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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폴 님의 서재입니다.

주시자(Watcher)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랭폴
작품등록일 :
2020.12.01 20:00
최근연재일 :
2021.01.18 18:42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3,439
추천수 :
60
글자수 :
308,281

작성
20.12.26 19:44
조회
52
추천
1
글자
20쪽

024 - 최악의 둔재(鈍才) [2]

DUMMY

빛줄기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동굴 안.


나는 전신을 휘감는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크윽······.”


내가 움직이자 나를 짓누르던 돌 더미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왜 의식을 잃었을까?


대체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걸까?


몸을 일으키고 차분히 아까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자 차츰 기억이 돌아왔다.


맞다. 옵시디언 매머드가 절벽을 들이받는 바람에 절벽이 무너졌다.

나는 동굴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입구는 무너져 내린 바위 더미에 의해 단단히 막혀버린 상태였다.


“하아, 그 빌어먹을 새끼들······.”


갑자기 우리를 버리고 간 녀석들이 생각이 났다.


옵시디언 매머드는 분명 녀석들이 무리하게 심부 쪽으로 들어가다 잘못 건드려서 끌고 왔을 것이다.


일은 본인들이 저질러 놓고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한테 떠넘기다니.


“아, 맞다!”


나는 그제야 숀의 존재가 떠올랐다.


분명 같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으니 녀석이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황급히 숀을 불렀다.


“숀! 숀!! 어디 있어!”


내 부름에 가까운 곳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으으······.”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숀이 크고 작은 바위에 깔려 있었다.


“쇼, 숀! 야, 괜찮냐!?”


나는 바로 숀에게 달려가 돌 더미들을 치워내고 그를 끌어냈다.


“야! 살아 있어!?”


내 물음에 숀도 신음을 흘리며 의식을 찾았다.


“조, 조사관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가 동굴로 들어오자마자 절벽이 무너졌어. 덕분에 동굴 입구는 막혔고.”


숀이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끄어······. 죽을 거 같아요. 누군가한테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느낌이에요.”


그 말에 나는 실소를 지었다.


다행히 숀도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모양이었다.


“근데 조사관님, 여기 너무 어두운데요? 아무것도 안보여요.”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그제야 나는 동굴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숀의 말처럼 동굴 내부에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매우 깜깜했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모든 사물이 선명하게 잘 보였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지만 이내 눈의 새로운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껏 조금씩 눈의 능력이 해방되어 왔으니 지금에 와서 다른 능력이 또 생긴다 한들 이상할 것이 없었다.


“너 손전등 있어?”


“아, 있어요! 용병들은 전부 하나씩은 휴대하고 다니거든요.”


내 물음에 숀이 곧바로 자그마한 손전등을 꺼내 불을 밝혔다.


화아악!


“악! 야 인마! 그걸 사람 눈에 대고 키면 어떡해!”


갑자기 강한 빛이 들어오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죄, 죄송해요! 안 보여서 그만···!”


눈이 좋아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빛을 받으니 눈이 더 고통스러운 듯 했다.


눈을 한참 깜빡거리자 시야는 다시 돌아왔다.


나는 꽉 막힌 동굴 입구와 어둠이 짙게 깔린 동굴 안쪽을 번갈아보았다.


“일단 나갈 곳을 찾아봐야겠어.”


어차피 입구는 막혀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심연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겼다.




한 시간 뒤.


동굴은 가면 갈수록 넓어졌고 끝은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종유석과 날카로운 바위들이 즐비한 탓에 속도를 낼 수도 없었고 그만큼 우리의 전진은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후우······.”


한 시간을 걸었는데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으니 여간 답답한 상황이 아니었다.


“조사관님······. 저희 나갈 수 있을까요?”


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걱정 마, 끝까지 갔는데도 길이 없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돼.”


탈출구를 찾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악의 경우 입구에 있는 바위들을 치우면 된다.


나는 숀을 다독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집중했다.


퍼덕- 퍼덕- 퍼덕-


이건 날개 짓 소리······.


“···새?”


참으로 기괴한 일이다.


동굴, 그것도 이렇게 깊은 곳에 새가 있다고?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닌 거 같은데?


날개 짓 소리는 여러 개가 겹쳐져서 들렸다.


나는 동굴 깊은 곳을 주시하며 소리에 더욱 집중했다.


그때, 숀이 소리쳤다.


“조, 조사관님 저거···!”


“알아. 나도 봤어.”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에게로 날아오는 무언가.


저건 새가 아니다.


뾰족한 귀와 이빨, 돼지 같은 코, 깃털이 없는 앙상한 날개······.


내가 들은 날개 짓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쥐였다.


그것도 보통 박쥐가 아닌 박쥐 형태의 괴수, 크림슨 벳이었다.


“온다, 숀! 창 들어!”


내 지시에 숀이 허리춤에 달려있던 접이식 창을 꺼내 빠르게 조립했다.


나도 인벤토리에서 하얀 사신을 꺼냈지만 녀석들을 조준하지는 못했다.


아니, 조준을 못해서가 아니라 아예 사격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밀폐된 동굴 안에서 총을 쐈다가는 그 굉음으로 오히려 우리의 귀가 크게 다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있다.


상대가 소리를 이용하는 박쥐인 만큼 사격 한 번으로 저 박쥐 떼를 무력화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만약 쐈는데 녀석들이 멀쩡하면 그야말로 낭패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근접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는데······.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크림슨 벳은 한 개체 당 전투력이 칼립보다 낮다는 것이다.


한 방 한 방 제대로 먹이면 확실하게 숫자를 줄일 수 있다.


나는 상태 창을 열어 남은 포인트를 모두 ‘마력’에 올인 했다.



[ 상 태 창 ]

이름 : 송 정안

등급 : ☆☆☆

레벨 : 12

수호성 : 유니버스(Universe)

별자리 : 유니버스(Universe)

클래스 : 거너(Gunner)

힘:2 민첩:0 체력:0 지능:0 마력:10

보너스 스텟 : 0



그리고는 하얀 사신을 거꾸로 꼬나쥐고 야구 스윙 자세를 취했다.


“숀! 마구 휘두르면 안 돼! 무조건 한 방에 한 놈이다! 알았지!?”


“넵!!”


숀도 진지한 표정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그 순간 수 십 마리의 박쥐 무리가 우리를 덮쳤다.


키이이이이-!


키이익!


“숀 지금!!”


“흐아아아압!”


숀이 기합을 넣으며 앞으로 창을 찔렀고 나 역시 나와 가장 가까운 크림슨 벳을 향해 힘껏 총을 휘둘렀다.


“파워어택!”


파아앙!


개머리판에 직격당한 크림슨 벳의 몸통이 한 방에 터져나가고 녀석의 시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 녀석 말고도 내 주위에는 이미 수 도 없이 많은 박쥐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으니까.


“파워어택! 파워어택!”


파앙! 퍼엉!


나는 쉬지 않고 연달아 파워어택을 사용했고 총이 휘둘러질 때마다 나를 향해 달려드는 박쥐의 몸이 속절없이 터져나갔다.


한 방에 한 놈···!


단 한 번의 헛스윙도 안 된다.


모든 스텟을 마력에 투자에 벌써 10이나 됐지만 마나가 언제 고갈 될지 아직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지금 생각으로 이정도 마나라면 이놈들을 잡는 데는 충분할 것 같지만 헛스윙으로 마나를 낭비하다가 한두 마리가 남았는데 마나가 고갈 된다면 난 그대로 죽은 목숨이다.


때문에 무조건 한 방에 한 놈씩은 죽여야 한다.


“파워어택! 파워어택!”


파앙! 파아앙!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 놈들이 어떻게 아는 건지 영악하게도 녀석들은 계속해서 나의 사각을 노렸다.


녀석들은 찰나에 내 등과 어깨를 긁고 지나갔고 어떤 녀석은 내가 파워어택을 사용하는 틈을 노려 내 허벅지를 물었다.


“크악!”


나는 총구로 내 허벅지를 문 크림슨 벳의 눈을 찔러 떨어트린 뒤 발로 녀석의 날개와 얼굴을 힘껏 밟았다.


그 와중에도 다른 녀석들의 공격은 계속 되었고 동시에 내 몸의 상처는 점점 늘어만 갔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녀석들을 향해 총을 휘둘렀다.


그렇게 내 주변에 있던 녀석들을 거의 다 처리할 쯤.


“크아악!”


숀이 큰 비명을 질렀다.


나는 마지막 남은 크림슨 벳의 몸을 개머리판으로 후려치고는 숀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바닥에 쓰러진 숀의 몸 위로 크림슨 벳 한 마리가 올라타 그의 팔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었다.


“숀!!”


그 장면을 본 나는 지체 없이 달려가 크림슨 벳을 향해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내 공격에 녀석은 물고 있던 팔을 놓고 나를 바라보며 괴성을 질렀다.


키에에에에-!


녀석이 숀의 팔에서 입을 뗀 것을 본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힘껏 녀석을 후려쳤다.


“파워어택!”


파아앙!


그 한 방으로 녀석의 살점들이 분리되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나는 곧바로 숀의 상태를 확인했다.


“으으······.”


숀의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크림슨 벳에게 물어뜯긴 팔의 상처도 문제였지만 넘어지면서 종유석에 긁힌 것인지 허벅지에는 길게 상처가 나 있었다.


말이 긁힌 것이지 거의 뜯긴 것이나 다름이 없을 만큼 깊은 상처다.


나는 숀의 배낭을 뒤져 구급상자를 꺼냈다.


그러고는 소독약을 꺼내 숀의 팔에 붓고 붕대로 상처를 감쌌다.


팔의 응급처치를 마친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숀의 입에 붕대를 물렸다.


“좀 아플 거다.”


그리고는 녀석의 허벅지에 소독약을 들이부었다.


“으으읍!!”


고통이 상당한지 숀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상처 주변의 피와 소독약을 닦아내고 손으로 상처 부위를 좁혀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가져갔다.


“X나 아플 거니까, 이 꽉 물어. 아프면 울어도 돼······.”


말을 마친 나는 바로 녀석의 상처에 스테이플러를 찍어 상처를 봉합했다.


카직! 카직!


“으으읍!! 으으으으읍!!!”


참기 힘든 고통에 내 팔을 쥐어뜯으며 숀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구급상자에는 모르핀이나 마취제가 없었으니까.


봉합이 끝나고 다시 한 번 소독한 뒤 지혈제를 뿌린 나는 숀의 허벅지를 붕대로 감아주었다.


모든 처치가 끝나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숀 역시 고통을 참아내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입에 재갈처럼 물려있던 붕대를 뱉어낸 숀이 말을 했다.


“아, 진짜···. 하아. 하아. 거의 다 잡았는데···. 진짜 거의 다 잡았는데, 하아. 막판에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녀석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미친 놈, 지금 이 상황에 그딴 농담이 나오냐?”


내 핀잔에도 숀은 정말 아쉬운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하아. 하아. 아쉽네요···. 안 다치고 잡았으면 멋있을 뻔 했는데.”


나는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설 수 있겠어?”


“네, 일어나야죠.”


나는 숀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일어나면서 고통어린 신음을 흘렸지만 숀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숀이 깊게 숨을 내쉬면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후오······. 일어나는 것만 어렵지. 막상 일어나니까 절뚝거리긴 해도 걸을 수는 있네요.”


“지랄 똥 싸네.”


나는 애써 괜찮은 척 하는 숀의 머리를 밀어주고는 그의 팔을 목에 걸고 숀을 부축해주었다.


“아, 지, 진짜 괜찮아요!”


크게 당황하는 숀을 무시하며 나는 그의 몸을 더 단단히 부여잡았다.


“오버하지 말고 기대라. 아직 얼마나 더 가야되는지 모르잖아.”


내 정색에 숀이 고분하게 대답했다.


“네, 넵······.”


그렇게 우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을 다시 걸었다.





몇 시간을 걸었을까,


분명한 것은 꽤 오래 걸었다는 것이다.


숀이나 나나 둘 다 지쳐서 당장에라도 쓰러질 만큼······.


“저기, 조사관님······.”


숨을 헐떡이며 동굴 안을 걷고 있는데 한참을 조용하던 숀이 말을 꺼냈다.


“힘드니까 말 시키지 마.”


“···조사관님······.”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서 말을 걸자 신경질이 났다.


“아, 뭐! 왜!!”


나는 짜증 섞인 눈으로 숀을 바라보았다.


숀은 그런 내 얼굴을 보고서도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다.


“저, 그냥 여기 두고 가세요.”


그 말에 내 걸음이 멈췄다.


“···뭐?”


“제 다리 상태 아시잖아요. 이 다리로는 절대 본부까지 못 돌아가요······.”


숀이 피가 배어나온 붕대가 감긴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너 어디 아프냐?”


나는 숀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숀은 그런 내 손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동굴 밖을 나간다고 쳐요. 밖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저를 계속 부축하고 돌아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 말에 가슴속에서 욱하고 뭔가가 치밀어 올라 한마디 쏘아주려고 하는데 순간, 내 얼굴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바람은 우리가 가는 방향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바람이라니.


바람이 분다는 것은 바람이 통하는 곳이 있다는 말이었다.


출구가 있다···!


나는 곧바로 숀을 끌고 앞으로 걸었다.


“다 왔어! 좀 만 더 가면 돼!”


숀은 뭔가 말하고 싶은 듯 했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걷자 빛이 보였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행여나 움직이는 도중 또 박쥐 떼를 만날까 불안했고 출구가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그렇게 초조해져만 가던 때 빛이 보이니 안심이 되었다.


나는 젖 먹던 힘들 다해 걸어 출구에 도착했다.


“드, 드디어 도착···!”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려던 나는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상황에 입을 막고 급히 몸을 숙였다.


쓰러지다시피 바닥에 몸을 누인 숀도 그 바깥 광경을 목격했다.


동굴 밖에는 수많은 괴수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초입부 근처로 통하는 동굴이었는지 눈에 보이는 괴수는 칼립과 토블론이 전부였지만 문제는 그 숫자였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괴수의 숫자를 셌다.


어림잡아도 50마리가 넘었다.


말도 안 되는 숫자에 기가 질린 나는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동굴 벽에 몸을 기댔다.


숀도 내 맞은편 벽으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거봐요. 동굴 밖에 뭐가 있을 줄 알고······.”


그 말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입 다물고 저기 빠져나갈 궁리나 해.”


하지만 내 말에도 숀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둘이서는 불가능해요. 하지만 조사관님 혼자서 라면 될지도 모르죠. 저기 연기 피어오르는 거 보이시죠?”


숀의 말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정말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연기 나는 곳이 본부예요. 그나마 본부가 가까워서 다행이네요. 어차피 숲을 지나가야 하니까 조사관님 속도면 쟤들 따돌리고 갈 수 있을 지도 몰라요.”


자꾸 자신은 배제하고 말을 하는 숀 때문에 짜증이 났다.


“뭘 자꾸 혼자 가라야!? 넌 그렇게 네 목숨이 쉽냐?”


“그게 아니고,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요! 둘이서는 도저히 저기 갈 수가 없어요. 일단 먼저 가셔서 구조대를 데리고 다시 오시면 되잖아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이미 괴수 녀석들이 우리의 피 냄새를 맡았는지 연신 코를 벌름 거리고 있었고 괴수들의 특성상 한 번 정한 상대는 반드시 쫓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가고 남겨진 숀은 숨어있어도 구조대가 돌아오기 전에 괴수들에게 발각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간다.”


내 말에 숀이 짜증을 부렸다.


“고집 좀 부리지 마세요!”


하지만 나는 오히려 숀의 멱살을 잡고 그를 동굴 안쪽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는 그를 야단쳤다.


“뭐가 고집이야! 너 그렇게 죽고 싶어!? 죽지 못해 환장했어? 넌 너를 기다리는 가족도 있잖아! 돌아가야 할 거 아냐! 병신아 내가 살려 준다잖아! 근데 왜 네가 나서서 죽으려고 하는데!? 왜!”


내 폭언에 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니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고는 절규하듯 크게 소리쳤다.


“살고 싶어요! 저도 살고 싶다고요!!”


“그럼 살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내 물음에 숀이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말을 이었다.


“저는요! 등급도 1성인데다 수호성은 능력도 없고 심지어는 이름도 없어요! 그렇게 보잘 것 없이 태어나서 평생을 열등감에 좌절감 덩어리로 살았어요!”


숀은 침과 눈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음을 터트렸다.


숀의 울분은 점점 거세졌다.


“노력하면 언젠간 좋아지겠지, 노력하면 나도 언젠간 조사관이 될 수 있겠지! 평생을 그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데, ···아니요? 노력해도 안 돼요!”


숀이 눈물을 흘리고 침을 튀기며 손가락으로 본부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랑 같이 있던 용병 말 들었어요? 저보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민폐래요! 그 말이 맞아요. 조사관님이 그러셨죠? 약한 게 죄냐고. 네!! 약한 게 죄에요! 제가 약해서 엄마 아빠도 돌아가셨고! 제가 약해서 평생을 남한테 짐만 되면서 살았어요!! 근데 저보고 죽는 순간까지 짐이 되라고요?”


숀이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치며 화가 난 표정으로 울부짖었다.


“저라고 왜 죽고 싶겠어요! 저 같은 쓰레기도 살고 싶어요! 근데요 조사관님, 그거 알아요? 또 다시 남한테 짐이 되면서까지 구해질 바엔 그냥 지금 여기서 죽어버리는 게 나아요!”


울음인지 절규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 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숀의 말이 맞다. 녀석이 여기 남고 싶다고 하면 나는 알겠다고 하고 내 갈 길을 가면 된다.


그냥 가면 되는데 나를 왜 이토록 이 녀석을 데려가려 하는 걸까.


이 녀석도 나보고 가라고 등을 떠밀어주는데, 왜 가지를 못하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녀석만 보면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 시절 힘없고 하찮기만 했던 11살의 나······.


나는 지금 이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그때의 나는, 그 꼬맹이는 무슨 말이 듣고 싶었을까?


뭐가 필요했을까···?


가만히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내가 나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네?”


“그 길을 걸으면 언제 죽을지 몰라. 당장 오늘 죽어도 이상할 게 없고 내일을 기약할 수도 없어. 매일매일 말도 안 되는 괴수들과 대면해야 되고 끝도 없이 싸워야 돼. 매 순간순간이 고통일거야. 너의 일상은 악몽으로 변할 거고 어느 순간······! ···넌 힘을 택한 이 순간의 너를 저주하게 될 거야.”


나는 숀의 멱살을 잡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숀과 눈을 마주쳤다.


“만약 그런데도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너는 어떻게 할래?”


“그게 대체 무슨······.”


숀이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농담 따먹기 하는 거 아니야. 그냥 하는 말도 아니고. 진지하게 대답해.”


나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숀을 응시했다.


“그런데도 강해지고 싶어?”


나는 숀이 대답이 없자 멱살을 더 세게 움켜쥐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대답해. 그런데도 강해지고 싶냐고.”


처음 보는 내 태도에 숀이 몸을 움찔했다.


그러더니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가, 강해지고 싶어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강해지고 싶어요!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제 영혼을 팔아서라도 강해지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내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좋아, 그거면 됐어.”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손을 놓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스타 더스트를 한 움큼 꺼내 손에 쥐고 숀의 위로 뻗었다.


그러자 내 앞으로 시스템 창 하나가 올라왔다.


[숀 핸드릭스의 초월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N) ]


난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손에 쥔 스타 더스트를 모두 깨트려버렸다.


파삭-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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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30 - 아스트롤라베 [3] 21.01.01 43 1 15쪽
29 029 - 아스트롤라베 [2] 20.12.31 62 1 13쪽
28 028 - 아스트롤라베 [1] 20.12.30 111 1 12쪽
27 027 - 결성, 와치독스! [2] 20.12.29 57 1 15쪽
26 026 - 결성, 와치독스! [1] 20.12.28 52 1 17쪽
25 025 - 최악의 둔재(鈍才) [3] 20.12.27 62 1 19쪽
» 024 - 최악의 둔재(鈍才) [2] 20.12.26 53 1 20쪽
23 023 - 최악의 둔재(鈍才) [1] 20.12.25 64 1 20쪽
22 022 - 토 벌 [3] 20.12.24 90 1 13쪽
21 021 - 토 벌 [2] 20.12.23 58 1 12쪽
20 020 - 토벌 [1] 20.12.22 83 1 14쪽
19 019 - 주시자 [2] 20.12.21 63 1 18쪽
18 018 - 주시자 [2] 20.12.20 71 1 14쪽
17 017 - 주시자 [1] 20.12.19 6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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