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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iKiri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 눈의 아가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씁쓸한설탕
작품등록일 :
2018.07.29 16:34
최근연재일 :
2018.11.27 23:07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95
추천수 :
7
글자수 :
184,250

작성
18.09.09 21:59
조회
274
추천
2
글자
7쪽

프롤로그 : 하늘의 색깔

DUMMY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하늘은 푸른 빛이겠지만. 내 기억 속에는 어둡고 깊은 회색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초원은 불쾌하고 한 평생 느껴보지 못했고. 아마 대다수 사람들도 느껴보지 못할 냄새. 고기 비슷한 무언가가 타는 냄새가 들끓었고. 나는 그 초원에서 무언가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적도, 아군도 아닌 ‘무언가’인 이유는 양 쪽에 길게 늘어선 병사들은 자기와 입은 옷 색깔과 다르면 화살을 쏘거나, 라이플을 쏘거나, 석궁을 쏘거나, 야수처럼 물어 뜯으려 하고 있으며. 평생 옷이나 짜던 나에게는 대응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재앙이라고 생각하고는 도망치는 것 이외에는, 이 시대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이 시간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없었다.


대포의 굉음, 비공정들이 비공석을 대우는 소리. 병사들의 이가는 소리. 비-휴마들이 새를 타고 망치질 하는 소리. 수많은 소리들이 내 귀를 울렸고.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히 들릴 정도로. 다시 그때의 풍경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려진다.


이 때, 내 뒤를 따라오던 가족들은 사라졌다. 그걸 깨달았을 때에는 너무 많은 것을 지나쳤었고.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렸으며. 지평선 저 끝에는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는 듯, 무 감정하게 뿌연 연기 하나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 이외에는 없었다. 아무 것도. 그렇지만 본능적인 동물적인 감각이 허리에서부터 목까지 차가운 기운을 내며 천천히 올라왔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전쟁터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건. 곧 많은 것이 들이닥친다는 것과 같다는 상식을 난 한가운데에서 깨달아 버렸다.


달아나려는 순간, 왼쪽에서는 ‘이샤라이나 찬송가’가 울려 퍼졌고. 오른쪽에서는 ‘비-휴마 해방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위에서는 굉음과 비명소리가 양 측 노래의 반주가 되어주고 있었고. 이따금 날라오는 대포알들은 무감정하게 진군하는 양측의 병사들의 목이나, 다리나, 팔을 날려버리며. 원래라면 금빛으로 빛나야 하는 시기의 벌판을 붉은 빛으로 천천히 물들이고 있었다. 그 빛 중에는 나도 포함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1중대! “2중대! “34중대! 1연대를”” 발사! 저 노예들의 모가지를” “1열 뒤로 후퇴! “

“Akrm! Kiol Remtaio thin Kli Dan! “Matma! Arkm! “ Kiol Dan thin? “ “


한 쪽은 휴마였지만, 감정이 없었고. 한 쪽은 휴마조차 아니어서 뭐라하는지 몰랐다. 그렇지만 몇 초 후에는 무슨 의미인 지 알 수 밖에 없었다.


총알이 날라오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귓가에 울리는 바람소리를 들으면 죽음이라는 긴 계단에, 한 발자국 오른 것이다. 진흙이 입으로 들어와도, 끔찍한 액체들이 귀로 흘러 들어오더라도. 울고 싶지 않더라도 눈물을 흘리며 기어갈 수 밖에 없었다. 휴마가 아니라, 사로잡혀버린 사슴처럼 처절하게 바닥에 길 수 밖에 없었고. 죽음은 그런 자에게 자비롭지 않았다.


왼편에서는 늑대 반인들이 들판을 가로지르며 휴마들을 먹어치우려고 다가가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천벌이 아니라, ‘천벌포’라고 불리는 비공정들이 그 들의 오장육부를 뜯을 포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어떤 멍청이라도 희망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누구보다 인간다운 행동을 했다. 희망을 찾는 일이었다.


순순히 죽음을 받아드릴 수는 없었다. 딱히 살아야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여기서 죽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평생을, 18년이라는 세월을 누군가를 증오하는 데 쓰지도 않았으며. 그러므로 이런 증오의 현장에서 내가 희생당할 이유도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살점이 가득한 흙탕물을 건너고. 이름 모를 시체를 넘고. 누군가의 피를 뒤집어 쓰면서까지 살아야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에어조라는, 그 여동생인 이샤라이나는 이런 미천한 휴마가 살아남는 것이 그리 좋게 보이진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면 부르짖을수록. 죽음은 내 곁에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돌격! 이샤라이나의 이름으로! “ “에어조라를 위해서!“

“노예들을 죽이자!“ “퇴각은 없다!“


병사들은 자기의 동료였던 것들을 밟으며 무섭게 몰아쳤고. 죽음의 무감각해진 눈으로 서로를 밟으며 앞에 보이는 이들을 죽이러 갔다. 반대편의 사람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상황이 다른 건 이 곳에서 나밖에 없었다.


“Roethi Reliaze!” “Etro Sindrom Definta!”

“Ro tore Than!” “Van Dar Tina! “


난 더 이상 신에게 기도하지 않았다. 하늘을 본다. 낮인데도 어두컴컴한 하늘이 이 곳에는 나를 위한 신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실소가 나온다. 대륙 신화에 나오던.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불쌍한 아이를 구한다는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은. 내가 여기까지 뛰어오면서 본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말하고 있었다. 영원히 어린아이에서 멈춰있는 아이들이 저 너머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마지막 포성. 수많은 산탄과 천공포. 하늘엔 그저 연기 몇 개가 더 나는 정도였지만. 지상은 그 분노를 아무런 저항없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적도, 아군도, 백성도 상관없이. 포탄은 공평한 판사였다. 바닥에 다이기 전까지. 오, 사, 싫어, 싫어, 엄마.


붉은 커튼이 크게 쳐지고. 공평한 판사들은 해임되고. 죄인들은 지옥으로 가는 티켓을 취소당했다. 모두들 어리둥절하고 하늘을 보았다. 그 곳에는 검은 천사. 양산을 쓴 괴악한 센스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고. 날고 있으면서 날개조차 안 달려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천사와는 다르겠지만. 내 기억에는, 검은 드레스와 붉은 눈동자. 그리고 검붉은 양산을 들고는 지상에 내려온. 한 여성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천사였다.


그 천사가 지상에 살갑게 착지하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며. 하얀 군복도, 검은 군복도 아닌.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곤 손을 내밀며.


“아르카니 공작 가문의 가주. 아르카니 시란딜이라고 합니다. “


그렇게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작가의말

Don`t look back in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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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2) 18.11.09 41 0 11쪽
24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1) 18.11.07 52 0 22쪽
23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 18.11.04 103 0 16쪽
22 붉은 눈의 아가씨에 관해서. 18.11.02 81 0 12쪽
21 불씨 (1) 18.10.31 59 0 15쪽
20 불씨 18.10.28 56 0 21쪽
19 발화 18.10.26 52 1 15쪽
18 터닝포인트 18.10.24 47 0 10쪽
17 샴페인은 끝날 때. 18.10.23 47 0 13쪽
16 On The Boath 18.10.22 63 0 10쪽
15 두 사람. 18.10.21 66 0 9쪽
14 흔들리지 않는 18.10.21 41 0 20쪽
13 폭풍이 지나가더라도 18.10.21 52 0 14쪽
12 안개 속의 거리에서 18.10.14 62 1 30쪽
11 하늘의 색깔과 도시의 색깔 (7) +2 18.10.14 66 1 12쪽
10 하늘의 색깔과 도시의 색깔 (6) 18.09.30 7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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