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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33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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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화

DUMMY

안전을 위해 천천히 달렸고, 졸음쉼터에서 라면도 먹었다. 그래서 아직 도착 못 했다. 라면이라고 불평하는 불한당은 없었다. 며칠 굶은 거지들처럼 말도 없이 흡입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 사람들이 집 구할 때까지 내가 책임져줘야 하잖아. 왜 이런 불공정 거래를 받아들였을까? 어깨가 너무 무겁다. 실패하는 인생만 살던 패배자가 갑자기 마을 이장 노릇을 하게 생겼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



“아저씨······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여자가 인사를 한다. 여자 둘 다 남자 동행이 있다.



“인프제라고 하세요.”


“네?”


“MBTI 아세요? 제가 INFJ라서요. 인프제라고 하세요.”


“아, 네······.”



이 새끼 뭔가 싶었는데 또라이였구나, 딱 이 눈빛인데 이거. 최 도령이 날 망쳐놨어. 그렇지만 본명을 말하는 건 패배한 인생을 까발리는 기분이라서 싫다.



“전 ENTP거든요.”


“그냥 본명 쓰시면 돼요.”


“앗, 네. 신서윤이에요. 무슨 일 하셨어요?”


“백수요.”


“아······네. 그거 목검이에요?”


“네.”



말이 점점 길어지는데. ENTP가 뭐였지? 말 많은 건 알겠다. 최 도령이 ENFP니까 비슷하겠지.



“영주 가신다고 들었는데 원래 그쪽에서 사셨어요?”


“아뇨. 해 떨어지기 전에 가야 하니까 슬슬 타세요. 자 여러분 그만 정리하고 탑시다! 그릇 그냥 버려도 돼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니까 대충 버리고 타세요!”



한창 달리는데 어떤 놈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배불러서 기분 좋은가 보다.



“사라져 버린 썸머 타임~ 너의 두 눈이~ 나를 비추던~.”



바람에 맞서 싸운다고 아주 괴성을 지르고 있다. 저놈은 내 집에서 먼 곳으로 보내야겠다.


도착하니까 사람들이 불평하면서 내렸다. 해가 뜨겁다, 건조해서 눈이 따갑다, 여긴 어디냐, 저 아저씨 믿어도 되냐······. 화물차 짐칸이 편한 자리는 아니다.



“이제부터 이 동네에서 사시면 됩니다.”


“어떻게요?”



신서윤······이 여자는 날 별로 경계 안 한다. 왜지? 아니지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게 맞다. 귀신들이 다 설명했을 거 아냐. 생존자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농사지어야죠. 마트 같은 곳도 열심히 뒤져보시고요. 일단 집부터 정하시고요, 필요한 거 직접 구하시면 돼요.”


“집은 어떻게 정해요?”



이거 무슨 애들 수학여행이야? 내가 일일이 가르쳐줘야 해?


아. 너무 꼰대 같은 생각이었다. 협력을 해야지 꼰대질이 아니라······.



“태양광 전지판 달린 집으로 정하세요. 전기 들어오면 편해요. 계곡 따라서 집이 쭉 있거든요? 저수지 주변에도 많고요. 너무 뿔뿔이 흩어지는 것보단 차라리 한곳에 모이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서로 잘 안 맞는다 싶으면 그때 다른 집으로 옮겨도 되니까요.”



다들 내 말을 경청한다. 고개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일단 양아치 커플보다는 출발이 좋아.



“일단 모여서 지내실래요?”


“저 그냥 여기서 지내면 안 돼요? 아저씨 집이죠?”


“네. 제 집이라서 안 돼요. 개인 생활 필요하신 분은 따로 집 구하시면 돼요.”


“혼자 있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요?”



서윤이 계속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내 말을 이해를 못 했나? 아니면 나한테 보호를 받고 싶다 뭐 그런 뜻인가?



“그러니까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솔직히 여자가 둘이고 남자가 일곱인데 불안하잖아요.”



나도 그 점은 걱정이다. 이렇게 애매한 것보단 차라리 남자만 있는 게 나은데······. 그렇다고 성비 맞춰서 골라오는 것도 이상하잖아. 노아의 방주도 아니고.



“그러면 지금 남자분들 중에 여자 강간하실 분?”



남자들 표정이 재밌어졌다.



“없죠? 이제 귀신이 있는 세상인데 함부로 그러시면 어떻게 될지 뻔하잖아요. 혹시 사람 머리 달린 지네 보셨어요?”



바로 대답이 나온다. 다들 봤구나.



“인면지네라고 하는데 나쁜 짓 하고 죽으면 그렇게 된대요. 아는 귀신한테 들었어요. 그러니까 서로 함부로 대하지 마시고 잘 지내세요. 남자한테만 경고하는 거 아닙니다. 잘 지내든가, 아니면 조용히 떠나든가 하세요.”



거의 협박처럼 말했는데 듣는 사람 표정이 좋기는 힘들지.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 두고 싶은 마음도 좀 든다. 만약 이것들이 정치질 시작하면 그땐 내가 먼저 떠나야지.


그날 오후는 화물차로 동네 구경을 시켜줬다. 전지판 달린 작은 집이 여러 개 있는 펜션이 낙찰됐다. 이름은 늘봄펜션. 식당이 있는 본채도 전지판을 다 달아놨다. 주인이 신경을 많이 썼네. 작은 집은 그냥 잠만 자는 숙소다. 각방을 쓰는 쉐어하우스 같다. 작은 집 다섯 채랑 본채. 내 집이랑은 걸어서 갈 만큼 가깝다.


치사하게 여자 둘이 본채를 쓰기로 자기들끼리 결정해버렸다. 남아있는 남자 여섯 명은 어떡하라고. 아 뭐 알아서 하겠지.



“어······사실 제가 게이······라서요.”



키 작고 머리 길게 기른 남자였다. 여기서 커밍아웃을 하다니······. 저 용기로 살아남았나?



“그래서 저랑 같이 지낼 남자분······아니면 제가 여자분들이랑 같이 지내도 될까요?”



저 새끼 게이 아닐지도 몰라.



“게이 맞으시면 뭐······.”



서연이 아니라 다른 여자가 웅얼거렸다. 조심성 없는 성격이네. 같이 있던 남자가 누구였지? 기억이 안 난다. 아니 근데 여자 둘은 각자 남자 일행이 있었잖아. 왜 같이 안 있어?



“여러분 서로 모르는 사이에요?”



물어보니까 다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럼 통성명부터 해요.”



신서윤 안보라. 주도영 민형기 김수진 오원우 김은태 박가람. 다 개성 있게 생겨서 이름 외우긴 편하겠다.



“이 아저씨는 이름이 인프제래요. INFJ.”


“그거 되게 희귀한 성격 아니에요?”



신서윤이랑 안보라는 벌써 입이 맞은 것 같다. 현대 사회에 적응 못 한 멸종위기종이라 참 신기하겠구나. 많이들 구경하렴.



“그럼 아재 대신 프제 어때요 프제. 괜찮지 않아요?”



오원우다. 분위기 파악을 끝내고 말을 섞기 시작했다. 노래 부른 놈이 네놈이구나.



“저분 표정은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박가람. 교회 오빠처럼 생겼다. 서울에서 나한테 처음 말 걸었던 안경잡이다.



“그냥 적당히 부르세요.”


“아저씨 본명이 뭔데요?”



김수진 형님은 나한테 아저씨라고 부를 얼굴이 아니잖아요? 어쨌든······.



“본명은 버렸습니다.”



사람들 표정이 굳어지기 전에 다음 대사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좀비가 돼서 제 손으로 묻어드렸거든요.”


“아······.”



난 거짓말 안 했다. 대충 사실이야.



“그럼 어머니는요? 부모님 두 분 다 지금 안 계세요?”



김은태. 게이. 게이가 아닐 수도 있고. 아니다에 걸겠다. 그렇게 맥락 없이 커밍아웃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



“네.”



주도영이랑 민형기는 말이 없다. 뚱뚱이와 홀쭉이. 아직도 날 의심하는 눈치다. 의심하든가 말든가 알 바 아니다. 해가 지고 있다. 지켜야 할 사람이 늘었으니까 무연이 착물갑사를 더 데려오지 않을까. 그럼 그쪽에 떠넘길 수 있을지도 몰라. 지키는 건 내 의무가 아니잖아?


무연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함께 가져왔다. 우선 나한테 약속한 사냥총. 가방이랑 청소도구까지 알뜰하게 챙겼다. 나쁜 소식은 일손이 부족해 착물갑사가 못 온다는 것.



“밤에는 제가 지켜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근데 프제한테만 총을 주시면 어떡해요? 저희도 주셔야죠! 지금 상황이 이런데 한 사람만 총이 있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원우의 주장은 그럴싸하다. 나만 총을 갖고 있으면 불안하겠지.



“프제요? 아······저분이 여러분을 데려오는 대가로 약속한 물건입니다. 그리고 총으로는 괴물을 죽일 수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위험한 야생동물이라도 나올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몇 자루 더 구해드리고 싶지만 지금부터는 여러분을 지켜야 해서 떠나기 어렵습니다.”


“그럼 프제가 우리랑 총 공유해요.”



내가 일하고 받은 대가를 너희랑 공유하자고? 참 뻔뻔하네. 아예 그냥 가진 거 다 뺏지 그러냐.



“총은 아저씨가 귀신들 도와주고 받은 거라는데 그걸 그냥 달라고 하면 안 되죠.”



신서윤이 나선 건 뜻밖이었다.



“총을 저 사람만 갖고 있으면 불안하잖아요.”


“저는 불안한지 모르겠는데요.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나쁜 짓 하면 지네 된다고. 그리고 총을 아무나 만질 수 있게 하면 사고 났을 때 책임은 누가 질 건데요?”



왜 이렇게까지 날 변호하는 거지? 진짜로 나한테 보호를 요구할 속셈인가?



“아 예 알겠습니다. 총을 저희가 직접 구해서 쓰는 건 상관없죠?”


“상관없죠.”


“총을 구할 수 있는 군부대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상관이 없긴 뭐가 없어. 미국식으로 흘러가는 건 안 좋아. 근데 나한테 총이 있든 없든 사람들은 총을 구했을 거다. 말릴 명분도 없고. 당연히 조심하려고는 하겠지. 근데 우발적 사건이라는 게 남 얘기가 아니거든. 그때 발사된 총이 사냥총이냐, 군용 소총이냐로 사람 목숨이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


자기들끼리 떠들게 놔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을 데려온 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제주도로 보내버릴 걸 그랬나. 지금 가라고 해봤자 안 가겠지. 저녁으로 먹을 감자, 고구마, 라면을 한 상자씩 늘봄펜션에 갖다 줬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은 이번에도 신서윤뿐이다.


혼자 밥 먹고 자려고 했는데 오원우가 펜션에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고 날 부르러 왔다. 어쩌라는 건데······.



“저희 아무것도 모르는데 와서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알아보려고 해야지, 시도 때도 없이 나만 찾으려고?


사람이 이렇게 꼰대가 되는구나. 잘해주면 기어오르고, 안 해주면 욕하고. 군대에서 다 겪어봤다. 그래도 저 사람들 씻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텐데, 놔두기도 뭐하다.


늘봄펜션은 차단기가 내려가 있었다. 배터리 충전이 하나도 안 됐다. 예전에 만들어놨던 횃불을 주고 앞마당에 모닥불도 피워줬다. 그리고 내 집 화장실에서 샤워하게 해줬다. 내 재량으로 남자들이 먼저 들어가게 했다. 여자는 오래 걸리니까. 신서윤이 마지막에 왔는데,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아저씨 집에서 살게 해주시면 안 돼요?”


“네. 안 돼요.”


“저 집안일 할 줄 알아요.”


“지네를 키워서요. 물리면 죽어요.”


“거짓말을 해도 좀 그럴싸한 거로 하시지.”



그렇다면 보여줄 수밖에······.



“우와 징그러운데 예쁘다. 이거 무슨 지넨데 이렇게 커요? 만져도 돼요?”


“물리면 죽는다니까요.”



신서윤은 내가 이 동네 실세인 줄 아나 보다. 지금이야 그럴지 몰라도 더 좋은 무기를 가진 놈이 새로운 실세가 될 거고, 그땐 또 그놈이랑 붙어먹을 게 뻔하다. 아무래도 진지하게 떠날 준비를 해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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