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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49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4.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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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화

DUMMY

사격장 근처에 가볼 만한 총포사는 두 곳이었고, 전부 털린 지 오래였다. 사격장이랑은 양상이 좀 달랐다.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 다 들고 나간 것 같았다. 주인이 가져갔겠구나. 근데 참······허무하다. 이만큼 다녔으니까 총 한 자루쯤은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 총이야 구했지. 클레이 사격용 산탄총. 지금은 그냥 몽둥이다. 목검보다 나을 게 없어.


저번에 경찰 좀비한테 뺏은 권총도 가방에 들어있다. 경찰이 실탄을 안 가지고 다닐 줄은 몰랐다. 쓸 일이 없으니까 그냥 사고 안 나게 아예 빼놨나 보다. 총 하니까 미국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네. 이날을 기다렸다! 하면서 날뛰고 있지 않을까? 근데 부럽진 않아. 분명히 사람끼리도 쏠 거야.


속는 셈 치고 파출소도 한번 가봤다. 여기도 무기고는 똑같이 철문이었다. 대신 건물이 작으니까, 열쇠를 찾아봤다. 의외로 있었다. ‘무기고’라고 이름표를 달아놓은 열쇠를 찾아냈다. 군대랑 똑같네. 근데 소득은 없었다. 총도 총알도 싹 가져갔어. 이렇게 열심히 활동 중인 사람들이 내 눈에 안 띄는 이유가 뭐야? 쓸모없는 산탄총은 그냥 버렸다. 권총은 그래도 고무탄이 들어있으니까, 한두 번은 날 구해줄지도 몰라.



“너 무슨 산짐승 대비하려고 그러냐?”



이번에 최 도령은 사이드미러 안에 있다.



“멧돼지요.”


“멧돼지는 네 소리만 들어도 도망갈걸.”


“괴물도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저승에서 사람 얼굴이 있는 생물은 죄다 벌 받는 죄인이다. 걱정할 것 없어. 살아있는 사람은 못 건드려.”


“지금도 그럴까요?”


“널 건드려봤자 자기가 더 손핸데. 아 그래, 얼굴 없는 놈들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런 놈들은 진짜 괴물이거든. 혹시 보이거든 조심해.”


“네.”



이것저것 하다 보니 벌써 늦은 오후였다. 아버지 공장으로 돌아왔다. 치즈 고양이가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또 구해줘야겠네. 귀찮지만 밤엔 고양이가 내 옆에 있는 게 낫지. 편의점으로 가서 고양이 캔이랑 간식을 다 가져왔다.


고무통에 고인 빗물로 머리 감고 세수도 했다. 아버지가 세차할 때 쓰는 고무통이다. 살아서는 나한테 그렇게 상처를 줬던 사람인데, 지금은 아버지가 남긴 모든 게 도움이 된다. 솔직히 고마웠다.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지만, 고맙긴 했다. 내친김에 발도 닦았다. 양말은 밖에다 널어놓고 안에서 쉬었다. 발 건강에 신경 쓰자. 못 돌아다니게 되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


공장 뒷마당에 불을 피우고 고구마랑 감자를 구워 먹었다. 땔감으로 쓸 나무 팔레트가 많다. 위에 짐 올리고 지게차로 들 때 쓰는 납작한 거. 고양이도 불 옆에 와서 드러눕는다. 몇 시간 동안 불을 쬐었다. 밤은 쌀쌀했다.


얼굴 없는 괴물. 뭐가 있을까. 최 도령이 자세히 말해주진 않았다. 자연스러운 생태계는 아닐 거야. 그냥 괴물이겠지. 말 그대로. 또 사람 머리 지네가 생각난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끔찍한 생물이다. 그러니까, 저승에는 그런 게 많이 있다 이거지. 나도 죽으면 그렇게 되나? 최 도령에게 물어보진 않았다. 알기가 두려웠다.


자기 전엔 이를 닦고 치실도 썼다. 이빨도 중요하다. 이제 치과 없으니까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살아야 한다. 안 아프게 관리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틀니도 못 구해. 역시······혼자서는 오래 못 살아. 당장 내년, 아니 올해 죽을지도 몰라. 미래를 걱정하고 사는 건 안 좋은데, 그냥 그렇게 된다. 이렇게 되기 전이나 후나 내 미래는 똑같잖아. 어두워. 그런데도 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았고 감자랑 고구마를 먹었고 이도 닦았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고양이가 품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골판지로 막아놓은 창문 때문에 어둡지만,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는 있다. 고양이를 조금 만져주고 일어났다. 고양이는 날 쳐다보다가 온기가 남아있는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목공은 어땠냐? 일이 잘 안 됐어?”



갑자기 최 도령이 물어봤다. 목소리만 들리는 게 조금 소름 돋아서 거울 앞으로 갔다. 왜 맨날 등 뒤에 나타나지?



“목공이요?”


“너 목수잖아.”


“아닌데요.”


“목검 직접 만들었다며.”


“네. 태어나서 처음 만든 거예요.”


“태어나서 처음? 진짜?”


“네.”


“혼자서? 아무도 안 도와줬어? 어디서 배운 적도 없고?”


“네. 왜요?”


“왜긴······어이가 없으니까 그렇지.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재능을 줘 놓고 펼칠 기회는 안 주다니.”



남의 입으로 저런 소릴 들으니까 더 괴로웠다.



“근데······갑자기 왜 물어봤어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원래 이래요.”


“상황이 이러니까 웃으라고 하기도 미안하네. 기운 내. 오늘 아버지 묻어드리러 가야지.”



잠깐 같이 지낸 치즈 고양이한테 마지막으로 캔을 까주었다. 고양이는 먹지도 않고 날 따라와 내가 떠나는 걸 지켜봤다.


동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다. 상행선이 꽉 막혀 있었다. 하행선은 아주 한산했다. 좀비가 좀 돌아다닐 뿐이었고 그나마도 힘이 하나도 없어서 큰 문제는 안 됐다. 사람들은 차를 버리고 하행선으로 넘어와 도망간 것 같았다. 무거운 차가 중앙분리대를 뚫은 흔적을 만났다. 군부대가 길을 열었나 보네. 대피 행렬이 뒤를 따랐고. 총알 자국도 보인다. 저 시체가 사람이었을까, 좀비였을까. 똑바로 보기 힘들었다. 시선을 앞에 고정하고 지나쳤다.


최 도령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옛날 발음인가?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음은 괜찮았다. 노래 잘하네.


100km 아래로 천천히 달렸다. 좀비는 휴게소에 많았다. 정말 많았다. 다행히 도로 위로 잘 나오지 않는 건 똑같았다. 휴게소 루팅은 관두고 멀리 떨어진 길가에서 볼일을 봤다. 다른 차 없이 혼자 달리니까 좋다. 눈치 안 봐도 되고 편해. 주행차로인데 꺼지라는 식으로 내 뒤에 들이미는 미친놈도 없고, 터널에서 칼치기 하는 양아치도 없어. 그냥 나랑 최 도령 둘뿐이다.


한 시간쯤 더 달리다 졸음쉼터에 섰다. 어젯밤에 구워둔 고구마 감자를 먹었다. 식곤증 때문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 알람 맞춰두고 30분 정도 선잠을 잤다. 자긴 자는데 깨어 있는······. 그래도 피곤은 좀 풀렸다.


단속 카메라 보일 때 브레이크를 밟았었다. 생각해보니 웃긴다. 누가 단속하러 와주면 고맙지. 그래도 일부러 과속하는 건 안 돼. 내가 위험해. 이제 얼마나 남았지? 늦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히 가. 슬슬 출발하자.


터널을 지나 강변을 따라 달리다 산속으로. 산허리를 따라 구불구불 놓은 도로를 타고 들어가는 길. 산밖에 없는 경치가 멋지다.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에는 시골에 자주 갔었다. 그때가 좋았다. 어른들은 항상 날 아껴줬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이곤 했다. 잘 먹어야 잘 큰다면서. 맞는 말이었다. 내가 아버지보다 크다. 친척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크다.


편의점조차 없는 시골이지만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옛날엔 흙이나 시멘트였다. 익숙한 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갔다. 내 고향이 아닌데도 도시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많아서 그렇겠지. 친척들이 사는 마을이 보인다. 내 목적지는 저기가 아니라 산등성이 너머다.


아버지는 귀농을 생각했던 것 같다. 햇볕이 잘 드는 개울가에 작은 별장을 만들었다. 대단한 별장이 아니라 그냥 회색 컨테이너. 컨테이너에 살림 좀 놔두고 가끔 시골로 내려와 벌초를 하거나 친척들을 만났다. 웬만한 건 다 있다. 컨테이너 위에 태양광 전지판도 달렸다. 방에 불 켜거나 커피포트로 물 끓이는 정도는 된다. 좀비 아포칼립스에 이 정도면 호사다.


난방은 나무 난로를 쓴다. 구식이어서 든든하다. 나무만 해오면 겨울은 걱정 없다. 실어온 짐은 창고로 쓰는 비닐하우스에 쌓아뒀다. 이제······친척들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시골까지 좀비가 퍼질 리 없어. 살아있어야 해. 목검이랑 권총을 챙겨 마을로 넘어갔다.


적어도 시체는 찾지 못했다. 아무도 없었다. 대피했구나. 굳이 대피할 필요가 있나 싶은 곳인데, 아무튼 군대가 와서 데려간 것 같다. 여유가 있었는지 집안이 어지럽지 않다. 필요한 물건을 차곡차곡 챙겨 떠난 자리다. 못 가져간 장독대 항아리에 장이 꽤 남아있다. 시골 된장은 냄새가 강해서 내 입엔 안 맞지만, 억지로라도 먹어야겠다. 장 담글 줄 모르는 나한텐 귀중한 식량이다.


바깥에서 소랑 닭 소리가 났다. 나가서 소리가 난 곳을 찾아봤다. 외양간이랑 닭장이 다 열려 있었다. 알아서 살라고 풀어준 거구나. 창고엔 닭 모이가 쌓여 있다. 내가 키우면 되겠네. 여기까지 왕복하기 귀찮긴 한데 닭을 포기할 순 없지. 아니지, 그냥 친척 집에서 살까? 벽돌집이라 컨테이너보다 훨씬 좋고 있을 것도 다 있잖아. 그래, 이제 여기가 내 집이다.


수도를 틀었더니 물이 콸콸 나온다. 마을 옆에 흐르는 계곡물을 끌어다 쓴다. 높은 산에서 내려온 시원하고 깨끗한 물. 마음대로 샤워를 할 수 있다. 라면도 실컷 끓여 먹을 수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거였는데. 난방은 가스 난방이다. 가스탱크가 있다. 충전하는 방법만 알면 계속 쓸 수 있을지도 몰라. 아버지 컨테이너에서 나무 난로를 가져올 필요는 없다. 어차피 굴뚝 설치를 못 한다. 등유 난로도 같은 이유로 맘대로는 못 쓴다.


그럼 뭐······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기서 혼자 사는 건가.



“동네 좋네. 물 좋고 공기 맑고. 좀비도 없고 지네도 없고. 슬슬 아버지 챙겨드려라.”



최 도령 말대로 아버지를 화장했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물이 계속 났다. 연기를 보고 119가 와주면 좋겠다. 하지만······아무도 와주지 않았다. 하얀 재만 남아 불씨마저 사그라들 때까지 태웠는데도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해가 져버려서 매장은 내일로 미뤘다. 불타고 남은 아버지 뼈를 돌로 찧어 가루로 만들었다. 적당한 항아리에 담아 천으로 감쌌다.


아버지가 너무 가볍다. 내가 불태운 게 아버지 맞나? 왠지 서러웠다. 아버지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평생 상처만 줘서 미안하다고. 친척들 앞에서만 좋은 아버지인 척하고 정작 아들 앞에서는······.


지금 따져봤자 다 무슨 소용이냐. 닭장에 닭들이 들어왔는지 확인하고 문을 닫아줬다. 챙겨준 보답으로 계란을 하나 얻었다. 라면에 넣어 끓여 먹었다.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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