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달무리 꽃
어쩔 수 어쩔 수가 없어
뻗고 뻗다가 끝끝내 드러누워
잎사귀 벌어진 틈으로 쪼르르 내려온
한 조각 햇살에 그만 울먹거린다
모가지가 너무 길어 슬픈 꽃
쌩쌩 스치는 자동차 매연을
솔바람 소리로 행궈내고
달아오른 가슴에 어룽진 주근깨는
파도소리 지분으로 토닥거리던
그날에 불쑥
'세피아' 타고 떠나온 뒤로
서너 번 계절 보내며
그 뭉클뭉클한 정을
느티나무 라일락 무성한 뜨락에
잉걸불로 지펴내던
떠올리면 온몸 짓무를 고향
고향을 닮은 자식새끼 도도히 키워내던
햇무리달무리참나리 그 꽃
숨을 거두려는 촛불인 듯
사약(死藥)같은 술 한 잔을 마시고서야
30분 시한부에 시 한 편을 옮긴
여든 다섯 그 '시인'의
맑디맑은 눈동자가 생각난다
누워 누운 채 목숨 바쳐 웃는 얼굴.
*시인 : 구상 시인. 그의 호는 '운성'으로
해 달무리 운(暈), 이룰 성(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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