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45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22 19:15
조회
6
추천
0
글자
12쪽

27화

DUMMY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벌써 5월이다. 관리기로 간 밭에 고구마, 오이, 토마토, 수박을 심었다. 잡초가 못 올라오게 검은 비닐을 덮었다. 책대로 해서 깔끔하다. 나 혼자선 한참 걸렸을 일을 여럿이 하니까 금방 끝난다.


원래 여기 살던 사람들이 쓰던 밭을 그대로 썼다. 울타리가 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내 집이랑 늘봄펜션 사이에 있는 작은 사과 과수원도 우리가 돌보기로 했다. 귀농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오길 잘한 것 같아. 다들 빼지 않고 열심히 참여한다.



“아저씨 여긴 어떻게 찾으셨어요?”



김은태······커밍아웃한 것치곤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지도 보고 왔어요.”


“원래 어디 사셨는데요?”


“화성이요.”


“멀지 않아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근처에 아버지 고향 있어서요. 원래 거기서 살려고 했다가 옮겼어요.”


“아······.”



요즘 젊은것들은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는 말은 다 개소리다. 개고생해봤자 남의 배만 불릴 뿐이고 남는 게 없으니까 더러워서 안 하는 거지.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야. 다 비슷하게 힘들었다. 농사로 먹고살 걱정만 하면 되는 지금이 차라리 나은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처먹겠다고 밥그릇 싸움이나 벌이던 기득권 새끼들은 어떻게 됐을까. 남들 미래를 담보로 자기들 현재를 챙기던 씹새끼들. 싹 뒈졌겠지?


다 끝난 판에 병신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네. 뒈졌든 말든 이제 상관없잖아.


쌀농사는 어떡하지. 다른 농사보다 부담이 돼서 말 꺼내기가 좀 어렵다.



“저희 쌀농사도 하죠?”



김은태가 내 생각을 읽은 듯이 말했다.



“네.”


“오늘부터 준비해야 하지 않아요? 늦어도 6월 15일까지 모내기 끝내야 한대요.”


“책 열심히 보셨네요.”


“공부 말곤 잘하는 게 없어서요.”



좀비 사태 전에는 공부 잘하는 걸 최고로 쳐줬지. 다른 재능은 1등 아닌 이상 다 쓰레기고.



“마음 편하게 하시면 돼요. 누구랑 경쟁하는 거 아니니까요.”


“경쟁하려는 건 아닌데요, 공부 잘하는 거 지금은 별로 도움 안 되잖아요.”



키 작고 힘도 약하니까 자기가 남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아까 비료 포대도 그렇게 열심히 옮겨놓고선 자신감이 없네.



“1인분 충분히 하셨어요.”


“아저씨는 비료 두 자루씩 옮기셨으면서 제가 1인분을 했다고요?”



내가 2인분을 한 거지 네가 0.5인분을 한 게 아니란 말이다.



“사람마다 1인분이 달라요. 남들만큼 하려고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눈치 보이잖아요.”



부모 눈치 보면서 살았겠구나.



“똑같이 땀 흘리면서 일했는데 누가 눈치를 줘요. 여기 그런 사람 있어요?”


“아뇨······.”


“힘 약하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요. 어차피 다 저보다 약해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에 김은태가 웃는다. 두 자루씩 옮긴 사람은 나뿐이다.



“아저씨는 그럼 사람들 보면서 무슨 생각 하세요? 나보다 일 못해서 한심하다?”


“약해빠진 놈들이 살겠다고 열심히 하네.”



김은태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울타리에 구멍 있나 둘러보던 다른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본다.



“사이코패스 같아요.”


“농담이에요.”


“왜 농담해놓고 안 웃으세요?”


“그렇게 웃기진 않아서요.”


“아저씨 진짜 특이하신 것 같아요.”


“네.”



울타리 다 본 사람들한테 모판 만들러 가자고 했다. 필요한 건 논 주변 농가에 전부 있었다. 하는 법은 김은태 머릿속에 다 있고.


일단 무거운 볍씨를 골라 물에 담가놨다. 발아할 때까지 3~4일 담가놓고 농약으로 소독해야 한다. 발아기라는 기계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500평이면 8인분이 충분히 나올 것 같아서 모판은 50판 만들기로 했다. 그 양에 맞춰서 볍씨를 준비했다.



“은태야 이제 뭐 해?”



신서윤은 이미 남들이랑 다 친해졌다. 김수진이랑 박가람한테는 오빠라고 한다.



“논갈이요. 로터리로 논을 갈고 비료 뿌려야 한대요.”


“로터리가 뭐지?”


“저거요.”



뒤에 로터리식 밭갈이가 달린 트랙터다. 왜 날 보는 거야. 사실 해보고 싶긴 했어.


수동이기도 하고 조작할 것도 자동차보다 훨씬 많다. 기어가 왜 두 개나 있는지 모르겠네. 브레이크도 두 개다. PTO는 또 뭐야? 아 영상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다.



“이거 그냥은 안 되겠어요. 사용법 배워야 해요.”


“면허 있어야 돼요?”


“아뇨 설명서요.”


“집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찾아봅시다!”



김수진은 행동력이 좋다. 뭐 할 때 잘 나선다.


사람들이 탐색하는 동안 트랙터를 연습해봤다. 시동 걸고 운전하는 건 차랑 비슷했다. 열쇠 돌렸을 때 계기판에 돼지 꼬리 같은 게 켜졌는데, 운전하다 보니까 꺼졌다. 뭐였지? 기어가 왜 두 개인지는 모르겠는데 브레이크는 왼쪽이랑 오른쪽 브레이크가 나뉘어 있는 거였다. 전차처럼 한쪽 바퀴만 돌려서 차를 회전시키는 거다.


PTO는 로터리에 엔진 동력 연결하는 거고. 이것도 기어가 따로 있네. 하나하나 작동시켜서 뭐가 뭔지 확인했다. 기어가 두 개인 이유가 도대체 뭐지. 자전거 같은 건가? 자전거도 기어 앞뒤로 두 개 있잖아. 두 개 조합해서 속도 세밀하게 조절하는 건가 보네.


재미는 있는데 이걸 왜 나 혼자······.



“아저씨! 설명서 못 찾았어요!!”



오원우가 소리 지르는 게 꼭 알아서 하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저놈은 자동차 면허도 없어서 트랙터는 아예 안 타려고 할 것 같다.


왼쪽 기어랑 오른쪽 기어 둘 다 4단. 그럼 16단이라는 뜻이다. 트랙터는 엄청 천천히 가야 할 때가 많으니까 이렇게 해놨나 보다.



“알아서 다 하시는 것 같은데요?”


“아저씨만 믿을게요!”



쓸모없는 것들······.


작동법을 대강 파악하고 논을 갈아봤다. 좀 갈다가 시동이 꺼졌다. 엔진 힘이 부족하다. 기어 1단인데 왜 힘이 부족하지? 차랑 뭐가 다른 거야? 토끼랑 거북이가 그려져 있는 손잡이를 만져봤다. 엔진 소리가 확 커진다. 이거구나. 직관성 떨어지게 왜 토끼로 해놨어? 토끼 조루잖아.


3시간 정도 걸려서 논을 다 갈았다. 로터리 RPM을 높일수록 곱게 갈린다는 것도 알았다. 사람들은 김은태가 시키는 대로 논에 비료를 뿌리고 물도 댔다. 수로가 따로 있어서 펌프는 필요 없었다. 하루가 금방 가네. 벌써 저녁밥 먹을 시간이야.


늘봄펜션은 여자들이랑 김은태가 밥을 한다. 주방이 본채에 있는데 자기들이 본채를 쓰니까 타협한 것 같다. 민형기 방은 아무도 안 쓴다. 내 밥을 지어 먹으러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 둘이랑 지네까지 넷이서 밥 먹는 게 이젠 자연스럽다.


얘들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해. 사람이 가족이었을 땐······언제부턴가 밥도 같이 안 먹게 됐었지. 그때보단 지금이 훨씬 낫다.



“동키야 그거 맛있어?”


“맛있어. 근데 신선한 게 더 좋아.”


“고기?”


“고기! 벌레도. 나보다 작은 벌레 잡아먹고 있어.”



어쩐지 집에 벌레가 없더라. 대화하는 걸 보면 인간이랑 맞먹는 지능을 가진 게 확실하다. 정체가 뭘까? 다른 동물도 많은데 왜 하필 지네지? 고양이가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럽잖아. 폐도 있고 성대도 있으니까.



“너 사람이랑 처음 대화해본 게 언제야?”


“이무연이 너한테 나 데려갔을 때!”


“말은 언제부터 했어?”


“잘 몰라. 예전부터 혼자 했어.”


“고양이랑 싸웠을 때도?”


“응. 죽으라고 했어. 나쁜 고양이.”


“말하는 법은 어떻게 배웠어?”


“배운 적 없어.”



발성 기관이 없는 생물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동키의 정체에 대해선 아무리 고민해도 나올 게 없겠다. 그냥 하지 말자.


밥 먹고 동식이랑 놀아줬다. 조그만 게 똥꼬발랄하다. 평소엔 동동이가 돌봐주고 있다. 얘들도 이제 친해져서 안 싸운다.



“동키도 놀래?”


“뭐 하고?”


“뭐 하고 싶어?”


“다리를 하나씩 닦고 싶어.”



부드러운 칫솔로 닦아줬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크다. 매일 0.2cm 정도씩 커지고 있는데, 걱정이다. 벌레는 폐호흡을 하는 게 아니라 옆구리에 뚫린 구멍으로 공기가 자연스럽게 들락거린다. 방 환기하듯이. 그래서 크기가 너무 커지면 질식해 죽는다. 방이 클수록 환기가 잘 안 되는 거랑 똑같다.


동키가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너 이렇게 계속 커지면 위험해. 죽을지도 몰라.”


“나 죽어? 왜?”


“몸 안쪽에 산소가 안 들어가서 죽어.”


“산소가 뭐야?”


“물질대사에 필요한 기체.”


“물질대사가 뭐야?”


“밥 먹고 똥 싸고 그런 거.”


“나 진짜로 죽어? 어떻게 해?”


“성장을 멈추든가, 산소를 더 빨아들이든가 해야지.”


“성장 못 멈춰. 산소 어떻게 더 빨아들여?”


“공기를 빨아들이는 기관이 필요해. 근데 넌 지네라서 그런 게 없어.”


“나 죽기 싫어. 도와줘.”



밀폐실에 넣고 산소를 공급해주면 되겠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살아만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다. 우리가 위험해지는 것도 있고······.



“도와줘. 나 살고 싶어.”



사람을 둘이나 죽이긴 했는데, 벌레한테 인간의 도덕을 들이대 봤자 어쩌겠어. 임시방편으로 때우기보다는 차라리 무연한테 말을 해보는 게 낫겠다. 저승에 그런 갑옷을 만들 기술이 있으면 지네 한 마리쯤은 살릴 수 있을 거야.



“무연 씨 돌아오면 얘기해볼게.”


“그 전에 내가 죽으면 어떡해?”


“지금 몸 상태 어때?”


“지금은 괜찮아.”


“상태 이상해지면 말해. 난 내일 산소통 찾아올게.”



작은 방 하나를 골라 창문 틈을 테이프로 다 막았다. 문에 문풍지도 붙여야겠다.


밤에 무연은 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귀신이 왔다.



“어이 인프제! 나 왔다!”



최 도령이다. 동키를 데리고 나갔다.



“안녕하세요.”


“잘 있었냐? 이쪽은 요즘 고생이 끝이 없다! 사람들이 자꾸 싸워서 골치가 아프네.”


“제주도요?”


“어. 음식이랑 물 때문에 계속 싸워. 배급제로 하고 있는데 공산주의라면서 날뛰는 놈들이 있어.”



재산 지켜줄 나라가 없는데 무슨 공산주의 타령이야? 별 등신 같은 이유로 지랄하네.



“힘드시겠어요.”


“두말하면 잔소리지. 여긴 괜찮다던데 실제론 어떠냐?”


“괜찮아요.”


“하하하! 네가 괜찮다면야 그렇겠지. 아~~진짜 피곤하네. 난 원래 제주도 담당도 아니란 말이야. 괜히 불려가서 고생만 하다 왔다고. 아니 일한 사람만 받아가자는 말은 좋은데, 그럼 애들이랑 아기는 어쩌자는 거야. 정이 없어 정이.”



아기가 있다고?



“아기 있어요?”


“있어. 이런 상황에선 뭐, 기적이 따로 없지. 너는 혹시······.”


“전 생각 없어요.”


“아쉽네. 강제로 시킬 수도 없고. 여자들이 맘에 안 드냐?”


“잘 키울 자신 없어요.”


“그래, 그쪽은 네 판단이 맞겠지. 애들끼리는 어때?”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이제야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분위기예요.”


“특별히 힘든 건 없고?”


“동키가 계속 커져요. 숨 못 쉬어서 죽을 것 같아요.”


“아 그때 지네가 얘구나? 진짜 커졌네. 근데 숨 못 쉬는 걸 어떡해?”


“무연 씨 갑옷 만든 사람······아니 귀신한테 도움을 받고 싶어요.”


“얘 생물이잖아. 죽기 전엔 저승으로 못 가.”


“산소 공급하는 기계가 필요해요.”


“기계? 알았어. 내가 가서 얘기해볼게. 이거 죽으면 안 된댔지? 무연이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다. 야, 너 진짜로 말도 하냐?”


“내 이름은 동키야.”


“동키? 이름이 왜 그래?”


“제가 지어줬어요.”


“왜 동키야?”


“제 별명이 슈렉이라서요.”


“아 그래? 슈렉이 뭔지는 몰라도 동키랑 친구인가 보네?”


“네.”



최 도령은 늘봄펜션 사람들하고도 인사하고 갔다. 신서윤이랑은 만난 자리에서 바로 친해졌다. 원래 둘 다 사교성이 엄청 좋은데 극한 상황이라 표현이 잘 안 됐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좀비와 고양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30화 24.05.25 2 0 11쪽
29 29화 24.05.24 4 0 11쪽
28 28화 24.05.23 8 0 11쪽
» 27화 24.05.22 7 0 12쪽
26 26화 24.05.21 5 0 11쪽
25 25화 24.05.19 6 0 11쪽
24 24화 24.05.18 8 0 11쪽
23 23화 24.05.17 7 0 11쪽
22 22화 24.05.16 7 0 11쪽
21 21화 24.05.15 7 0 11쪽
20 20화 24.05.14 5 0 12쪽
19 19화 24.05.13 7 0 11쪽
18 18화 24.05.12 7 0 11쪽
17 17화 24.05.11 7 0 11쪽
16 16화 24.05.10 6 0 11쪽
15 15화 24.05.09 7 0 11쪽
14 14화 24.05.08 7 0 11쪽
13 13화 24.05.07 7 0 12쪽
12 12화 24.05.02 7 0 11쪽
11 11화 24.05.01 8 0 11쪽
10 10화 24.04.30 8 0 11쪽
9 9화 24.04.29 7 0 11쪽
8 8화 24.04.26 9 0 12쪽
7 7화 24.04.25 10 1 11쪽
6 6화 24.04.23 9 0 11쪽
5 5화 24.04.22 10 0 11쪽
4 4화 24.04.19 11 0 11쪽
3 3화 24.04.17 12 0 11쪽
2 2화 24.04.15 11 0 11쪽
1 1화 24.04.12 30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