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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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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4.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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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화

DUMMY

고양이가 손가락 핥는 느낌에 잠이 깼다. 손이 다 축축하다. 어제 먹은 라면 때문에 내 손가락에서 짠맛이 났나 보다. 라면만 먹어선 못 버틴다.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영양제라도 구해야겠다. 당장 필요한 것들이 주변에 있어 다행이다. 좀비 때문에 못 가는 곳은 어쩔 수 없지.


좀비가 저렇게 많은데 서로를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공격해서 먹는다. 먹던 인간이 좀비가 되면 안 먹고. 정상적인 생태계가 아니다.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게 목적이다. 이유는? 모른다.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설정. 좀비가 제대로 먹지도 않고 인간만 쫓아다닌다면,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안에는 다 멈춰야 한다. 언데드건 아니건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몸놀림이 느린 이유가 그건지도. 못 먹어서.


그럼 이제 아버지 집으로 가야 하는데, 거긴 여기보다 큰 대도시다. 사람이 많다는 건 좀비가 먹을 것도 많다는 뜻이다. 뛰는 좀비가 나올지도 모른다. 아, 마트에 모여 있는 이유가 그건가? 먹을 것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던 좀비. 사람이 아닌 것도 좀비는 먹는다. 사람을 우선할 뿐이야.


뭘 준비해야 좋을까. 두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도로로 가도 되니까 더 짧을 거야. 오토바이? 오토바이 가게라면 열쇠랑 기름까지 다 있을 거다. 튼튼한 바이크 슈트 같은 것도 있겠지. 내 몸에 맞진 않겠지만. 근데 오토바이는 한 번 제대로 자빠지면 그대로 끝장이다. 즉사하지 않았을 때가 훨씬 문제다.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포위당하는 수가 있다.


자전거에 가방을 달자. 그게 낫겠다. 가방 달린 새 자전거가 있으면 더 좋고. 자전거는 새것일수록 좋다. 오늘은 자전거 가게를 돌아보자. 유리를 최대한 조용히 깰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 테이프. 수건. 그리고 망치 대신 쓸 절단기. 절단기 찾아두길 잘했어.


고양이한테 캔을 하나 까주고 밖으로 나왔다. 문은 열어두었다. 누가 물이랑 라면을 털어갈지도 모른다. 뭐······생존자끼리 적대할 때가 아니야. 털어가더라도 같은 건물 사람일 거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기회가 될지도. 그냥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생판 남보다는 조금 더 믿음이 생긴다. 신기하게.


어차피 떠나야 할 곳이기도 해. 음식이랑 물은 다른 데서 또 구할 수 있겠지.


황사 없는 봄 날씨가 참 좋다. 낮은 그렇지만 밤은 또 갑자기 추워져서 감기 걸리기 좋은 계절이다. 비타민을 챙겨 먹어야 한다. 자전거 가게로 가는 길에 약국에 들렀다. 종합비타민이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되어 있다. 가벼우니까 포장 뜯어서 많이 가져가자.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꽤 있을 텐데 어째서 약국은 안 털렸을까? 생존자 자체가 별로 없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큰 도시는 아니지만 역 근처라서 사람이 많이 산다. 그러니까 대형 마트도 있지.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못했다니 이상하다.


아······설마 목검 때문에? 내가 이거 들고 다녀서 남들이 피하나? 그럴 수도 있겠네. 옷에 페트병 붙인 아저씨가 목검 들고 다닌다니, 딱 봐도 미친놈이잖아. 아냐, 그래도 이상해. 누가 날 봤으면 나도 그 사람을 봤을 텐데. 대체······다들 어디로 사라졌을까. 전부 다 좀비가 됐을 리가 없어. 왜냐면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자전거 가게는 활짝 열려있었다. 털어간 흔적도 없다. 역시 차가 있으면 차를 타지, 자전거 구하러는 안 오지. 튼튼해 보이는 새 자전거를 발견했다. 가방은 없지만 금방 달 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한 건 여기 다 있다. 빈 자전거 포장용 상자로 입구를 가려뒀다. 좀비가 밀고 들어오면 쓰러지면서 소리가 날 거다. 뒷문이 있는 가게니까 거기로 도망치면 된다.


처음 해보는 거라 시간이 좀 걸렸다. 벌써 해가 중천이다. 특별히 주의 깊게 관찰하진 않았는데, 좀비는 먹을 게 있는 곳에 몰리는 것 같다. 옆에 있는 식당에는 좀비가 좀 보이는데 이 자전거 가게는 평온하다. 다 끝내고 쉬었다. 약국에서 찾아낸 짜 먹는 요거트를 먹었다. 맛있네.


아마······내가 오래 살진 못할 것 같다. 친구나 가족은 별로 걱정 안 된다. 차를 탔건 어쨌건 나보다 훨씬 먼저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을 거야. 자전거밖에 없는 나니까 여기 있는 거고. 핸드폰은 아직 되는 것 같다. 연락하고 싶진 않다. 나한테 오는 연락도 없잖아.


사실, 첫날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었다. 잘 있냐고 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데리러 온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거다. 일주일 만에 이런 꼴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거야. 연락 안 왔다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수리에 쓸 자전거 용품을 루팅했다. 내일 아버지 집에 가자. 해 떨어지려면 시간이 좀 있네. 소방서에 가볼까.


소방차도 구급차도 안 보인다. 문은 다 열려있고. 내가 쓸 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식당에서 복숭아 통조림을 몇 개 찾아냈다. 하루 이틀이면 다 먹을 양이었다. 오래 보관할 순 있지만 들고 다니기엔 무겁다. 하나 까서 먹었다.


마트에 가면 미숫가루가 있을 텐데······. 물에 타서 먹기만 하면 되니까 편하고 보관하기도 좋다. 너무 비싸서 먹어본 적 없는 육포도 탐난다. 소방서 벽에 걸려 있는 이달의 소방공무원 사진이 보였다. 사진 속 아저씨는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이 아저씨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날씨 때문에 괜히 마음이 동해 공원에 가봤다. 뜻밖에도 개가 몇 마리 있었다. 혼자 산책하는 중이었다. 좀비가 개를 잡으러 느릿느릿 쫓아간다. 개는 사람을 좋아해. 좀비한테 간다. 잡혔다. 좀비가 개를 물어뜯고 개는 깨갱거린다. 멀리 있던 좀비가 고개를 돌렸다. 저놈들, 확실히 소리도 듣는다.


내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특별히 운이 좋은 것도 아니고, 무슨 뛰어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송에서 하라는 대로 집에 있다가 물이 끊겨 밖으로 나왔을 뿐이다. 다들 나처럼 했을 텐데, 왜 지금 거리에 나밖에 없어?



“야옹.”



턱시도 고양이가 또 날 찾아냈다. 원룸 근처니까 우연히 마주쳤겠지.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 꼬리도 문지른다. 밥 줬다고 고마워할 줄은 아는구나. 인간이 망해도 알아서 살아남을 생물이다. 나 말고 다른 캔 따개를 찾거나 그냥 직접 사냥해도 된다.



“오로록.”



고양이가 이상한 소리로 울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오오옹.”



줄 게 없네. 좀비가 고양이를 피하는 이유는 뭘까. 아니 그보단, 이걸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캐리어에 고양이를 넣어서 들고 다닐까? 불편하겠지. 고양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개였으면 목줄 달아 다니면 되는데. 아까 잡아먹힌 불쌍한 강아지가 떠오른다. 조금 보기 힘들었지만, 현장을 다시 둘러봤다. 동물은 좀비가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물려서 좀비가 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끊기기 전에 소식이나 더 찾아봐야지.


방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인터넷이 아직 된다. 가까운 대피소나 군부대를 찾아가라,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마라. 이게 무슨 모순된 소리인지. 물렸을 때 좀비가 되는 건 언급이 없다. 너무 당연한가? 하긴 물리면 안 되지. 좀비든 뭐든.


그리고 역시 우리나라만 이런 게 아니다. 전 세계가 공황 상태다. 해외 소식도 국내 소식도 별로 자세하진 않네. 그냥 여기도 좀비, 저기도 좀비, 그 정도 얘기만 있다. 정부에서 계엄령 선포했었구나. 찾아보니 재난 문자가 길게도 와 있었다. 알람 시끄러워서 꺼 놨었지.


난 도망칠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군부대에서 병력을 보내 대피소에 모인 사람들을 태워갔다고 한다. 그러면 전개가 뻔하지 않나. 순식간에 퍼졌을 것 같은데. 피난 간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안 나와 있다. 그래, 뻔하네.


갑자기 의욕이 달아났다.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 발이랑 얼굴, 손을 물티슈로 닦고 한숨 잤다.


또 고양이가 날 깨웠다. 배를 밟혔다. 빗소리가 들린다. 외출은 취소야. 일어난 날 본 고양이는 문을 긁어댔다. 나가고 싶은 모양이다. 원하는 대로 해줬다.


복숭아 통조림이랑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단백질이랑 지방도 먹어야 한다. 사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닭을 키울까? 시골에 닭이 있다. 사료는 농협 창고에 쌓여 있을 거다. 차를 구해야 해. 1톤 화물차가 좋겠다. 어차피 그것밖에 안 타봤다. 면허 시험 치르면서 타본 1톤 화물차. 장롱면허지만 문제없다. 기계는 사람이 조작하는 대로만 움직인다. 그러니까 그냥 운전에 집중하면 된다.


만약 좀비 무리를 내가 원하는 대로 유인할 수 있다면······. 음식 냄새에 끌리지 않을까? 시끄러운 소리. 음식 냄새. 푸드 트럭. 근데 난 혼자다. 유인한 다음 어쩌지. 마트에 들어간다 해도 좀비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건물 안에서 포위당하면 끝이다. 마트가 넓다지만 나가는 길은 좁다. 계단. 무빙워크. 계단이 잠겼으면? 한 줄로 이어지는 무빙워크. 양쪽이 막히는 순간 죽은 목숨.


내가 조금 더 잔인한 인간이었다면, 고민하지 않고 고양이를 묶어 끌고 다녔을 거다. 좀비가 왜 고양이를 피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피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죽는 거지. 고양이한테 의존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하지 말자.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별로 살고 싶지 않았다. 난 밑에 깔리는 자갈이잖아.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안 좋아지는데, 계속 노력하는 게 이상하잖아. 근데 지금은 힘이 난다. 실수하지만 않으면 안 죽는다. 그게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실수하지 않게 노력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남아서 뭘 할 거냐. 미친 척하고 여행이라도 떠나볼까. 오토바이 전국 일주를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토바이는······관두자. 아 그래, 탱크도 한번 몰아보고 싶네. 오토바이보다 안전하겠지?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쓸 수 있는 지도 앱을 핸드폰에 받았다. 전기 끊긴 다음엔 의미 없긴 해. 휴대용 태양광 패널 찾으면 되지. 보조 배터리도 있어야겠다. 손으로 충전하는 손전등? 그거 생각보다 힘들던데. 그냥 건전지를 모으자. 건전지 넣는 보조 배터리랑. 맘대로 써도 되는 건전지가 편의점에 쌓여 있다.


저녁까지 비가 내렸다. 습기 때문에 피부가 끈적거릴 정도다. 못 씻었더니 머리에서 냄새도 나고 찝찝하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빗물로 목욕했다가 감기 걸리는 게 훨씬 손해다.


턱시도 고양이는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디로 갔을까. 모르겠다. 종일 집에만 있으려니 지겹다. 컴퓨터······게임이나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목검 만들 때 썼던 서바이벌 나이프를 날카롭게 갈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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