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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폴 님의 서재입니다.

주시자(Wa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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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폴
작품등록일 :
2020.12.01 20:00
최근연재일 :
2021.01.18 18:42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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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3
추천수 :
60
글자수 :
308,281

작성
20.12.2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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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025 - 최악의 둔재(鈍才) [3]

DUMMY

[숀 핸드릭스의 초월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파삭-


“Yes.”


나의 대답과 함께 스타 더스트에서 흘러나온 별무리가 숀을 감싸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영롱한 빛을 뿌리는 그 신비한 가루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숀을 휘감았고 그 속도가 빨라질수록 광채는 더욱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조, 조사관님···?”


자신의 몸을 휘감는 빛에 숀이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빛은 점점 강해졌고 어느 순간 숀의 전신을 덮었지만 그것도 모자란 지, 주변의 어둠을 서서히 밀어냈다.


그렇게 어둡기만 하던 동굴을 찬란한 광채가 가득 메우기를 잠시, 포화상태에 이르렀던 빛이 점점 사그라들다가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한 점도 남김없이 모두 숀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빛은 사라졌고 멍한 표정의 숀이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이리저리 자신의 몸을 확인하던 숀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 조사관님···. 이, 이게 대체···!”


숀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등급이 올라갔다는 것을.


자신이 초월을 했다는 것을.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숀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운 듯,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어나봐.”


나는 무덤덤하게 턱짓을 하며 숀을 일으켜 세웠다.


내 지시에 숀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던 숀이 자신의 다친 다리가 생각이 났는지 흠칫 놀랐다.


“다, 다리가···. 멀쩡해요···.”


역시, 내 생각대로 숀의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아물어 있었다.


“이젠 같이 도망갈 수 있겠지?”


어나더 월드에서 조사관을 초월시켰을 때 HP와 MP가 회복되었던 것과 숀이 1성 만렙인 20렙인 것이 떠올라 시도해본 것인데 확실하게 효과가 있다.


“설명 좀 해 주세요, 조사관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내가 답답했는지 숀이 재촉을 했지만 나는 숀의 어깨를 손으로 쥐며 약하게 힘을 주었다.


“설명은 나중에 하자. 일단 여기부터 빠져나가야지.”


숀은 뭔가 더 묻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내 진지한 태도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동굴 입구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그리고는 사방에 즐비한 괴수들을 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대략 50마리.


본부까지 달려가면서 마주칠 괴수들까지 합하면 못해도 70마리는 될 것이다.


나와 같이 괴수를 응시하던 숀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어떻게 하긴.”


나는 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달려야지.”


나는 인벤토리에 남아있던 스타 더스트를 모두 꺼냈다.


내게 남은 스타 더스트는 20개.


다행히도 딱 맞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걸 지금 여기서 쓴다는 게 너무 아까웠지만 그보다 더욱 아까운 것은 ‘근본스킬’ 슬롯을 하나 더 써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려는 것은 레벨 10때 배우는 근본스킬중 하나인 ‘풍신의 발걸음’을 배우는 것이었다.


10분간 이동속도 50%증가라는 간단하고도 확실한 효과를 가진 풍신의 발걸음.


효과가 좋아서 전혀 나쁜 스킬은 아니지만 가뜩이나 파워어택으로 슬롯을 하나를 낭비한 상태에서 이 스킬까지 배우기에는 사용할 슬롯이 너무 아까웠다.


나는 계획했던 개사기 스킬중 하나에게 마음속으로 작별을 고하며 스타 더스트 20개를 모두 깨트렸다.


파워어택 때와 마찬가지로 빛 무리가 한동안 내 손을 휘감다가 피부로 흡수 되었다.


풍신의 발걸음을 익힌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혼자 도망쳤었어도 여길 빠져나가려면 이걸 사용하고 달려야 했을 테니까.


나는 숀에게 간단하게 계획을 일러주었고 숀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숀, 창 들어.”


내 지시에 숀이 다시 한 번 접이식 창을 꺼내들어 조립했다.


“잊지 마. 네가 왼쪽, 내가 오른쪽 괴수를 맡는다. 접근하는 녀석을 굳이 죽일 필요는 없어. 추격이 힘들게끔 상처 입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나머지는 무시하고 그냥 죽어라 달려.”


내 말에 숀이 손에 쥔 창대를 세게 비틀며 대답했다.


“예!”


등급이 올라서 인지, 아니면 심경에 어떤 변화라도 있는 것인지 전과는 느껴지는 기운부터가 달랐다.


고작 1성에서 2성이 됐을 뿐인데······.


갑자기 녀석이 기특해보였다.


총을 목에 건 나는 한 손은 내 가슴에, 한 손은 숀의 어깨에 댔다.


“내 손이 떼어지는 순간 달리는 거야.”


“알겠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풍신의 발걸음, 풍신의 발걸음.”


스킬을 사용하자 순풍이 내 다리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나는 손을 떼며 외쳤다.


“달려!!”


내 기합이 섞인 외침과 동시에 우리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힘차게 다리를 움직이자 바람이 알아서 우리를 비켜났고 주변의 사물이 빠른 속도로 내 시야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빠, 빠르다···!


‘풍신의 발걸음’의 효과는 생각보다 굉장히 뛰어났다.


방금 출발했는데 출발선이었던 동굴이 이미 저 멀리 있었다.


내 생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본 적이 있던가?


한 걸음에 수 미터씩 쏘아지는 신기한 현상은 50%라는 수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확실히 체감하게 했다.


하지만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의 피 냄새를 맡고 있던 괴수들의 시선이 우리의 등장과 함께 이쪽으로 쏠렸다.


수많은 칼립과 토블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우리에게 달려들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크게 외쳤다.


“숀!!”


“넵! 흐아아앗!”


촤악!


무어어어-!


숀은 대답과 동시에 자신의 왼편을 향해 창대를 휘둘렀고 그 휘둘러진 창에 달려오던 토블론 한 마리의 앞 다리 가죽이 사정없이 찢어졌다.


그 모습을 본 숀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토블론의 몸에 상처를 내지도 못했던 자신이 토블론의 몸을 갈랐다.


반신반의 했는데 그 힘의 차이를 직접 목격했으니 크게 놀랄 만도 했다.


“조, 조사관님 제가···!”


“멍청아, 한 눈 팔지 마!!”


나는 숀을 크게 다그치며 그의 시선을 다시 전방으로 집중시켰다.


우리의 탈출은 이제야 시작이다.


뒤에서 수많은 괴수들이 쫓아왔지만 괴수는 뒤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앞에서도 여러 마리의 괴수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력을 다해 달리며 동시에 전방을 향해 총을 쐈다.


타앙!


척- 철컥!


타앙!


척- 철컥!


내가 총을 한 번씩 쏠 때마다 달려오던 괴수들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찰칵! 찰칵!


“제, 젠장! 총알이···!”


모신나강의 최대 탄수는 5발.


하필 바로 앞에 괴수가 있는데 탄이 다 떨어졌다.


재장전할 시간도 부족하다.


나는 생각할 새도 없이 몸에 걸려있던 총의 띠를 벗어 총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는 전방에서 내 앞으로 돌진하는 칼립을 향해 힘껏 총을 휘둘렀다.


“파워어택!”


콰아앙!


개머리판에 부딪힌 칼립의 머리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나는 곧바로 다시 장전을 하고 앞에서 달려오는 괴수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조준을 하지 않아도 내 눈에는 총알이 날아갈 궤적이 보인다······.


앞에서 달려오는 괴수를 모두 죽인 나는 한손으로 총을 들고 내 눈에 보이는 궤적에 의지해 오른편에서 달려오는 토블론을 향해 총을 쐈다.


타앙!


내가 쏜 총알은 정확하게 토블론의 미간에 적중했고 그녀석이 쓰러지면서 뒤따라오던 괴수들도 발이 걸려 덩달아 고꾸라지고 말았다.


전방과 좌우의 괴수를 모두 처리하자 이제 우리를 노리는 괴수는 뒤에서 우리를 쫓는 녀석들뿐이었다.


아무리 우리의 속도가 빨라졌다지만 우리의 상대는 괴랄한 신체능력을 가진 괴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따라잡힐 것이 뻔했기에 나는 틈틈이 뒤를 향해 총을 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숲이 멀지 않았다.


숲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우리는 사력을 다해 달렸고 비명 같은 외침을 내질렀다.


“달려!! 죽어도 달려어어!!”


“예에에에!!!”







게이트 초입부 전초기지.


해가 저물고 밤이 되자 각개전투를 나갔던 조사관들도 돌아왔고 토벌대는 방어진형을 짜고 괴수의 습격에 대비했다.


토벌대장은 참모를 통해 전사자와 부상자의 수를 전해 듣고 있었다.


“뭐? 조사관이 한 명 죽었다고?”


흔치 않은 일이다.


조사관 길드 소속 용병이라면 모를까 조사관이 죽다니······.


그것도 단체전투가 아닌 각개전투에서?


초입부에서는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토벌대장은 금세 관심을 돌렸다.


“어지간히도 약했나보군. 그래, 우리 쪽 용병들의 피해는?”


“단체전투에서 스무 명, 각개전투에서 네 명, 총 스물네 명이 전사했습니다.”


참모의 말을 들은 토벌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흐음, 아깝게 됐구만······. 전사자 가족들한테 위로금은 확실히 전해주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마치려던 순간.


간이막사 밖에서 병사 하나가 부리나케 뛰어왔다.


“추, 충성! 지휘통제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그 모습에 토벌대장이 가볍게 손을 들어 그를 맞았다.


“어~ 제이든, 뭐야? 뭔데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와?”


제이든의 물음에 병사가 숨을 헐떡거리며 정문을 가리켰다.


“바, 밖에 새, 생존자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그 말을 들은 토벌대장이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며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병사의 말대로 정문 밖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서로 부축을 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본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으으······. 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팔과 다리가 붕대로 감겨져 있고 내 옷은 어디 갔는지 하얀 옷으로 갈아입혀져 있었다.


“아으, 죽겠네······.”


통증으로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나는 일어나지도 못한 채로 고개만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국방색 천으로 만든 간이 막사에 여러 개의 침상들.


공공근로에서 칼립의 공격으로 쓰러졌을 때 실려 왔던 의료용 막사와 비슷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파악을 하는데 오른쪽에서 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조사관님, 깨셨어요?”


숀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웬 미라 하나가 내 옆 침상에 누워있었다.


“······누, 누구세요?”


화들짝 놀란 나는 움직이지도 못 하고 고개만 뒤로 빼 그 미라를 경계했다.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미라가 내 질문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 조사관님 저 숀이에요.”


자신이 숀이라 밝힌 미라는 아파서 제대로 웃지도 못하는 지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그 미라는 숀이 맞는 듯 했다.


“숀? 너 몰골이 왜 그래? 왜 잠깐 사이에 미라가 됐냐?”


“···잠깐이라뇨, 저희 지금 3일 째 여기 누워 있는 건데요?”


“뭐? 3일?”


아니, 그럼 내가 3일 씩이나 의식이 없었다고?


“아무튼 다행이에요, 별 탈 없으신 것 같아서······. 이대로 못 깨어나시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거든요.”


그제야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까···. 아, 아니지. 3일 전에······. 숲으로 들어가고 나서 이제 됐다 싶었는데 텐타클 래빗 떼를 만나서 거의 죽을 뻔 했지?


그 뒤로 뒤따라온 칼립 몇 마리랑 더 싸우고, 그러다가 숀 저 자식은 돌에 찧어서 머리까지 깨지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숀이 조금 걱정됐다.


“야, 너는 괜찮냐?”


내 물음에 숀이 실실 웃음을 흘리며 붕대로 꽁꽁 싸매진 팔을 들어올렸다.


“흐흐, 보시다시피······.”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서 돌아온 게 용하다.


“푸흐, 크크크크큭.”


붕대로 칭칭 감긴 채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뭐가 그리도 좋은지 갑자기 웃음이 새어나왔다.


“크크크큭.”


내가 웃기 시작하자, 숀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아, 아 웃지 말아요! 저까지 웃기잖아요, 하하, 하, 하흐으···.”


숀은 통증 때문에 아파죽으려고 하면서도 웃는 걸 멈추지 못했다.


“푸하하, 아아, 죽을 거 같아, 아아···. 크흐흐······.”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웃음이 멎고 적막이 막사 내부를 맴돌았다.


······.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숀이 입을 열었다.


“···저기, 조사관님······.”


“···너, 입은 안 다쳤니?”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많이 심심했는지, 숀은 잠깐의 정적도 견디지 못하는 듯싶었다.


“난 네가 그런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부를 때가 제일 무서워. 그래, 뭐? 무슨 일이야? 너 놔두고 가라고? 알았어. 일어나지면 뒤도 안보고 갈 거니까 걱정 마.”


내 말에 숀이 손을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요~! 아니, 거, 사람이 쪼잔하게 지난일 가지고······.”


“쪼, 쪼잔?”


저 배은망덕한 놈이! 지 때문에 내가 무슨 결정을 했는데···!


“너 이 새끼···!”


그렇게, 내가 뭐라고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순간, 숀이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감사해요.”


“···어?”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말이었다.


“정말 감사해요. 수많은 용병들 중에 저를 골라주신 것도 감사하고 저를 포기하지 않아주신 것도 감사하고, 그리고······.”


숀의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저한테 이런 힘을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해요.”


숀은 손을 내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항상 좌절감에 빠져 살았는데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사관님 덕분에 이제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숀의 인사를 들은 나는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야, 숀.”


“네?”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 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살던 곳에 이런 말이 있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다.’ 그 말은 곧 힘이 꼭 강함의 척도가 되는 건 아니라는 소리야.”


힐끗 바라보니 숀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을 법도 했다.


지금까지 숀의 삶은 전형적으로 힘이 강함의 척도가 되는 삶이었으니까.


“네 눈에는 내가 강해보이냐?”


“그럼요! 조사관님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살아있는 거잖아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이 힘이 아니라 살고자하는 의지야. 만약 살려는 의지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이 세계에 발을 들이기 훨씬도 전에 죽었을 거야.”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숀은 이해가 안 되는 듯 했다.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 너한테서 뭘 봤는지 아냐?”


내 물음에 숀이 나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는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글쎄요, 너무 안 좋은 것만 보여드린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의지. 그 쳐 죽일 조사관놈 앞에 넙죽 엎드려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애원하는 너의 필사적인 모습을 보면서······. 너한테서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살고자하는 의지를 봤어. 그래서 너를 거기서 데려온 거야.”


“아아······.”


순간, 숀의 표정이 멍해졌다.


“근데 동굴에서 네가 그 의지를 버리려고 했어. 약하다고 했지만 누구보다 강했던 녀석이 스스로 정말 약한 놈이 되려고 했어. 숀, 네가 조금 전에 내 덕분에 우리가 살아있는 거라고 했지?”


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봐. 우리가 처절하게 도망쳤던 3일 전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봐. 과연 나 혼자였어도 내가 지금 이렇게 무사히 이곳에 올 수 있었을까?”


“그야······.”


나는 힘을 실어 말했다.


“네 덕분이었어. 네가 있었기 때문에, 네가 나와 함께 그 괴수들을 물리쳤기 때문에, 오는 동안 네가 나를 부축해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야. 너는 약하지 않아. 숀, 네 의지는······. 네 생각만큼 그렇게 하찮지 않아.”


숀은 미세하게 손을 떨며 시선을 가만 두지 못했다.


많이 혼란스러운 듯 했다.


“숀, 내 눈을 봐.”


내 말에 숀이 조심스럽게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눈빛으로 말을 했다.


“난 너에게 힘을 준 게 아니야, 기회를 준거지. 네 힘으로 뭔가를 이뤄낼 수 있는 기회를. 지금 살아 있는 우리를 봐. 이게 네 힘이야. 하고자 하는 네 의지가, 우리를 살린 그 노력이, 너의 진짜 힘이야.”


그 말을 들은 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순간, 숀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숀이 있던 자리에 숀 대신 어린 시절의 내가 나타났다.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어린 아이.


그 아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11살, 12살의 나······.


이 아이는 무슨 말이 듣고 싶었을까?


이 아이에게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그것은 위로의 말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다.


이 아이에게는 자신감이 필요했다.


이 아이에게는 자존감이 필요했다.


‘아, 나도 쓸모없는 아이가 아니었구나.’


‘나도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구나.’


찰나의 동정이 아닌 평생을 이겨낼 수 있는, 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을 그런 자존감이 필요했다.


나는 눈물을 닦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잘했어. 잘 견뎌냈어.”


나조차도, 이게 숀에게 하는 말인지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은 이 말을 꼭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 외롭고 하찮기만 하던 꼬맹이가 나직이 내뱉은 나의 말 한마디에 지금껏 지어본 적 없는 해맑은 미소를 짓고는 서서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그 아이가 사라지자 내 눈앞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코를 훌쩍이는 숀이 나타났다.


“음?”


녀석은 언제 내려왔는지 침대에서 내려와 내 침상에 기대어 내 손을 꽉 붙들고 있었다.


“어우 X발! 뭐, 뭔데!”


나는 너무나 깜짝 놀란 나머지 욕까지 하고 말았다.


“허어어어엉~, 가, 감사해요오···. 끄윽, 끅! 저는 조사관님이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는지도 모르고오~ 허어엉~”


우는 건지 말을 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


“이 미친놈아! 고마우면 고마운 거지, 징그럽게 왜 남의 손은 잡고 지랄이야!”


나는 거칠게 숀의 손을 쳐내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숀은 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일어서서 나를 향해 납작 엎드렸다.


“흐윽! 아,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형니이이임! 흐어어엉~”


그 말에 나는 기겁하고야 말았다.


“너, 머리 크게 다쳤냐? 갑자기 뭔 형님이야! 싫어 이 새꺄!”


하지만 숀은 거기에 굴하지 않았다.


“흐어엉~ 그럼 형이라고 부를게요!”


“그게 더 싫어~! 친한 척 하지 마!”


“혀어어어엉~!”


숀은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내 팔을 꽉 부여잡고는 통곡을 했다.


나는 그런 숀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젓고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아이고 두야. 아, 어지러워······.”


나는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눌렀다.


뭔가 큰 혹을 달게 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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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 최악의 둔재(鈍才) [1] 20.12.25 65 1 20쪽
22 022 - 토 벌 [3] 20.12.24 91 1 13쪽
21 021 - 토 벌 [2] 20.12.23 59 1 12쪽
20 020 - 토벌 [1] 20.12.22 83 1 14쪽
19 019 - 주시자 [2] 20.12.21 63 1 18쪽
18 018 - 주시자 [2] 20.12.20 71 1 14쪽
17 017 - 주시자 [1] 20.12.19 6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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