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비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봐도 못 본 척 안 봐도 본 척
골골이 가두어버린 백담사를 탈출하네
영원을 살자, 살자고
한 잔 마시고서야 덤벼들어
시(詩) 하나 근근이 낚아 올려 살아내고는
한 번으론 영원을 사는지 이승만을 오가는 지가
도무지 오리무중이던 그때가 떠오르네
눈 아래 산이 놓이고
허공을 차오르는 새의 그림자
구름 벌판에 줄달음칠 때쯤
부르면 달려올 것만 같은 너에게
오늘은 미리서부터 저승 다녀오마고 하네
두 번째 죽음이니 두 잔을 마셔야겠지?
한계령 야외휴게실 마룻바닥이 꽃자리거니 싶어
두 잔을 거푸 비우고 잔을 놓자마자
불현듯 웬 몽둥이들이 벌떡 일어나서
나를 때려눕히고
아이가 부는 비누피리에 두둥실 밀려나간
방울방울 비눗방울처럼
詩는 잡힐듯 말듯 머릿속을 떠다니고
남김없이 구름 태워먹고도 배가 고파
쨍알쨍알 칭얼거리던 사금파리꽃 하나
나의 혼에 수갑 채우네
끝끝내 너의 얼굴은 내려가야만 보겠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본 그 꽃
: 백담사의 어느 돌에 새겨진 고은 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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