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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54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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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6화

DUMMY

대구로 가는 내내 사람들은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화물칸에서 바람 다 맞으면서도 누구 하나 싫은 티를 안 냈다. 중고차 매장을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정확히는 매장 주차장. 건물에 가려진 위치라 안에 들어간 다음에야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차가 다 부서졌어······.”



조수석에 있는 신서윤이 중얼거렸다. 좆됐음을 감지한 나는 바로 차를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내려서 살펴보자고 했는데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뭔지 몰라도 큰 괴물이 이 도시에 있다. 중고차 매장을 정확하게 공격한 걸 보면 사람 추적하는 능력도 있겠지.



“내리지 마세요! 바로 돌아갑니다!”



유조차를 운전하는 김수진도 눈치 좋게 날 뒤따라 왔다. 괴물이 냄새를 맡을지도 몰라. 빙 돌아가야겠다. 강도 몇 개 건너고. 내 판단 덕분에 사람들이 온종일 고생했다. 그래도 괴물과 마주치지는 않았다. 좀비 해골이 굴러다니는 마을 여러 개를 지나쳐왔을 뿐이었다.



“너무 돌아오신 거 아니에요? 어우 허리 아파.”



신서윤 말고도 한마디씩 불평이 나왔다.


우릴 따라올 괴물이었으면 저번에 김수진이랑 내가 갔을 때 따라왔겠지? 괜히 멀리 돌아왔나? 이무연이 기름 냄새로 날 따라온 적 있는데 괴물도 그럴까? 요즘 좀비물은 이게 문제다. 후반 갈수록 무조건 좀비보다 강한 뭐가 나온다니까. 그럼 사람한테도 강한 무기를 줘야지. 전개가 왜 이래?


“안 따라왔겠죠?”


“아마도요.”


“무연 씨도 있으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되겠죠.”


“지금 없잖아요. 형기 씨 데려다주러 갔어요.”


“아.”


“무연 씨 오기 전까지 펜션촌 들어오는 길목에서 불침번 서야겠어요. 괴물 오면······.”


“오면 어떡해요?”


“다른 데로 유인해야 돼요.”



목숨을 걸자는 말이다. 누가 할 수 있을까? 나도······아니, 난 할 수 있다. 저번에 발목괴물도 뿌리쳤잖아. 자동차란 게 생각보다 빠르다. 어디다 처박지만 않으면 될 거야. 근데 나 혼자서 불침번은 힘들다.


늘봄펜션에 모여서 어떻게 할지 논의했다.



“무연 씨는 오늘 밤에 돌아올 수도 있어요.”


“언제 올지는 정확하게 모르시죠?”


“네. 그래도 오래 걸린다고는 안 했어요.”


“며칠만 버티면 되겠네요.”



나, 김수진, 김은태, 박가람이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도주 수단은 세단. 화물차는 쓸 데가 많아서 이런 일에 소모하기엔 아깝다. 주도영이야 팔 다쳤으니까 그렇다 쳐도 오원우랑 여자 둘은 뭐냐 진짜.



“저희도 뭐······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내 눈치를 봤는지 안보라가 말했다.



“계곡 위쪽에 숨을 만한 집 있는지 찾아보세요. 전 무전기 찾아볼게요.”


“아 무전기 저번에 챙겼어요.”



박가람이 군용 휴대용 무전기를 한 상자 꺼내왔다. 게임에선 ‘군용’ 붙은 게 최고지만 현실은 좀······. 아무리 낡아도 교체를 안 하잖아. 지금 이것도 몇 년을 굴렀을지 모르고. 일단 작동은 되네.



“그럼 제가 지금 계곡 위로 가볼게요. 무전기 되는지 확인도 하고요.”


“저도 갈래요!”



신서윤은 그냥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것 같다. 이러다 불침번도 따라오겠네.


목검, 무전기, 그리고 전동킥보드. 안장 있으니까 전동스쿠터 아닌가? 애초에 전동킥보드 자체가 발로 차서 가는 게 아닌데 킥보드라고 하는 게 맞아? 퀵보드라고 쓰는 사람도 있던데 이유가 그건가?


저녁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서 빨리 올라가 훑어만 보기로 했다. 신서윤은 이 와중에 버너랑 라면을 챙긴다. 어차피 저녁은 돌아와서 먹을 건데.



“저 위에서 먹으면 맛있을 것 같지 않아요?”


“라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그렇죠? 여기다 추가로 뭐 넣을 거 없을까요?”



소풍 아니라고······.



“냉장고에 파랑 계란 좀 있어요.”



나라도 정신을 다잡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신서윤은 전투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계곡에 좀비 안 돌아다니는 건 확인하긴 했는데, 집을 하나하나 다 따고 들어가서 살펴보진 않았다. 어차피 여기 사람들은 예전에 다 문 잠그고 대피했으니까.


전동킥보드는 날 태우고도 경사로를 잘 올라갔다. 전자제품은 역시 비쌀수록 좋다. 계곡이 끊기고도 길은 계속 이어진다. 주변은 다 산이고 숲이다. 낮인데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깊다. 그래도 도로는 잘 되어 있어서 다니기엔 좋다.


거의 끝까지 올라왔다. 장사가 됐는지 모르겠는데, 이 깊은 산속에 민박집이 여러 개 있다. 여기서 사는 김에 민박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깊은 산속인데도 도로가 아스팔트다. 민박집을 지나 더욱 위로 올라갔다. 이 산골 마지막 집으로.



“와-. 여긴 진짜 자연인 살던 집 같아요.”



어쩌면 방송에도 나왔을지 모르겠다. 그냥 자연인은 아니고 돈 많은 자연인이 살았을 집. 솔직히 자연은 아닌데 별로 상관없지. 대충 텃밭도 있고, 옆에 작은 개울도 있다. 너무 숲이라 태양광 전지판은 설치하지도 않았다. 전기가 없다는 뜻이다. 무전기를 켰다.



“아아. 들리세요?”



잡음만 돌아왔다.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라면 끓이고 계세요. 내려가서 무전기 어디서부터 되는지 보고 올게요.”


“호······혼자는 좀 무서운데요.”


“그럼 같이 가요.”



무전기는 계곡물이 흐르는 데까지 내려가서야 터졌다. 박가람이 가져온 게 다 되는지 하나하나 점검했다. 몇 개 걸러냈는데, 그래도 인당 하나씩 쓰기엔 충분했다.



“저흰 여기서 라면 먹고 내려갈게요.”


“옙.”



다시 올라가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바로 자리를 깔았다. 이러고 있으니까 등산카페 회원 같다. 사실 등산이 아니라 불륜이 목적이라던데. 아······그래서 여기 민박집이? 진짜 열심히들 살았구나.



“아저씨 불침번 언제부터 언제까지 해요?”


“12시부터 3시까지요.”


“3시간이나요? 저 밑에 사거리에서 하시는 거죠? 읍내에서 여기로 올라오는 길.”


“네.”


“심심하시겠다. 저도 같이 가드릴까요?”



아주 가고 싶진 않은가 보네.



“늦게 자면 피부에 안 좋아요.”


“제 피부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아니 그냥 오지 말라고.



“괴물 진짜로 오면 위험해요.”


“위험한 거 아시면서······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신서윤이 라면 휘적거리던 손을 멈춘다.



“고마워요. 아저씨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내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남들처럼 좋게 살았겠지. 여자도 만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무난한 직장에서 무난하게 돈 벌고. 난 좋은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계속 패배자로 살아왔다. 마음속에 열등감과 자괴감이 가득한 패배자.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 그걸 증명하고 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계란 안 넣으세요?”


“아 맞다!”



펜션촌 와서는 잠깐 좋았는데, 이것도 금방 끝나겠지.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 좋은 예감은 맞은 적이 없고. 라면 맛이 안 느껴지네. 난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빨리 죽으면 차라리 낫다.


밤이다. 꼭 필요한 물건을 가방에 넣고 폭죽이랑 횃불 같은 것도 챙겨 교대하러 갔다. 김은태는 입 찢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돌아갔다. 12시부터 3시는 불침번 서기 제일 힘든 시간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데다 다음 사람이 못 일어나서 해 뜰 때까지 버텨야 할 수도 있다. 가위바위보 운이 없었다.


날이 맑아서 별이 밝다. 달도 환하고. 어둡게나마 주변이 보일 정도다. 차 안에 앉아 있으니까 잠이 계속 와서 밖으로 나왔다. 차 주변을 빙빙 돌았다. 산책해도 좋을 것 같은 시원한 공기가 기분 좋다.


캄캄한 도로 저 멀리서 뭐가 온다. 쌍안경으로 봤다. 이무연이었다. 이렇게 만나니까 진짜 반갑네. 근데······갑옷이 엉망이다. 괴물이랑 싸웠나?



“안녕하세요.”


“제가 오는 걸 아셨습니까?”


“아뇨, 대구에서 괴물 올 것 같아서 불침번 섰어요.”


“그놈이었군요. 오는 길에 만났습니다. 처리했습니다.”


“괜찮으세요?”


“나쁩니다. 저승으로 가서 갑옷을 고쳐야 합니다. 큰 거울이 필요합니다.”



갑옷만 부서진 거라 머리는 멀쩡해 보인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거울······. 미리 찾아둘걸. 일단 무연을 차에 태워 읍내로 갔다. 여긴 인조 견직물 장사가 많다. 인견. 옷가게였으면 거울이 있을 텐데. 그래도 들어가 보자. 오, 운 좋네. 들어가자마자 긴 거울을 하나 찾았다.



“이거 창고로 옮겨둘까요?”


“네. 먼지 앉지 않게 관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신이 이승에 넘어올 수 있으면 그 반대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무연이 넘어간 뒤에 손을 대봤는데 안 됐다. 저승은 죽어야만 갈 수 있나 보다. 아무튼 불침번은 그만해도 되겠어. 집에 가자.


무연 덕분에 몇 번이나 위기를 넘겼다. 뭐라도 챙겨줘야 해. 아, 캣타워. 집 앞마당에 적당한 나무가 있다. 자고 일어나서 바로 만들어야지. 불침번 하려고 깨어 있는 김수진에게 상황을 전하고 창고에 거울을 놓은 다음 한잠 잤다.


아침밥은 동키랑 같이 먹었다. 솔직히 이름 잘못 지은 것 같다. 본인이 만족하니까 그냥 두자. 근데 이거 계속 커지는 느낌인데. 안 되겠어. 길이를 재야겠다.



“뭐해?”


“길이 재려고. 몸 쭉 펴봐.”



더듬이 빼고 몸통 길이만 59cm. 이 정도로 자라는 지네는 없겠지? 그냥 얘가 이상한 거 맞지?



“얼마야?”


“59.”


“난 엄청 커. 나보다 큰 지네 못 봤어.”


“아침마다 재보자. 얼마나 클지 궁금하니까.”


“큰 게 좋아?”


“커질수록 밥 많이 먹어서 안 좋아.”


“내 마음대로 안 돼.”


“괜찮아. 너 먹을 건 많아.”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안 쓰는 가구를 잘라 발판을 만들어 나무에 달았다.



“그거 캣타워에요?”


“네.”



신서윤이랑 안보라는 틈만 나면 동동이를 만지러 온다. 발판에 물통을 올려 튼튼한지 확인했다. 고양이 야행성이니까 밤에 풀어놔도 되겠지? 아 지금 생각난다. 무슨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수리부엉이가 고양이 잡아가더라. 괜히 만들었네.


신서윤은 그새 동동이를 안아와 발판에 올렸다. 품으로 돌아가려는 걸 보니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안보라는 동식이를 데려왔다. 데려오다가 놓쳤다. 도망친 동식이가 날 타고 올라온다. 발톱이 아파서 뜯어냈다.


계속 졸려서 낮잠을 잤다. 점심 조금 지나서 일어났다. 옛날보다 체력이 떨어진 게 체감된다. 20대에 애 낳아야 하는 이유가 이거다. 체력 없으면 아이 키우기 힘들다. 어차피 내가 아이 키울 일은 없으니까 괜찮아. 결혼, 출산, 육아 전부 남의 일이다.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는 게 애한테도 좋아. 자존감 높고, 남을 사랑할 줄 알고, 머리도 좋은 부모.


다른 것도 다 안 됐는데 애 키우는 거라고 잘 될까. 안 되는 인간은 뭘 해도 안 된다. 남들처럼 노력해도 남들만큼 안 된다. 그럼 남들보다 열심히 하면 되나? 다들 그 생각으로 미친 듯이 노력한다. 남들만큼이란 건 그런 의미다.


잠을 자도 피곤해서 기분이 안 좋다. 오늘은 집에서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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