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흰 명주수건 걸쳐 접은 허수아비처럼
긴 나래 여며 빗질한 듯 접어 얹고
한 개 다리로만 잘도 버텨 서서
숨을 죽인다.
파르릇 물 오른 벼 이파리에
뻘이야 끼이거나 말거나
천방지축 뛰는 개구리의
찢어진 주둥이를 콱 쥐어박으려다
슬픈 모가지를 빼어 돌린다
외론 집 울타리 너머
훠얼 훠얼
가려는 듯 오려는 듯 머뭇거린다.
저어기 여인이 들꽃 흐드러진
풀숲 사이 작은 오솔길
무성한 클로버를 밟으며 간다.
판타지색깔에다 뜬금없이
해바라기 꽃잎을 흩뿌리고
펄펄 함박눈같은 망초꽃도 뒤섞여서
멀미를 삼키며 미끄러져 간다
여인을 따라 사라져 간다.
-나를 두고 나를 외면하고-
나래 펄럭이며 나는
들꽃물결 위에 그림자를 떨군다.
풀꽃 편지지에 글자를 새긴다.
-들꽃향내 가득한 그대 차마 못 잊어
내 작은 폐부 깊숙이 들어낮아
떠날 줄을 모르던
그대 못잊어-
바다빛깔 긴 치마에 바람이 일도록
여인이 몸을 돌리더니
마당 귀퉁이에 절로 떨어지는 산물에
맨발을 놓는다
발에 묻어왔던 풀이끼가 못내
울면서 떠내려가고
여인과 나의 까만 눈동자끼리는
기적을 잉태하고 탄성을 낳으며
조심스레 마주쳤다.
가슴이여! 끊임없이 콩닥거려 기어이
터지고야 말 가슴이여!
여인의 시선에 취해 나는
논바닥보다 흐릿한 하늘을
휘젓는다.
뚫어져라 개구리나 깔볼 것을......
강물같은 후회감은
순도 높은 술을 빚어
나의 자랑 머리 깃을
엉망으로 헝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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