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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iKiri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 눈의 아가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씁쓸한설탕
작품등록일 :
2018.07.29 16:34
최근연재일 :
2018.11.27 23:07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100
추천수 :
7
글자수 :
184,250

작성
18.11.0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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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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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붉은 눈의 아가씨에 관해서.

DUMMY

“거기. 숙녀분들, 이제 곧 닫을 시간입니다.”


주인장은 연단에서 술 취한 발표자들을 바깥에 집어 던지면서 말했다. 그 발표자들 중, 아까 신나게 ‘국민 방위군’에 대해 설명하던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아가씨를 보곤 난처해졌다. 위스키를 몇 병을 까먹어버려 아가씨의 눈은 완전히 풀려 있었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웃다가. 울다가. 자버···


“아가씨! 주무시면 저희도 저렇게 됩니다!”


주인장은 연단에 있는 사람들을 계단에 대충 박고 있었다. 저게 쓰레기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참혹하게 쫓겨나고 있었다.


“야! 칼리샤 말린! 일어나라고!”


“음냐아···”


“사, 사장님. 저에게 조금의 시간과 여유만 주시면···”


연단을 치우고 이제는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주인장··· 아니. 사장님께서 빗자루를 들곤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셨다. 다행히도 그는 잠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다 환한 표정으로 바뀌며.


“괜찮습니다! 저 숙녀분께서 오늘 우리 가게 매출을 톡톡히 올려 주셨으니. 저 연단의 빌어먹을 멍청이들과 차원이 다르신 분이지요!”


“하으으냐아암···.”


“차원이 다른 분이긴 하시죠. 사는 차원이 달라서 말이지.”


“역시. 제 안목처럼 고급 정계에서 일하시는 분이셨군요. ” 주인장은 아가씨를 바라보곤 말했다.


“그··· 차원은 아닌데. ” ‘제가 말한 건 정신 세계의 차원이었어요.’을 덧붙이려 했지만. 저 사악한 아가씨는 자는 척하고 우리 이야기를 엿들을 만한 사람이기에 참았다.


“숙녀 분께서는 이 분의 친구이십니까?” 주인장은 나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대접해주더니 말했다.


“친구···는 아닙니다. 아가씨는 사장님이고. 저는 부하일 뿐이지요. 만난 지도 사실 3일밖에 안 됐고요.”


“오. 그렇습니까? 그건 의외군요. 오랜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오랜 친구요?” 의외였다.


“네. 제가 오랜 기간 가게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손님들을 본 결과 - 대게. 이 숙녀분이 낮에 창가를 보던 표정은 오랜 친구를 기다릴 때 짓더군요.”


“제가 아니라. 아마 제가 들고 있던 편지를 기다리고 계셨겠죠.”


나는 골아 떨어진 아가씨를 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저런. 싸우셨습니까?” “네.”


“외로워 보이시던 분인데.” “외로울 틈도 없을 걸요.”


“아마 속이 꽤 타실 것입니다.” “그렇겠죠. 위스키를 이만큼 퍼 마셨으니.”


주인장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아가씨의 등을 두들이며.


“숙녀분. 닫을 시간입니다.”


“뭐···뭐야··· 으···. 벌써?” “그렇게 말씀하셔도, 지금 밤 9시입니다. 숙녀분.”


아가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기지개를 길게 펴고 비틀거리며 출구를 향해 걸었다. 나는 아가씨를 부축해주곤.


“계산은 어떻게···” “아. 옆에 계신 숙녀분이 미리 수표를 주셨습니다.” “임마! 니가 뭔데 내 옆에 잇는고야!” “아이고···” “빠, 빨리 가시죠···”


갑자기 입을 삐죽 내밀고는 나에게 말을 내뱉는 아가씨를 계단에 대충 던져놓고 주인장에게 인사한 후 가게를 빠져나갔다.


“임마아! 내가 카리샤 말린이야! 아르카니. 딸꾹. 시란딜이라구! 그른데 니가 우뜨케 이랄 수 있엉!”


아가씨는 바닥에 앉아 있는 체로 말했다.


“아가씨. 많이 취하셨습니다. 집에 돌아가야 하십니다.”


“아가쒸? 할무니가 아니라 아가쒸라구? 우핳하.”


“그리고 바깥에선 아르카니 시란딜이라고 말씀하시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아가씨.”


“어차피 이샤라이나 망할 것들이 보고 있술 권데! 차피 디질거 빨리 죽지. 뭐!”


“죽으려면 몇 번 걷고 죽으세요. 자. 여기 손.”


“손!”


아가씨는 해맑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가쟈. 가쟈!”


“네네. 갑니다.”


비틀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계시는 아가씨의 옆을 무뚝뚝하고 충실하게 지켰다. 문제는 나는 이 빌어먹을 곳의 지리는 하나도 모르는 것이었고. 결국 아가씨와 함께 산꼭대기로 도착해버렸다.


“···으뱌뱌.. 추, 추워어···” “..그, 그러게요. 여기가 어디죠?”


도시의 꼭대기에 올라오면 더 잘 보일 것 같았는데. 건물은 많이 보였기는 했다. 문제는 많이 보였기만 했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못 알아보게 생겼다. 결국 포기하고 아가씨가 술에 깨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자포자기해 앉곤.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아가씨께서는 벤치에 앉아 오들오들 떨고 계셨다.


“봐. 보..보시는 거라구. 바, 밤. 정말로 멋지져?”


“멋지긴 한데. 아가씨. 그런 말투로 말씀하시면 전혀 안 멋져 보이십니다.”


“아니에여어··· 멋져야 하는데에··· 그래야 같이 있는뎅···” 아가씨는 힘이 빠진 체 바닥에 앉았다.


“퍽이나.”


나는 그렇게 말하곤 마운티아를 바라보았다. 우리보다 조금 더 위에 있는 마운티이라 가문의 가택이 이 도시를 밝히는 등불처럼. 여전히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 그 밑에는 수많은 건물들, 역사들, 사람들이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오후에 봤던 깃대는 여전히 펄럭거리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별들은 그들을 축복하는 듯 – 혹은. 지지 않기 위해 하늘을 덮으며 빛내고 있었다. 빛의 도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 곳은 사람도, 건물도, 하늘도 빛나는 도시였다. 다만. 여기는 없었다. 빛도, 그 무엇도.


“후하아···”


아가씨께서는 김을 내뱉으셨다. 3월의 끝자락임에도 여전히 마운티아는 꽤 추웠다.


“아가씨.”


“···싫어요.” 아가씨는 바닥에 누워버리곤. 하늘을 바라보셨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말에 난 말을 이을 수 없었고.


“어차피. 가버릴 거면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버려요.” 아가씨께서는 힘겹게 말을 이으셨다.


“···”


그리고 아가씨는 가방을 뒤적거리시더니. 수표 책을 하나 꺼내시고는 연필을 꺼내 적은 다음. 한 장을 찢고는 나에게 건내 주었다.


“8 갈리아. 제 전 재산입니다. 다 가져가시면 됩니다.”


“아가씨.”


“그냥··· 다시 오지 말고 멀리 가버려요.” 아가씨는 누운 채로 중얼거렸다.


“잠깐만···” 아가씨가 건내 주는 수표를 거절하곤 말했는데··· 아가씨는 일어나시고.


“어차피 계속 안 있을 거면 그냥 영영 사라져버리라고요! 아시겠습니까!?”


아가씨는 나에게 수표를 집어 던지고는 말했다. 붉은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아가씨께서 잘못하시곤. 왜 저에게 지랄이십니까! 전 할 일을 다했다고요!”


“그래요! 다 했으니까 꺼져요! 뭐, 칭찬이라도 할까요?! 아니면 더 필요해요? 제 드레스라도 찢어가시렵니까?”


“니미. 제가 돈 때문에 이 일 한 건 아니잖습니까! 왜 집어 던지고 지랄이에요! 씨발!” 나는 수표를 다시 집어 던졌다.


“안 받았잖아! 왜. 왜 거절한 겁니까? 존나 애처롭고 찌질한 돈이라 안 받으신겁니까?! 존나게 정확하게 보셨어요. 존나게 말이에요! 네! 성스러운 알리칸씨! 이 비천하고 쓰래기 같은 괴물의 수표를 제발 좀 받아 주시겠습니까! 예?! ” 아가씨는 수표 책을 집어 던졌다. 바닥에 퍽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술 취하시더니 사람이 아니게 됐군요! 아가씨!”


“잘 아시네요. 씨발! 전! 사람이! 아니랍니다!” 아가씨는 허공에 소리를 지르곤. “존나 놀리고 지랄이에요! 왜? 씨발 궁금해요? 부러운지? 네! 전 부럽습니다! 부러워! 부럽다고요! 당신이 사람이라서 경의라도 표하고 싶네요! 알리칸양! 사람이라서 잘나셨습니다! 배알이 꼬울정도로 부럽다고요! 됐어요? 됐냐고!”


“사람인 게 뭐가 중요하다고요?”


“존나게 중요해요!” 아가씨는 숨을 크게 쉬시곤.


“씨발. 이 좆 같은 몸뚱아리는 뒤지려고 해도 안 뒤진다고요! 내··· 내 친구들이 다 뒤지는 동안에도 전 건강하게 살아있고. 하루 하루가 지옥 같고 똑같아 죽고 싶은데. 전 좆 같은 겁쟁이라서 자살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젠··· 이젠 1초라도 지루하면 살고 싶지 않고요.”


“친구야 다시 만들면 되잖습니까! 왜 쫄보처럼 그러는 건데요?”


“그 말을 뒤져가는 친구한테 수십 번 들었다는 말입니다! 모두들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저는 여전히 그 빌어먹을 수백 년 전에 멈춰 있어요. 주변은 눈을 깜빡 거릴 때마다 바뀌고 있는데. 제 친구들은 제가 눈을 깜빡 거릴 때마다 늙어 가는데. 전··· 저는 평생 그들과 따라 갈 수 없어요! 이제는 하늘을 나는 것도 생겼고, 하루마다 세상은 바뀌어 가는데 저는 여전히. 여전히. 여전히. 수백 년 동안 이 몸뚱아리고, 이 정신이고. 매일 매일 좆 같은 일상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번, 숨을 들이키곤.


“30년을 같이 술 마시던 친구가 사라져버리면 술 마실 때 무슨 기분이 드는 지 알아요? 40년 동안 저와 체스를 두던 친구가 사라져버리면 체스판만 보면 무슨 기분이 드는 지 알아요? 제가. 제가 사랑하던 사람이 죽으면 제 옆자리가 어떻게 바뀌는 지 알아요? 같은 풍경을 바라보던 친구가 죽으면?” 아가씨는 이성을 잃었다.


“몰라요. 그게 뭐 어쨌-“


“어쨌냐고요? 이제 사람 만나는게 지옥 같아요! 그래서··· 그래서! 연을 안 주려고 노력했고. 일은 일대로만 진행했는데. 당신은 제 일상에 침범했다고요! 일만 하면 될 거지, 왜 추억을 만들려고 하시는 겁니까!? 풍경은 왜 물어봐요?! 그냥 씨발··· 씨발! 이 좆 같은 돈만 가지고 꺼지면 될 걸 말입니다!” 아가씨께서는 분노를 쏟아 내셨다. 어둡고 컴컴한 길이었다.


“썅. 3일동안 제 이름은 한번도 안 불러 놓고는 주둥아리는 존나게 길군요. 아가씨.” 나는 아가씨를 노려보았다.


“씨발. 씨발! 노력했다고요! 노력했는데··· 제가. 제가··· 빌어먹을 괴물이라···” 아가씨는 시선을 내리 깔았다. 아가씨의 바닥은 천천히 젖기 시작했다.


“미치셨군요. 미쳤어요. 아가씨는.” 나는 뒤돌았다.


아가씨는 울먹이며 주저 앉는 소리가 들린다.


“할라카안··· 가르샤아··· 드라리카··· 파비안··· 시마안··· 어디 있는거야···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


“씨발, 씨발!” 바닥을 발로 차고.


“전 갑니다. 알아서 집에 돌아가세요. 아가씨!”


나는 수표의 ‘8’부분을 ‘2’로 바꾸고는 챙기고 길을 떠났다.


도시는 너무나도 밝았고. 여기는 너무나도 어두웠다.





만약 내가 이 때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만약 아가씨와 싸우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술을 사지 않았다면. 만약에··· 만약에··· 수많은 우연이 겹쳐 결국 이 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큰 참사는, 큰 사건은 작은 사건이 뭉쳐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가 겪었던 – 나와 아가씨가 겪었던 역사는.


수십 년간 멈춰버린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거대한 장치가.


수십 년간의 무고하게 죽은 농민, 백성, 군인들의 피가 윤활유로 칠해졌고.


수십 년간의 모순들이 쌓여 톱니가 되고. 그 모순에 의해 끼어들어버린 우리 둘이 매개체가 되어.


수십 년간의 침묵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그 역사의 수레바퀴에 있었던 붉은 눈을 가진 아가씨의 이야기다.


[EPISODE P: 붉은 눈의 아가씨에 관해서. ] 끝.


작가의말

다음 에피소드는 2일동안 휴재 후 일요일에 올라옵니다. 


다음 에피소드! [철혈 동맹] 많이 기대해주세요! 드디어 본 궤도에 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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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4) 18.11.14 7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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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2) 18.11.09 41 0 11쪽
24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1) 18.11.07 52 0 22쪽
23 [EP:1 철혈동맹] Rolling in the Deep 18.11.04 103 0 16쪽
» 붉은 눈의 아가씨에 관해서. 18.11.02 82 0 12쪽
21 불씨 (1) 18.10.31 59 0 15쪽
20 불씨 18.10.28 56 0 21쪽
19 발화 18.10.26 53 1 15쪽
18 터닝포인트 18.10.24 47 0 10쪽
17 샴페인은 끝날 때. 18.10.23 47 0 13쪽
16 On The Boath 18.10.22 63 0 10쪽
15 두 사람. 18.10.21 66 0 9쪽
14 흔들리지 않는 18.10.21 42 0 20쪽
13 폭풍이 지나가더라도 18.10.21 5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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