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과 김유정표 동백꽃
첫사랑과 김유정표 동백꽃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그랴, 참말로!
소나무 삭정이 따다가 문득 고년을 벼르네.
불나게 나뭇짐 지고 헐레벌떡 내려와
거지반 집에 다다르자 어인 호드기 소리
산기슭 바윗돌 틈새마다 소보록하니 깔린 노랑 무더기를 비집고 앉아 점순이가 청승맞게 불어대는 저 소리, 푸드득 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필연코 요년이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들 골목에다 닭쌈을 시켜놓고 저는 그 앞에 퍼질고 앉아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을 터.
부아가 치밀어 올라 눈물바다에 다이빙하네.
나뭇지게도 안 벗겨져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작대기 뻗치고서 허둥지둥 달려가 보니, 참말로, 내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빨간 동백꽃 같은 피를 흘려, 흘리며 다 죽어가네, 닭도 닭이려니와 왼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요년 그 눈깔이 꼭 여우 새낄세, 나는 대뜸 달려들어 까짓 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하고 주인집 큰 수탉을 단매로 엎었네. 닭이 푹 엎어지더니 뻗어버렸네. 혼을 빼고 섰다가, 점순이 매섭게 눈을 홉뜨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나는 또 뒤로 벌렁 나자빠졌네. 독 오른 점순이가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느냐고 바락바락 대들기에 그럼 어때? 하며 엉덩이 털고 일어나다가,
짜식아! 누구네 닭인데? 하고 떼밀려 또 벌렁 자빠졌네.
분통터지고 무안스럽고, 걱정도 태산에다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길 판이라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닭의 물찌똥, 울음 놓았네. 놓고 있는데 빠알간 동백꽃인지 점순인지가 다가와, 그럼 너, 이담부터는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 길을 찾아, 눈물을 닦으며 뭘 안 그럴지도 모르면서 그러마고 대답하였네. 노오란 동백꽃 흐드러진 내 머릿속으로 점순이가 쫑알거리며 걸어오네.
요담에 또 그랬단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닭은 염려마라, 안 이를 테니, 해놓고 뭣 땜에
무엇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픽 쓰러지는 빨간 점순이,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진노랑 동백꽃 속에 폭 파묻혀버리네.
알싸한 동백꽃 향기에 정신이 고만 아찔했네.
너, 말마라. 그래! 그러자꾸나 하는데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느냐고 툴툴거리며, 어딜 갔다 온 점순엄니가 점순이를 찾고 난리네. 점순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노랑동백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 산 아래로 내려가기에 나도 새빨간 동백꽃을 마음속 깊이 숨긴 채로 기어서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치빼었네.
샛노란 첫사랑 딱지, 현기증을 패대기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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