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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1(헤이그에서 크리스틴이 고흐에게)
라인역 ‘와인카페’에서 두 눈길 맞부딪친
내 나이 서른두 살 운명의 어느 날
당신이 물으셨지요, 울 엄니가 아시느냐고
꼭 내 모양 이대로 우리 두 남매 낳아놓고
여자 하나 들여와 뚜쟁이노릇 하는 아들, 당신의 아들 뒤에서 굳게 입 다물고 진두지휘하시는 우리 엄니 삶의 방식을
소설 속 무용담인양 늘어놓고 나는 웃었지요.
그러하여도 새끼 입 풀칠만은 성실해야겠기에
빌어먹을 세탁장 일을 하다하다 힘에 겨워, 헐수할수없어, 거리에 나가 사내를 후리고 후리다가, 엄니처럼 낳은 아이 다섯을 엄니에게 맡긴 채, 이제 또 여섯째를 임신한 나의 배를 다정한 눈길로 쓰다듬고서 당신이 나를 웃겼지요
모델이 되어달라며 정식제안 하시었지요.
낯선 사내에게 몸 파는 것보다야 나을 성싶어
다달이 테오*가 부쳐주는 1백 프랑을 단 며칠 만에 써버려 쫄쫄 굶어도 굶어야만 작품이 나온다는 핑계로 친구들에게서 빈정거림만 당하던
당신의 사글셋방에 줄레줄레 따라갔지요.
뉴턴의 현신인 듯 느닷없이 외쳤지요.
포도주와 독한 진과 나를 뒤섞어 칵테일로 마시던 당신이 만유인력을 본 듯이
섹스가 그림의 윤활유, 맞지, 맞지, 하시면서요.
개수통 앞에서 내가 접시를 닦고 있으면
담배를 채워 넣던 파이프를 내던지고서 당신이 재료비 1프랑의 그림을 시작하시데요. 나의 두 손에 튀어나온 힘줄, 주름살들을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면서, 아름답다, 아름답다, 곱씹으면서요. 그래요 어쩜 우리 만남이 당신 말씀대로 발가벗은 두 영혼의 뒤엉킴일지도 몰라요.
슬픔이 아름답다니, 생각수록 이상하지만.
*테오:고흐의 동생이면서 절대적인 후원자. 1890년 7월 29일에 형 고흐가 죽자 그 충격에 정신착란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가 다음해 1월에 결국 숨을 거두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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