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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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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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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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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화

DUMMY

세단을 마지막으로 이사를 마쳤다. 차 내부를 청소하는 김에 세차까지 했다. 이 동네 집들은 바로 옆 계곡에서 물을 끌어오고 있다. 수도만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진다. 잠깐만, 깨끗한 물이 아닐 수도 있어. 상류를 확인하러 가자.


거창한 목표였는데 사실은 그냥 소풍이었다. 동동이랑 지네는 집에 두고 혼자 나왔다. 무연은 또 창고행. 아 화분 옮겨 심는 걸 깜박했네. 비닐하우스 봤던 것 같은데 나중에 가야지. 건망증이 있는 건 아닌데 항상 하나씩 빼먹는다.


이동은 자전거로 했다. 별로 멀지 않았다. 내려오는 계곡물을 그대로 되짚어가며 물에 이상한 게 없는지 확인했다. 어렸을 땐 부모님 따라 시골에 놀러 올 때마다 이렇게 계곡을 탐험했었다. 그땐 그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놀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이 제일 좋았지. 단순하게 사는 인생이 좋아. 근데 내 성격으론 나중에 또 무슨 의미 찾겠다고 헤맬 게 뻔하다.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는 성격이다.


MBTI 설문 결과에도 그런 조언이 있었다. 고민만 하지 말고 자기 인생을 돌보는 게 좋다고. 근데 내 인생을 돌보는 방법을 내가 모른다. 해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계곡에서 물 마시던 고라니가 날 보고 도망간다. 이끼에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다리에 시뻘겋게 상처가 났는데도 미친 듯이 뛰어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가보니 핏자국이랑 똥이 있었다. 고라니 똥을 우려낸 물이었구나. 더럽지만 이런 것까지 어떻게 하긴 어렵다.


동물이나 사람 시체가 진짜 문제다. 다행히 발견하지 못했다. 거의 산꼭대기까지 갔다 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계곡을 따라 집이나 캠핑장 같은 게 드문드문 있는데 좀비는 한 마리도 없었다. 내려오니 늦은 오후였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예전 주인이 키우던 것들이 잘 자라 있었다. 전부 상추다. 여기 1층이 식당이었지. 어쩐지 대파밭도 있더라.


농사 교본이 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내 정리하는 김에 찾아봤다. 쌓여있는 물건이 많다. 정리하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그래도 다 못 끝냈다.


할 일이 많네. 내일은 닭장 만들어야지. 토종닭 같은 거 파는 식당인데, 닭은 그냥 사 왔나? 근처에 닭 농장 있으면 대박인데.



“인프제 님?”



무연 목소리다.



“네! 여깄어요.”



1층으로 내려갔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가 서울에서 구출 작전을 하고 있는데,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뭘 어떻게 도와줘요?”


“화물차로 생존자를 이송해주시면 됩니다. 위험에 직접 노출되는 일은 아닙니다. 혹시라도······마음이 동하신다면 여기로 바로 데려오셔도 좋고요.”



벌써 싫어지는데······. 협력이 최우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싫다. 겪은 일이 있으니까. 누구 눈에는 별것도 아니었겠지만. 그 인간들이 죽을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 빈집이야 널렸는데 그냥 양보해주면 되지.



“저희한테 안 좋은 선례가 있잖아요.”


“예,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말로만 하는 약속은 됐고요, 총이랑 총알 좀 넉넉하게 구해주시면 도와드릴게요.”


“사람을 쏘시려고요?”


“사냥총이요. 아 그리고 경찰 리볼버에 쓰는 실탄도요. 호신용이에요.”


“알겠습니다. 당신을 믿겠습니다.”



총은 양날의 검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총은 총이지. 나만 쓸 때는 괜찮은데, 남들도 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미국 꼴 나는 거다. 기본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주문을 자꾸 늘려서 죄송한데, 총기 보관함이랑 금고도 있어야겠어요.”


“괜찮습니다. 오늘 바로 탐색해보겠습니다.”



무연은 몇 시간 만에 도시에서 권총탄을 구해왔다. 경찰서 무기고에서 찾았다고 했다. 나는 허탕만 쳤는데 이렇게 쉽게? 인생 진짜······. 아 나쁘게 생각할 일이 아니구나.



“이동식 총기 보관함은 없었습니다.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군대에 무조건 있어요. 군용 무기는 가져오지 마세요. 사람 죽이려고 무기 구하는 거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반짝반짝한 권총탄. 얼마나 오래 묵었을까? 우리나라는 실탄을 너무 안 써서 한 발이라도 쏘면 바로 뉴스에 나온다. 총알 오래되면 고장 날 수도 있나? 습기만 안 먹었으면 상관없겠지?


무연의 군대 루팅은 제법 오래 걸렸다. 내가 이틀 동안 닭 농장을 찾으러 다니며 고생한 후에야 돌아왔다. 닭 농장이 있기는 있었는데 닭이 다 도망가고 없었다. 거리도 좀 애매했고. 그냥 집 옆에 새로 만들어야지.


무연은 군용 4.5톤 트럭을 끌고 왔다. 어설픈 운전실력으로 여기까지 들어오느라 고생했다고 말했다. 무슨 짐이 이렇게 많나 했더니 사각 기름통이었다. 경유로 꽉 차 있었다.



“기름 다 가져오셨어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부대에 있던 괴물은 정리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낮에 가보셔도 될 겁니다.”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치장물자 중에는 새 군복도 있다. 튼튼하고 위장도 되는 옷. 사냥용으로 제격이다. 군화도 발에 맞는 것만 찾는다면 괜찮을 거고. 개인적으로 루팅해봐야겠다. 원래 민간인은 군복 입으면 안 되는데 지금은 상관없겠지? 그냥 전투 조끼만 걸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제 서울로 갈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생존자들은 지금 안전한 곳에 있는 거죠? 영양 상태는 어때요?”


“정상입니다.”


“제가 데려갈 사람은 몇 명이에요?”


“여기로 데려오실 겁니까?”


“여기로 데려왔다가 나중에 제주도 보내도 되죠?”


“네.”



그럼 여덟 명으로 해야겠다. 이동하는 동안 먹고 마실 것도 같이 실어야 하니까 여유가 좀 있어야지. 라면만 해줘도 잘 먹겠지? 음식이 왜 이따위냐고 헛소리 나오면 리볼버 갈겨버릴까.



“여덟 명으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제주도 상황은 어때요?”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펼쳐서 지금은 안전합니다. 당신도 원하신다면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여기도 좋아요.”


“동의합니다.”



원래 식당이라서 그런지 음식 준비는 쉬웠다. 버너도 가스도 넉넉했다. 일찍 나가면 해 떨어지기 전에 올 수 있을 거야. 식사는 두 끼면 되겠다. 물은 20리터 생수통 한 통. 귀한 거지만 더러운 물을 먹일 순 없지.


저번 커플 같은 인간들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리볼버를 가져갈까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목검을 들기로 했다. 리볼버는 사람 쏘는 용도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분위기 안 좋아질 게 뻔해.


후딱 준비하고 무연한테 새벽에 깨워달라고 한 다음 일찍 누웠다. 잠이 안 왔다. 어쩔 수 없이 동동이를 데려와 진정제로 썼다.


무연이 깨우기 전에 먼저 일어났다. 무연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일어났어요-. 금방 나갈게요.”



생존자들은 예술의 전당에 모여있다고 했다. 먹을 게 없으니까 좀비 올 일이 없는 장소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서울로 갈까.



“어느 길로 가요?”


“중앙고속도로 타고 쭉 올라가시다가 광주원주고속도로로 빠지시면 됩니다.”



무연이 알려준 대로 지도에 길을 표시했다. 간단하네.


가장 중요한 물이랑 기름을 실었다. 맞다 바퀴 펑크 나면 큰일인데. 동네에 방치된 화물차에서 멀쩡한 바퀴를 앞뒤로 하나씩 빼 실었다. 귀찮아 죽겠네. 이 썩을 화물차는 앞바퀴랑 뒷바퀴 크기가 달라. 그것 때문에 시간이 좀 지체돼서 아침을 걸렀다. 날계란 두 개로 배를 채웠다.


올라가는 길은 무연이 앞장섰다. 장애물이 나오면 없애기 위해서였다. 서울 들어갈 때 바리케이드를 치운 것 말고는 별일 없었다.



“해가 뜨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내일 밤에 복귀하겠습니다.”



도와주던 귀신들 없이 사람만 남은 상태에서 잘 할 수 있을지 잠깐 걱정됐다.


그렇지만 이미 예술의 전당까지 다 왔고 생존자들도 일찍부터 나와 있었다. 백여 명 됐다. 나처럼 셔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타고 온 차는 제각각이었다. SUV, 승합차, 버스 등등. 자리는 충분하다. 버스만 해도 다 옮기고도 남겠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얼굴을 보니까 짐작이 갔다. 생지옥을 헤쳐나온 표정들이었다. 반쯤 넋이 나갔어. 그래도 눈빛에는 희망이 보인다. 차가 데리러 왔으니까 이제 살았다, 그런 느낌.


근데 이 사람들이 무사히 바다까지 갈 수 있을까? 도중에 고속도로가 막혀 있으면 멀리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다 기름이 떨어지면? 뭐······다들 계획이 있으니까 온 거겠지?


고속도로를 귀신들이 치워놨을 거야. 당연한 거잖아. 중간에 기름 보급할 수 있게 준비도 해놨을 거고. 내가 맡은 일만 확실하게 하자. 확성기를 꺼내 차에서 내렸다.



“자~ 내가 평소에 귀농에 관심이 있었다 하시는 분 오세요~. 선착순 여덟 명! 귀농해서 자급자족할 자신이 있는 성실한 분들 모십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여덟 명! 안 오면 그냥 갑니다 자 멍때리지 마시고 빨리빨리 오세요~.”



저 새끼 뭐지? 싶은 눈으로 보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움직였다. 근데 내 쪽이 아니라 다른 데로 간다. 상처받는 나.



“제주도 가는 거 아닙니다 산으로 갑니다 산으로~ 공기 좋고 물 맑은 산으로 갑니다~ 계곡도 있고 저수지도 있어요 오세요~ 바다냐 산이냐 골라요 골라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없을 기회 후회하지 마시고 빨리빨리 오세요~.”



안 하던 짓을 억지로 하니까 창피하다. 하지만 티를 내면 안 된다. 사람들이 불안해할 거야.



“저기요······.”



안경 낀 젊은 남자였다.



“네 말씀하세요.”


“정확히 어디로 가시는지······.”


“영주 근처 펜션촌으로 갑니다.”


“영주가 어디에요······?”


“경상북도요. 두 시간 걸려요.”



1톤 화물차 모는 아저씨를 쉽게 믿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이러면 나도 수지가 안 맞아서 하기 싫어지는데.



“고양이 좋아하세요?”


“고양이요? 네.”


“그럼 타세요.”



미친 논리였는데 남자가 순순히 화물칸에 올랐다.



“고양이 좋아하면 타세요~! 고민들 하지 마시고 얼른 타요 여기 계속 있을 것도 아니면서 뭘 고민합니까 오늘 저녁밥 따뜻하게 먹고 샤워하고 싶으면 일단 타세요~.”



사기꾼 같은 수법에 사람들이 낚여주었다. 남자 6, 여자 2. 다들 젊었다. 제일 많아 보이는 사람도 나랑 비슷한 듯했다. 하긴 늙은 몸으로 지옥을 탈출하는 건······. 어쨌든 성비가 안 맞는 게 아쉽네. 근데 그런 거 따질 때는 아니지.



“달리고 있을 때 일어나지 마세요. 바람에 밀려서 떨어져 죽어요.”


“예?”


“출발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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