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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폴 님의 서재입니다.

주시자(Watcher)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랭폴
작품등록일 :
2020.12.01 20:00
최근연재일 :
2021.01.18 18:42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3,448
추천수 :
60
글자수 :
308,281

작성
20.12.25 19:34
조회
64
추천
1
글자
20쪽

023 - 최악의 둔재(鈍才) [1]

DUMMY

게이트 초입부 토벌은 게이트 바깥 토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바깥 토벌은 원거리 계열들이 선공을 했지만 게이트 안쪽은 진입을 해야 한다는 특성상 근거리 계열이 선공을 맡았다는 것이다.


전사나 검사들이 먼저 게이트에 들어가 몰려오는 괴수들을 막고 방어진을 펼치면 원거리 계열의 딜러들이 집중포화를 쏟아내 뒤에 몰려 있는 괴수들의 숫자를 줄여나가는 식이었다.


다행히 변수가 크지 않아 토벌은 작전대로 진행되었고 무사히 전초기지를 세울 자리가 마련되었다.


전초기지가 완성될 때까지 각 조는 산개해 각개전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조사관들의 진짜 벌이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단체 전투는 토벌이 끝난 뒤 스케빈저가 전리품 회수를 모두 마치고나서 n분의 1로 정산해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큰 벌이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각개전투에서 잡은 괴수는 사체부터 스타 더스트까지, 전부 각 조의 소유였기에 크게 한 몫 건지기 위해서는 각개 전투에서 열심히 사냥을 해야 했다.


용병 역시 잡은 만큼 공적치를 받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괴수를 사냥해야만 하는 것은 조사관과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나와 숀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최대한 괴수를 잡는 중이었다.


“으어어어어! 조, 조사관님! 살려주세요!!”


숀은 침을 질질 흘리며 죽어라 달리고 있었다.


“어~ 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


그에 반해 나는 높은 지대에 올라서서 편하게 사격 자세를 잡고 있었다.


타앙!


척- 철컥!


총알 한 발을 쏴 토블론의 눈을 맞춰 한방에 즉사시키고는 다시 숀이 있는 곳을 향해 조준했다.


그 곳에는 광기에 물든 소 한 마리가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달리고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그 앞으로 숀이 그 소처럼 생긴 괴수, 토블론에게 쫓기고 있었다.


“으아아아~! 아악! 바로 뒤에서 소리 나요! 바로 뒤에 있어요! 저 진짜 죽어요! 살려줘요!!”


“거참 걱정 말라니까. 안 죽어 인마!”


타앙!


나는 토블론이 숀을 들이받으려는 찰나, 다시 한 발을 발사해 토블론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뒤에서 토블론이 총을 맞고 고꾸라지는 소리가 나자 숀도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눈이 반쯤 풀린 숀이 숨도 제대로 쉬도 못하면서 말을 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저, 저······. 허억. 진짜···. 하아. 진짜 죽을 뻔 했어요.”


나는 땅으로 내려와 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수통을 건네주며 녀석의 등짝을 시원하게 한 대 때려주었다.


“짜식이 엄살은!”


게이트 안 전투에서는 포지션의 밸런스가 매우 중요했다.


앞이 뚫리지 않게 괴수를 막아줄 탱커.


적절하게 괴수의 어그로를 관리해줄 테크니션.


견제를 섞어가며 딜을 넣어줄 원거리 딜러.


그 외에도 열 가지가 넘는 포지션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는 유지하는 것이 거의 국룰로 여겨졌다.


때문에 다른 조사관들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조를 편성했고 최소 네 명의 인원을 데리고 각개전투에 투입했다.


때문에 나도 곧 다른 인원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용병들은 우리 조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원인은 너무나 약한 숀에게 있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차별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의 행동은 당연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터에서 강한 적보다 무서운 것이 무능한 아군이니까.


찰나에 벌어지는 아군의 실책에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니 문제덩어리로 소문난 숀의 조에는 참가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우리 조의 인원은 숀과 나, 단 둘뿐이었다.


인원이 모자라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세 시간 전.


나는 숀을 앞에 두고 큰 고심을 하고 있었다.


후우······.


“하아, 진짜 아무도 안 들어올 줄이야······.”


나는 아픈 머리를 쥐고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했다.


출정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어차피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겠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조원을 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지금은 앞으로의 계획이나 전술을 생각해야할 때였다.


하지만······.


내 시야에 쭈뼛쭈뼛 아무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숀이 들어왔다.


하아, 얘를 대체 어디다 써먹어야 한단 말인가.


숀도 지금 이 상황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말했지? 쭈구리처럼 있지 말라고. 어깨 펴 인마!”


하지만 나의 다그침에도 한 번 내려간 숀의 고개는 올라올 줄을 몰랐다.


“너 뭐 죄졌어? 이 상황의 원인이 너인 건 맞는데, 그게 죄냐? 약한 게 죄야? 그렇게 자책할 시간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이나 해.”


“네, 알겠습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나는 숀에게 물었다.


“너 뭐 잘하냐?”


내 물음에 숀이 허리를 빳빳하게 세워 차렷 자세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뭐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 자신 있는 게 뭐냐고.”


“빨래부터 식사준비까지! 뭐든 잘 할 자신 있습니다.”


아···!


“아니~!!!”


아오, 답답해 뒤져버리겠네!


“누가 그런 잡일하래? 싸울 때 네 장기가 뭐냐고!”


“아······.”


내 고함소리에 숀이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 받은 얼굴로 한동안을 멍하니 있었다.


잠시 후 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뭐야? 갑자기 왜 쪼개?”


순간, 나는 내가 너무 윽박을 질러서 얘가 미친 건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사, 사실 용병이 되고 나서 누가 전투에 대해서 이렇게 물어봐준 게 처, 처음이라서······.”


아···.


“저는 등급이 낮아서 전투에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구멍이 되는 경우가 허다해서 항상 뒤치다꺼리만 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저한테 묻는 건 밥은 아직 멀었냐, 전투화는 잘 말려놨냐, 뭐 챙겨왔냐, 이런 거뿐이었거든요. 하하······.”


아, 새끼 괜히 맘 쓰이게 시리.


나는 미간을 더욱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지랄 똥 싸네. 누가 네 과거 얘기 듣고 싶대? 그래서 너 뭐 잘하는 거 있냐고?”


내 질문에 숀이 밝아진 얼굴로 자신 있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와······. 방금은 진심으로 욱할 뻔 했다.


아무래도 질문을 좀 바꿔야겠다.


“너 혼자 토블론 잡을 수 있어?”


내 말에 다시 숀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아뇨.”


“그럼 칼립은?”


“둘만 있으면 가능은 할 것 같은 데요···?”


토블론은 고사하고 칼립마저 쉽게 잡을 수 없는 최악의 신체라니······.


나는 숀의 정보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숀 핸드릭스 ]

등급 : ☆

레벨 : 20

수호성 : 인피니티

별자리 : 수레자리

클래스 : 스피어맨(Spearman)



인피니티라는 수호성은 나도 생전 처음 보는 수호성이다.


하지만 뭐, 내가 모든 수호성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숀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으로 봐서 크게 별 볼일 없는 수호성일 것이다.


그럼 지금 봐야할 것은 별자리 밖에 없었다.


숀의 별자리는 수레자리.


스태미나가 20%증가하는 수호성이라······.


하필 별자리마저 저런 답도 없는 걸 들고 있다니, 정말 태생부터가 운이 지지리도 없는 녀석이다.


전투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 별자리는 지구력 관련,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너 달리기 잘하냐? 빨리 달리는 거 말고 오래 달리는 거.”


“어, 그러고 보니 저 체력은 좀 좋은 편이에요. 빨리 달리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오래 달리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정도면 됐다.


“자, 지금부터 너는······. 달려.”


“옙! ···예, 예?”


당차게 대답하던 숀이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되물었다.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어라 달리기만 해. 그리고 괴수들을 유인해.”


내말에 숀이 기겁을 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빨리 달린다고 해도 괴수보다 빨리 달리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결국 따라잡힐 텐데 제가 괴수를 어떻게 유인해요?”


나는 크게 당황한 숀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그를 진정시켰다.


“괜찮아, 따라잡히기 전에 내가 괴수를 총으로 쏴서 죽일 거니까.”


하지만 숀은 전혀 진정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조, 조사관님!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숀이 울상을 지었지만 난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방법 말고는 없어.”


“분명 무슨 방···.”


숀이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나는 단칼에 그의 말을 잘랐다.


“너도 네가 쓸모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지 않아?”


내 말에 흠칫 떤 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건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건 저것 때문에 안 되고, 이거 저거 다 가리면 그 증명은 대체 언제 할 건데?”


“그, 그래도······.”


“걱정 하지 마, 무조건 가능해.”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녀석의 등을 두드렸다.


그렇게 숀이 미끼가 되고 나는 낚시꾼이 되어 괴수사냥을 시작한지 1시간쯤 지났을까?


현재까지 우리가 잡은 괴수의 수는 칼립 8마리, 토블론 13마리에 달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는 숀에게 물었다.


“어때? 해보니까 할 만 하지?”


내 백발백중의 명중률을 보다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는지 숀의 표정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하, 할만은 한데······. 이젠 못 뛰겠어요. 다리가 후들거려요.”


하긴, 1시간을 전력질주로 내리 달리기만 했으니 힘들만도 하지.


“잠깐 쉬고 있어. 난 전리품 수거할 테니까.”


나는 죽어있는 토블론에게 다가가 녀석의 사체를 정형하기 시작했다.


가장 우선적으로 토블론의 뿔을 도려내고 가죽을 벗긴 뒤 눈에 보이는 근육의 결을 따라 부위를 나누었다.


내 능숙한 칼솜씨에 숨을 고르며 내 행동을 지켜보던 숀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조사관님은 대체 못하시는 게 뭐예요? 총도 쐈다 하면 백발백중인데 사체 손질까지···. 누가 보면 스케빈저라고 해도 믿겠어요.”


숀의 말에 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 내가 말을 안 했구나? 나 스케빈저 출신이야.”


물론 실제로 일한 건 4일이 전부지만······.


내말에 숀이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저, 정말이요!? 저희 작은 아버지도 스케빈저예요!”


녀석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별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대꾸 정도는 해주기로 했다.


“아, 그래?”


“네! 꽤 오래 일하시기도 하셨고 실력도 좋으신 분이라 이름만 대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정도예요! 조사관님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걸요?”


“작은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


“마크 핸드릭스요!”


뭐?


“마, 마크?”


설마 내가 아는 그 마크 핸드릭스?


맙소사, 그럼 얘가 마크 형님 조카였던 거야?


마크 핸드릭스, 숀 핸드릭스······.


성이 같은데 왜 생각하지를 못했을까?


“들어보셨어요?”


“그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일했는데. 나도 마크 형님한테 도움 많이 받았지.”


“아, 그러셨구나······. 근데 얼마 전이요?”


숀이 뭐가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궁금해 하는지 알겠다.


“응, 나 조사관 된지 얼마 안 됐어. 토벌도 이번이 처음이고.”


그 말에 숀이 또 한 번 화들짝 놀랐다.


“히익···! 그렇게 잘 싸우시는데 첫 토벌이라고요?”


저건 진심으로 놀라는 거야, 아니면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사탕발림인거야?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숀이 한숨을 쉬며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아~ 좋겠다. 나도 그렇게 강해지면 좋을 텐데. 조사관님, 강하다는 건 무슨 기분이에요?”


농담조로 하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걸 농담으로 들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고 한참을 조용히 누워만 있던 숀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조사관님, 저희 작은 아버지······. 고생 많이 하시죠?”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뒤에는 어째서인지 씁쓸함이 가득했다.


“지금은 스케빈저로 이름을 날리고 계시지만 작은 아버지가 원래는 조사관 사관학교 기대주였거든요. 그러다 저희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저희 작은 아버지가 저를 떠맡게 됐는데······.”


갈수록 점점 말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숀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의 톤을 높였다.


“아우! 자기 출세에 방해되는 거 그냥 갖다 버리지, 잘 나가던 사관학교까지 그만두고 굳이 저를 데려와서 그 고생을 하신다니까요? 저만 없었으면 지금쯤 이름 날리는 스케빈저 말고 이름 날리는 조사관이 되셨을 텐데···. 이잉 쯧쯧, 바보야 바보.”


나는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토블론을 정형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내 반응이 없어도 숀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실······. 저도 이번 토벌이 처음이에요.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용병이 됐는데 이게 웬걸? 태생이 너무 미천해서 그 흔한 칼립하나도 제대로 못 잡네요? 당연히 용병생활은 제대로 될 리가 없고 겨우 참가한 토벌에서도 외면만 당하고···.”


숀의 말에서는 그간 그가 당한 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런 주제에 제가 계속 조사관이 되려고 하는 건 너무 욕심이겠죠? 우리 작은 아버지 진짜 고생 많이 했는데······.”


가만히 누워있던 숀은 햇빛에 눈이 부신지 손등으로 가신의 눈을 가렸다.


“너라도 조사관이 되라고, 가문의 대를 이어 최고의 창잡이가 되라고 간이고 쓸개고 다 팔아가며 제 뒷바라지를 해주셨는데······. 그렇게 나하나 꽃피우자고 거름이 되기를 자처한 사람인데······.”


숀의 말을 듣던 나는 깊은 회상에 잠겼다.


작은 아버지라······.


- 우리 정안이, 작은 아빠랑 같이 갈래?


- 이 잡놈의 새끼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놈이 우리 집에 들어오고 나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알아!?


- 뭐? 준비물!? 이 쌍놈의 새끼가! 내가 돈 나오는 기계인줄 알아!? 맞아야 정신 차리지?


······.


숀이 활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이제 그만하는 게 낫겠죠? 하하, 이왕 이렇게 된 거 스케빈저로 전향이나 할까요? 어차피 용병이랑 스케빈저 급여가 별 차이 안 나기도 하고···.”


그의 억지웃음을 듣던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그래도 너는 좋은 삼촌을 둬서······.”


“네? 뭐라고 하셨어요?”


내 작은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숀이 바를 보며 물었다.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려 표정을 바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꾸 똥 쌀래? 내가 말했지? 네 과거사 안 궁금하다고. 나불댈 힘이 있는 걸 보니 슬슬 다시 사냥해도 되겠는데?”


내 표정에 숀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아, 아직 전리품 회수 다 못하셨······.”


나는 양손을 활짝 피며 주변에 널린 괴수의 사체들을 가리켰다.


모두 깨끗하게 해체되어 수거된 상태였다.


“어, 언제 저걸 다···!”


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주둥이만 나불대는 동안 누구는 열심히 일만했거든. 다 쉬었으면 얼른 일어나지?”


내가 차갑게 노려보며 낮게 으름장을 놓자 숀이 화들짝 놀라며 빛과 같은 속도로 기립했다.


“예, 옙!!”


그 순간.


“살려줘!!!”


저 멀리서 사람의 비명과 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그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다섯 명의 사람이 전력질주로 달려오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그들의 바로 뒤로 거대한 먼지구름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숀은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저게 무엇인가 관찰을 했다.


“저, 저게 뭐죠? 모래 폭풍인가요?”


“X됐다······.”


먼지 때문에 숀의 눈에는 그저 모래바람으로 보였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눈에는 그것들의 정체가 확연히 보였다.


그것은 수 백 마리의 괴수.


그것도 지금까지 만났던 괴수들보다 높은 등급의 괴수들이었다.


나는 선두에서 큰 진동을 울리며 달려오는 괴수를 보았다.


전신에 보석을 박은 것처럼 검은색의 껍질이 전신을 두른 커다란 코끼리처럼 생긴 괴수, 아니 코끼리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녀석.


당연히 나는 녀석을 알고 있었다.


“옵시디언 매머드······.”


“오, 옵시디언 매머드요!? 저게 옵시디언 매머드라구요? 이 구역에는 그게 있을 리가 없는데?”


숀의 말이 맞았다.


여기는 아직 초입부, 이곳에는 저 녀석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나는 옵시디언 매머드에게 쫓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낯이 익다.


- ···난 같이 싸워줄 용병이 필요한 거지 떨거지가 필요한 게 아니다.


맞다. 그때 숀을 거부했던 그 조사관의 일행들이다.


그 와중에 쫓기던 이들 중 용병 하나가 옵시디언 매머드의 뿔에 치이더니 그대로 녀석의 거대한 발에 밟혀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뛰어!”


“예!?”


“살고 싶으면 뛰라고!!”


쿠웅! 쿠웅! 쿠웅! 쿠웅!


가만히 있다가는 아까 당한 용병처럼 저 어마무시한 발에 밟히고 말 것이다.


우리는 무작정 잘리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조사관과 용병들은 달리는 속도가 꽤나 빨랐는지 오래 걸리지 않아 바로 우리의 뒤까지 따라 붙었다.


그때, 조사관이 고함을 질렀다.


“숲! 숲으로 가세!”


나와 숀은 그의 말을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숲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숲으로 진입하자 금방이라도 등을 들이받을 것처럼 따라오던 옵시디언 매머드의 추격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속도가 조금 들어들었을 뿐 여전히 몸에 닿는 나무들을 모조리 부셔버리며 우리를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우리 앞으로 절벽이 나타났다.


절벽 때문에 강제로 멈추게 된 우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옵시디언 매머드와 절벽을 번갈아보았다.


“올라갑시다!”


조사관이 손가락으로 절벽을 가리키고는 가볍게 도약해 절벽으로 뛰어 올랐다.


절벽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걸 한 번에 뛰어오르다니······.


감탄할 시간도 없었다.


그사이 괴수들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조사관은 절벽 위에서 손을 뻗어 한명씩 끌어올렸다.


그렇게 그의 일행이 용병 셋이 올라갔을 즈음. 옵시디언 매머드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빨리 올려주세요!”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에서 망설임이 보였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 둘까지 구하기엔 시간이 모자랐으니까.


우리를 구하는 와중에 저 괴물들이 도착해 들이 받기라도 하면 절벽이 무너져버릴지도 몰랐다.


“서, 선배님 도와주세요!”


숀도 소리쳤지만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 그냥 가자! 하, 하자 새끼 하나 구하자고 우리 목숨을 버릴 순 없잖아!”


저 새끼가···!


“조, 조사관님 얼른 가야합니다! 이러다 다 죽어요!”


“맞습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죠!”


용병들의 말에 잠시 갈등하던 조사관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미안하네.”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모습을 감춰버렸다.


나와 숀은 그들의 행동에 말을 잇지 못했지만 이제는 정말 그럴 겨를도 없었다.


쿠웅!! 쿠웅!! 쿠웅!!


괴수들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으니까.


“조, 조사관님 저희 어떡해요!?”


우리 힘으로 이 절벽을 오르는 것은 무리다. 어떻게든 오른다고 해도 시간이 없다.


분명 채 올라가기도 전에 저 매머드들에게 찢겨 죽을 것이다.


나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사관님!!”


매머드가 지척까지 다가온 상황.


그때 내 시야에 절벽 틈으로 작은 동굴 하나가 잡혔다.


나는 생각할 새도 없이 곧바로 숀을 잡아끌었다.


“동굴로 들어가!! 빨리!!!”


나와 숀은 아슬아슬하게 동굴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고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옵시디언 매머드의 육중한 몸이 절벽을 강타했다.


콰앙! 쾅! 쾅! 콰르릉!


지진 같은 울림과 폭음이 지축을 흔들었고 그와 동시에 절벽이 아찔한 굉음을 내며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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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30 - 아스트롤라베 [3] 21.01.01 43 1 15쪽
29 029 - 아스트롤라베 [2] 20.12.31 62 1 13쪽
28 028 - 아스트롤라베 [1] 20.12.30 111 1 12쪽
27 027 - 결성, 와치독스! [2] 20.12.29 57 1 15쪽
26 026 - 결성, 와치독스! [1] 20.12.28 52 1 17쪽
25 025 - 최악의 둔재(鈍才) [3] 20.12.27 62 1 19쪽
24 024 - 최악의 둔재(鈍才) [2] 20.12.26 53 1 20쪽
» 023 - 최악의 둔재(鈍才) [1] 20.12.25 65 1 20쪽
22 022 - 토 벌 [3] 20.12.24 90 1 13쪽
21 021 - 토 벌 [2] 20.12.23 58 1 12쪽
20 020 - 토벌 [1] 20.12.22 83 1 14쪽
19 019 - 주시자 [2] 20.12.21 63 1 18쪽
18 018 - 주시자 [2] 20.12.20 71 1 14쪽
17 017 - 주시자 [1] 20.12.19 6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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