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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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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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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4화

DUMMY

그 뻔뻔한 커플이랑 나랑 공통점이 있다? 최 도령이 거기까지 생각해서 나한테 보냈다면 재밌겠네. MBTI에 관심 많으면서 내가 그딴 인간들이랑 맞을 리가 없다는 걸 몰랐다니. 성급하게 결론짓진 말자. 무슨 사정이었는지 모르잖아.


도령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지······. 무연도 거기 그냥 남아버렸고, 이대로 헤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떠나서 조금 미안하네. 근데 뭐 이젠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자꾸 다리 위로 올라오는 동동이를 조수석으로 옮겨놓고 시동을 걸었다. 시간이 애매하네. 오늘은 고속도로 위에서 노숙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어디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확인해봤다. 마침 공업단지 옆이었다. 화물차가 무조건 있는 곳이다. 거기서 기름 구하고 잠도 자면 되겠다.


막히는 곳 없이 한산한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하행선도 상행선도 거의 비었다. 길가에 버려진 차만 드문드문 보였다. 기름을 못 넣어서 멈춘 것 같았다. 좀비도 사람도 없다. 가져갈 만한 물건도 없고.


캠핑카를 구할까? 그것도 다큐멘터리로 봤는데 자동차 제조사에서 만드는 건 아니고 원래 있는 차를 업체가 캠핑카로 개조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캠핑카 수요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제조사가 만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근데 열쇠도 그렇지만 업체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가지. 예전엔 주차장에 알박기한 거 가끔 봤는데 지금은 하나도 안 보인다.


식량은 앞으로 어디서 구하는 게 좋을까. 바닷가가 제일 무난하겠지? 먹을 건 갯벌이 진짜 풍족하다지만, 혼자 갔다가 사고 나는 게 걱정이다. 물때도 모르고. 안전하고 쉽게 쓸 수 있는 도구는 역시 통발이다. 미끼도 바위에 붙은 조개 같은 거 쓰면 된다.


지도에 나온 대로 나들목을 빠져나가 공업단지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거랑 다른 공업단지였다. 천 만드는 공업단지. 바느질 도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옷이야 적당히 루팅해서 입으면 되지만 도구도 있으면 좋지. 기름도 가득 채웠다. 공업단지랑 가까운 강 주변에 마을도 있다. 음식은 이제 다 썩지 않았을까 싶지만, 일단 가보자.


강 건너기 전에 작은 행정복지센터를 만났다. 오늘밤은 여기서 자면 되겠다.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차단기를 올리자 전기가 들어왔다. 출입문을 잠그고, 건물 안에 좀비가 없는 걸 확인한 다음 문서를 뒤져봤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컴퓨터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qwer1234는 당연히 안 먹혔다. 이외에도 다양한 시도를 해봤고 전부 실패했다. 슬슬 어두워지네. 불필요하게 시선을 끌지 않도록 사무실 하나를 골라 창문을 막고 불을 켰다. 자기 전까지 문서를 읽었는데 내가 원하는 내용은 못 찾았다. 재생에너지 쓰는 집······. 여기가 아니라 한전에서 찾아야 하나? 거긴 확실히 있겠지?


사무실 서랍에서 쌍안경을 찾았다. 사무실 주인이 낚시랑 등산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등산 간 사진, 낚시 간 사진이 액자에 들었다. 행복해 보이는 아저씨네. 아마 죽었겠지.


태양광 전지판은 멀리서도 알아보기 쉽다. 쌍안경이 있다면 더더욱. 알아보기도 힘든 문서 뒤지는 것보다 이쪽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 전지판 달린 집을 눈으로 직접 찾는 거지. 그래, 어차피 입지도 따져야 하니까 그게 낫겠네.


지도로 이 주변을 훑어봤다. 마을 북쪽에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로 통하는 계곡도 있고. 펜션촌이다. 그리고 계곡 흐르는 방향이 남향이다. 괜찮은 조건이야. 여기에 전지판 달린 집이 있다면 좋겠다. 가보자.


밥 먹기 전에 닭장에 모이랑 물을 넣어주었다.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알을 하나도 안 낳았다. 조금만 더 참아. 내일은 나가게 해줄게. 동동이는 뭐가 좋은지 복도를 힘차게 뛰어다녔다. 쟤도 하루종일 차만 타서 답답했구나.


휴대용 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후식은 여기서 찾아낸 커피. 정수기에 물이 남아있었다. 수도에 직접 연결한 방식이라 생수통은 따로 없었다. 저번에 아버지 공장에서 나올 때 실어둔 새 생수통이 아직 몇 통 있다. 아껴 써야지.


밤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달려나가 화물칸에 방수포를 씌웠다. 아침엔 그치길 바랐건만, 오후까지 계속 내렸다. 닭 모이 챙겨주고 라면 끓여 먹고, 남은 시간은 복지센터 탐색으로 때웠다. 작은 곳이라 별것 없었다. 컵라면이랑 과자 몇 개. 신형 소화기 하나. 좋아 보여서 차에 실어뒀다.


복지센터 앞에 할머니 좀비가 한 마리 나왔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살도 많이 썩었다. 걸음도 느려터져서 주차장 한 칸을 가는 데 10초나 걸린다. 내가 있는 출입문 쪽으로 온다. 앞이 안 보이는지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머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 좀비는 꿈틀거리며 땅을 기었다. 밤도 깊었고 해서 그냥 놔뒀다.


잠은 사무실 소파에서 잤다. 동동이가 내 배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깼다. 아파 죽겠네. 저게 다 털이 아니라 살이었어. 일어났는데 발에 뭐가 밟혔다. 지긋지긋한 인면지네가 들어와 있었다. 존나 싫다 진짜······. 욕 줄여야 하는데 자극제가 꾸준히 나타난다. 지네는 건물 안에 있다가 밤 돼서 나온 것 같았다. 빗자루랑 쓰레받기로 싹 치웠다.


동동이는 그새 한 마리를 잡아 씹어먹는 중이었다.



“그거 더러운 거야 먹으면 안 돼!”



먹던 걸 빼앗으려 하니 귀를 접으면서 성질을 부린다.



“오오옹-.”



내가 주는 거 편하게 받아먹는 주제에 식탐도 많다. 목덜미를 잡아 강제로 뜯어냈다. 지네는 쓰레기통에 모아 옥상으로 올라가서 밖에다 버렸다. 나온 김에 별이나 잠깐 봤다. 보이는 별이 전보다 많아진 느낌이다. 인간이 사라져서 대기 오염이 멈춘 건가. 그냥 대도시랑 멀어져서 그렇겠지.


커플 새끼들 그냥 죽여버릴 걸 그랬나. 생각만 하면 뭐해. 어차피 또 참고 넘어갈 텐데. 무법천지인데도 참기만 하는 병신 호구 새끼. 나한테 나쁜 짓을 하는 새끼들은 존나 편하게 사는데, 난 나쁜 짓 안 하려고 참느라 속이 썩어들어간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급발진하고 나면 사는 게 허무해진다. 상상한 내용을 실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예전엔 법이 변명거리였고 지금은 인면지네······. 둘 다 징그럽기만 하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먹을 걸 뺏겨 삐친 동동이는 소파 구석에서 몸을 말고 있다. 만져주니까 앙탈을 부렸다. 절대 안 돌아볼 것 같았는데, 캔 튕기는 소리를 내자 바로 돌아봤다. 하찮고 귀여웠다. 캔은 반만 줬다.


한잠 자다 새벽에 또 깼다. 누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무연이었다. 크게 놀랍진 않았다.



“여기 계셨군요.”


“저 찾았어요?”


“네. 기름 냄새를 따라오다가 이 건물 앞에 좀비가 있는 걸 봤습니다.”



개야?



“손님은 어쩌고 여기까지 왔어요?”


“죽었습니다.”



뭐야? 왜?



“······감염됐어요?”


“중독입니다. 뱀이나 지네한테 물린 것 같습니다. 떠나시고 다음 날 밤에 자다가 죽었습니다.”



뱀이랑 지네. 산골엔 둘 다 흔하다. 문을 안 닫고 다니면 집안에 들어올 수도 있다.



“들어오세요. 사무실 창문 막아놨어요.”


“제가 오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몰랐어요. 눈에 안 띄려고요.”



무연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형광등을 켜니까 불편하다고 해서 껐다. 빛이 약한 손전등으로 대신했다. 동동이는 사무실 책장 위에 올라갔다. 방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놀랐는지 털이 바짝 섰다. 내려서 다른 방으로 옮겨줬다.



“시체는 소각했습니다.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 얘기 하려고 따라왔어요?”


“돌아가기 싫으십니까?”


“네.”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감정적인 이유로 할까요, 아니면 실리적인 이유로 할까요?”


“둘 다 있으시면 둘 다 말씀해주십시오.”


“그 사람들 죽어서 귀신 됐잖아요. 기분 나빠요. 그리고 땅이 북향이고 산속이라서 태양광 발전에 불리해요.”



손전등을 껐다. 상대방 표정을 보기 싫어서였다.



“생각하시는 것만큼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지쳤으면 그딴 식으로 행동해도 된다는 소린가. 나도 빡치면 사람 때려죽여도 되겠네?



“그때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다 들었습니다. 태도가 불손하다고 해서 죽을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왜 제가 죽인 것처럼 말해요?”


“집안에 이걸 들여두셨더군요.”



무연이 쇼핑백에서 밧줄 같은 것을 꺼냈다. 손전등으로 비춰봤다. 대왕지네였다. 그때 고양이를 죽였던 그놈인가? 크기는 맞는데 똑같은 놈인지는 모르겠다.



“제 고양이 죽인 놈이 이놈일지도 몰라요. 멀리 갖다 버렸는데.”


“어째서 지네를 놔두고 가셨습니까?”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최 도령한테 물어봐요.”



무연은 투구에 달린 장치로 도령과 이야기를 나눴다. 등이랑 가슴에 붙어있는 게 투구였구나. 희한한 구조네.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했습니다.”


“또 오해하실 것 같으니까 지네 빨리 죽이세요.”



얌전히 있던 지네가 무연의 손아귀 안에서 막 꿈틀거렸다.



“안 죽여요?”


“이 지네도 오해한 것 같습니다. 그 두 사람이 당신을 쫓아낸 줄로 압니다.”


“그게 말을 해요?”


“안 들리십니까?”


“전혀요.”


“말하는 동물은 저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당분간 키워보는 게 어떠십니까?”


“키워서 뭐 하려고요?”


“살인한 동물은 죽었을 때 위험한 괴물이 됩니다. 살아있는 동안 좋은 일을 시킬 수 있으면 시키는 게 낫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요?”


“당신 목숨을 지키는 일입니다.”



내 목숨? 정황상 저게······은혜를 갚으려 했다 이거지? 그때 내가 살려줘서. 결과적으로 사람 둘이 죽었는데.



“괴물 되면 무연 씨가 잡으면 되잖아요.”


“동물이 원한을 품으면 무섭습니다. 사람처럼 앞뒤 잴 줄 모릅니다. 좋은 뜻을 품고도 인명을 둘이나 해쳤지 않습니까. 잘 몰라서 그랬을 겁니다. 말이 통하니까 가르쳐주면 됩니다.”



계속 로봇 같았는데 감정적으로 나오네. 말이 통하면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말하는 동물은 죽이기 힘들 것 같다. 아무리 벌레라도. 모기는 빼고.



“알았어요. 근데 잘못되면 책임지세요.”


“알겠습니다. 사람 고기는 절대 먹이지 마십시오.”



먹이라고 해도 안 먹여. 그래도 이사는 해야겠다. 태양광 발전이 꼭 필요하다고 무연에게 설명해 합의를 봤다. 낮 동안 저수지랑 계곡 주변을 둘러보고 좋은 집을 찾으면 그쪽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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