말지······.


상처까지 모두 치료한 나는 출혈 때문에 생긴 현기증에 몸을 잘 가누지 못하면서도 아이템 루팅은 잊지 않았다.


샤벨타이거의 송곳니를 뽑고 가죽을 도려내 인벤토리에 담았다.


그 모습을 본 알렉사가 혀를 내둘렀다.


“너도 참 어지간하다. 지금 그걸 챙길 마음이 생겨?”


“당연히 챙겨야지!”


“그 탑에 들어가기 전이면 모를까, 아틸리움도 그렇게 많이 얻은 애가 굳이 뭐 하러 이런 괴수 사체까지 뒤지는 거야?”


“티끌모아 태산이란다. 이게 다 돈인데, 알뜰살뜰하게 챙겨야지!”


돈은 곧 힘이 된다.


괴수를 잡는 본신의 능력이 가장 큰 힘이 되는 세계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을 수족처럼 부릴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돈으로 휘두르는 힘이 어느 때는 육체의 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내가 겪은 이 세계도 지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고 돈이 있어야 편하게 잘 수 있다.


이것은 세계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러니 나는 한 푼도 허투루 대할 수 없었다.


모든 아이템을 루팅한 우리는 스텔란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아직 하루라는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어차피 총알이 다 떨어진 이상 더 이상의 사냥은 무리다.


알렉사도 내일 있을 대회를 위해서 하루쯤은 편하게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6일간의 장정을 끝내고 스텔란으로 복귀했다.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봐 알렉사와 나는 도시 출입검사를 제외하고는 계속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스텔란으로 들어온 우리는 상업지구의 대로에서 잠시 멈춰섰다.


“숀, 너는 집에 다녀와.”


“저요? 굳이 안 가도 되는데.”


나는 괜찮다는 숀을 등 떠밀었다.


“아이, 갔다 오라면 갔다 와. 지금 안가면 한동안 집에 못가.”


대회가 끝나면 분명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마크 형님께 인사라도 하고 오라는 의미에서 보내는 것이었다.


숀이 마지못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오전에 집 갔다가 누님 댁으로 가겠습니다.”


숀이 작별인사를 하고 사라지자 나와 알렉사만 남았다.


“우리는 들어가기 전에 저녁거리나 좀 사가자.”


나도 알렉사의 말에 동의했다.


“빵 사자, 빵. 저 앞에 빵집 맛있는데 있어.”


매일 마른 빵만 먹었더니 턱이 아플 지경이다.


이제는 좀 부드러운 빵이 먹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상업지구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기로 했다.







나와 알렉사는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걸어가면서 몬스터 사체를 팔아서 번 돈을 셌다.


도합 1870코인.


아틸리움을 제외하고도 이만큼이나 벌었다.


한 명당 400코인씩 나누고 670코인은 나중을 위해 저축해줄 생각이었다.


나는 400코인에 내 몫의 400코인까지 얹어 알렉사에게 건넸다.


“자, 저번에 빌린 돈까지 합쳐서 800. 남은 200은 나중에 줄게.”


돈을 건네받은 알렉사가 의외라는 듯이 말을 했다.


“생각보다 돈 계산이 칼 같네?”


알렉사는 내가 그 돈을 꿀꺽할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대체 나를 어떻게 본 거야? 가족 사이에도 철저히 해야 되는 게 돈 거래야.”


내가 정색을 하자 알렉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뭐래? 그냥 깔끔하다는 소리지.”


그때, 길게 이어진 골목 끝을 로브를 뒤집어 쓴 두 명의 사람이 가로 막았다.


그 둘은 걸어오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가만히 멈춰 서서는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뭐지?


누가 봐도 수상했다.


내가 알렉사에게 귀띔을 하려던 찰나, 알렉사도 눈치 챘는지 갑자기 멈춰서며 손으로 내 앞을 막았다.


그녀의 눈을 보니 굉장히 심각해보였다.


순간, 내 머릿속으로 안 좋은 예감이 스쳤다.


설마, 저 사람들이 알렉사를 쫓는 추격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알렉사와 나는 동시에 골목을 빠져 나가기 위해 뒤를 돌았다.


“미, 미친······.”


아뿔싸, 뒤에도 두 명이 더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따라붙은 거지?


앞뒤가 막혀 우리가 그 자리에 멈춰 서자 네 명의 사람이 우리를 향해 거리를 좁혀왔다.


5m정도의 거리를 남기고 앞에서 걸어오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성녀님. 안토니오 대주교께서 성녀님을 찾으십니다.”


대주교?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알렉사를 봤더니 알렉사가 굳은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안토니오······. 그가 여기 와있어···?”


대체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누구기에 알렉사가 이렇게까지 긴장을 하는 것일까?


추적자들이 점점 포위망을 좁혀왔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안토니오에게 전해. 난 안돌아간다고.”


“성녀님께서 계속 그러시면 저희도 무력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네 명의 손에서 에메랄드 빛 오러가 솟아올랐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듯 휘몰아치는 기류에 그들의 로브가 심하게 펄럭이더니 그들이 입고 있던 갑옷이 드러났다.


“저, 저건···!”


나는 저 갑옷을 알고 있었다.


하몬교단 특수부, 이단 심판관이 입는 갑옷······.


그럼 저들이 이단 심판관이라는 이야긴데, 이단 심판관들이 알렉사를 쫓는 추적자였다고?


아차 싶었다.


충분히 말이 된다. 알렉사의 클래스는 한 종교의 최고직중 하나인 성녀(Saintess)다.


그 성녀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남들 눈을 피해 은거한다? 누가 봐도 이상한 그림이었다.


- 일단 기본적으로 나는 범법자가 아니고 나를 쫓는 그 인간들도 어느 정도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거든.


그제야 전에 알렉사가 했던, 추적자들이 어느 정도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성직자란 모든 것이 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신을 위한다는 목적아래, 신의 교리에 반하는 자들을 망설임 없이 모두 죽이는 광신집단······. 그게 바로 이단 심판관들이다.


일부 사항에서는 치외법권이 인정되지만 큰 범위 안에서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그들···.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었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다.


순간, 알렉사가 내 멱살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놀란 내가 알렉사를 보았지만 알렉사는 그런 나는 아랑곳 않고 얼굴에 씌워진 마스크를 거칠게 떼어내며 굳은 표정으로 속삭였다.


“···뒤도 보지 말고 도망쳐.”


그러더니 나를 이단 심판관들 너머로 힘껏 던져버렸다.


쿠당탕!


“크억···!”


허공을 날아 땅에 부딪힌 나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 뱉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알렉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를 던진 것이 방아쇠가 되었는지 네 명의 이단 심판관들이 알렉사를 향해 달려들었고 알렉사는 곧바로 루시우스의 메이스를 꺼내들어 그에 대응했다.


“흐아아!!”


콰앙!! 콰아앙!!


알렉사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그녀가 이토록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구 휘두르는 듯 보였지만 한 방, 한 방 신중하게 휘둘렀고 그녀의 모든 공격에는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각자 무기를 꺼내들어 에메랄드빛 오러를 피워내는 이단 심판관들은 그녀의 공격에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힘겨워 보이긴 했지만 확실하게 알렉사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고 한 명이 막으면 다른 한 명이 사각에서 공격을 해왔다.


이단 심판관 하나의 검이 알렉사의 허리춤을 훑고 지나갔다.


“크윽!”


“아, 알렉사!”


놀란 내가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알렉사는 그런 나를 보며 소리쳤다.


“멍청아! 아직도 안 가고 뭐하는 거야! 얼른 도망치라니까!!”


알렉사가 도망치라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이 알렉사에게서 고정 되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야한다,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이익!, 지금 내가 너를 두고 어떻게 가!!”


“멍청아!! 이 녀석들 때문에 도망치라는 게 아니라···!”


나를 힐끗 쳐다본 이단 심판관 하나가 말을 꺼냈다.


“순순히 저희와 가지 않으신다면 저 형제님은 오늘 이 자리에서 죽습니다.”


그의 말에 알렉사가 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었다.


“착각 하지 마, 내가 진심으로 싸우면 너희,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가. 나는 지금 너희 걱정해서 이정도로 해주는 거야.”


알렉사의 말이 우스웠는지 녀석들 중 하나가 조소를 흘렸다.


“지금 그런 허세 부리실 때가 아니실 텐데요?”


그 말에 알렉사의 표정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그러더니 그녀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안토니오가 말 안했니? 내가 오러 쓸 때 조심하라고.”


“무슨······.”


그 순간, 알렉사의 몸에서 핏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난 기회 줬어. 이건 너희들이 자초한 거야.”


쿠오오오오.


알렉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붉은 색의 기류가 몰아쳤다.


그리고 그 알렉사의 몸이 완전히 그 핏빛 오러로 뒤덮이는 순간.


차갑게 굳어있던 알렉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꼈는지 녀석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마, 막아라! 목숨만 살리면 돼! 가리지 말고 공격해!”


하지만 선공을 한 것은 알렉사였다.


눈 전체가 빨갛게 뒤덮인 알렉사가 광소를 터트리며 무자비하게 철퇴를 휘둘렀다.


“꺄하하하핫!”


콰아앙!! 콰아아앙!!!


그녀가 철퇴를 휘두를 때마다 사방으로 핏빛 오러가 뿌려졌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만 방어하던 이단 심판관들이 단 한 번의 합으로 무기를 놓치고 모든 철퇴를 몸으로 받았다.


“꺄하하! 하하핫!!!”


쾅! 쾅! 쾅! 콰아앙!!


알렉사는 지금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쾌락에 젖은 웃음을 터트리며 인정사정없이 이단 심판관들의 몸을 내리찍었다.


콰앙! 콰앙! 콰앙!


철퇴가 이단 심판관의 몸에 꽂힐 때마다 피가 튀어 올랐고 나중에는 사방으로 뿜어지는 저게 피인지, 오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서, 성녀님······. 사, 살려······.”


“이히히히힛!!”


콰앙!! 콰앙!! 콰앙!!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알렉사는 마치 재밌는 놀이라도 하듯 잠시도 쉬지 않고 철퇴를 내리쳤다.


결국, 이단 심판관들은 이렇다 할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전부 피떡이 되어 바닥을 눕는 신세가 되었다.


“하아, 하아, 하아. 흐흣. 흐흐흣.”


체력이 다했는지 알렉사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고통과 두려움에 부들부들 떠는 그들을 보며 그녀의 몸도 그들과 같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알렉사의 표정은 경악스러웠다.


마치, 극상의 쾌락을 맛본 듯 한 황홀한 미소.


내가 보던 알렉사가 맞나 의심이 들었다.


녀석들을 보며 희열에 젖어있던 알렉사가 어느 순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그녀의 앞으로 그녀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 알렉산드리아 레온하르트 ]

등급 : ☆☆☆☆☆

레벨 : 47

수호성 : 카시아스 / 하몬

별자리 : 성배자리

클래스 : 성녀(Saintess)

힘:36 민첩:17 체력:13 지능:7 마력:23


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내 눈에 들어왔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다음에 나타난 것이었다.




[ 상세정보 ]

레온하르트가 직계 삼남매 중 막내인 그녀는 주신 하몬의 선택을 받아 14살이 되던 해에 하몬교의 성녀가 되었다. 현재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하몬교 교황청이 있는 이소미아에서 탈주한 상태다.


!!!!!!!!!


상세정보를 본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레, 레온하르트 가문의 셋째···?


그럼······. 알렉사가···.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알렉사를 바라보았다.


아서의 동생이라는 거야···?


내 시선에 닿은 알렉사가 손에 철퇴를 쥐고서는, 광기에 가득 찬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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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30 - 아스트롤라베 [3] 21.01.01 43 1 15쪽
29 029 - 아스트롤라베 [2] 20.12.31 62 1 13쪽
28 028 - 아스트롤라베 [1] 20.12.30 111 1 12쪽
27 027 - 결성, 와치독스! [2] 20.12.29 57 1 15쪽
26 026 - 결성, 와치독스! [1] 20.12.28 52 1 17쪽
25 025 - 최악의 둔재(鈍才) [3] 20.12.27 62 1 19쪽
24 024 - 최악의 둔재(鈍才) [2] 20.12.26 53 1 20쪽
23 023 - 최악의 둔재(鈍才) [1] 20.12.25 64 1 20쪽
22 022 - 토 벌 [3] 20.12.24 90 1 13쪽
21 021 - 토 벌 [2] 20.12.23 58 1 12쪽
20 020 - 토벌 [1] 20.12.22 83 1 14쪽
19 019 - 주시자 [2] 20.12.21 63 1 18쪽
18 018 - 주시자 [2] 20.12.20 71 1 14쪽
17 017 - 주시자 [1] 20.12.19 6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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