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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44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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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8화

DUMMY

끈질기게 달라붙는 신서윤. 계속 밀어내는 나. 한밤중에 쓸데없는 줄다리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아니 차라리 얼굴이 별로라서 싫다고 하시든가요! 사람이 호감을 표현하는데 왜 그렇게 거부해요?”


“많이 당해봐서요.”


“저 사기꾼 아니거든요? 꽃뱀도 아니거든요? 아저씨 혹시 게이라서 그래요?”


“아뇨.”


“이유가 있으면 말을 해보세요. 제가 아저씨랑 같이 있으면 안 되는 이유가 지네 말고 뭐가 있는데요. 물리면 죽는다면서 아저씨는 손으로 막 만지잖아요. 그러는데 설득이 돼요?”


“사람을 못 믿어서요.”


“하 참나. 낮에는 아주 청산유수로 말 잘하시더니 지금은 왜 이래요? 만난 지 하루도 안 됐는데 못 믿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서로 알아가고 믿음도 쌓고 하는 거잖아요. 자꾸 밀어내기만 하는데 믿음이 생기겠어요?”


“인간관계 실패만 하다 보면 이렇게 돼요.”


“그러면서 낮에는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고 그랬냐고요.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낮에는 의무감으로 움직였고 지금은 너 때문에 기분이 안 좋으니까······. 이만하면 물도 다 데워졌을 텐데 얼른 샤워나 하고 가줬으면 좋겠다.



“씻으세요. 수건은 안에 있어요.”



서윤이 씻는 동안 소파에 앉아 동동이를 쓰다듬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좋다. 등에 뭐가 올라왔다. 지네다. 사람보다는 믿음이 간다. 동물은 단순하잖아. 밥만 잘 주면 좋아해.



“죽여줄까?”



아주 작고······귀여운 목소리였다. 어깨까지 올라온 지네가 더듬이로 내 귀를 건드리고 있다.



“저 여자 싫어? 죽여줘?”



지네한테 말만 하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지금 그런 조건인가. 만약 나중에 끔찍한 정치질 쇼가 펼쳐진다 해도 한 마디 부탁만 하면······.



“사람을 또 죽이면 널 용서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안 죽일게.”



난 이번에도 호구 같은 선택을 했다. 이유는 충분하다. 죽으면 절대 곱게 끝나지 못한다는 것. 근데 그래서 이러는 게 아니다. 이유가 없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저 여자가 싫은 게 아니라 너무 빨리 다가와서 부담스러운 거야.”


“그렇구나. 천천히 오라고 해.”



지네 입에서 정론이 나오네. 이참에 그냥 지네 입을 빌릴까? 다른 사람들한테도 얘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그래도 좀 낫겠지? 갑자기 나오면 놀라서 죽일 수도 있잖아. 그럼 진짜 큰일이야.


신서윤은 더럽게 오래 씻었다. 데워둔 물을 다 쓸 때까지. 찬물이 나오기 시작하자 비명을 질렀다.



“뜨거운 물 다 썼어요.”


“흐엥······이제 헹궈야 하는데 어떡해요.”


“아껴 쓰셨어야죠. 예전이랑 달라요.”


“아이 진짜······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물 좀 데워주세요.”



데우는 동안 몸 식어서 감기 걸릴 텐데. 그러게 아껴 썼어야지.



“일단 수건으로 몸 닦아서 말리고 기다리세요. 젖은 상태로 있으면 감기 걸려요.”



근데 이런 것도 하나씩 다 알려줘야 해? 물 아껴 써라, 몸 닦아라······. 차라리 애를 키우지 진짜.


자정이 다 되어간다. 씻고 나온 신서윤한테서 내가 쓰는 샴푸 냄새가 난다. 오늘 여덟 번째 맡는 냄새다. 물 데워준다고 나만 씻지도 못하고 뭐냐 이게.



“아저씨 고마워요.”


“네.”



피곤하다. 지네는 나중에 소개해야겠다.



“저기······제가 너무 빨랐죠?”


“네.”


“죄송해요. 오늘······아침까지는 진짜 지옥에 있는 줄 알았어요. 저랑 같이 있던 남자분 있잖아요. 주도영 씨. 저 원룸 살았는데 같은 건물이거든요. 원래 여자친구 있는 분인데 저희 뒤에서 죽었어요.”



서윤 눈이 빨개졌다. 들고 있던 수건으로 자기 눈을 닦는다.



“사마귀 같은 게 사람을 막 잡아서 물어뜯고······미친 듯이 도망쳤거든요. 근데 도영 씨 어깨에 여자친구 분 팔이 매달려 있더라고요. 팔만. 저 솔직히 아직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어요.”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구나. 주도영은 여친을 그렇게 잃었으니까 멘탈이 박살 났을 거고. 날 의심하던 게 아니라 그냥 멘탈 깨져서 말이 없었던 거였네.



“아저씨가 아침에 와서 여유 있게 사람들 모으고 그랬잖아요. 되게 의지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근데 아저씨도 부모님 잃었죠. 제가 생각을 못 했어요. 저희 다 똑같이 힘들다는 거요.”


“한 사람한테만 의지하지 말고 서로 의지하는 게 좋아요. 언제 누가 또 죽을지 몰라요.”


“아저씨는 어떻게 그렇게 현실적이에요?”



현실 부정하면 뭐가 달라지나?



“인프제가 원래 그래요. 얼른 가서 주무세요. 내일은 다를 거예요.”


“바래다주시면 안 돼요?”



300미터도 안 되는걸······. 아 이 사람 손전등 없구나. 핸드폰도 충전 못 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냥 내 말만 듣고 맨몸으로 따라온 사람들이야. 지금은 극한 상황이고 스트레스도 엄청 높아. 정신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 당장 내일부터 파밍 시킬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바꿔야겠다.


걸어가는 동안 신서윤은 별이 잘 보인다고 좋아했다. 대강 맞장구쳐줬다. 내가······남들 멘탈 관리까지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히려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집에 와서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상추를 뜯었다. 식당에 있는 대형 밥솥으로 밥도 지었다. 저쪽은 아직 배터리 충전이 안 됐을 거다. 아침 메뉴는 흰쌀밥이랑 라면, 상추, 고추장. 라면에 넣을 건새우도 곱게 갈았다.


사람들을 부르러 갔다. 다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스트레스도 크고 환경도 많이 변해서 그럴 거다. 일어나기도 싫겠지만 이대로 방안에 놔두면 안 된다. 숙소 앞마당에 식탁을 펴고 거기서 라면을 끓였다. 라면 냄새는 못 참지.


한두 명씩 좀비처럼 걸어 나와 밥을 먹는다. 세 끼 연속 라면이라 좀 지겨울 거다. 파 있는데 파채라도 할까. 요즘은 파채 양념장 같은 것도 파니까 마트 가서 잘 찾아보면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오늘은 닭장부터 만들고.


먹게 놔두고 닭장을······아니 지네 먼저. 모닥불 주변에 통나무 의자를 놨다.



“다 드신 분은 여기로 모이세요.”



먹는 시간이 다 다르다. 주도영은 먹고 온 거 맞아? 모이는 동안 동동이랑 지네를 데려왔다.



“야옹이다! 안녕~! 만져도 돼요?”


“코인사 하고 만지세요.”



손가락으로 코인사 하는 법을 알려줬다. 역시 동동이 사교성이 좋다. 계속 돌아다니면서 적극적으로 냄새를 맡고 몸도 비빈다. 덕분에 이 집단의 스트레스를 크게 낮출 수 있겠다.



“진짜 중요한 얘기니까 잘 들으세요. 여기 지네 보이시죠.”


“꺅······.”



안보라는 확실히 벌레 싫어하네. 남자들은 그냥 신기해하는 눈치다.



“제가 키우는 지네고요, 물리면 죽으니까 건드리지 마세요.”


“그, 그런 걸 왜 키우세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빨리 쫓아내든가 죽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하는 지네라서요.”



지네 앞에 확성기를 대줬다. 안 해봤는데 이게 될까?



“내 친구 괴롭힌 사람은 자고 있을 때 물어서 죽일 거야······.”



되네. 인사부터 해야지 협박부터 하면 어떡하냐 지네야.



“얘 절대 만지지 마시고 죽이지도 마세요. 괴물로 변한대요.”


“누가요?”


“무연 씨요. 쫓아내도 저한테 돌아와요. 해봤어요. 그리고 죽이면 괴물이 돼서 저희 다 죽어요. 농담 아니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세요.”


“여기······오기 전에 말씀해주셨어야죠.”



박가람이 지적했다.



“싫으면 제주도로 가시면 돼요. 억지로 여기 계실 필요 없어요.”


“제주도를 어떻게 가는데요······?”


“차랑 식량 구해서 항구까지 가야죠. 이따 밤에 무연 씨랑 얘기해보세요. 배는 귀신들이 준비해줄 거예요. 여름 되기 전에 결정하시는 게 좋아요. 태풍 오기 전에요.”



당장 결정하긴 힘들 거야. 제주도 상황이 어떤지 무연한테 물어보는 게 순서지.



“제가 오늘은 닭장을 만들어야 해서요. 펜션촌은 안전 확인했으니까 크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래도 혼자서는 멀리 가지 마세요. 많이들 지치셨을 테니까 푹 쉬시고요, 기운이 좀 나시면 마을 가서 생활용품 같은 거 구해봐요.”



동동이를 펜션에 잠깐 놔두려고 했는데 날 계속 따라와서 실패했다. 어쩔 수 없다. 계속 고통받는 닭들을 위해 바로 목장갑을 꼈다. 각목과 철망, 슬레이트를 쓰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아저씨.”



신서윤······. 안보라도 같이 왔다.



“동동이 보러 왔어요.”


“저기 있어요.”



식당 바닥에 등을 문지르고 있는 동동이. 여자들은 좋아하면서 달려갔다.


남자들은 해가 뜨겁게 뜬 점심때 계곡에서 놀았다. 나 빼고. 입던 옷을 세탁기 돌리는 동안 오원우가 놀자고 부추겼다. 늘봄펜션 바로 앞 계곡이 놀기 좋게끔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나도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다. 그래도 닭장이 먼저다.


떠날 사람이랑 남을 사람이 확실해지고 나면 병아리를 키워야겠다. 펜션에도 닭이 있어야지. 닭장은 그때 또 만들면 돼.



“아저씨 이런 거 많이 해보셨어요?”



말 거는 건 여전히 신서윤이지만 안보라도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



“처음인데요.”


“많이 해보신 줄 알았어요. 얘들 알 낳아요?”


“네.”


“병아리 키워서 저희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남을 사람 확실해지면요.”


“다 남을 것 같던데요. 여기 정도면 살기 좋은 거 맞죠? 사람들 더 데려오면 어때요?”



때 되면 최 도령이나 이무연이 얘기하겠지.



“한꺼번에 많이 오면 안 좋아요. 저도 아직 자리 덜 잡았어요.”


“아 그렇겠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려면······오자마자 뭐 하기는 힘드니까요. 저희 먹을 건 얼마나 있어요?”


“농사 안 하면 못 살아요.”


“농사 가르쳐주세요.”


“저도 몰라요.”


“아니 방금 안 하면 못 산다고 해놓고 무슨 소리예요 그게-.”


“책 찾아서 배워야죠.”



어려운 기술은 아닐 거다. 잡초를 얼마나 열심히 제거하느냐가 관건이겠지. 해충이랑. 나머지는 책으로 배우면 돼.


오늘은 좀 무난하게 넘어가나 싶었는데 남자 쪽에서 사고가 났다. 주도영이 넘어져 팔꿈치를 다쳤다. 내가 쓰려고 챙겨놨던 구급상자를 처음으로 열었다.



“감사합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의사 없어요.”



의사 귀신이라도 나와주면 좋겠네. 이제 귀신도 수술 같은 거 할 수 있잖아. 밤에 무연한테 그 얘기를 해봤는데 전례 없는 일이라며 난감해했다.


신서윤이 말했던 대로, 제주도로 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들은 내용에 의하면 제주도가 여기보다 특별히 좋지는 않았다. 섬이고, 사람도 한 이천 명 돼서 물 공급이 문제였다. 먹는 물만큼 농업용수도 많이 필요했다.



“인프제 님. 이곳에 생존자를 더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급해요?”


“당장은 아닙니다. 청장님도 사람을 잘 골라서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알았어요. 한꺼번에 너무 많이는 안 돼요.”



최 도령이 보고 싶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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