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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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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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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4.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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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화

DUMMY

“넌 그냥 성공한 작가들이 더 빛날 수 있게 바닥에 깔아주는 자갈이 된 거야.”



솔직한 게 좋다, 가식은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엔 가식과 배려를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하면 안 될 말을 그냥 하는 거다. 상대가 상처를 받든 말든 자기가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그래서 난 그 친구에게 그만 만나자고 했다. 내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다 같이 망해서 기쁜 마음도 조금은 들었다. 일주일 동안은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나처럼 행동한 사람이 많을 거야. 집에 있으라는 뉴스가 매일매일 떠돌았다.


며칠 동안 밖은 시끄러웠다. 소리 지르고, 비명 지르고. 어린애 우는 소리도 났고, 사이렌 소리, 총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밤낮없이 날 괴롭혔다. 그래서 귀마개를 하고 지냈다.


좀비 아포칼립스 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다들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거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인간이 멸망하진 않을 거고 조금만 버티면 되겠다, 별로 걱정은 안 했다.


그런데 물이 끊겼다. 7일째 새벽이었다. 볼일 보고 물을 내렸는데 변기 물이 새로 안 찼다. 공기 빠지는 소리만 났다.


총으로 정리가 안 됐어? 왜 좀비 아포칼립스에선 군대가 힘을 못 쓰지? 집단생활을 하니까 감염이 빠르게 퍼져서? 근데 어떻게 모든 부대에서 똑같이 그런 일이 일어나? 장르 특성상 적당히 뭉개고 진행하는 거잖아. 현실에서도 이럴 수가 있나?


아니 아무튼, 물을 안 마시면 죽는다. 그래서 난 집에 쌓여 있던 생수 페트병을 잘라 갑옷을 만들었다. 영화 같은 거 보면 항상 좀비한테 뒤치기 당해서 목이나 손이나 팔을 물리더라. 그런 곳을 잘 가려야 해.


가위로 자른 플라스틱을 후드티에 테이프로 감아 붙였다. 좀비가 붙잡고 늘어지면 바로 뜯어질 것 같아. 반짇고리가 필요하다. 나일론 실로 꿰매면 튼튼할 거야. 마트에 있을 거다. 아마 좀비도 거기 다 몰려 있지 않을까. 일단 물이 중요하다. 그건 편의점에만 가도 있겠지.


집에만 있었다고 했지만, 하루에 한 번은 옥상에 올라가 주변을 구경했다. 햇빛은 받아야지. 우울증 안 걸리게. 어쨌든 눈으로 확인한 좀비는 다 걷는 좀비였다. 그렇지만 여기는 요양원도 있고 노인이 많은 동네라 그럴 수도 있어. 생긴 것만 봐선 늙은 좀비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좀비는 온몸이 지저분하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는 걸 봤다.


나가자. 안 나가면 진짜 죽는다. 페트병으로 강화한 후드티. 가방. 그리고 얇은 이불이랑 목검. 얇은 이불을 왜 챙겼냐면, 좀비한테 뒤집어씌워서 목검으로 패려고. 목검은 그냥 예전에 만들어놨던 거다.


이 건물은 조용하다. 원룸이라 대부분 혼자 산다. 아 물론 층간소음은 있었지만 좀비적인 의미로 조용하다는 말이다. 아무도 안 돌아다닌다. 집에 있는 건지 도망친 건지는 모르겠다. 층간소음 내던 사람은 꼭 좀비로 발견됐으면 좋겠다.


건물 현관은 비밀번호가 필요하다. 그래서 좀비가 안 들어왔다. 유리문이니까 깨뜨릴 수도 있었을 거다. 근데 편의점 유리 벽에 머리를 계속 박는 걸 보면 역시 멍청한 좀비다. 손에 땀이 난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은데 왜인지 모르겠다. 장갑도 있어야겠다. 목검이 미끄러워.


가까운 편의점에 먼저 가봤다. 문이 열려있고 안은 털렸다. 물이 없다. 음식도 싹 털렸다. 누군가······집단으로 움직이는 생존자가 있는 것 같다. 발자국이 많다. 고양이 캔 같은 거밖에 안 남았네. 비려서 못 먹어.



“야옹-.”



이 동네 사는 턱시도 고양이다. 원래 사람을 피하는 놈이었다. 지금은 이상하게 가까이 온다. 고양이야 뭐······좀비만 아니면 됐지. 캔을 하나 까주니까 허겁지겁 먹는다. 편의점에선 장갑만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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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좀비 몇 마리가 밖에 얼쩡거린다. 두 마리 이상일 땐 싸우지 말고 도망치자. 아니 그냥 웬만하면 싸우지 말자. 뒤치기 당할 수도 있다. 자전거가 있어서 다행이다.


거리 풍경은 일주일 전이랑 거의 똑같았다. 좀비도 있고 사고 차량도 있고, 바닥에 핏자국도 좀 보여. 그래도 크게 위협은 안 되니까 평소랑 다를 거 없다. 자전거 타는 동안엔 좀비가 아니라 자동차가 훨씬 위험하지. 그리고 마트는 역시 좀비 천지였다. 죽어서도 초특가 행사 찾아온 집요한 소비자들. 이제 어떡하지.



“야옹!”



턱시도 고양이가 날 따라왔다. 자동 캔 따개를 놓치기 싫었나 보다. 근데······나한테 오던 좀비들이 갑자기 등을 돌린다. 고양이 때문인가? 왜? 자전거를 세워두고 천천히 걸었다. 고양이는 계속 날 따라왔고. 그리고 좀비도 계속 우릴 피한다. 이유야 어쨌건 신기했다.


고양이는 자기 맘대로 다니는 동물이잖아. 언제 갑자기 혼자 도망칠지 모른다. 내 목숨 걸기엔 너무 위험해. 그래도 마트 말고 편의점이라면 시도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 고양이가 내 손을 거부하지 않아서 가방에 넣어줬다. 머리만 쏙 내민 게 귀엽다.


좀비가 어떻게 고양이를 알아봤을까? 무슨 감각을 주로 쓰는 건지 모르겠다. 인간 좀비니까 시력일 것 같긴 해. 눈동자를 굴리는 것도 봤고. 근데 좀비잖아. 무슨 돌연변이가 일어났을지도 몰라. 오래 살려면 고양이보단 사람을 찾아서 같이 다니는 게 좋겠지. 근데 그냥······마음에 안 든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생존자끼리 싸우는 것보단 힘을 합치는 게 훨씬 낫다.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도 모르는데 서로 싸우기까지 하면 미래가 없어. 하지만 사람은 합리성보단 감정을 더 따르는 생물이다. 캔 따줬다고 날 따라오는 고양이가 차라리 더 믿음직해.


온종일 도시를 돌아다녔다. 의외로 안전해서 놀랐다. 도로는 넓고 자전거는 빠르고 좀비는 느리다. 근데 왜 사람이 없을까. 다들 어디로 갔을까. 군대는 뭘 하는 걸까. 음료수가 남아있는 편의점을 발견했다. 맛없는 음료수라 안 가져갔나 보다. 나한텐 생명수다.


고양이 캔이랑 간식도 챙겼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건물은 애완동물 금지지만 지금은 상관없지. 어차피 오래 있지도 못할 거고······.


혼자인 이상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나 마찬가지다. 다치거나 병 걸리면 끝이다. 그럼, 갈 때 빨리 갈 수 있게 총이라도 한 자루 장만해야겠다. 경찰이 쓰는 권총이면 충분할 거다. 경찰이 있을까? 있으면 도와달라고 할까? 날 도와주긴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절단기를 찾아다녔다.


힘들게 발견한 철물점에서 절단기를 찾아 나왔는데 그새 고양이가 사라졌다. 고양이니까 어쩔 수 없다. 넌 여기 있어. 캔 따개는 경찰서 갈 거야.


시내 경찰서로 가는 길에 무서운 장면을 봤다. 유치원 버스가 길가에 처박혀 있었다. 창문에 피가 엄청 많이 튀어 있었고 주변에도······시체 같은 것들이 많았다. 움직이진 않았다. 소풍 가기 좋은 봄날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애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목검을 멘 어깨가 조금 쑤신다. 만약 작은······좀비가 오면 내려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경찰서 무기고는 절단기로 열 수 없는 철문이었다. 그래도 좀비가 된 경찰한테서 권총을 빼앗을 순 있었다. 죽이진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목검은 두개골을 못 깬다. 한 번 때려보고 바로 알았다. 깨질 때까지 칠 수야 있겠지. 그러다 목검이 부러지면? 갑자기 뒤치기 당하면? 그래서 빗장뼈를 쳤다. 좀비도 뼈가 부러지니 불구가 됐다. 팔을 못 쓰는 좀비. 호구다. 목검이 버텨줘서 다행이었다. 장하다 과거의 나. 이불도 생각대로 효과가 괜찮았다. 좀비는 아무것도 못 하고 두들겨 맞았다.


공포탄 1발. 고무탄 3발. 실탄이 없다. 무기고에 있겠지만 열쇠를 찾을 엄두가 안 난다. 잡아야 할 좀비가 너무 많아. 이쪽은 포기하자. 그래도 운은 좋은 편이었다. 경찰서 창고에서 생수랑 음료수를 많이 찾아냈다. 컵라면도 상자째로 몇 개씩 있었다. 폐지 줍던 할아버지의 리어카를 잠깐 빌렸다.


가스랑 전기는 아직 나온다. 한 달 안에는 확실히 끊길 거야. 물이 끊겼는데 다른 게 안 끊기는 건 이상해. 그 전에 준비해서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물이 있고,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그리고 좀비도 잘 안 오고. 시골로 가야겠네.


아버지는 시골에 살다가 도시로 상경했다. 아버지 고향은 완전 산골이다. 교회도 편의점도 없다. 거기 사는 친척들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친하진 않지만 알고는 지내는 정도다. 문제는 여기서 엄청 멀다는 거다.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 난 평생 차를 가져본 적이 없다. 차는 무슨······라면도 5천 원 넘는 건 손도 못 대고 살아왔다.


아버지가 살아있을까? 아버지한테 차가 있으니까 가보는 게 좋을까? 아버지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말이 안 통하는 관계라서. 죽었어도 크게 슬프진 않을 것 같아. 근데 아버지 집이랑 내 원룸도 거리가 꽤 된다. 대중교통은 논외고 자전거밖에 없네. 두 시간쯤 걸릴 것 같다.


주변에 널린 남의 차를 손대는 방법도 있다. 근데 열쇠를 누가 가지고 있는데? 핸들 밑에 뜯어서 전선 맞추는 건 이제 안 된다고 들었다. 차 유리 깼을 때 경보 울리는 것도 문제야. 열쇠 꽂힌 차라도 발견하지 않는 한 답이 없다.


물이 남아있을 때 가야 해. 라면 끓여 먹는 것도 사치다. 무조건 식수로만 쓰자. 몸은 물티슈로 닦아도 되니까 괜찮아.


저녁은 라면을 부숴 스프에 찍어 먹었다. 그리고······.


소방서에서 방화복을 찾아 입을까? 그런데 날씨가 벌써 덥다. 더워서 빠지는 체력과 수분이 걱정된다.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갑옷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페트병으로 갑옷을 만들었던 건데, 이게 움직일 때마다 까득까득 소리가 나서 너무 시끄럽다. 그냥 처음부터 좀비를 피하는 게 훨씬 낫다. 걷는 좀비니까.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나빠지는 삶을 살아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한 번도 잘됐던 적이 없다. 계속 내리막이었다. 바닥에 깔리는 자갈. 자갈은 비라도 내리면 밑으로 쓸려 내려간다. 절대 위로는 못 간다.


작은 발톱이 문을 긁는 소리가 났다. 턱시도 고양이였다. 현관 닫혀 있을 텐데 어떻게 들어왔니. 1층 창문은 열려있으니까 거기로 왔을지도. 고양이는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내 가방을 뒤적거렸다. 간식을 꺼내 그릇에 짜주었다. 잘 먹네. 고양이도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데, 내 인생은 어째서 그러지 못했을까.


어쨌든 좀비한테 죽고 싶진 않아.


작가의말

냥식아 미안해...캔은 못 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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