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냥
부석사 못미치어 소수서원에 차를 세우고
500살 먹은 은행나무와
500년 묵은 기와집 앞에서
500번 우려낸 솔바람차를 마신다
그냥 서원을 걷다가 발을 멈추고
*‘저승엔 24시 카페도 없어’
이 밤 어디서 보낼까 싶지만
*‘목숨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면’
죽는 것이 오히려 영광스럽다고 하는
두런두런 글 읽는 소리 듣는다
그냥 머리 풀어헤친 심상(心象)이
사무친 가슴 새털구름처럼 뜯어 날리며
죽어도 죽지 않는 물살을 타고
방울방울 핏방울 새긴 ‘敬’자에 파고든다
왕건과 견훤이 싸우던 죽령길보다 먼먼
물녘에 섞이고서야 여정을 푼
서슬 퍼런 영혼, 영혼들
죽계에 버려진 그 한을 읽는다
그냥 등을 돌려도
저 강물 어느새 내 속에 들어와
*‘개밥바라기’
서글픈
빛살 머금고
바지직 타오른다
소낙비 같은 울음
퍼부어도
꺼지지 않는다.
- 작가의말
*성삼문의 ‘저승엔 객주점도 없다’라는 절명시를 인용.
*이개의 ‘목숨이 홍모(鴻毛)처럼 가벼워지면’이라는 절명시를 인용.
*개밥바라기 : 금성, 저녁별, 금성대군에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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