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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폴 님의 서재입니다.

주시자(Watcher)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랭폴
작품등록일 :
2020.12.01 20:00
최근연재일 :
2021.01.18 18:42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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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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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글자수 :
308,281

작성
20.12.1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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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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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17 - 주시자 [1]

DUMMY

오벤의 말에 내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전 대륙의 조사관을 관리하는 조사관 길드에서 내 서포터가 되어준다?


왜??


물론 조사관 길드 전체가 아닌 스텔란 지부에 한하는 것이었지만 오벤의 말은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 예언이 길드의 지부장이 이런 말을 하게 할 만큼 중요한 건가?


나는 내가 잘 못들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다시 물었다.


“제 서포터가 되어주신다고요?”


“네. 남들의 시선이 있으니 눈에 띄게 도와줄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왜죠?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겁니까?”


“정안님은 이 대륙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이들이요?”


내 물음에 오벤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저는 이벤트 게이트로 인해 제 아내와 아이를 잃었습니다.”


“아······.”


내가 무슨 위로의 말을 해줘야할지 머뭇할 때 오벤이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제 아내와 딸아이는 처가댁이 있는 작은 소도시인 허니벨리로 잠시 나가 있었습니다. 제 일이 바빠 혼자 계신 장모님을 못 본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둘이서 만이라도 장모님도 뵐 겸 거기서 며칠 머물다 올 계획이었죠. 그런데 하필 그날, 허니 벨리 위로 이벤트 게이트가 생겨났습니다. 허니벨리의 치안력으로는 감당할 수 가 없을 만큼 거대한 게이트가요.”


대충 그 뒤의 일은 예상이 갔다.


“정안님께서도 예상하셨겠지만 그 게이트로 인해 허니벨리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어버렸습니다. 보고를 받고 저를 비롯한 스텔란의 모든 조사관들이 출동을 했지만 이미 재앙이 일어난 후였죠. 저는 주검이 되어 싸늘하게 식어버린 제 딸아이와 아내를 붙들고 오열을 했고 이성을 잃은 저는 게이트에서 넘어온 모든 몬스터들을 밤낮없이 도륙하고 게이트 안까지 들어가 몬스터의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너무나도 참담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렇게 게이트를 닫고 끝이 난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끝이 아니었다니요?”


“그 재앙, 그 단 한 번의 재앙으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고 어딜 가나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고 3만이 넘는 아이들이 부모의 시신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위험천만하게 건물의 잔해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는 모습은······.”


오벤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저는 진짜 재앙이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스텔란은 겉으로는 안전하고 부족함 없는 도시처럼 보이지만 근처 빈민가만 가보아도 노예상인, 범죄자, 갈취 같은 수많은 위협에 노출된 채 배를 곯으며 오늘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고아들이 한 가득입니다. 약하다는 죄로, 부모가 없다는 죄로 길거리 쓰레기 취급을 받는 아이들이 말입니다.”


오벤의 말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버렸다.


“저도 자주 찾아가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지만 저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몇 명의 아이들을 구제해도 그에 배가 넘는 고아들이 언제 생겨났는지도 모르게 새로 그 자리를 대신하니까요.”


오벤이 주먹을 꽉 쥐고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작 예언 하나를 이렇게까지 믿는다는 걸 정안님은 이해 못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 빌어먹을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모든 게이트를 닫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 그거 하나뿐입니다. 때문에 저는 그 예언을 믿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모든 것을 정안님께 배팅하기로 한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도 나는 선뜻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이해했다.


하지만······.


“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 말에 오벤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직도 저는 그 예언 속 주인공이 제가 아닐 거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나를 바라보는 오벤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는 누구를 구하고 구원할 처지가 못 됩니다. 그럴만한 그릇은 더더욱 아니죠. 저는 지부장님처럼 대의를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구원하겠다는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저만 잘 살면 되는 인간입니다. 저는 그런 놈입니다.”


오벤은 내 말이 거절의 의미라 생각하고는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도 굳이 저를 두고 도박을 하시겠다면······.”


오벤의 눈이 커지며 숙여졌던 그의 고개가 다시금 나를 향했다.


“제가 그 판에 올라가 드리겠습니다.”


“그, 그 말씀은······.”


“말씀드렸다시피 누구를 구하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사절입니다. 하지만······. 이 세계의 모든 게이트를 닫는 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으시다면 저도 제 목숨을 판돈으로 지부장님의 대의에 함께하도록 하죠.”


내 말에 오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정안님! 제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오벤은 뭐가 그리도 기쁜지 연신 내게 머리를 조아렸고 나는 여전히 굳은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뭔가 모르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치 대단한 사람을 대하듯 나를 치켜세우는 오벤의 저 태도도 보기 불편했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화두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합니까? 밖에 사람이 저리도 많은데.”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 있게 말한 오벤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장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한권 살짝 뺐다.


순간. 드르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책장이 옆으로 밀려나면서 숨겨져 있던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업지구로 이어진 비밀통로입니다.”


이런 게 있었을 줄이야······.


“소문은 제가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오래는 힘들 겁니다. 큰 규모의 조사단은 언젠가는 정안님의 정체를 알아낼 것이고 접근을 시도할 겁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다.


분명 나를 귀찮게 하겠지.


자신들의 뜻대로 안 되면 힘으로 어떻게든 하려 할 것이다. 뻔한 얘기다.


“저도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리고 싶으나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아 그럴 수가 없으니 당분간 조사관 출입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최대한 빠르게 힘을 기르시는데 집중해 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다.


조사단 길드에는 내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녀석들이 바글거릴 텐데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안일한 행동이다.


“일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가 되면 제가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문으로 들어갔다.







오벤의 말대로 통로는 상업지구로 이어져 있었다.


낡은 문을 열고 좁은 골목을 비집고 나오니 이곳에 온 첫날 내가 노숙을 했던 가게가 보였다.


대로변으로 나오자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뭔가를 찾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저 사람은······.”


- 우리 조사단에 팔게! 만약 판다면 자네가 제시한 금액에 사냥터 알선까지 얹어서 더 좋은 값을 치러주지!


아뿔싸······.


만신전에서 내게 붙어 하얀 사신을 사려고 한 사람이었다.


아직까지 나를 찾고 있다고?


사실 조사관 길드로 갈 때 까지만 해도 나를 찾는 사람이 꽤 보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찾고 있을 줄이야······.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후드를 쓰고 방향을 틀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려면 저들을 뚫고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많이 위험했다.


이렇게 된 거 영점이나 잡으러 갈까?


총을 구했으면 일단 영점을 맞추는 게 우선.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지금 바로 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생각을 마친 나는 바로 내가 처음 떨어진 숲이 있는 동쪽 검문소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으면서 자꾸만 오벤과의 대화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아,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런 피곤한 일을······.”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목숨? 네가 죽으려고 여기 왔어? 목숨을 걸긴 왜 걸어!?”


나는 절대 무언가에 목숨을 걸 인간이 아니다.


나는 지극히 나만을 위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자꾸만 오벤의 말이 떠올랐다.


- 근처 빈민가만 가보아도 노예상인, 범죄자, 갈취 같은 수많은 위협에 노출된 채 배를 곯으며 오늘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고아들이 한 가득입니다.


- 약하다는 죄로, 부모가 없다는 죄로 길거리 쓰레기 취급을 받는 아이들이 말입니다.


······.


나는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버렸다.


그리고는 짧고 굵게 한숨을 내뱉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흥, 나는 그저 조사관 길드의 서포트가 필요했을 뿐이야. 이런 기회가 흔한 건 아니잖아? 아니, 지가 나서서 돕겠다는데 거절하면 그게 병신이지. 그치!”


남을 돕고 사는 건 역시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원래 그런 인간이고, 이런 세상에서는 그게 옳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좋다 그럼 영점 잡으러 가 볼까나!?”


오랜만에 사격을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드워드 웰스의 집무실.


병사 하나가 거칠게 숨을 헐떡거리고 에드워드와 월터가 그 모습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히 말해봐. 그녀석이······. ···뭘 해?”


월터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병사를 재촉했다.


“그 정안이라는 녀석이 수호성 검사에서 모든 불을 밝혔습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제가 녀석이 들어갈 때부터 확인했습니다. 정확히 그녀석이 검사를 하자마자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분명합니다.”


확신에 찬 병사의 말을 들은 월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에드워드는 머리가 아파오는지 미간을 짚었다.


“나가 봐.”


월터의 축객령에 병사가 머뭇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누가 보기에도 몹시나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1경비대장님······. 서, 설마 그녀석이 예언 속······.”


그의 말에 월터가 말을 끊으며 차갑게 그를 노려봤다.


“일단 나가라고. 그리고 명심해. 이 일은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절대 함구하도록. 만약 이 일이 발설될시 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알겠나?”


월터의 엄포에 병사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충성.”


그렇게 병사가 나가고 에드워드는 자신의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월터, ···어떻게 생각하나······.”


에드워드의 물음에 월터가 잔뜩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뭔가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힘들다는 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그렇다. 사실 수호성 검사는 기계보다는 마법과 점성술의 비중이 더 큰 분야다.


거기다 현재 스텔란의 수호성 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전설의 오라클 마야 체드윅의 증손녀인 제이아나 체드윅.


점성술의 명가인 체드윅 가문의 사람인만큼 검사에서 실수를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자신이 이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신원미상자가 모습을 드러낸 지 일주일 만에 만신전에서 S급 이상의 아이템을 얻고 바로 그날 수호성 검사에서 모든 수호성의 불을 밝혔다? 월터, 이게 우연인가?”


에드워드의 물음에 월터가 고개를 숙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역시도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진짜 이계에서 오기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만약 그가 정말 예언 속 그 주시자라면······.”


에드워드가 양손을 책상에 올려 턱을 괴고는 눈을 감았다.


“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월터의 물음에도 에드워드는 규칙적으로 숨을 쉴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장님?”


월터가 다시 한 번 그를 부르자, 그제야 에드워드의 눈이 떠졌다.


“잡아오게. 잡아서 내 눈 앞에 데려와.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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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26 - 결성, 와치독스! [1] 20.12.28 53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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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 - 최악의 둔재(鈍才) [2] 20.12.26 53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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