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없습니다
-아파트 2
햇나물빛깔 들판에 뜬금없는 눈송이
눈송이 되었다가 갑자기 해를 가리던 백로
올해는 되돌아가고 숨어서 웁니다
'개'가 붙었으니 망할 풀꽃이 아니라고
아무리 벅벅 우겨대도
갈 데 없는 개, 개, 망초꽃
기사도 포크레인도 물러간 산은 산이 아닙니다
백 년 아름드리 밤나무가 메아리만 남기고
구절초 질긴 목숨도 버둥거리며 떠나고
별빛달빛햇빛소리냄새까지 곰삭은
부엽토 살갗 속
숨죽여도 두근두근하던
마음도 들켜버리고
뼈저린 상처덩어리 그것마저 빼앗기고
늙어도 시퍼렇던 살점, 만 년 만의 생이별로
덤프트럭에 실려옵니다.
다시는 살리지 못할 싸늘한 주검으로
나는 내가 아닙니다
목젖까지 채운 아집 시멘트로 포장하여
허공에 둥지 틀려고 끼리끼리 몰려다녀도
헐값에 넘긴 아파트 입주 딱지가 눈에 밟혀
번번이 뒷북만 치던 비닐하우스 밑에서
덧없는 족두리풀꽃 붙들고 울 듯 말 듯
웃고 있는 청개구리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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