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iriKiri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 눈의 아가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씁쓸한설탕
작품등록일 :
2018.07.29 16:34
최근연재일 :
2018.11.27 23:07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108
추천수 :
7
글자수 :
184,250

작성
18.10.22 22:25
조회
63
추천
0
글자
10쪽

On The Boath

DUMMY

보트에 타고, 자랑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반겨주는 선원 아저씨들과 손을 한번씩 잡은 이후에 자리에 박혀 앉았다. 더럽게 좁았지만 저 더럽게 추운 바다보단 더럽게 안락하고 좀 더 더러우므로 봐주기로 했다.

“대단했어! 우리가 질 거라고 생각하던 순간에 하늘에서 비공정이 회전하면서 날아오더만. 절묘한 회전각에서 발사되는 대포! 그 반란군 새끼들이 한대 맞으니까 바로 피바다로 바뀌드라고. 우리 선원들이 도망칠까 생각하던 중에 그런 게 날아오고. 게다가 그 비공정이 멋지게 바다에 착륙하니까 다들 용기가 생겨서 돌격! 하니까 이겼어! 정말 고마워. 이야. 우리 선장님이 놀라서 눈물을 흘리드라고. ”

아저씨는 쉴새 없이 입을 나불거리며 우리의 영웅담을 들려주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전부 맞는 말이었다는 게 꽤 신기했다. 그렇지만 주관적으로 보면 전부 틀린 말이었다. 애초에 우리 계획은 안전하게 하늘에 둥둥 떠다니며 산탄을 뿌려대는 것이었고. 아가씨는 그 계획에 맞춰서 티세트도 실어 놓은 상태였다. 진짜로 지옥까지 갈 생각도 없었으며. 애초에 착륙이, 아니. 추락이 이렇게 우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 위에서 우리만 내리고 선장은 다시 집으로 가는 계획이었다. 결과적으론 비슷하기는 한데. 과정은 최악이었다.

이게 다 빌어먹을 비공사 새끼가 사기를 쳐서 그랬다. 아니. 아가씨가 잘 안 알아보고 간 것도 문제였다. 분명 아가씨가 말해준 계획상의 비공정은 정말 크고 멋있어 하늘을 덮을 듯한 크기였고. 우리는 갑판에서 지상에서 무의미한 저항을 하는 병사들을 보며 웃으며 과자를 먹으면 되는 것이었으며. 아가씨가 대포를 들고 떨어지는 걸 버티는 것이 아니라 선원들이 알아서 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비공사 새끼는 자기 사타구니 사이만 한 물건을 들고 오더니. 그게 비공정인지, 날아다니는 관짝인지 구별도 잘 안되는 것을 가지곤 비공정이라고 소개했다.

덕분에 우리는 지상의 ‘무의미한 저항’을 아주 유의미하게 체감하며 하늘에서 지상으로 즐거운 모험을 떠났고. 빌어먹을 비공정은 이제 잠수함으로 바뀌었으며. 지옥까지 따라간다던 선장은 진짜 지옥으로 가버렸다. 그나마 위안인 점은 우리는 살아있다는 거였다. 그래. 모든 영웅담은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아하하. 저희 회사 직원이 꽤 대단하기는 합니다.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부디 잘 부탁드리지요. “

하지만 아가씨는 입을 열면 바로 빈정거릴 것 같아서 그냥 닥치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지금도 물에 듬뿍 젖은 명함을 돌리며 자기 회사 소개에 열불을 올리고 있었다. 많은 의미로 철혈과 같은 정신력을 가진 분이었다. 그런 분에게 도대체 ‘괴물’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까지 흥분할 단어인가. 라는 호기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오. 카리샤? 카리샤 주점은 예전에 꽤 유명했는데. 싸고 괜찮아서 좋았고 말이야. 그게 탈세주만 아니였으면 자주 애용했을 건데. “

“아하하.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이랍니다! 저는 칼리샤고. 그런 법을 어기는 양아치와는 다르게 깨끗하고 합리적인 거래만 하지요! “

“뭐! 그런 것 같군. 그래. 이런 멋진 아가씨가 자경대에게 총탄을 갈기는 ‘카리샤’일리 없지! “

그렇죠. 아저씨. 자경대에게 총탄이 아니라 양산을 휘두르는 칼리샤 말린 아가씨입니다. 지금 탈세 혐의로 협박도 받고 있지만 절대로 그 ‘카리샤’라는 분은 아닐 겁니다. 암요. 암.

그렇게 빈정거리고 싶었지만 아가씨가 나를 보는 눈길이 너무나도 뜨거웠기에 속으로 삼킬 수 밖에 없었고. 내 입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쯤 배에 올라탔기에 다행히도 침묵을 지킬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저씨들은 ‘침묵의 드라이버’ 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붙여줬다. 10년에 한번 나올 운전솜씨라고 칭송하시던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침몰했는데 살아있는 건 10년치 운을 한꺼번에 써야 될 정도였으니까.

로프로 이은 사다리를 올라타자 우리를 반겨주는 겨울에는 해적이고 여름에는 선원일 것 같은 무리들이 반겨주었다. 다행인 점은 아직 봄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선원들은 꽤 친절한 마음씨로 우리를 받아주었다. 가끔 ‘여자가 배에 타면 제수 없는데.’ 라고 빈정거리는 선원도 있었지만. 그들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옆 선원들이 설명해주자 당황하며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운이 좋은 거였지만. 저 빌어먹을 아가씨는 이걸 또 자기 계획이라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자기도 운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이걸 계획이라고 해도 그럴 듯하니.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니까.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선장을 배신하고 옆 배의 선원을 배신하고, 다음은 무엇을 배신할까 귀추가 주목되는 부선장이 – 곧 선장이라고 소개가 바뀐 남자가 – 우리를 반겨주었을 때 아가씨는 회심의 당당한 미소를 펼쳤다. 물 먹은 귀족 꼴이 꽤 추하다지만 물 먹은 평민 꼴보다는 당연히 덜 추하며. 그리고 우리는 ‘전사’로 이 모든 사람들에게 용맹을 떨쳤다.

“도와주셔서 영광입니다. ‘프라디칸’ 호에 승선한 걸 진심으로 환영하지요. 저는 이곳의 선장인 ‘라샤 판 브티’라고 합니다. 숙녀분들. 이번 사태의 영웅인 여러분들의 성함을 감히 알 수 있을까요? “

사기꾼은 사기꾼처럼 안 생겼다. 작년에 ‘우선 피난권’ 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사 오셨을 때 느낀 점이었다. 그 피난권은 우선적이지도, 피난을 보내주지 도 못했지만 우리 가족을 굶기기에는 충분했었다. 그리고 악마는 악마의 모습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저야말로. 저는 ‘칼리샤 마운티아 중앙 상회’의 대표, 칼리샤 말린이고. 이 쪽 분은··· 음. 제 조수입니다. 성실한 친구입니다. “

“···제 이름은. “

“아하하. 숙녀분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음··· 칼리샤 마운티아 중앙 상회··· 분이시라고요. 어···” 부선장은 당황한 듯 손에 식은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고 – 손을 놓으려고 했지만 아가씨는 조금 더 강하게 잡은 후에.

“백작님은 잘 지내십니다. 이번에 마운티이라 해군 장관에 임용되신다는 소문도 퍼질 정도로. 아주 성실하게 사시는 분이시지요. “

“다. 다행이군요. 해군 장관이라. 마운티이라 정도의 해군이면···”

“범선이 수십척이지요. 솔직히 이 배도 훌륭하지만, 마운티이라는 서해를 지배하는 항구라고도 불리니까 말입니다. 그런 곳의 장관이라면··· 이야. 이번 일만 제대로 마친다면 입지가 아주 탄탄할 겁니다. “ 아가씨는 붉은 눈동자로 올려다 보았다. 부선장은 직감적으로 아가씨가 자기가 생각한 정도의 급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곤. 풀려진 자세를 잡았다.

“4년전에는 꽤 초췌해 보이시던 백작님이셨는데. 대성하셨다니 정말로 다행입니다. “

다행이 아닌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그 소식만을 전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 아가씨는 비단으로 돌돌 만 백작의 소설, 항해 계획서를 보여주고는.

“백작님이 지금 문제에 처한 여러분들을 구출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으로 여기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고의 해결사와 같이 직접 이 곳까지 내려와 칼다리아 후작님과 교섭을 통해 여러분의 세금 문제를 해결했습니다만. 예상하지 못한 소란이 하나 있더군요?”

부선장은 나를 흘겨봤다. 나는 ‘침묵의 드라이버’라는 호칭에 걸맞게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를 적당히 본 그는 다시 아가씨를 보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다 부하들을 관리하지 못한 탓이고··· 하지만 상품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거면 된 거 아닙니까? “

“그렇죠. 그래요. 넓은 아량을 가진 백작님이라면 지금까지 발생한 사태에 대해 아무 말씀도 없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 상품들이 또다시 ‘부하’들의 계략으로 위험해 처하거나, 혹은··· ”

아가씨는 나지막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손을 때곤 항해 계획서를 들었다.

“더 이상 이 ‘항해 계획서’와 다른 내용이 추가된다면. 백작님은 이 상황을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

부선장의 왼손은 칼이 올려져 있었고. 선원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아가씨도 단검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라는 내용을. 오늘 새벽, 백작님에게 전달받았습니다. “

그렇게 말했다. 부선장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아가씨는 그럴 시간도 없이.

“그래요. 만약 후작님이 허가하지 않는다면 해군을 끌고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아니요. 아가씨. 빨리 우체국으로 움직이시죠. 오늘 오후 3시까지 별다른 회신이 없다면 공격한다고 하셨잖습니까? “

“아. 큰일이군요. 그럼. 부선장님?”

“···예.”

아가씨는 편안한 미소와 함께, 정류장에서 임시로 산 양산을 펼치곤.

“마운티이라까지 배송. 잘 부탁드립니다. “

그러고는 나는 아가씨의 옆에 섰고 우리를 패배자의 눈빛으로 노려보는 빌어먹을 아저씨를 뒤로하며 아가씨의 양산을 왼손에. 오른손엔 물에 젖은 권총을 들곤 선원들의 에스코트를 받았다. 아가씨는 내가 들어주는 양산을 배경삼아 우아하게. 이 배의 주인이라는 것을 선원들에게 다시 각인시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붉은 눈의 아가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8-11-29) 경기도로 이사중입니다. 12월 5일날 뵙겠습니다. 죄송합니다. 18.11.29 35 0 -
공지 (18-11-24) 그냥 연재주기를 바꿨습니다. 주 3일에서 -> 5일로 18.11.24 27 0 -
공지 (2018-11-23) 취업관련과 노트북 문제로 하루 휴재합니다. 내일 두편으로 뵙겠습니다. 18.11.23 27 0 -
공지 (2018-11-20) CJ파업으로 노트북이 도착을 안 해 PC를 대여해서 작업중입니다. 새벽쯤 올라옵니다. 18.11.21 31 0 -
공지 (2018-11-16)노트북 고장으로 이번주 일요일 연재를 화요일 두편으로 옮기겠습니다. 18.11.16 44 0 -
공지 오류 잡기용 배경 단어 정리 18.11.05 49 0 -
공지 이름이 바뀝니다! 18.10.25 76 0 -
공지 호오, 연재 주기가 상승하는군요? 18.10.21 76 0 -
31 [EP:1 철혈동맹] I Want to Break Free (2) 18.11.27 34 0 11쪽
30 [EP:1 철혈동맹] I Want to Break Free (1) 18.11.22 58 0 13쪽
29 [EP:1 철혈동맹] I Want to Break Free 18.11.20 64 0 17쪽
28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5) 18.11.16 38 0 15쪽
27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4) 18.11.14 75 0 13쪽
26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3) 18.11.11 68 0 13쪽
25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2) 18.11.09 41 0 11쪽
24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1) 18.11.07 52 0 22쪽
23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 18.11.04 104 0 16쪽
22 붉은 눈의 아가씨에 관해서. 18.11.02 82 0 12쪽
21 불씨 (1) 18.10.31 59 0 15쪽
20 불씨 18.10.28 56 0 21쪽
19 발화 18.10.26 53 1 15쪽
18 터닝포인트 18.10.24 48 0 10쪽
17 샴페인은 끝날 때. 18.10.23 48 0 13쪽
» On The Boath 18.10.22 64 0 10쪽
15 두 사람. 18.10.21 66 0 9쪽
14 흔들리지 않는 18.10.21 42 0 20쪽
13 폭풍이 지나가더라도 18.10.21 53 0 14쪽
12 안개 속의 거리에서 18.10.14 62 1 30쪽
11 하늘의 색깔과 도시의 색깔 (7) +2 18.10.14 67 1 12쪽
10 하늘의 색깔과 도시의 색깔 (6) 18.09.30 71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